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접시를 핥으세요, 공작님! (109)화 (109/144)

109화

“바구니만…….”

“그래요. 아이는 사라지고, 바구니만 돌아왔어요. 한밤중에 산에 올라 안 뒤진 곳이 없죠. 수도 경비대는 아이가 짐승에게 물려 간 흔적이 없다고 했어요. 그랬으면 핏자국이 남았을 텐데, 그런 것이 없었다고요.”

여자의 목소리 사이로 가쁜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체리아는 입술을 꾹 다문 채 그녀의 말을 들었다.

“짐승이 물어 가지 않았다면 우리 요제프는 어디로 갔을까요? 짐승이 아니라면 사람이 그 아이를 잡아간 것이겠죠. 우리 아이는…… 그 아이는 또래보다 작고 마른 아이였어요. 잘 먹지 못하니 당연한 이야기죠.”

아체리아는 공작저로 빵 배달을 오던 요제프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얼굴은 가물가물하지만, 나이에 비해 키가 작았던 것은 기억이 났다. 너무 어려 보여서 ‘너 일을 해도 되는 나이니?’라고 물었던 적이 있을 만큼.

여자가 소리 내어 울음을 터뜨리자 빵을 먹던 아이들이 그제야 엄마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때 구석에 누워 있던 젖먹이도 울음을 터뜨렸다. 여자는 아기를 안아 어르면서도 흐르는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그 아이를 도대체 왜 데리고 갔을까요? 우리 집은…… 아이를 데려간다고 해도 돈을 지불하지 못해요. 알고 데려갔겠지요? 우리 애를…… 데려가서 어떻게 했을까요?”

“경비대원들이 다른 말은 않던가요? 단서라든가…….”

“단서요?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죠. 있을 리가 없잖아요. 귀족님들이 하는 일이 다 그렇듯, 감쪽같이 숨겼겠지요.”

여자의 눈이 눈물에 젖어 번들거렸다. 아체리아는 자신이 빵집의 종업원으로 가장했다는 사실도 잊고 격분한 것처럼 목소리를 높였다.

“비스몽트 공작님은 그럴 분이 아니세요! 그분이 데려간 게 아니라고요!”

“아니면 도대체 누가 우리 아이를 데려간단 말이죠? 우리 아이뿐만이 아니에요. 이 구역 동네에서 사라진 아이들만 벌써 다섯 명이죠! 이렇게 가난한 집 아이들은 데려가 봐야 돈이 안 돼요. 게다가 열 살도 되지 않은 아이들을 데려가서 무슨 일을 시키겠어요? 그 공작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아이들을 잡아가죠?”

“그건 알 수 없어요. 하지만 공작님이 하신 일은 절대로 아니에요.”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아요?”

아체리아는 순간 할 말을 잃고 입을 다물었다. 빵집 종업원이라는 건 거짓말이고, 사실 공작저의 고용인이라는 걸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공연히 의심만 살 것이다.

“제…… 제 먼 친척이 옛날에 그 공작가에서 일한 적이 있다고 해요. 그럴 분이 아니라고 했어요.”

“그 말을 어찌 믿죠? 소문에 듣자니 그 공작님인가 하는 분은 원래 다 죽어 가던 분이었다면서요? 그런 분이 아이들을 데려가 잡아먹는 바람에 몸이 나아졌다던데요?”

“아니에요, 그럴 리 없잖아요. 죽을병에 걸렸는데 사람을 먹고 낫는 법은 없어요. 그렇지 않다고요.”

젖먹이는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머리가 혼란스러운데 아기가 우는 소리까지 더해지니 아체리아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여자는 아기를 참을성 있게 어르며 눈물을 삼켰다. 여윈 뺨이 눈물에 젖어 빛나고 있었다.

“우리 요제프는 착한 아이였어요. 남에게 피해 끼친 적 한 번 없다고요. 내가 자주 아프고 애 아빠는 멀리로 돈을 벌러 나갔으니 그 아이가 일을 해야 했어요. 빵이나마 얻어 와 동생들이 굶어 죽지 않도록 해 준 게 그 아이예요. 그런데 왜 이런 일이 벌어졌죠? 대체 지금은 어디에 있을까요? 살아는…… 있을까요?”

