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접시를 핥으세요, 공작님! (45)화 (45/144)

45화

“사람들 앞에서 조리를 하겠다고?”

“네, 뭐 문제라도 있나요?”

클라우스와 아체리아는 마주 앉아 저녁을 먹고 있었다. 원래는 각자의 방으로 가려던 것을, 클라우스가 굳이 고집을 부려 가운데에 있는 응접실에서 함께 먹게 된 것이다.

만찬 준비에 대해 듣던 클라우스는 ‘먹고 싶은 것을 눈앞에서 바로 조리해 준다’는 부분에서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다. 아체리아는 볶은 옥수수와 소금을 쳐 구운 깍지콩을 집어 먹으면서 뭐가 문제냐는 듯이 눈을 깜빡였다.

“말이 많을 텐데.”

“무슨 말이 많을 거란 말씀이신가요?”

“그렇게…… 요리사들이 사람들 앞에 나서서 조리를 하는 게 말이야. 귀족들은 그런 것에 익숙하지 않으니까. 평민들이나…… 그런 식으로 식사를 한다고 생각하지.”

“그건 편견이에요. 갓 조리했을 때 맛있는 음식들로만 준비한 걸 먹어 본다면 생각도 달라질걸요.”

“그게 말처럼 쉽지 않을 것 같으니 하는 말 아니야.”

“이미 결정한 일이니 이제 와서 돌이킬 수는 없어요. 왕녀님 앞에서 한 입으로 두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클라우스는 결국 아체리아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하긴, 요리에 관해서는 클라우스가 아니라 누가 오더라도 그녀의 고집을 꺾기는 힘들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어쩐 일이세요?”

수프를 떠먹던 클라우스가 무슨 말이냐는 듯이 눈썹을 세우며 고개를 들었다.

“뭐가 말이야?”

“식사요. 왜 굳이 저랑 같이 식사를 하겠다고 하셨는지 궁금해서요.”

“……그게 중요해?”

“아뇨, 뭐…… 별로 중요한 문제는 아니죠. 맛있는 걸 먹을 땐 말벗이 필요하기도 한 법이니까요.”

“이게 맛있어?”

“어머, 그럼 맛이 없으세요? 전 굉장히 맛있는데. 특히 이 송아지찜이요. 소스가 달콤한가 하면 뒤에서 탁 쏘는 맛이 나잖아요. 고기가 부드러운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곁들인 채소들도 골고루 잘 익었어요.”

“…….”

“게다가 이 크레송을 얹은 송어 밀푀유…… 껍질을 페이스트리처럼 이용해서 층층이 얹어 놓은 게 기가 막혀요! 바삭바삭하면서도 생선 껍질 특유의 식감이 전혀 사라지지 않았잖아요.”

아체리아의 음식 예찬을 듣는 것은 처음이다. 클라우스는 잠시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눈을 껌뻑거리고 있다가, 아직 손도 대지 않은 송어 밀푀유로 포크를 뻗었다.

“난 생선 껍질은 싫어.”

“맛있어요. 한번 드셔 보세요. 자, 이렇게요.”

아체리아는 직접 송어의 살과 껍질, 그리고 크레송을 스푼에 얹어 클라우스의 입 앞에 내밀었다.

그게 좀 이상한 짓이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약 3초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클라우스의 눈썹이 미묘하게 올라갔다 내려가고, 입가가 움찔거렸을 때…….

“아차, 죄송합니다.”

기묘한 침묵에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은 아체리아가 얼른 스푼을 내리려던 순간이었다. 클라우스는 아체리아가 내리려던 스푼을 덥석 붙잡아 그 위에 올라가 있던 것들을 한입에 집어넣었다.

입술을 다문 채 볼만 움직거리고 있는 클라우스의 모습을 보고도 믿을 수가 없어서, 아체리아는 빈 스푼을 내리는 것도 잊고 멍하니 그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생선 껍질도 괜찮군.”

천천히 입 안에 든 것을 씹어 삼킨 클라우스가 말했다. 눈을 깜빡이던 아체리아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렇죠? 괜찮으시죠?”

“……아주 맛있다는 건 아니니까 호들갑 떨지 마.”

“만세! 이제 공작님께서 드실 수 있는 게 한 가지 더 생겼으니 제 요리의 배리에이션도 더 넓어질 수 있겠어요.”

