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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를 핥으세요, 공작님! (10)화 (10/144)

10화

길을 따라 빠르게 달린 마차가 공작저 앞에 도착하자, 아체리아는 저도 모르게 가방을 끌어안으며 긴장된 숨을 내쉬었다.

쫓겨날 가능성이 다분하지. 아체리아가 생각했다. 클라우스 비스몽트의 성격이라면 그러고도 남았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어.’

“도착했습니다.”

마부가 말했다. 아체리아는 숨을 크게 들이마신 뒤, 가방을 끌어안은 채 마차에서 내렸다.

“대공 전하께서 여기서 한 시간은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마부는 충실한 사람 같았다. 그는 파이프에 담뱃잎을 눌러 채우면서, 아체리아에게 어서 들어가 보라는 눈짓을 했다.

“고마워요.”

아체리아는 마부에게 인사를 하고 공작저의 문을 두드렸다.

“아니, 아체리아?”

문지기가 아체리아의 모습을 알아보고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 다행히 그는 두말없이 문을 열어 주었다. 아니, 문을 열어 준 것만이 아니라 뭔가…….

“공작님의 소식을 듣고 왔구나! 어서 와라!”

“네? 아니, 저기…….”

“아주 난리가 났다니까. 자자, 빨리. 그래도 네가 이 집에서 제일 실력이 좋으니까, 너라면 괜찮겠지.”

하인은 아체리아를 질질 끌다시피 하며 저택 안으로 이끌었다. 그러고 보니 공작저는 이상할 정도로 웅성거리고 있었다. 하인들이 분주하게 뛰어다니고, 수도에서 가장 실력이 좋은 치료사가 타고 다니는 마차가 정문 앞에 세워져 있었다.

“잠깐만요…… 무슨 일이 생겼어요?”

정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아체리아가 하인에게 붙잡힌 손을 빼며 물었다. 그는 설마 모르고 찾아왔냐는 듯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공작님이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듣고 온 게 아니었어?”

“공작님이 쓰러지셔요?”

아체리아가 벌컥 소리를 질렀다. 문간의 소란스러운 소리를 들었는지, 집사장인 호즈만이 화가 잔뜩 난 얼굴을 한 채 뛰어나왔다가 아체리아를 보고 하인과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

“아체리아! 다행이다, 빨리 들어와라.”

“아니, 아니! 잠시만요! 저…… 저는 쫓겨났었잖아요! 전 공작님께 실수한 걸 사과드리러…….”

“그런 건 됐으니까 빨리. 공작님께서 갑자기 쓰러지셔서 아무것도 넘기지 못하신다. 빨리 뭐라도 좋으니 속에서 받으실 만한 편한 음식을 하나 만들어라.”

집사장은 이어 아체리아의 귓가에 몸을 기울인 채 속삭였다.

“락케가 만든 수프를 다 토하시고는 기력도 없고 기분도 최악이시다. 제발 부탁한다, 아체리아.”

수프를 토했다고? 아체리아는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주방으로 들어갔다.

주방 역시 분위기가 어수선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로널드 락케는 호즈만과 함께 들어온 아체리아를 보더니 갑자기 인상을 찌푸리면서 수프를 젓던 국자를 내팽개쳤다.

“호즈만 집사장님! 이게 무슨 일입니까? 저 애는 쫓겨났잖소!”

“락케, 지금 그런 걸 따질 땐가? 공작께서 자네가 만든 수프는 넘기지 못하시니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야지 어쩌겠나? 아체리아에게 뒷일을 맡기게.”

모멸감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락케는 씩씩대면서 분노로 몸을 떨고 있다가 그대로 주방을 나가 버렸다. 대놓고 그를 따르는 다른 요리사 몇 명이 급하게 락케를 따라 뛰어나갔지만, 호즈만은 그들을 꾸짖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락케 요리장이 공작님께 올린 수프가 이건가요?”

아체리아가 물었다. 호즈만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조그만 스푼으로 수프를 맛보더니 이맛살을 약간 찡그렸다.

“소고기가 너무 많이 들어갔어요. 점도도 너무 진득하고…… 공작님께서 오늘 점심 이후로 드신 게 아무것도 없지요?”

“그래. 네가 알다시피 저녁도 입에 맞지 않으신다며 거르셨다.”

“공작님께서는 위가 약하세요. 빈속인 데다 기력도 없어지셨는데 이런 걸 잡수시니 당연히 토하실 수밖에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으음, 양배추가…….”

“여기 있어, 아체리아.”

팔짱을 끼고 서 있던 하녀장인 예시카가 아이 머리통만 한 양배추를 휙 던졌다. 아체리아는 양손으로 그것을 받으며 씩 웃었다.

“고마워요, 예시카.”

얀 헨릭과 동기뻘인 예시카는 그와 마찬가지로 공작저에서 수십 년을 일한 베테랑이었다. 그녀도 역시 아체리아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고, 호즈만이 아체리아를 데리고 왔을 때 공작의 장례를 준비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곧장 철회했다.

아체리아는 양배추와 당근, 감자와 순무, 겨자 가루 같은 것을 냄비에 몽땅 집어넣고 장작을 있는 대로 밀어 넣은 뒤 수프를 끓이기 시작했다. 돌벽으로 된 주방에 순식간에 습기가 차고, 아체리아의 이마에서는 땀이 뻘뻘 흘렀다.

“아체리아, 공작님께서는 양배추를 싫어하시지 않느냐. 당근도 마찬가지고…….”

“그래도 드셔야 해요. 양배추는 속을 편안하게 해 주거든요. 원래는 좀 오랫동안 끓여야 하지만…… 이럴 줄 알았으면 저녁을 조금이라도 잡수시게 할 걸 그랬어요.”

