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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를 핥으세요, 공작님! (7)화 (7/144)

7화

“맙소사.”

방에 들어서자마자, 아체리아는 터져 나오는 탄성을 억제하지 못하고 손바닥으로 입을 가렸다.

“이게 그냥 손님용 방이란 말이야?”

어릴 때부터 공작저에 머물면서 온갖 호화로운 것들을 다 보았다고 생각했지만 대공저의 호화로움은 격이 달랐다. 정원에 들어서면서부터 생각한 것은 이제 더욱 선명한 현실이 되어 아체리아의 눈앞에 있었다.

“이런 데서 자게 되다니…….”

공작저의 고용인들 숙소도 결코 환경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방에 비한다면 그곳은 거의 헛간 수준이었다. 아니, 헛간 수준도 못 될지 모른다.

아체리아는 낡은 짐 가방을 아무렇게나 던져 놓은 채 대리석에 금을 칠해 놓은 것처럼 호화로운 몰딩을 넋 놓고 구경했다. 소파와 벽난로, 옷을 백 벌은 넣을 수 있을 만큼 큼직큼직한 가구도 모두 세련된 새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바로 침대였다.

“워후!”

외마디 소리를 지른 아체리아의 몸이 푹신한 깃털 이불 위로 붕 솟구쳤다가 푹 떨어졌다. 흰 시트 위에 흐트러진 붉은 머리카락이 마치 물결처럼 보였다.

“베갯잇에서까지 향기가 나잖아! 이게 무슨 향이지? 패출리와 최고급 라임, 그리고…… 오렌지 껍질인가? 이런 걸로 만드는 향수는 비싼데!”

아체리아는 일류 요리사인 만큼 후각 역시 뛰어났다. 시트와 베개에서 풍기는 은은한 향기를 킁킁거리며 음미하고 있는데,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대공저에서 일하는 하녀가 안으로 들어왔다.

하녀는 침대에 드러누운 아체리아의 모습을 보고 좀 당황한 것 같았으나, 엄격한 교육을 받은 고용인답게 정중했다. 손님의 방만한 태도를 지적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대신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목욕물을 준비하겠습니다, 아가씨.”

‘아가씨? 나더러 아가씨라고?’

갑작스러운 호칭에 아체리아는 당황했다. 덕분에 그녀의 들뜬 가슴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고마워요.”

그녀는 최대한 새침한 아가씨의 목소리처럼 들리기를 바라며 이렇게 말했다. 하녀는 순간 미묘한 표정을 지었으나, 곧 준비한 것들을 가지고 욕실로 향했다.

아체리아는 욕실을 들여다보고 싶어 죽을 지경이었다.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향기로운 냄새가 방 안에까지 풍겨 오기 시작하자 그녀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욕실 입구로 다가간 아체리아는 저도 모르게 입을 쩍 벌렸다.

“세상에!”

하녀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아체리아는 그녀의 반응을 신경 쓰고 싶지도 않았다. 그럴 정신도 없었다.

그 욕실은 아체리아가 지금까지 보아 온 그 어떤 욕실보다도 호화로웠다. 고상한 무늬의 대리석으로 바닥과 벽을 깔고, 습기 한 점 없이 반짝반짝하게 광택을 낸 선반과 깨끗한 거울, 유리로 만들어진 향유 보관함 같은 것들이 햇빛을 받은 크리스털처럼 찬란하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여기서 살라고 해도 살 수 있겠다.’

진심이었다. 아체리아는 하녀가 쳐다보든 말든 개의치 않은 채 욕실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을 만지고, 열어 보고, 향기를 맡았다.

“목욕물이 준비되었습니다, 아가씨.”

하녀는 이제 아체리아가 ‘아가씨’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을 것임에도 공손하게 말했다.

“필요하신 게 있으시면 줄을 당겨 주세요. 옷 갈아입는 것을 도와드릴까요?”

“아, 아뇨. 괜찮아요. 그건 혼자 할 수 있어요.”

“알겠습니다. 그럼…….”

하녀는 빳빳하게 풀을 먹여 다림질한 치맛자락을 펼치고 무릎을 굽힌 뒤 방을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아체리아는 입고 있던 옷을 마구 벗어 던졌다. 귀족 아가씨들이 그러듯 파티션 뒤로 돌아갈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오, 맙소사. 이대로 녹아 버리겠어.”

따끈하게 물이 채워진 욕조에 몸을 담근 아체리아의 입에서는 절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어떻게 그 하녀는 손 하나만 가지고 이렇게 딱 맞는 온도를 맞출 수 있었을까?

아체리아도 수프를 끓일 때는 눈으로 보기만 해도 어느 정도로 식었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목욕물과 수프는 완전히 다르지 않은가? 게다가 향유의 배합이 완벽했다. 아체리아는 다시 붉은 털의 강아지처럼 코를 킁킁거렸다.

“바닐라, 맥넛…… 그리고 시실리안? 세상에, 이 비싼 걸 목욕물에 집어넣었어?”

아체리아의 표정은 기쁜 듯도 하고, 허탈한 듯도 했다. 공작저의 고용인으로 있을 때는 느껴 본 적 없었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귀족이란 종족들과의 격차에 수백 가지 감정이 파도처럼 몰려왔다 빠져나갔다.

‘이런 집에 태어났으면 난 대체 뭘 하면서 살았을까?’

아체리아는 향기롭고 매끌거리는 물을 손바닥으로 휘저으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만약 그녀가 귀족의 자식으로 태어났다면, 모르긴 몰라도 요리를 잘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제 손으로 요리를 하는 귀족은 단 한 명도 없으니까.

‘맛있는 음식이나 먹고 다니면서 잡지에 익명으로 식당 기고문이나 썼을까?’

