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접시를 핥으세요, 공작님! (13)화 (13/144)

13화

“젠장, 그놈의 계집애가 어떻게 다시 수석 요리장이 될 수 있느냔 말이야!”

비스몽트 공작가의 이등 요리사인 로널드 락케가 손에 쥐고 있던 잎담배를 팽개치며 구시렁거렸다. 그의 주변에는 그를 따르는 바키, 듀켄, 그리고 견습 요리사인 요아킴이 눈치를 보며 서 있었다.

“분명 그것이 무슨 꼼수를 부린 게 틀림없다니까요.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감히…….”

평소 락케에게 손을 잘 비벼 대며 아첨을 하는 듀켄이 말했다.

“그렇습죠. 아체리아 고것이 그 잘 굴러가는 혓바닥으로 공작님을 꼬드긴 게 분명합니다.”

바키도 거들었다. 가장 어린 요아킴도 그들의 대화에 끼고 싶었지만, 락케가 가래침을 탁 뱉으며 욕을 중얼거리는 바람에 끼어들 만한 좋은 순간을 놓치고 말았다.

“얀 헨릭이 늙어서 노망이 났던 게 틀림없지. 이 몸을 내버려 두고 그런 새파란 계집애에게 수석 요리장 자리를 주다니. 흥! 비스몽트 공작도 곧 죽겠군. 그런 계집애가 만든 요리 따위를 먹고 건강해질 리가 없지.”

락케가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동안 세 사람은 그 말이 맞다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얀 헨릭이 있을 때는 주방 요리사들 간에 파벌을 만드는 것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었다. 조금이라도 떼를 지어 다른 사람을 따돌리려는 눈치가 보이면 그야말로 정신이 쑥 나가도록 혼이 나거나, 심하면 쫓겨나기도 했다.

그러나 로널드 락케는 교활한 인물이었다. 얀 헨릭의 눈을 피해 자신의 말을 잘 들을 만한 요리사들을 포섭했던 것이다. 그중 남은 것이 바키와 듀켄이었고, 요아킴은 딱히 쓸모는 없지만 어린 녀석이 꽤나 보비위를 하려는 게 기특해서 붙여 놓고 있는 상태였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아요, 부주방장님.”

요아킴이 말했다. 락케는 팔짱을 낀 채 야비해 보이는 미간에 한껏 주름을 잡았다.

“고 계집애가 못 버티고 나갈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어. 아무래도 공작과 뭔가 있는 게 분명하단 말이야. 쫓겨났다가 돌아왔을 때도 마차를 타고 왔다면서?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돌아다니는지 모르겠지만, 뒤를 좀 캐 볼 필요가 있겠어. 어이, 요아킴.”

“네?”

“네가 제일 만만하니 아체리아를 좀 살펴보도록 해. 누굴 만나서 수상한 짓거리를 하지는 않는지, 공작에게 추파를 던지지는 않는지, 아무튼 흠이 될 만한 건 다 찾아보란 말이야. 알겠어?”

“아, 알겠습니다.”

“좋아. 이번 일만 잘 해내면 네 견습 딱지도 떼어 주고, 설거지 일도 면하게 해 주지.”

여드름이 돋은 요아킴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이제 열다섯 살인 그는 공작가의 주방에 취직한 지 벌써 2년이 되었는데도 견습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얀 헨릭은 무척 엄격한 인물이어서 설거지를 제대로 배우기 전에는 칼을 잡을 생각도 하지 말라며 엄포를 놓았기 때문이었는데, 요아킴은 아직도 설거지를 하다가 몇 차례씩 실수를 저지르곤 하는 사고뭉치였다. 얀 헨릭의 그림자이다시피 한 아체리아도 주방에서 깐깐하기로는 그에 뒤지지 않아서, 이대로 가다가는 평생 당근 하나 못 썰어 보고 설거지만 하다 죽을 형편이었다.

“실망시켜 드리지 않을게요, 부주방장님!”

