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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를 핥으세요, 공작님! (65)화 (65/144)

65화

며칠 후, 수도의 몇몇 귀족들 앞으로 왕성으로부터의 초대장이 도착했다.

초대장을 보낸 이는 다름 아닌 필리파 왕녀였다. 작은 연회를 열어 축하를 하고자 하니, 초대장을 받은 사람들은 빠짐없이 참석하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클라우스는 에른스트와 함께 호숫가 근처의 숲으로 사냥을 나왔다. 아체리아도 함께였다. 두 사람이 사냥을 하는 동안, 아체리아는 멀찌감치 호수 근처에 앉아 낚시를 하고 있었다.

“축하라니, 뭘 축하하겠다는 거지?”

클라우스가 묻자 에른스트는 여우가 숨은 덤불을 향해 활을 겨눈 채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내가 알겠나?”

“자네라면 알 것 같은데.”

에른스트가 픽 웃었다. 그와 동시에 화살 한 대가 쐑, 하는 소리를 내며 덤불을 향해 날았다.

캥! 하고 짖는 소리가 들렸다. 시종들이 덤불을 향해 달려가는 것을 보던 에른스트가 활을 아래로 내리며 클라우스를 돌아보았다.

“난 필리파의 눈과 귀가 아니야, 클라우스.”

“하지만 누구보다 신뢰받고 있기도 하지. 자네야말로 왕녀님의 욕망을 현실로 실현시킬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일 테니까.”

이번에는 클라우스의 차례였다. 사냥을 안 해 본 지 너무 오래되어서 활 잡는 방법도 잊을 지경이었지만, 그래도 에른스트에게는 지고 싶지 않았다.

시종들이 풀어놓은 여우가 재빠르게 클라우스의 눈앞을 지나갔다. 핑, 하는 소리를 내며 날아간 화살은 여우의 머리 위를 스쳤다. 덤불 틈으로 숨어 버린 여우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고, 에른스트가 다시 활시위를 당겼다.

“필리파는 제 욕망을 실현시키는 데에 있어 남의 손을 빌릴 만한 아이가 아니야. 어떻게 보면…….”

클라우스가 에른스트를 돌아보았다. 그때 재빠른 속도로 활이 날아가고, 다시 여우가 짖는 소리가 났다. 명중한 모양이었다.

“아체리아와 좀 닮은 데가 있다고도 할 수 있지.”

갑작스레 튀어나온 아체리아의 이름에 클라우스의 미간이 희미하게 좁혀졌다. 에른스트는 그 반응이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아체리아에 대해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클라우스를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체리아는 상태가 어때? 악몽을 꾸거나 그러진 않나?”

“글쎄. 같이 자는 게 아니어서 잘 모르겠군.”

클라우스는 이미 사냥에 흥미를 잃었다. 두 사람은 활을 내린 채 호숫가를 향해 되돌아갔다. 시종들은 죽은 여우를 가지고 두 사람을 뒤따랐다.

“나라면 이 기회를 안 놓쳤을 거야.”

에른스트가 말했다. 가벼운 어조였지만, 진심이 담겨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클라우스는 미묘하게 일그러지려던 표정을 바로잡은 채 짐짓 무심한 눈빛을 가장하며 호수를 향해 걸었다.

“마음이 약해졌을 테니 그 틈을 파고든다. 너다운 발상이야, 에른스트.”

“날 악당 취급하면 속이 시원해지나?”

말하는 내용과는 달리 쾌활한 목소리다. 아체리아의 이야기가 나오면, 여유를 잃는 것은 늘 클라우스뿐이었다.

클라우스는 그런 점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에른스트가 진실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건 아니지만, 아체리아 자체를 가볍게 여기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을까?

“내 신경을 긁어 봤자 난 이미 마음을 정했거든.”

거기까지 말하자 에른스트의 표정에도 비로소 호기심 어린 기색이 떠올랐다.

“무슨 마음을, 어떻게 정했다는 건데?”

“기다리기로.”