아체리아가 요리사가 된 것은 순전히 타고난 미각과 후각 덕분이었다.

그녀는 원래 귀족의 ‘귀’ 자도 찾아볼 수 없는 가난한 집의 다섯 번째 딸이었다. 위로 오빠와 언니들이 있지만 모두들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나 곳곳으로 흩어져 일을 해야 했고, 아체리아 아래로도 두 명의 동생이 더 있었다.

여섯 살의 아체리아는 해가 뜨기 전부터 해가 질 때까지 일을 해야 하는 부모님을 대신해 동생들을 돌보는 역할을 맡았다. 아체리아가 잘하는 것은 산이나 들로 동생들을 데리고 쏘다니면서 과일이나 먹을 수 있는 풀을 구해 매일같이 새로운 방법으로 음식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가난한 집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란 한계가 있었고, 아체리아와 가족들은 늘 굶주림에 시달렸다. 그 무렵의 아체리아는 무엇이건 양껏 먹어 보는 것만이 단 하나의 소원이었을 만큼.

‘그러다 그 일이 일어났지.’

전례 없는 태풍이 왕국을 덮친 날, 아체리아가 살던 마을은 대규모의 산사태로 한밤중에 쑥대밭이 되었다. 높은 지대에 있던 영주의 성만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집이 파괴되었다.

사고 직전 아체리아는 한밤중에 배가 고파 잠에서 깨었고, 덜 익은 과일을 몰래 따기 위해 촛불 하나를 들고 마을 반대편의 과수원으로 가는 중이었다.

거대한 소리가 들리고 뒤를 돌아보았을 때, 그녀가 살던 집은 이미 흙더미 속에 파묻혀 보이지 않았다.

수도에서는 난민들을 위한 피난처를 임시로 마련했다. 어린 아체리아도 사람들을 따라 아무것도 모르는 채 그곳으로 갔다. 부모님과 동생들이 모두 죽었다는 것은 아직 어린 아체리아에게 슬픔으로 와닿지 않았다. 그녀는 단지 당황했고, 무서웠으며, 그리고 배가 고팠다.

‘어머, 세상에. 저 아이를 좀 봐.’

배식된 빵과 수프를 걸신들린 것처럼 먹고 있던 아체리아는 난민 구호를 위해 피난처에 들렀던 비스몽트 공작 부인의 눈에 띄었다.

‘가엾게도 부모를 다 잃은 아이라지. 살아난 것은 그래도 다행이야. 똑똑해 보이는데, 데려가서 일을 배우게 하면 어떨까?’

비스몽트 공작은 자기 부인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고개를 끄덕이는 남자였다. 성격이 무른 것도 이유였거니와, 공작가의 데릴사위로 작위를 이어받은 그는 애초부터 공작가의 살림에 별다른 발언권이 없었다.

아체리아는 그렇게 비스몽트 공작가로 오게 되었다. 처음에는 단지 하녀로서 일을 배웠지만, 곧 그녀의 미각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아챈 얀 헨릭이 견습 요리사로 삼아 주방으로 데려가게 되었다.

‘그때부터 내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지. 그리고 이제…… 또 완전히 달라질 거고.’

아체리아는 공작저, 그것도 주방 안에서의 삶 이외에는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요리 말고는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심지어 남의 기분을 사근사근하게 맞추는 것조차도 서툴렀다. 쉽게 말하면, 앞으로 살길이 정말 막막했다.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그녀는 욕조 가장자리에 머리를 기대며 체념하듯 중얼거렸다.

목욕을 마치고 나온 아체리아는 곧 따뜻하게 준비된 저녁 식탁 앞에 앉을 수 있었다. 시종들이 요리를 방까지 옮겨다 준 덕분에 그녀는 머리의 물기도 채 다 말리지 않은 채 자리에 앉았다.

“필요하신 게 있으면 불러 주십시오.”

집사로 보이는 중후한 남자가 정중한 태도로 말했다. 시종들이 모두 나가고 난 뒤 아체리아는 침을 꿀꺽, 삼키면서 식탁 위를 둘러보았다.

혼자 먹는 것이라 아주 많은 가짓수는 아니었지만 하나같이 군침이 도는 것들뿐이었다.

“끝내주네.”

아체리아가 중얼거렸다. 음식을 보니 허기에 시달린 뱃속이 아우성을 쳐 대는 것이 느껴졌다.

아체리아는 가장 먼저 간단한 애피타이저 파이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바삭거리는 소리와 식감, 그리고 안에서 배어 나오는 짭조름하고 부드러운 치즈가 입맛을 한껏 돋웠다.

“으음!”

파이를 문 아체리아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이런 식의 애피타이저도 괜찮은데? 그녀는 한 입 베어 문 조각을 내려놓고 이번에는 생선 요리를 먹어 보았다.

“뫼니에르인데 굉장히 부드럽네. 어떻게 만든 걸까? 희미하게 우유 맛이 나는 거 같기도 하고…… 생선은 농어인가?”

자몽과 생강을 부드럽게 섞은 소스도 별미여서 식욕을 한껏 돋운다. 아체리아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모든 음식을 골고루 한 입씩 맛본 다음에야 본격적인 순서대로 식사를 시작했다.

“대공 전하께서 요리사로 오라고 할 때 그런다고 할 걸 그랬나 봐.”

육즙이 물씬 배어 나오는 고기 요리를 우물거리며 아체리아가 혼잣말을 했다.

지금이라도 대공저에 취직할 수 있느냐고 물어보면 너무 염치없는 짓일까? 에른스트의 성격으로 보아 밀어붙이면 어떻게든 될 것도 같은데.

아체리아는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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