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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를 핥으세요, 공작님! (116)화 (116/144)

116화

“저놈이라니까요! 분명해요!”

“맞아요, 어제 그렇게 이야기하는 걸 들었다고요!”

“자, 제발…… 진정들 하세요. 알았습니다. 알았다니까요.”

야간 당직을 서던 심문관은 당장이라도 땅으로 꺼져 버리고 말 것처럼 피로한 얼굴이었지만 아체리아는 그의 사정을 봐주고 말고 할 여유가 없었다. 범인을 잡아 와 경비대에 넘기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 범인이 좀처럼 깨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물이라도 끼얹어서 깨우라니까요!”

“아니, 규칙상 그렇게는 하지 못한다니까요……. 이 아가씨 참.”

“지금 규칙 따질 때예요? 저놈이 어딘가에 애들을 가둬 놨는데!”

심문관은 창살 안에 늘어진 채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남자를 보며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아직은 증거가 없잖아요. 그러니…….”

“우리 공작님을 음해하는 건 무슨 증거가 있어서 그렇게 했어요?”

“아니, 그러니까 그 소문은 내가 퍼뜨린 게 아니라고 몇 번 말해야…….”

“이렇게 우물쭈물하다가 저놈이 깨어나서 도망이라도 가면 어떡하려고 그러는 거예요?”

“글쎄 여기서 어떻게 도망을 가냐니까. 나 원 참.”

아무리 윽박지르고 을러대도 유들유들한 심문관은 무거운 엉덩이를 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체리아와 요아킴은 분통이 터진다는 얼굴로 씩씩거리면서 그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팩 돌아선 아체리아는 쓰러진 남자가 갇혀 있는 감옥 앞으로 곧장 걸어가더니 창살을 퍽, 걷어찼다.

“이 빌어먹을 자식! 일어나! 당장 일어나지 못해! 기절한 척하는 것 다 알고 있어!”

“어, 어! 이봐요, 아가씨! 여기서 소란 피우면 안 된다니까 글쎄!”

“소란? 지금 소란이라고 했어요? 소란을 안 피우게 생겼어요? 납치범을 잡아 왔더니, 심문은커녕 쿨쿨 재우고 있는 게 말이나 되냔 말이에요!”

“아니, 그러니까 심문은 저 남자가 일어나면 아침에…….”

아체리아가 아무리 소리를 질러 대도 그는 좀처럼 남자를 깨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심문은 귀찮은 일이었다. 단순한 동네 싸움이어도 보고서를 몇 장씩 제출해 가며 심문을 해야 하는 판에, 요즘 수도에서도 떠들썩한 아동 납치 관련이라니, 그런 것은 맡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범인이라는 그 남자는 얼마나 두들겨 맞았는지 기절까지 하지 않았는가. 저런 것을 잘못 다루었다가는 도리어 사달이 나기 십상이다. 그러니 아침까지만 버텼다가, 교대하는 심문관에게 일을 넘기면 되리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치안대의 문이 다시 한번 열렸을 때, 남자는 더 이상 자리에 앉아 버티고 있을 수 없게 되었다.

“아, 아니!”

비스듬히 열린 문 너머로 보인 마차의 문양은 못 알아보려야 못 알아볼 수가 없는 것이었다.

“공작님!”

요아킴이 깜짝 놀라 외쳤다. 그때까지 창살을 잡고 쓰러진 남자를 향해 으름장을 놓고 있던 아체리아도 요아킴의 외침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긴말 않겠다.”

게으른 심문관은 차가운 얼굴로 버티고 선 클라우스를 차마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지금 당장 놈을 깨워. 깨워서 차근차근 심문해라. 밝혀질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예? 아, 예. 아…… 알겠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요.”

아체리아는 허둥지둥 열쇠를 들고 오는 심문관을 한 방 걷어차 주고 싶다는 표정으로 빤히 노려보았다. 심문관이 감옥의 문을 열자,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치안대의 경비대원들이 축 처진 남자를 질질 끌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고…… 공작님, 여기까지 혼자…… 오셨습니까?”

요아킴이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클라우스는 문 바깥쪽을 힐끔 바라보더니 대답했다.

“마차에 호즈만이 타고 있다. 너는 그와 함께 저택으로 돌아가도록.”

“네? 저…… 그러면 공작님께서는…….”

“진상이 밝혀질 때까지 여기 있겠다고 한 것을 못 들었느냐? 시간이 늦었으니 돌아가라.”

요아킴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아체리아와 클라우스를 한 번씩 돌아보고는 고개를 꾸벅 숙인 뒤 건물을 빠져나갔다. 아체리아은 그때까지도 텅 빈 창살 앞에 선 채 가만히 서 있었다.