요아킴이 비장하게 말했다. 비록 목소리가 크다고 듀켄에게 핀잔만 들었지만, 의욕에 찬 그는 핀잔 따위야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 * *

아체리아는 요리의 모든 단계를 다 좋아했지만, 그중 특히 좋아하는 것을 꼽으라면 고기를 다듬을 때와 소스를 만드는 것이었다.

타라곤 초절임과 에샬로트, 미뇨네트를 넣고 천천히 끓여 식초의 맛과 향을 날린 아체리아는 커다란 냄비를 꺼내어 달걀노른자와 물을 차례대로 넣었다.

다른 요리사들이 분주하게 밑 준비를 하는 동안, 그녀는 향신료를 넣은 베아르네즈 소스를 만들었다. 따뜻한 소스를 휘저을 때마다 걸쭉한 무게감과 함께 피어오르는 향기가 기막히게 좋았다.

“바키 씨, 토끼고기 장만은 다 되었어요?”

“어? 어어.”

락케의 눈치를 보며 바키가 어물어물 대답했다. 아체리아는 깨끗한 타월에 손을 닦고 바키가 다듬어 놓은 고기의 상태를 살폈다.

“오늘은 스테이크를 할 거니까 힘줄을 꼼꼼하게 제거해 주세요. 공작님께서는 질긴 음식을 질색하시잖아요.”

“연한 거라고 잘 잡수시나, 뭐?”

아체리아보다 두세 살이 더 많은 허슨이 킥킥거리며 말했다. 아체리아는 눈을 흘기며 허슨의 어깨를 장난스럽게 탁, 치고는 박수를 쳤다.

“이제 곧 저녁 식사 시간이에요. 그래도 공작님께서 요즘은 음식을 남기시는 양이 좀 줄었어요. 우리 모두에게 기쁜 일이니까, 오늘이야말로 공작님께서 접시를 싹싹 핥으실 만큼 맛있는 걸 만들어 보자구요!”

아체리아가 씩씩하게 외쳤다. 그러나 아무에게서도 호응이 돌아오지 않았다.

“뭐예요? 왜 다들 조용해요?”

눈이 뚱그래진 요아킴이 아체리아의 눈치를 보며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그러고 보니 모두의 시선이 한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아체리아는 등골이 죽 빠져 버리는 것 같은 서늘한 기분을 느끼며 고장 난 인형처럼 삐걱대며 고개를 돌렸다.

‘왜 이런 예감은 틀리지도 않아!’

클라우스였다. 그 옆에는 호즈만이 거의 기절하기 직전인 낯빛이 된 채 아체리아를 무시무시하게 노려보고 있었다.

‘들었을까? 들었겠지?’

분명히 들었을 것이다. 접시를 싹싹 핥느니, 어쩌니 하는 그런 말을……. 설마 이것 때문에 또 내쫓기는 거 아니야?

“내가 접시를 뭘, 어쩐다고?”

‘그냥 좀 넘어가 주면 어디가 덧나나!’

아첼리아의 바람과는 달리 공작은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는 듯했다.

“다시 말해 보지 그래? 왜 조용하지?”

클라우스가 비웃듯이 말했다. 아체리아는 입속으로 망했다, 하는 소리를 읊조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공작님, 그것은…… 별 뜻은 없었습니다. 그냥 그만큼 맛있는 음식을 만들자는 뜻에서…….”

“그래서 내가 접시를 핥는 꼴을 보고 싶다는 거야?”

“……아니, 진짜로 그런 모습을 보고 싶다는 건 아닙니다만…….”

돈을 줘도 보고 싶지 않은 풍경이었다.

“뭐, 좋아.”

클라우스는 그렇게 말하며 들고 있던 지팡이 끝으로 바닥을 쿵, 찍었다. 아체리아는 그제야 비로소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대체 공작이 주방에는 무슨 일이지? 머리털 나고 처음 들어와 보는 것일 텐데, 설마 정말로 요리하는 모습을 감시하러 오기라도 한 건가?

“호즈만, 아체리아를 데려가서 깨끗하게 씻겨. 광이 나도록 말이야.”