인내심으로 치자면 페터나 릴리엇보다도 못한 것이 클라우스라는 걸 잘 아는 에른스트에게는 이것이야말로 놀라운 말일 수밖에 없었다.

“너치고는 보기 드물게 갸륵한데.”

클라우스는 그걸 이제야 알았냐는 듯이 얄미운 표정을 지어 보이고는 에른스트보다 앞서 성큼성큼 아체리아 쪽을 향해 걸어갔다.

호숫가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앉은 아체리아는 생각 외로 흥미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사냥을 같이 가자기에 이건 또 무슨 난데없는 소리인가 싶었는데, 물고기를 낚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가끔 심심할 때 와도 괜찮을 것 같아.’

무엇보다도 소란스러움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있을 수 있는 게 마음에 들었다.

납치 사건이 있었던 이후, 남들에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아체리아는 꽤나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태어나 처음으로 목숨을 위협받았던 충격이 그리 쉽게 가실 리가 없었다.

이전 같았으면 쉬는 시간이 되어도 한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지 않고 이리저리 돌아다녔겠지만, 요즘은 세 번에 한 번 정도는 방 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곤 했다. 조용한 곳에 있으면 안전하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입질이 오자 낚싯대를 휙 들어 올린 아체리아는 미끼를 문 송어 한 마리를 보고는 싱긋이 미소를 띠었다. 퍼덕거리는 송어를 능숙하게 바늘에서 빼내어 물통에 집어넣었을 때, 머리 위로 드리워지는 그림자가 느껴졌다.

“이렇게 많이 잡아서 뭐에 쓰려고.”

클라우스였다. 아체리아는 물통의 뚜껑을 닫으면서 그를 올려다보았다.

“오늘 저녁에 요리해 드리려고요.”

아체리아가 말했다. 클라우스는 물통 안에서 빙빙 돌며 헤엄을 치는 송어들을 바라보다가 그녀의 옆에 앉았다.

“낚시가 취향에 맞는 모양이군.”

“조용해서 좋네요. 심심하면 산책하기도 나쁘지 않고요.”

“승마보다 나은 모양이지?”

“어휴, 당연하죠. 말은 이제 별로 타고 싶지 않아요.”

굳이 말이 무서워서 그런 게 아니라도, 이제 서쪽 언덕으로는 되도록 가고 싶지 않았다. 언덕 위에서 그 스산한 저택을 내려다보면 락케 패거리에게 납치를 당했을 때의 끔찍한 기억이 다시 떠오를 것 같아서였다.

“왕성에서 초대장이 왔어.”

클라우스가 말했다. 아체리아는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 있냐는 듯이 그를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필리파 왕녀가 연회를 여는데, 나와 너를 함께 초대했더군.”

“저를요? 왜요?”

“글쎄. 직접 가서 물어보지 그래?”

아체리아는 영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클라우스 역시 그런 자리에 더 이상 아체리아를 내보이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자신이 뒤에 서 있는 모습을 보여 준다 하더라도, 아체리아는 너무 무방비한 먹잇감이었다. 시드레 같은 사람이 또 없으리라고 어떻게 장담하겠는가.

그러나 필리파 왕녀가 아체리아 앞으로도 초대장을 보낸 이상 특별한 이유 없이는 거절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클라우스는 턱을 괴고 앉은 아체리아의 옆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가고 싶어?”

“네?”

“가고 싶냐고, 연회에.”

“제가 안 가고 싶다고 하면 안 가도 되는 건 아니지 않나요?”

“그야 그렇기는 하지.”

그럴 걸 묻긴 왜 물었담. 아체리아는 피식 웃으며 드리웠던 낚싯대를 거두었다.

“제가 언제 또 왕녀님이 보내 주시는 초대장 같은 걸 받아 보겠어요? 저도 가겠습니다.”

* * *

저택으로 돌아온 아체리아는 잡은 송어들을 이용해 곧장 식사를 준비했다. 비늘을 긁고, 끓는 물을 끼얹어 비린내를 날리고, 내장을 빼내어 다듬는 동안 다른 요리사들도 하나둘씩 주방으로 내려왔다. 그들은 송어를 잡은 사람이 아체리아라는 걸 쉽사리 믿지 않으려 하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내가 잡은 거라니까요! 사람들이 속고만 살았나.”