“그러게 성질 좀 죽이지 그랬느냐.”

“……전 몰랐어요. 공작님께서 왜 음식 드시는 걸 싫어하시는지…… 집사장님은 알고 계셨어요?”

호즈만 집사장은 애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것은 고용인들 중에서는 얀 헨릭과 자신 정도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었다. 공작의 외조부가 그토록 잔인하고 괴팍한 인물이었다는 소문이 퍼지면 공작가의 명성에 흠이 갈 것을 염려해, 선대의 공작 부인이 사정을 아는 사람들에게 철저한 함구령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호즈만이 물었다.

“그런데, 너는 이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된 거냐?”

“아, 그게요. 대공 전하께서…….”

알 만한 일이다. 에른스트라면 클라우스와 어릴 때부터 친했으니, 그 사실을 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아체리아는 당근이 부드럽게 익을 때까지 수프를 팔팔 끓이다가, 위에 뜬 거품을 가장자리부터 살살 걷어 낸 뒤 그릇에 퍼 담았다. 그리고 겨자 가루 약간과 소금을 살짝 뿌린 뒤 쟁반에 받쳐 들었다.

“내가 가지고 가마.”

“아니에요, 제가 가지고 갈게요.”

쟁반을 든 아체리아의 손이 약간 떨렸다. 호즈만은 불안한 표정으로 그녀를 보내 주었다.

공작의 방 앞을 지키고 서 있던 하인은 아체리아를 보자 눈을 휘둥그렇게 뜨면서 문을 열어 주었다. 그러면서도 안에서 벌어질 상황이 흥미진진해 못 견디겠다는 표정이었다.

클라우스는 침대 위에 가만히 누운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축 처진 채 까라진 모습은 생기라고는 없었고, 의식이 있는지 없는지도 구분하기 힘들었다.

“……공작님.”

아체리아가 조심스럽게 클라우스를 불렀다. 다행히 의식은 있었는지, 눈가를 움찔거리던 클라우스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러고는 아체리아를 보고 곧장 미간을 찌푸렸다.

“……뭐야? 왜 네가 여기에 있지?”

“자세한 사정은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 이걸 좀 드세요.”

“일 없으니까 가지고 나가.”

“지금 안 드시면 정말 큰일 날지도 모릅니다.”

클라우스가 눈동자를 굴려 아체리아를 노려보았다.

“날 협박하는 건가?”

한숨을 푹 내쉰 아체리아는 침대용 테이블을 끌어당겨 그 위에 쟁반을 놓은 뒤 클라우스의 어깨를 억지로 안아 일으켰다. 부드러운 머리칼이 뺨에 닿으며 코끝을 간지럽히는 향이 풍기자, 순간 당황한 클라우스는 저항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번쩍 몸을 일으키고 말았다.

아체리아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은 채 클라우스를 빤히 쳐다보았다.

“제가 실수했습니다, 공작님. 죄송합니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공작님께 했던 모든 말들요. 제가 아무것도 모르고 실언을 했습니다. 절 쫓아내시는 건 좋지만, 이 수프는 드셔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이번에야말로 정말 쓰러지셔서 영영 일어나지 못하실지도 모르니까요.”

그 말에 클라우스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얼굴로 그녀를 물끄러미 보고 있다가 스푼을 집어 들었다. 그 손가락이 어찌나 하얗고 말랐는지, 아체리아는 순간적으로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수프를 한 스푼 떠먹은 클라우스는 천천히 눈을 깜빡이더니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다시 한 스푼을 먹었다.

“양배추잖아.”

클라우스가 말했다. 아체리아는 고개를 저으면서 스푼을 쥔 그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다 드셔야 합니다.”

“……뭐 하는 거야? 알았으니까 놔.”

쌀쌀맞기는. 아체리아는 속으로 구시렁거리면서도 얌전히 그의 손을 놓아주었다.

클라우스는 불만이 가득한 어린애 같은 표정을 지은 채 수프 한 그릇을 다 비웠고, 그러고 나서야 아체리아는 겨우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뱃속이 따뜻해지니 클라우스도 기운이 좀 나는 것을 느꼈다. 계속해서 메슥거리던 속이 가라앉자 어지럽던 머리도 어느샌가 멀쩡해졌다.

아체리아는 빈 그릇과 쟁반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다시 한번 사죄의 의미로 클라우스에게 고개를 숙인 뒤 방을 나가려 했다.

“기다려.”

클라우스가 말했다.

“나가서 어디로 갔던 거지?”

몸을 돌린 아체리아는 대답을 하지 않은 채 눈만 깜빡이며 서 있다가 되물었다.

“그건 왜 물어보시는 것인지요?”

“건방지기는.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어디 가서 뭘 했는지.”

‘왜 시비람?’

이렇게 된 이상 솔직하게 말할 수밖에 없겠는걸. 아체리아는 들고 있던 쟁반을 다시 내려놓으며 최대한 수굿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공저에 갔습니다.”

“뻔뻔하기는. 그렇게 뛰쳐나가서는 내 친구의 집에 가서 내 얼굴에 먹칠을 했어?”

“공작님께선 오해를 하고 계십니다. 제가 대공저에 가게 된 건 맹세코 제 의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럼 뭐야. 지나가던 에른스트가 길거리를 헤매던 널 우연히 발견하기라도 했다는 건가?”

“에른스트 전하가 아니라 란츠호프 아가씨께서 절 발견하셨죠. 그분이 저를 대공저로 데려가셨습니다.”

클라우스가 쯧, 하고 혀 차는 소리를 냈다.

‘그렇게 못마땅한 티를 낼 것까지야 있냐?’

아체리아가 속으로 투덜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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