“거기서 뭐 해?”

한참이나 침묵을 지키던 클라우스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아체리아는 눈치를 살피듯 시선을 살짝 들었다가 일부러 클라우스의 눈빛을 피하면서 헛기침을 했다.

“어떻게 직접…….”

“어떻게 직접 왔을지 네가 한번 맞혀 봐.”

“……경비대원들이 저택으로 찾아가 문을 마구 두들겼겠지요?”

“그래. 덕분에 나는 자다가 튀어나왔고.”

아체리아는 고개를 비스듬히 돌려 클라우스의 시선을 더욱 외면했다.

“왜 내 말을 안 들어? 위험하니 나서지 말라고 한 거 못 들었어?”

“……그야 그렇지만, 가만히 있을 수도 없었어요. 모두가 공작님을 오해하고 있고…….”

클라우스가 한숨을 내쉬며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내가 이미 데르송 후작령에 있는 탄광에 사람을 잠입시켰다. 시일은 좀 걸렸지만 쓸 만한 증거를 몇 개 입수한 참이야.”

뜻밖의 말을 들은 아체리아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녀로서는 전혀 몰랐던 소식이다. 알 도리가 없었다.

클라우스가 말을 이었다.

“근시일 내로 때를 기다렸다가 날려 버릴 작정이었는데 위험하게 왜 나서서 일을 벌여?”

“제가 그럴 줄 알고 이랬나요, 뭐.”

쀼루퉁하니 투덜거리는 아체리아의 대꾸에 클라우스의 미간에 힘이 들어갔다.

걱정이 되어 하는 소리라는 건 알지만 좀 부드럽게 말해 주면 어디가 덧나나. 다 자길 위해서 한 일인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아체리아도 지지 않고 클라우스를 향해 입술을 삐죽였다. 하지만 나서지 말라고 했던 그의 말을 어긴 것은 사실이었기에, 아득바득 기 싸움을 할 수는 없었다.

“다치기라도 했으면 어쩔 뻔했어? 놈이 너에게 흉기라도 휘둘렀으면? 손이나 손목을 영영 잃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은 안 해 봤어? 넌 요리가 네 인생의 전부라고 했지, 아체리아. 그러면서 어떻게 이렇게 겁도 없이…….”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요.”

대꾸하는 아체리아의 목소리는 약간 풀이 죽은 듯했다.

클라우스는 답답하다는 듯이 허공을 노려보다가 허물어지듯 의자에 주저앉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흘러내린 앞머리를 한 번 쓸어 올린 그는 손바닥으로 피로한 눈을 문지르고는 한참이나 그대로 있었다.

“말씀하신 걸 지키지 않은 건 죄송해요, 그렇지만…….”

“호즈만이, 네가 범인을 잡았다는 말을 전해 주었을 때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아?”

클라우스의 목소리는 손바닥에 가려 웅얼거리는 것처럼 잘 들리지 않았다. 아체리아는 발끝으로 땅바닥을 툭툭 걷어차다가 그에게로 가까이 다가갔다.

클라우스가 말을 이었다.

“범인을 잡았다고, 네가 치안대까지 함께 갔다고……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머릿속으로 수십 가지가 넘는 끔찍한 상상을 했어.”

“…….”

“네가 어딘가 다쳤을까 봐, 얻어맞은 것은 아닐까, 뭔가 끔찍한 일에 휘말린 건 아닐까…… 나 때문에.”

“이게 어떻게 공작님 때문이에요. 공작님은 피해자인데.”

“애초에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네가 이렇게 위험한 일을 하지 않아도 됐을 거잖아. 내가 좀 더 빨리 움직였다면…… 범인을 색출하기 위해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였더라면. 아니면 네게 언질이라도 주었어야 하는데.”

후회가 가득한 어조였다. 그의 태도가 너무 진지해서 오히려 아체리아가 당황했다.

“저 아무렇지도 않아요. 하나도 다치지 않았어요. 오히려 그놈이 다쳤……!”

달래듯이 말하던 아체리아의 말이 뚝 끊겼다.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두 손을 꼭 쥐고 있는 클라우스의 팔은 무섭도록 떨리고 있었다.

“……두 번 다시는 이런 식으로 날 걱정시키지 마. 한 번은 봐주겠어. 하지만 두 번은 안 돼. 절대로.”

“…….”

“대답해. 안 그러겠다고.”

아체리아는 아래로 꺾인 클라우스의 뒷머리를 가만가만 쓰다듬었다.

자신보다 신분도, 지위도 높은 남자. 어지간한 사람들은 감히 범접도 할 수 없는 공작. 차가운 사람.