“낚시 한 번 해 본 적도 없는데 이렇게 많이 낚을 수가 있어?”

“오늘따라 송어들이 배가 고팠던 모양이죠.”

아체리아는 너스레를 떨면서 다른 요리사들과 일을 나누었다.

락케 패거리가 사라지고 난 후, 주방은 이전보다 훨씬 더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움직였다. 중간에 끼어들어 요리사들 사이에 분탕을 치는 인물들이 사라지고 나니 아체리아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일하기가 훨씬 수월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식사가 전부 준비되자 아체리아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모자와 앞치마를 벗고 식당으로 갔다. 막 식사를 시작하려던 에른스트는 아체리아가 자기 몫의 음식을 가지고 테이블에 앉자 놀란 표정이었다.

“같이 식사하는 거야?”

에른스트가 묻자 클라우스가 말을 받았다.

“뭐 문제 있어?”

눈을 껌뻑거리던 에른스트는 식기를 든 채 어리둥절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문제가 있다는 게 아니라…… 항상 이렇게 같이 식사를 하나?”

“그래. 내가 그러라고 했어.”

클라우스가 대답했다.

식사는 별 어색함 없이 진행되었다. 대화를 나누는 것은 주로 아체리아와 에른스트였지만 클라우스도 그 사이에 이따금 끼어들었다.

주된 화제는 역시 필리파의 연회였다. 아체리아가 연회에 나올 음식이 무엇인지 궁금하다고 하자, 에른스트는 짓궂은 표정을 지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사실, 틀에 박힌 연회는 딱히 재미가 없는 메뉴들뿐이야.”

“소나 양 같은 것을 쓰나요?”

“대체로 그렇지. 하지만, 일전에 아체리아 네가 필리파 왕녀를 위해 재미있는 만찬을 준비해 주었으니 왕궁 요리사들이 한 수 배웠을지도 모르겠네.”

아체리아는 식사를 하면서 잠시 골똘한 표정을 지었다.

“아체리아가 참석하겠다고 하니, 묻고 싶은 게 한 가지 있는데.”

아체리아가 에른스트를 바라보았다. 의아한 눈빛이었다.

“무엇인가요?”

“내가 널 에스코트하면 어떨까?”

클라우스는 식기를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에른스트와 아체리아를 번갈아 보았다. 단정히 정리된 머리칼 아래의 눈빛이 일순 날카로워졌다가 금방 제 빛을 되찾았다.

아체리아는 당황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이다가 식기를 천천히 내렸다.

“대공 전하께서요?”

“그래. 클라우스랑 같이 가는 것도 괜찮지만, 내가 널 에스코트하면 더 재미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저는…….”

“안 돼. 아체리아는 내가 데리고 갈 거니까.”

클라우스가 말했다. 마치 에른스트가 그런 질문을 할 줄 알았다는 듯이, 당황한 기색조차 없는 대답이었다.

“그건 아체리아가 정하도록 해야지.”

부드럽게 달래는 듯한 말투였지만 에른스트의 표정은 그렇지 않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힌 순간, 아체리아는 당황한 나머지 양손을 한꺼번에 내저으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자, 잠깐만요. 잠깐! 세 사람이 한꺼번에 가면 되잖아요.”

“물론 셋이 같이 갈 수도 있지. 하지만 너를 누가 에스코트하느냐는 중요한 문제야, 아체리아. 어떤 사람과 함께 오느냐에 따라 그 연회에서의 위치가 달라지기도 하니까. 그런 의미에서는 대공이 더 낫지.”

에른스트가 장난스럽게 거들먹거리자 클라우스가 헛웃음을 쳤다.

“네가 아체리아를 데리고 갔다가 또 시드레 백작과 마주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클라우스의 말에 에른스트의 눈이 동그랗게 벌어졌다.

“시드레? 여기서 시드레 이야기가 왜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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