“알겠습니다, 공작님.”

잠시만, 뭘 하려는 거야? 아체리아는 당황한 표정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호즈만을 피해 주춤 물러났다.

이 인간이 드디어 날 팔아먹는구나! 동네 사람들! 공작이 날 씻겨다 팔아 버리려고 해요!

“자, 잠깐!”

아체리아가 외치자 호즈만이 눈을 부릅떴다. 감히 어디서 언성을 높이느냐는 그의 잔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했지만, 아체리아는 이대로 순순히 팔려 가고 싶지는 않았다.

“저, 저를 씻겨서 뭐에 쓰실 셈인가요, 공작님?”

“……뭐?”

“저…… 저는 팔아도 값이 안 나올 텐데요.”

클라우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호즈만은 할 수만 있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혀를 깨물고 쓰러지고 싶다는 표정이었다. 아니, 실제로 혀를 좀 깨물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누가 널 팔아? 널 팔아서 뭐에 써?”

“그, 그럼 절 왜 씻기시는 거죠?”

“대공저에서 초대장이 왔다. 너도 ‘꼭’ 달고 오라고 하더군.”

클라우스는 에른스트로부터 온 황당한 초대장을 다시 한번 상기하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평소 초대장 같은 딱딱한 걸 주고받는 사이도 아닌데, 대공가의 문양까지 찍힌 정식 초대장에 ‘아체리아를 꼭 데리고 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던 것이다.

‘대공저에서?’

클라우스의 말에 아체리아는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뭐야, 에른스트가 저녁 초대를 했는데 자신을 ‘꼭’ 데리고 오라고 클라우스에게 말했단 말인가? 그래서 저 양반이 직접 주방까지 내려온 거고?

아니, 그렇다고 주방까지 직접 올 거까진 없었잖아.

아체리아는 당황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요리사들은 고기가 타는지, 솥이 끓는지도 모른 채 어리벙벙한 표정을 짓고 서 있었다.

“저기, 요리장님. 오늘 메뉴는 그럼…….”

“……이, 일단 고기는 갈무리해 둬요. 토끼고기는 스튜로 쓸 수 있으니까요. 수프는 끓여서 저녁으로 먹도록 하고, 음, 시금치는 오늘 쓰지 않으면 시들 테니까 찜이나 파이를 만들어 사용하도록 해요. 버리지 말고요.”

아체리아의 말에 요리사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호즈만은 무슨 죄인 연행하듯 아체리아의 손목을 끌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클라우스는 서늘한 눈으로 주방을 한 번 둘러보고는 고개를 휙 돌리고 사라져 버렸다.

세 사람이 사라진 주방은 조용했다. 솥뚜껑만이 을씨년스럽게 덜걱덜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끓고 있을 뿐이었다.

* * *

호즈만이 아체리아를 데려간 곳은 하녀들이 묵는 숙소가 아니었다. 손님용 방이기는 하지만 가구와 필요한 것들이 모두 갖추어진 방이었다.

아체리아가 덩그러니 방 가운데에 서 있으려니 하녀들이 들어왔다.

“아체리아, 너 이러다가 공작 부인 되겠다.”

하녀 중 한 명이 이죽거리면서 아체리아를 욕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대공저에서 썼던 욕탕만큼은 아니었지만, 공작저의 객실 욕조도 훌륭했다. 아체리아가 욕조에 들어가려고 하니 하녀가 말했다.

“뭐야, 욕조라도 쓰려는 거야? 관둬, 뜨거운 물 채우려면 얼마나 힘든지 아니?”

그녀는 뭐가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지 연신 뾰로통한 어조였다. 아체리아는 그녀가 하는 양이 아니꼬웠지만 별 도리가 없었다. 무성의하게 가져다 놓은 물로 혼자 몸을 씻는 수밖에 없었다.

“공작님께서 왜 너 같은 걸 그리 예뻐하시는지 모르겠다니까.”

하녀가 종알거렸다. 머리 위로 물을 퍼붓고 있던 아체리아가 그 말에 고개를 홱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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