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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를 핥으세요, 공작님! (112)화 (112/144)

112화

하루 한 끼도 제대로 안 먹었던 시절이 언제인가 싶게, 클라우스는 요즘 야식도 꼬박꼬박 잘 챙겨 먹었다. 아체리아가 준비해 주면 준비해 주는 대로, 혹은 준비를 안 해 놔도 가끔 배가 고프다며 찾을 때가 있었다.

오늘은 아체리아가 앞장서서 그럴싸한 야식거리를 준비해 둔 날이었다. 달콤짭짤하게 절인 올리브에, 얇게 저민 연어를 넣은 조그만 샌드위치, 그리고 말린 뒤 장미잼을 발라 구운 치즈였다.

“공작님, 야식 가져왔어요.”

아체리아가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는 곧 대답이 들려왔다. 클라우스는 얇은 실내복 한 장만 입은 채 창가에 앉아 바람을 쐬고 있었다.

“창문 열어 놓지 마세요. 감기 걸리시잖아요.”

“너까지 호즈만이랑 똑같은 잔소리를 하는 거야?”

클라우스가 씩 웃으며 물었다. 아체리아는 ‘그게 싫으면 걱정을 끼치지 마셔야지’라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쟁반을 내려놓고 열린 창문을 조금 닫았다.

“연어 샌드위치?”

“맛있을 거예요.”

클라우스는 연어를 싫어했다. 하긴 뭔들 좋아했겠느냐마는.

아체리아가 ‘싫어도 몸에 좋으니까 드세요’ 따위의 대사를 준비하고 있는 동안, 클라우스는 의외로 순순히 샌드위치를 집어 먹었다.

“전에는 비려서 싫다고 하시더니 잘 드시네요.”

“응. 이젠 트집 잡을 필요가 없으니까.”

그렇구나…… 잠깐, 지금 뭐라고? 아체리아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지금 트집이라고 하셨어요?”

클라우스는 자기가 무슨 말을 내뱉었는지 되짚어 보다가 뜨끔한 표정을 지으며 얼른 샌드위치를 한 입 더 집어넣었다.

“그럼 그동안 일부러 싫다, 안 먹는다, 그러셨단 말이에요?”

“아니, 그런 건 아니야. 진짜로 입에 안 맞는다고 생각했다고, 그때는.”

“그럼 트집이라는 건 대체 무슨 말이에요?”

“그건…….”

얼버무리려 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아체리아는 제대로 된 대답을 듣기 전에는 꼼짝도 하지 않겠다는 태도로 팔짱을 끼고 있었다. 기세등등한 표정을 보던 클라우스는 딴전을 피우듯 수프를 한 입 떠먹고는 헛기침을 했다.

“좋은 걸 일부러 싫다고 하진 않았어.”

“그럼요!”

“트집이라는 건, 그러니까…… 그냥 시비를 걸고 싶었다고 할까.”

“저한테요? 아니, 도대체 왜요?”

“네가 식사 때마다 날 한 대 쥐어박고 싶다는 표정으로 노려보고 있었으니까.”

아체리아의 얼굴이 약간 빨개졌다. 얀 헨릭이 아직 수석 요리장으로 있을 때의 일이었다. 아체리아는 얀 헨릭의 음식을 누구보다 좋아했기 때문에, 늘 그것을 남기거나 먹지 않는 클라우스를 무척 얄미워했었다.

“그거야…… 공작님이 음식을 자꾸 남기시니까 그랬죠.”

“어쨌든, 네가 자꾸 그러니까 나도 더 트집을 잡고 싶었던 것뿐이야. 그러니 그건 네 잘못이라 할 수 있지.”

“아니, 그런 궤변이 어디 있어요?”

“궤변이 아냐. 논리적인 반응이지.”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뻔뻔하게도 늘어놓으면서, 클라우스는 아체리아가 준비한 야식을 깔끔하게 먹었다.

잘 자라는 인사를 남기고 방을 나선 아체리아는 주방으로 돌아가는 대신, 발소리를 죽여 뒤뜰 쪽으로 나갔다. 요아킴과 프레드가 미리 나와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루비는 나이도 어리거니와 여자라, 밤길에 혼자 내보내는 건 위험하다고 판단해 일단은 밤 수색 활동은 보류하기로 했다.

“아까 내가 준 지도는 다 외웠어요?”

“지도 같은 것 없어도 빤해요.”

