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맛보고 가시라니까요! 지금 사면 세 개에 단돈 은화 한 개! 이봐요, 거기 신사 분! 마렌 하나 어때요?”
맛있는 냄새를 맡고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멀찍이 서 있던 남자가 아체리아의 말을 듣더니 슬금슬금 가게 앞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한 사람이 일단 발을 내딛자, 아체리아의 화려한 언변에 호기심을 가지기 시작한 사람들도 흥미를 보이며 얀 헨릭의 가게 앞으로 모여들었다.
“얀 헨릭의 특제 소스를 발라 구웠어요! 드시고 맛있어서 눈이 번쩍 뜨여도 책임은 못 져요! 정신 단단히 차리고 먹어야 하는 향기 광장 최고의 마렌이라고요!”
졸지에 바빠진 것은 얀 헨릭이었다. 그는 아체리아가 떠들고 소리치며 마렌을 굽는 동안, 안에서 부지런히 육수를 데우고 감자와 베이컨을 볶아 내어 왔다.
사람들은 이제 얀 헨릭의 가게 앞에 줄을 서기 시작했다. 한 사람, 두 사람씩 인원이 늘어나기 시작하니 다른 가게에서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까지 얀 헨릭의 가게 앞으로 모여들었다.
“아가씨, 이 매콤한 소스에는 뭘 넣은 거야?”
“그야 이 가게 주인장의 뜨거운 열정이 들어가 있죠.”
“그럼 달콤한 소스에는 아가씨의 애정이 들어가 있나?”
“말씀도 잘하시네! 꿀이 뚝뚝 흐르는 거 같지 않아요? 어안이 벙벙하게 정신이 팔려서 부모님도 몰라볼 맛이죠?”
아체리아의 너스레에 손님들이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마렌은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아예 열 개를 한꺼번에 싸 들고 가려는 손님까지 나왔다. 연기가 피어오를수록 매콤달콤한 냄새가 온 광장으로 퍼져 나갔고, 냄새에 이끌린 사람들이 또 홀린 것처럼 마렌을 사러 얀 헨릭의 가게로 왔다.
“그런데 이 가게 말이야. 피로소프 씨가 엉망진창이라고 혹평했던 그 가게 아닌가?”
누군가 말하자 아체리아는 들고 있던 쇠 집게로 그릴을 탕탕, 두드리며 허리에 손을 척 얹었다.
“피로소프라는 자는 분명히 이 가게에 와 보지도 않았을 거라고요. 이 마렌을 먹어 보고도 그런 글을 쓸 수 있다면 혓바닥을 갈아 끼워야 할걸요? 그렇지 않아요?”
“확실히 이건 정말 맛있는데…… 피로소프는 저명한 인사잖아. 그런 말을 해도 되는 거야, 아가씨?”
“그 저명한 인사가 오면 불같이 매운 마렌을 대접할 거예요! 정신이 번쩍 들어 혓바닥이 다시 태어나는 맛일 테니까!”
마렌을 사려는 사람들은 이제 향기 광장의 거의 절반 가까이를 둘러 줄을 서고 있었다. 개중에는 아체리아가 떠드는 것이 더 재미있는 듯, 마렌을 먹는 것은 안중에도 없이 계속해서 말을 걸어 보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주변 가게의 주인들까지도 이게 무슨 일이냐는 표정으로 바깥을 내다보는 사태가 속출했다. 아체리아는 그들을 향해 의기양양하게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마지막 마렌 두 개를 팔고 다시 쇠 집게로 그릴 위를 탕탕, 소리가 나게 두드렸다.
“오늘은 여기까지! 찾아 주신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어, 뭐야. 벌써 다 팔린 거야?”
“내일도 또 파는 건가요?”
“그럼요! 손님들이 만족하실 만한 모든 요리가 얀 헨릭의 식당에 있어요! 오늘 먹은 마렌보다 더 맛있는 걸 먹어 보고 싶다면 내일도, 모레도 방문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아쉬운 소리를 하며 거리 곳곳으로 흩어졌다. 그들이 가 버리고 난 다음에도, 아체리아가 구운 마렌의 매콤달콤한 냄새는 한동안 향기 광장 전체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하룻밤 장사를 성공적으로 마친 아체리아와 얀 헨릭은 마주 앉아 매출을 점검하고 의자에 등을 늘어뜨렸다. 재료를 그냥 썩히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고 해야 할 정도였지만, 얀 헨릭의 표정은 유쾌해 보였다.
“오늘 또 네 녀석에게 한 수 배우는구나.”
얀 헨릭의 말에 아체리아는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떴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얀이 나한테 배울 게 뭐가 있다고.”
“이 녀석아, 요리라는 건 항상 남들에게서 배우는 거야. 네가 나에게 얼마나 많은 걸 가르쳐 줬는지 알면 놀랄 거다.”
“아니, 그렇다고는 해도 내가 무슨…….”
손을 내젓던 아체리아는 갑자기 미묘하게 풀 죽은 표정을 지으며 맥없이 웃었다.
“뭐야? 왜 그러냐?”
“그냥요. 얀이 떠난 뒤로, 난 늘 얀의 그림자에 갇혀 사는 기분이었는데 얀이 그런 말을 하니까…… 우습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번에는 얀 헨릭의 눈이 커졌다.
“내 그림자 안에 갇혀 살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다른 요리사들 말이에요. 전 아무래도 수석 요리장 같은 게 되긴 멀었다고 생각했어요. 얀이 남긴 것들이 너무 크니까…… 얀처럼 되려면 한참 멀긴 했잖아요.”
“네 녀석이 날 따라오긴 멀었지.”
얀 헨릭이 너스레를 떨었지만 아체리아는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그는 두툼한 팔로 팔짱을 척 끼면서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체리아, 넌 잘못 생각하고 있다.”