“그동안 안 먹겠다는 것도 억지로 잘만 먹였으면서.”

“그건 생존을 위해서는 꼭 먹어야 하는 수준이었고요. 이제 취향을 넓혀 가는 일로 서서히 바뀌어 가야죠.”

“먹는 게 대체 뭐가 그렇게 즐거워?”

“먹는 게 없으면 사는 즐거움이 반으로 줄어들걸요?”

웃기지도 않는 소리다. 적어도 클라우스에게는 그랬다.

살면서 먹는 것만큼 클라우스를 괴롭혔던 일이 또 있을까. 먹어도 문제, 안 먹어도 문제. 여기서는 먹으라고 난리, 저기서는 먹지 말라고 난리.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할지 알 수 없던 나날이었다. 아체리아가 주는 음식은 그나마 안심하고 먹을 수 있었지만, 다른 곳에서 내놓은 음식을 먹을 때는 여전히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수프도 엄청 맛있어요. 마늘 소스를 넣은 것 같은데, 냄새가 하나도 거슬리지 않잖아요.”

“……풍미는 괜찮네.”

“공작님은 좀 더 시식평을 풍성하게 하실 필요가 있어요. 맛있는 걸 먹고 왜 맛있는지 말하다 보면 음식이 더 맛있어진다고요.”

그러나 아체리아가 이런 말을 하면 어느 순간부터인가 ‘그런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 요즘 클라우스의 고민거리였다.

‘말려들어 가는 기분인데.’

이미 말려들어 가고 있으면서도 본인만 그걸 모르고 있음을 모르는 클라우스였다.

‘이대로는 안 돼. 뭔가 제정신을 차릴 만한 걸 생각해야…….’

“공작님?”

하지만 어쩌겠는가. 아체리아가 저렇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을 바라보면, ‘또 무슨 헛생각을 하느냐’는 듯이 갈색 눈동자로 빤히 응시하는 것을 마주 보고 있으면 마음을 다잡으려던 것도 다 소용이 없어지곤 했다.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그럼에도 아체리아의 말투는 스스럼없기 그지없다는 점이 클라우스를 더욱 돌아 버리게 만들었다.

무감정, 무감동. 필리파의 그것과는 조금 결이 다르다고는 하나, 어쨌거나 아체리아는 클라우스 자신에게 아무런, 그러니까― 말하자면 ‘사적인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분명하게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아무 생각도.”

“아무 생각도 안 하시는 게 아닌 것 같은데요.”

“사람이 말을 하면 좀 믿어. 속고만 살았어?”

“그런 건 아니지만 공작님의 표정은 ‘아무 생각도 안 하는 표정’이 아니었거든요.”

“무슨 점쟁이야? 얼굴만 보면 다 알게.”

“점쟁이들도 얼굴만 보고는 모르죠. 이건, 말하자면…… 매일같이 공작님을 먹이는 사람의 직감이랄까요?”

무슨 가당찮은 헛소리냐고 하기에는 아체리아의 말투가 너무 진지했다. 클라우스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치고는 들고 있던 식기를 내려놓고 입을 닦았다.

“더 안 드시고요?”

“반은 먹었잖아.”

“반은 남기셨죠.”

“다 못 먹겠어. 네 요리만큼 맛있지도 않고…….”

아차.

이 말은 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는 생각은 한발 늦게 찾아왔다. 그러나 엎질러진 물처럼 쏟아져 버린 말을 어떻게 주워 담을 것인가.

아체리아의 표정이 지나치게 환해져 있음을 깨달은 클라우스는 뒤늦게야 헛기침을 하며 자신의 말을 주워섬기려 애써 보았지만 별무소용이었다.

“지금 제 요리가 맛있다고 칭찬하신 거지요?”

“…….”

“와, 살다 보니까 이런 날이 다 오네요.”

아체리아는 마치 장바닥에 나앉은 장사꾼들처럼 의자 뒤로 팔을 척 걸치며 짐짓 장난스럽게 거만한 태도를 취해 보였다.

“보기 흉해, 똑바로 앉아.”

“아, 뭐 어때요? 비스몽트 공작님께서 ‘맛있다’고 하실 만한 요리를 만드는 사람인데. 건방 좀 떨게 해 주세요.”