“그래. 나도 왕년에는 여기저기 꽤 돌아다닌 몸이라고.”

요아킴과 프레드가 각각 말했다. 아체리아는 안심한 건지 뭔지 모를 한숨을 가볍게 내쉬고는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조심해야 해요. 혼자서 잡으려고 하지 말고, 뭐라도 단서를 찾으면 꼭 돌아와요. 네?”

“걱정하지 마세요, 요리장님. 괜찮을 거예요.”

“그래. 어린애나 잡아가는 놈이 튼튼해 봐야 뭐 얼마나 튼튼하겠어? 무기 같은 걸로 협박해서 데려가는 것도 아닐 테고, 여차하면 맞붙어도 자신 있다고.”

그들은 짤막한 몽둥이처럼 생긴 막대를 하나씩 집어 들고는 담벼락을 넘어 바깥으로 나갔다. 클라우스에게는 비밀로 하기로 했으니, 당당하게 정문을 통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체리아는 점점 멀어지는 발소리를 들으면서 초조하게 손을 움츠렸다.

요아킴과 프레드는 향기 광장을 중심으로 각각 남쪽과 서쪽으로 흩어졌다. 주변에서 가장 가까운 빈민가가 그곳이었기 때문이다.

범인이 오늘 반드시 이 자리에 나타나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하지만 아이들을 잡아가는 걸 갑자기 그만두지 않는 이상, 틀림없이 언젠가 한 번은 나타날 것이었다.

요아킴은 빈민가의 지리를 훤히 알고 있었다. 아체리아에게 말했던 대로, 락케 패거리의 잔심부름을 할 때 자주 지나다녔던 곳이기 때문이다.

마을 너머에는 수도의 시민들이 가까이 두기 꺼리는 곳, 즉 가죽을 무두질하는 공방이나 염색 공방, 푸줏간, 도살장 같은 곳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빈민가의 아이들은 나이가 어릴 때부터 그런 곳에서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운이 좋아 어린 나이에 죽지 않고 성인이 되면 공방을 이어받거나 점원으로 정식 채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열여섯이나 열일곱이 되기 전에 죽는 일이 흔했다.

빈민가의 밤거리는 조용했지만, 공방이 있는 쪽은 여전히 불이 드문드문 밝혀져 있었다. 당연하지만 돌아다니는 아이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위험할 텐데.’

요아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는 아이들의 처지를 이해했다. 가난한 집에서는 납치범이 돌아다닌다고 해서 아이를 싸안고만 있을 수 없었다. 돈을 벌지 않으면 온 가족이 굶어 죽을 판이니까.

그는 ‘새벽걷이’를 나가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으슥한 곳에 숨어서 거리를 엿보고 있었다. 소문이 험하게 났다고 하니, 낯선 얼굴을 보여 봐야 좋을 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때 망토를 걸치고 챙이 넓은 모자를 쓴 남자 한 명이 거리에 나타났다. 좋게 말해 망토지, 그가 입고 있는 것은 거의 넝마나 다를 것이 없었다. 얼굴이 보이지 않을 만큼 푹 눌러쓴 모자도 챙이 다 해졌다.

얼핏 보아서는 빈민가의 다른 사람들과 별로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요아킴은 그의 구두가 입고 있는 옷에 비해 지나치게 깔끔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어두운 거리를 몇 번 둘러보더니 마치 누군가에게 쫓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허룩한 거리라지만 이곳은 엄연히 주택가다. 저런 차림새를 한 사람들은 오히려 광장 쪽의 뒷골목에서나 자주 보일 법했다.

‘척 봐도 수상하네.’

요아킴은 재킷 안에 숨긴 몽둥이를 꽉 쥐면서 남자를 따라가 보기로 결심했다. 어쩌면 이 마을에 사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깔끔한 구두는 어느 주정뱅이의 발에서 벗겨 온 것일지도.

그러나 요아킴은 그를 보는 순간 기분이 나빴다. 뭔가 음험한 느낌, 뭔가를 꾸미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남자는 고개를 숙인 채 빈민가의 미로 같은 골목을 요리조리 잘도 돌았다. 이 근방 지리에 어지간히 익숙한 것 같았다.

요아킴은 할 수 있는 만큼 기척을 죽여 가며 그를 뒤따랐다. 중간에 길거리에 버려져 있던 썩은 사과도 하나 주워 들었다. 만약 미행 중이라는 걸 들키면 동네 사람이라고 둘러댈 요량이었다.