“잘못 생각하다니, 뭘요?”
“넌 내 뒤를 따라오는 게 아니야. 내 뒤를 따라와서도 안 되지.”
“그게 무슨 말이에요? 공작저의 주방은 늘 얀의…….”
“이제는 너의 주방이 되지 않았느냐?”
아체리아는 뜻밖의 말을 들었다는 듯이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얀 헨릭이 떠난 자리는 생각보다도 거대했다. 몇십 년 동안이나 한자리를 지켜 온 사람이 사라졌으니 당연한 일이기는 했다. 그것도 얀 헨릭처럼 존재감이 뚜렷한 사람이라면.
그래서 다른 요리사들은 물론이거니와 아체리아 스스로도 이제 주방의 주인이 얀 헨릭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실제로 아체리아는 자신의 할 일은 제대로 하면서도, 얀 헨릭이 있을 때처럼 활기차게 요리를 하지는 못했다. 언제나 조금쯤 경직되어 있고, 긴장했고, 전보다 자유롭고 대담한 시도를 하는 걸 꺼렸다.
약간의 변형은 있더라도 대체로 얀 헨릭의 레시피를 따르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해야만 다른 사람들도 만족하리라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그곳에서의 모험은 네 것이야. 실패하든 성공하든, 그것 역시 네가 책임지고 즐기면서 해 나가야 할 거다. 그러니까.”
“…….”
“오늘처럼 주방을 비우는 일은 두 번 다시 없어야 해. 알겠느냐?”
그 순간 아체리아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무리 준비를 해 두었다지만, 가장 중요한 시간에 주방을 비운 것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일이기는 했다.
요리사가 식사 시간에 주방을 비우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자신도 늘 생각해 오지 않았나. 어쩔 수 없는 경우였다고 하더라도, 오늘은 자신과의 약속을, 그리고 얀 헨릭의 가르침을 깬 날이었다.
“고마워요, 얀.”
아체리아는 덩치 큰 얀 헨릭을 품 안 가득 꽉 끌어안았다.
“얀이 무슨 말을 해 주려는 건지 알겠어요. 앞으로는 제가 알아서 할게요.”
“그래. 나도 그러도록 해 보마. 젠장, 요런 꼬맹이에게까지 걱정을 끼치다니 내 이름이 말이 아니란 말씀이야. 네가 가르쳐 준 대로, 사람들을 끌어모을 새로운 메뉴를 개발해 보마.”
“얀은 멋지게 성공할 거예요. 당연히요.”
아체리아는 허둥지둥 앞치마를 벗었다.
“저 이만 가 볼게요!”
“조심해서 돌아가라.”
* * *
저택으로 돌아온 아체리아는 당연하다는 듯이 호즈만의 잔소리를 바가지로 들어야만 했다.
“너, 도대체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엉! 자꾸 이렇게 네 마음대로 하다가 또 쫓겨나려고 그러는 거냐!”
“죄송해요, 정말 잘못했어요. 두 번 다시 이러지 않겠습니다.”
“얀 헨릭이 널 너무 오냐오냐 키웠지. 아주 고용인이 아니라 제가 이 집 주인인 것 같다니까.”
호즈만이 말했다. 아체리아가 샐쭉하게 뺨을 실룩이면서 주방으로 가려는 순간, 그가 다시 그녀를 붙잡았다.
“어딜 가느냐?”
“주방에요.”
“공작님께서 찾으신다. 따라와.”
또 왜!
정말 곳곳에서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날이다. 아체리아는 호즈만의 뒤를 따라 올라가면서 한숨을 푹 쉬었다.
클라우스는 늦은 시간임에도 잠자리에 들지 않고 서재에 앉아 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 그는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아체리아를 보며 비스듬히 턱을 괴었다.
“할 말이 있으면 해 보지 그래?”
아체리아는 이럴 때 최대한 반성하는 척을 하는 게 정답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사실, 얀 헨릭이 걱정되어서 그런 것이긴 했지만 논리적으로 말하면 일을 내팽개치고 달아난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반성해야지.’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공작님.”
“내 저녁 식사는 팽개치고 대체 어딜 갔었던 거지?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왔나 본데. 온몸에서 양념 냄새가 풀풀 풍기고 말이야.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군것질할 친구라도 생겼나?”
하여튼 말을 해도 꼭 이렇게 밉살스럽게 해요.
하지만 오늘 일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는 게 사실이다. 아체리아는 얌전히 눈을 내리깐 채 조용히 말했다.
“얀 헨릭의 가게에 다녀왔습니다.”
클라우스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얀 헨릭의 가게라고?”
“네. 신문에 또 얀의 가게를 비난하는 터무니없는 기사가 났어요. 누군가 얀 헨릭을 의도적으로 방해하려는 게 분명해서, 그만 화를 주체하지 못했습니다. 제 불찰이에요.”
“그런데 이 냄새는 대체 뭐야?”
“얀 헨릭의 가게에서 마렌을 팔았어요.”
“마렌이 뭔데?”
아차, 귀한 몸이셨지.
“마렌은…… 채소와 고기를 꼬챙이에 꽂아서 소스를 발라 구워 만드는 요리예요. 공작님의 말씀대로 거리에서 많이 파는 음식입니다.”
“그래, 좋아. 얀 헨릭의 가게가 걱정되어서 나갔다 왔다……. 그게 내 저녁 식사를 엉망진창으로 만들 이유에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체리아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엉망진창이라니?
자신이 준비를 거들지 못한 것은 맞지만, 오늘 메뉴를 무엇으로 할지, 그리고 어떤 재료를 사용할지에 대한 준비는 철저하게 마친 후였다. 그런데 어떻게 엉망이 될 수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