* * *

만찬 준비를 하라며 필리파가 아체리아에게 보내 준 요리사는 모두 합쳐 여섯 명이었다.

그들은 모두 아체리아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공작저의 요리사들과는 태도가 조금 달랐다. 필리파가 그러라고 명령한 것인지, 아니면 그 사람들의 성격이 본래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지나칠 정도로 고분고분했던 것이다.

“오늘 만찬에 나갈 요리 목록은 이거예요. 애피타이저나 핑거푸드는 신선한 해산물을 이용해서 산뜻하게 입맛을 돋우고, 다양한 재료로 속을 채운 거위 요리와 두 가지 마렌. 그리고 주요 정찬은 들으셨던 것처럼 그 자리에서 바로 조리하여 원하시는 분들께 서빙하는 방식이에요.”

요리사들은 아체리아의 설명에 처음으로 동요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렇게 할 것이다, 라는 개략적인 설명은 들었지만 진짜로 그렇게 하게 될 줄은 몰랐다는 것 같은 기색이었다.

“요리장님.”

요리사 중 한 명이 손을 들었다. 아체리아가 그를 가리키며 말해 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 이름은 돌린입니다. 에…… 요리장님께서 주메뉴를 바로 조리하여 서빙하신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럼 어떤 것들을 그렇게 준비하실 생각이신지요?”

“아무래도 간단하게는 품질 좋은 소고기를 이용해 스테이크를 만드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었는데요. 그렇게 하면 재미가 좀 덜할 것 같으니 고기를 깍둑썰기해서 소테할까 해요. 와인을 이용해서 불을 피워 올리는 모습도 보여 드릴 수 있을 테고요. 그리고 꿩과 멧새, 뇌조를 주재료로 한 요리를 각각 한 가지씩 제공할 예정입니다.”

“꿩은 수프 재료이기도 한데, 주메뉴로도 꿩을 제공하면 재료가 겹칠 텐데요.”

“꿩 수프에는 고기를 넣지 않을 거예요. 주메뉴를 준비하면서 남는 부위만을 골라 그걸로 육수만 만들 겁니다.”

요리사들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조금 웅성거렸다. 대체로 왕실에서는 ‘남는 부위를 써서 만드는 요리’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어떤 요리를 만들건, 그 재료의 최고급 부위가 반드시 재료로 들어갔다.

아체리아도 그런 분위기를 인지하고는 있었다. 그러나 그런 방식은 평소 아체리아의 신조와는 조금 어긋나는 요리였다. 무엇이든 최고급인 부위만 골라 만든다면 재미없지 않겠는가.

게다가 이 계절에 잡히는 꿩은 비싸다…… 솔직히 재료를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자신의 주방’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한 가지 더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또 돌린이었다. 아체리아가 고개를 끄덕이자, 돌린은 다른 요리사들을 휘휘 둘러보다가 헛기침을 했다.

“요리장님은 어떤 요리를 맡으실 건가요? 그러니까…… 직접 만들어 서빙하신다는 그 주메뉴 중에서 말입니다.”

“저는 어떤 걸 맡아도 괜찮으니 여러분들이 먼저 고르세요.”

요리사들 사이에서 작은 휘파람 소리가 번져 나갔다. 낯선 곳, 그것도 왕궁에서 왕녀가 주최하는 만찬을 준비하면서 기가 죽을 법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은 아체리아의 태도에 약간은 감탄한 반응이었다.

“그럼 제가 뇌조를 맡지요.”

“저는…… 소테를 하고 싶습니다.”

“그럼 제가 꿩을…….”

“그럼 남는 건…….”

“멧새네요.”

아체리아가 말했다.

여섯 명의 요리사들은 이래도 괜찮은가, 하는 표정으로 다시금 서로를 힐끔거리며 눈치를 살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멧새가 가장 다루기 힘들고, 가장 귀찮으며, 그럼에도 언급된 주메뉴 중 가장 환영받기 힘든 재료이기 때문이었다.

“좋아요, 제가 멧새 요리를 만들죠. 다른 분들은 수프와 애피타이저를 준비해 주세요. 그리고 디저트도 각각 다른 걸로 네 종류를 내놓을 거예요. 아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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