한참이나 골목을 빙빙 돌며 걷던 남자는 어느 낡아빠진 창고 같은 곳에 멈추어 섰다. 어찌나 낡았는지 지붕이 곧 주저앉기 직전이었고, 문짝도 아래쪽은 약간 갈라져 있었다. 남자는 그 문 앞에 서서 노크를 세 번 했다.

‘안에 누가 있나?’

곧 창고의 문이 열렸다. 바닥에 비스듬히 비치던 불빛이 세모꼴을 그리다 곧 사라졌다.

요아킴은 남자가 문 너머로 사라지자마자 얼른 그 앞으로 달려갔다. 그러고는 나무에 귀를 바싹 댄 채 안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를 엿들으려 애썼다. 뭔가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 털썩 주저앉는 소리 등이 들리더니 웅웅대는 것 같은 낮은 대화가 흘러나왔다.

“총 몇 명이지?”

“세 명이야. 전에 산에서 잡아 온 녀석을 포함해서.”

“빌어먹을. 아직도 세 명이야? 적어도 일곱은 필요하다 하셨다고!”

“경비대원들이 순찰을 얼마나 빡빡하게 도는지 몰라서 하는 소리야? 잡히면 어떻게 되는지 몰라서 그래?”

“경비대에 잡혀가서 죽으나, 주인님 손에 죽으나 죽는 건 매한가지야. 하지만 당신은 경비대에 잡힐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있지. 왜인지 알아?”

우당탕, 큰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요아킴은 몸을 움츠리며 도망칠 준비를 했지만 다행히 문이 열리지는 않았다.

“주인님은 당신에게 돈을 주시거든. 알겠어? 받아 챙길 만큼 챙겼으면 일을 해야 할 거 아니야?”

“이거 왜 이래? 누가 떼먹고 도망간댔어?”

드잡이질이라도 한 걸까? 한쪽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다시 부스럭거리는 소음 끝에 ‘일을 해야 할 거 아니냐’던 남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사흘 주겠어. 사흘 뒤까지 일곱 명을 채워 놓아야 할 거야.”

“빌어먹을! 사흘이라고? 적어도 닷새는 줘야지! 하루에 두 놈씩 잡아 오란 이야기야?”

“그까짓 애녀석들 잡아 오는 게 뭐 얼마나 어렵다고 그래? 당신이 받아먹은 돈에 비하면 그 정도는 약과야! 이 정도 일도 안 하면서 그만한 보수를 챙기려고 했나?”

“당신 돈도 아니면서 어지간히 뻐기는군. 주인의 구둣발을 핥다가 혓바닥에 금칠을 했나 봐?”

“입조심하는 게 좋을걸. 뜨내기 용병 놈, 그것도 실력도 변변찮은 주제에.”

“뜨내기 용병이라도 용병은 용병이거든. 용병 놈들은 밥 먹을 때도 스푼이 아니라 칼날을 이용하는 걸 몰라서 하는 소린가?”

아무래도 요아킴이 뒤따라온 남자가 ‘용병’, 그리고 주인님 운운하는 자는 어느 집의 하인인 것 같았다. 아체리아가 말한 그 데…… 뭐라던 후작의 하인일까?

“기한을 줬으니 분명히 지켜야 할 거야. 지금까지 봐준 것도 경비대가 늘어난 걸 감안해서 눈감아 주셨던 거라고.”

“거참, 대단히 자비로운 주인님이시군. 예, 예. 알아 모시겠습니다.”

일어서는 소리가 들렸다. 요아킴은 재빨리 문에서 떨어져 다른 집의 모퉁이 너머로 몸을 숨겼다. 다 떨어져 가는 문이 삐걱대며 열리는 소리, 저벅저벅 걷는 발소리가 연달아 들리다가 곧 조용해졌다.

사흘 뒤. 사흘 뒤까지 네 명.

남자는 일곱 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금 세 명을 잡았다고 했지? 그럼 그 아이들은 어디에 있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요아킴은 모퉁이 바깥을 내다보다가 널찍한 모자챙이 골목 너머로 사라지는 것을 발견했다.

사흘 뒤에도 그가 이곳에 나타날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방금 전에는 산에서 잡아 왔다고 했잖는가? 만약, 그가 빈민가가 아닌 다른 곳에서 아이들을 납치한다면 사흘 뒤에는 영영 잡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한 요아킴은 발소리를 죽여 그를 뒤따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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