그런 사람이지만, 이 순간 클라우스는 누구보다 연약해 보였다.

허리를 굽혀 그의 머리칼에 입을 맞춘 아체리아는 클라우스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옆에 앉았다. 그러고는 그가 자신에게 머리를 기댈 수 있도록 해 주고 조용히 속삭였다.

“앞으로는 안 그럴게요. 두 번 다시 위험한 짓은 안 할 테니까 울지 마세요.”

* * *

심문은 아침까지 진행되었다.

아체리아와 클라우스는 날이 밝도록 공작저로 돌아가지 않고 치안대에서 밤을 꼬박 새웠다. 교대하기 위해 출근한 심문관은 대기실에서 머리를 맞댄 채 잠든 그들을 깨웠다가 화들짝 놀랐다. 화제의 비스몽트 공작이 대체 왜 여기서 잠을 자고 있는가?

그때 심문실의 문이 열렸다. 눈 아래가 다소 퀭하게 가라앉은, 야간 근무를 하던 심문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피로에 찌들어 비척거리면서도 클라우스의 앞까지 걸어와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공작님, 심문이 끝났습니다.”

“결과는?”

“그자는 돈을 받고 움직이는 용병이었습니다. 아이들을 어디에 가둬 놓았는지 모두 실토했습니다.”

“정말로 범인이었단 말이지? 누구에게서 돈을 받았다고 했나?”

“……데르송 후작입니다, 공작님.”

클라우스는 역시나,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놀랍지도 않은 사실이었다.

“탄광은 법적으로 아동 노동이 금지된 곳 중 하나지.”

클라우스가 조용히 혼잣말을 했다.

심문관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는 표정을 짓고서 그의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잘못을 했다고 생각하든 그렇지 않든, 이렇게 된 이상 납작 엎드려 기는 것이 수였다.

“이걸 받아.”

클라우스가 가방에서 납작한 무언가를 꺼내어 심문관에게 건넸다.

“이게 무엇입니까?”

“이 사건과 관련된 증거 자료다. 폐하께 보고를 올릴 때 함께 올리도록.”

심문관은 연방 허리를 굽실거리며 클라우스가 내민 자료를 받아 들었다.

“곧장 경비대를 후작가로 보내고, 폐하께도 보고가 올라갈 것입니다. 공작님께서는 이만 저택으로 돌아가십시오.”

“이후 처분에 대한 것도 전부 공작가로 보고를 올리도록 해라.”

“여부가 있겠습니까.”

귀찮은 일을 피하기 위해 느물거리던 그의 태도는 하룻밤 새 싹 달라져 있었다. 그제야 잠에서 깨어난 아체리아는 마른 눈을 손가락으로 비비며 눈을 떴다가, 쩔쩔매고 있는 심문관을 노려보았다.

“내가 말했죠, 그 자식이 범인이라고?”

“정말로 죄송하게 됐습니다. 제 불찰입니다. 저…….”

심문관이 우물쭈물하자 클라우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할 말이 남았는가?”

“제, 제가 그만 지난밤에는 정신이 좀…… 나갔던 모양입니다. 그래도 밤을 새워 심문을 마쳤으니, 부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참작을 해 주십사…….”

즉, 상부에 자신의 업무태만을 보고하지 말아 달라는 소리였다. 클라우스는 얼굴을 찡그린 채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자네를 치안청 상부에 보고할지, 말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자네가 가지고 오는 보고서의 질을 보고 판단하겠다.”

“가, 감사합니다! 제가 토씨 하나도 빼놓지 않고 전부 기재하여 댁으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공작님.”

밖으로 나왔을 때, 막 뜨기 시작한 아침 햇살이 두 사람의 머리 위를 눈부시게 비추었다. 아체리아와 클라우스는 둘 다 제대로 잠을 못 자 푸석푸석한 얼굴을 한 채 치안대에서 준비한 마차에 올랐다.

“그 데르송 후작이라는 사람 말이에요, 이제 어떻게 될까요?”

아체리아의 질문에 클라우스는 뻑뻑한 눈을 깜빡이며 어깨를 으쓱했다.

“아동 노동과 관련한 법을 위반한 것도 모자라 납치, 감금까지 자행했으니 운 좋으면 죽을 때까지 탑에 갇히겠지. 운이 나쁘면 교수대 신세일 테고.”

“공작님을 모함한 죄도 있잖아요. 그건요?”

“그것도 포함해서. 하지만 데르송 후작이 직접 모함을 한 건 아닐 거야.”

“그럼 소문을 낸 건 다른 사람이라는 말씀이세요?”

클라우스는 팔짱을 낀 채 작게 입을 벌려 하품을 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그럴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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