아체리아는 빗물 자국으로 가득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쥐가 사는 건지, 군데군데 지저분한 얼룩이 가득했다.

“살아 있을 거예요. 요제프는 꼭 살아서 돌아올 거예요. 그러니까 믿고 기다리세요. 그 아이가 죽었다고 생각해 포기하지 마세요.”

* * *

클라우스와 에른스트, 릴리엇과 페터가 한자리에 모인 것은 오랜만이었다. 페터가 멀리로 여행을 갔다가 돌아왔기 때문이다.

아체리아는 그들의 점심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주방에 있었다. 베이컨을 적당한 크기로 썰고, 당근과 감자는 껍질을 벗겨 큼직하게 썰었다.

“요리장님, 손님들이 오실 걸 몰랐잖아요. 어떤 요리를 하실 거예요?”

아직 초보 요리사 티를 벗지 못한 요아킴은 미리 생각해 두었던 메뉴가 어그러지면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오늘은 닭다리를 이용해 채소 찜을 만들 예정이었지만, 아체리아는 급하게 메뉴를 변경해 닭고기 오븐 구이를 만들기로 했다.

“기억해, 요아킴. 손님이 갑자기 오더라도 있는 재료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 해. 오늘은 어차피 닭 요리를 할 거였잖아? 몸통은 잘게 찢어서 샐러드와 스톡에 쓰려고 했지만, 그러면 양이 모자랄 테니 통째로 한 마리 쓰는 수밖에. 그리고 간단한 요리로 바꿀 거야.”

아체리아는 알이 굵은 마늘을 크게 갈라 다른 재료와 함께 섞었다. 그리고 닭 위에 올리브 오일을 발라 미리 뜨겁게 달궈 놓았던 오븐에 넣고 굽기 시작했다.

식당에 앉은 네 사람은 본격적인 식사를 시작하기 전에 간단하게 준비한 다과를 먹고 있었다. 화제는 역시나 문제의 괴소문이었다.

“정말 걱정이야. 아버지께서도 이 사태가 심상치 않다고 말씀하시던걸. 귀족들까지도 그런 엉뚱한 소리를 믿고 있어. 웃기지도 않는다니까.”

릴리엇이 생각만 해도 화가 치민다는 듯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귀족들이야말로 천박한 가십을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인종들이니까.”

본인도 귀족이면서 귀족에 대한 평가가 매우 박한 페터가 이죽거렸다.

“이제는 단순히 가십으로 치부할 일이 아냐. 이러는 와중에도 애들은 사라지고 있고, 클라우스를 잡아 가둬야 한다고 외치는 사람들의 수가 나날이 늘고 있다고.”

“하필이면 왜 어린아이들일까? 어디로 데려가서, 뭘 하려는 거지?”

릴리엇이 의문을 표시했다. 그때 페터가 잔을 쥐고 있던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말을 꺼냈다.

“여행 중에 어떤 늙은이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있는데 말이야.”

그는 언제, 어디서든 여행 중에 주워들은 이야기를 하는 걸 좋아했다. 세 사람의 시선이 모두 페터에게로 쏠렸다. 그가 말을 이었다.

“그 늙은이가 이야기하길, 아주 옛날에 그가 살던 마을에서도 아이들이 사라진 일이 있었다고 하더군. 그놈이 어찌나 감쪽같은지, 애들이 사라지는 와중에도 사람들은 놈의 머리털 하나 본 적이 없다고 해.”

“그래서?”

“하지만 꼬리가 너무 길면 밟히는 법이지. 숲속에 오두막을 짓고 살던 거인이 하나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놈이 아이들을 잡아가는 범인일 것 같더란 말이야. 그래서 열 받은 마을 사람들이 횃불이며 낫 같은 걸 들고 쫓아갔지만 집 안에는 아이는커녕 강아지가 있었던 흔적도 없더라는 거야.”

릴리엇은 이게 단순히 무서운 이야기인지, 아니면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 가늠해 보느라 미간을 찡그리고 있었다. 한쪽으로 턱을 괸 클라우스가 입매를 비스듬히 끌어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해 봐, 페터.”

“물론 그 이후로도 아이들은 계속 사라졌어. 사람들은 분노해서 거인을 당장 때려죽여야 한다고 말했지만 증거가 없으니 어쩌겠나? 그러던 어느 날, 거인이 집을 비운 때가 있었지. 사람들은 그 틈을 타서 거인의 집으로 다시 쳐들어갔다네. 그러다가 없어진 아이들을 발견하게 된 거야.”

“아까는 흔적도 찾지 못했다면서?”

“그 거인이 아이들을 숨겨 두었던 거지. 어떻게 숨긴 것인지 짐작이 가나?”

“지하실이라도 있었던 걸까?”

릴리엇이 심각하게 말했지만 페터는 손가락을 흔들었다.

“굴뚝이었어.”

에른스트와 클라우스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굴뚝? 굴뚝에 어떻게 아이를 숨겨? 여러 명이었다면서?”

“아이들을 굶겨 비쩍 마르게 한 다음, 굴뚝에 차곡차곡 넣어 두었다고 하더군. 이리저리 끼어서 굴뚝에 갇힌 아이들을 발견했을 때, 몇은 벌써 죽어 있었다고 해.”

“맙소사, 페터!”

이야기를 듣던 릴리엇이 기어이 비명을 지르며 눈을 질끈 감았다. 무덤덤하게 듣기에는 너무 끔찍한 이야기였다. 에른스트 역시 입맛이 좋지 않은 표정으로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오로지 한 명, 이 사건의 당사자인 클라우스만이 비명을 지르지도, 눈살을 찌푸리지도 않은 채 뭔가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완성된 음식이 때맞춰 나왔다.

“모두가 입맛이 딱 떨어진 시점에 먹을 것이 나왔군.”

클라우스의 말에 시종들을 뒤따라 나온 아체리아가 당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공작님?”

“식사가 입에 들어가지 않을 만한 이야기를 방금 들은 참이거든.”

대답한 것은 페터였다. 아체리아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서 있자, 릴리엇이 얼른 나섰다.

“미안해, 아체리아. 아무것도 아니야. 오늘 식사는 뭐니? 아주 맛있는 냄새가 나는걸.”

“공작님께 무슨 일이 생긴 건가요?”

아체리아는 릴리엇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아니, 듣지 못했다. 그들의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은 순간, 아체리아는 그 이유가 예의 그 괴소문 때문이라는 걸 직감했다.

“말씀해 주세요.”

“아체리아, 괜찮아.”

손님들 앞에서 나서는 고용인을 클라우스는 꾸짖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손을 잡아 달래기까지 했다. 티를 내지 않으려 했지만 페터의 눈은 휘둥그렇게 커졌다. 에른스트와 릴리엇도 서로 뺨을 붉히며 어색하게 헛기침을 했다.

“이거야, 원…… 말로는 들었지만 직접 보니까 기분이 색다른데. 에른스트, 안 그런가?”

“나한테 화살 돌리지 마, 페터.”

그들 모두가 아체리아와 클라우스의 관계를 알고 있었지만, 눈앞에서 이런 광경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클라우스는 친구들이 서먹해하거나 말거나 무시하면서 아체리아의 손을 더욱 끌어당겼다.

“너도 앉아.”

아체리아가 놀란 표정으로 클라우스를 쳐다보았다.

“공작님, 저는…….”

“괜찮으니까 앉아. 앉아서 이야기해. 어차피 너도 알아야 할 이야기니까.”

그건 틀린 말이기도 하고, 맞는 말이기도 했다. 아체리아가 이 일에 대해 깊이 알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누구보다 알고 싶어 할 사람이기도 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아체리아는 의자를 빼내어 그들과 한 테이블에 앉았다. 페터는 여전히 적응이 안 되는 표정이었지만, 에른스트와 릴리엇은 쉽게 받아들였다.

“그럼 아까 하던 이야기를 마저 좀 해 볼까.”

페터가 등받이에서 몸을 일으키듯 하며 말하자 릴리엇이 질색했다.

“뭐가 아직도 더 남았어? 식사라도 좀 하고 들으면 안 될까?”

“아니, 그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야. 이제부터는 그걸 현실에 접붙여야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