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려면 먼저 찾아야 할 사람이 있었다.
“…….”
바로 선황제 때부터 륀트벨 황실의 주술사로 있었던 사람.
레이나.
본래 이번 생에는 다신 엮일 일이 없었기 때문에 아예 찾아보지도 않았고 생각하지도 않았던 사람이다.
앞으로도 찾을 일이 없을 줄 알았다.
라칸이 별로 좋아하는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가 황위에 오른 후 얼마 안 있어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과거 샤르망은 그 후에도 그 주술사를 찾아간 적이 있어서, 그자가 어디서 지내는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오히려 가까이 하면 불쾌한 사람에 가까웠다.
과거 레이나는 샤르망의 심장에 지대한 관심을 가져 호시탐탐 노리며 뭔가 실험하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륀트벨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주술에 대해서 알아보려면 그가 필요할 것 같았다.
아힐은 어떻게 해서든 샤르망에게 주술에 관한 내막을 숨기려는 것 같으니까.
아힐은 자신이 주술을 해제할 수 있다고 장담했지만, 어쩐지 그가 풀 수 없는 주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만난 라칸은 생각보다 몹시 여유로웠다.
마지막까지 느껴졌던 그 불길한 웃음이 악몽처럼 따라붙는 느낌이 영 꺼림칙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하나하나 건들겠다는 선전포고까지 하고 갔으니.
레이나는 주술로만 봤을 땐 지금 륀트벨에 있는 고위 주술사들보다도 능력이 좋은 자였다.
다른 방법도 있지만 그를 찾는 것이 가장 빠르게 해결할 방법이었다.
마침 샤르망의 기억이 맞는다면 그녀가 머물던 곳은 소로 숲을 지나면 나오는 깊은 숲이라 서두른다면 오늘 내로 찾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 누구보다 륀트벨에서 행해지던 주술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니 대화만 잘 된다면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비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라칸을 혐오하듯 싫어하는 자였으니 손을 잡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고.
그런 생각이 들수록 조금 더 일찍 레이나를 떠올렸어야 했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랬다면 아힐이 저주에 걸리지 않도록 대비할 수 있었을 텐데.
샤르망은 준비를 하면서도 사실 간밤의 일이 생생한 꿈은 아니었을까, 아니,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수십 번을 했다.
절대 그럴 일은 없었지만.
샤르망은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현관문을 나섰다.
그러나 뒤를 돌자마자 정원 울타리 기둥에 가볍게 기대 있는 남자를 보고 그 자리에 우뚝 걸음을 멈췄다.
찾아온 이가 전혀 생각지 못한 방문객이었기 때문이다.
이쪽은 전에 있던 골목과 달리 번화가에서 뚝 떨어진 데다 집이 띄엄띄엄 있는 한적한 곳이었다.
길을 잘못 들지 않은 이상 샤르망을 찾아온 게 확실하다는 말이었다.
샤르망은 짧게 호흡하고서 입을 열었다.
“사디나르 공?”
그러자 케니즈가 몸을 바로 세우며 고개를 돌렸다.
“아, 나왔군.”
“무슨 일, 있어?”
샤르망은 조금 걱정이 들었다.
아힐이나 제자들 또 다른 이들은 아무 이유 없이 찾아오는 게 이제는 익숙하지만 케니즈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뭔가 륀트벨에 관련된 큰일이 생겼거나 아니면 책임을 물을 일이 생겨야 자신을 찾아올 사람이라는 걸 잘 알았다.
“어디 가는 길인가?”
“아, 잠깐 다녀올 곳이 있어서 나온 참이었어. 너무 오래 걸리는 일이 아니라면 뭐든 괜찮아.”
“그렇군. 먼저 멋대로 찾아온 것에 대해 사과하지. 아힐에게 물어 찾아왔네.”
“괜찮아. 그보다 무슨 일이 있는 거야?”
샤르망이 조심스럽게 묻자 케니즈가 현관문 쪽으로 턱짓했다.
“여기서 이야기하기는 좀 그런 것 같군.”
샤르망도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몸을 돌렸다.
“우선 들어와.”
샤르망은 다시 잠갔던 문을 열고 케니즈와 함께 집안으로 다시 들어왔다.
그리고 문을 닫으며 말했다.
“안 그래도 다녀와서 그대를 찾을 생각이었어.”
“그랬나? 찾아오길 잘한 것 같네.”
그 말에 샤르망이 작게 미소 지었다.
“뭐라도 마실 것을 준비해 오지.”
“아, 괜찮아. 바로 입궁해야 하니 말만 짧게 하지.”
“그럼.”
샤르망이 바로 마주 앉았다.
“샤르망 노엘 켄더스.”
“음?”
케니즈의 나지막한 물음에 샤르망이 눈썹을 치켜떴다.
“자네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네. 만약 우리가 륀트벨을 칠 기회가 생긴다면 어떻게 할 텐가?”
샤르망이 멈칫했다.
지금 륀트벨을 치겠다고?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지만 만약 그런 일이 생겨도 아직 때가 아니라도 여기고 있었다.
조금 더 완벽한 준비가 필요했고, 최소한의 희생이 있길 바라기에 신중하고 더 신중해야 하는 문제였다.
무엇보다 샤르망은 과오를 바로잡기 위해 엘리움을 지키기 위해 있는 것이지 엘리움을 쥐고 흔들려고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런 말이 나온들 왕의 입에서 직접 나오지 않고서는 먼저 꺼낼 생각도 없는 주제였다.
먼저 혼란에 빠뜨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는 뜻이다.
그랬는데.
케니즈의 입에서 그 말이, 오늘 나올 줄은 몰랐다.
“어떻게 하냐니……. 조금 갑작스러운 질문인 것 같은데.”
“자네라면 생각을 안 해보진 않았겠지.”
케니즈는 샤르망은 꿰뚫고 있었다.
어쩌면 전쟁이라는 것에 가장 가까이 닿은 사람들이니 빠르게 알아챘는지도 모른다.
“……그래. 하지만 내가 꺼낼 말은 아니지.”
“하여 내가 물어보는 것이네. 기회가 생긴다면 어떻게 할 텐가? 자네는 어디까지 가능하다고 보나?”
샤르망이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걱정으로 마르기 시작한 입술을 달싹였다.
“륀트벨이 카타드의 일로 피해를 본 상황이긴 하나 지금의 엘리움으로서는 아직 무리라고 생각해. 달걀은 아니더라도 여전히 자갈돌로 바위를 치는 격일지도. 피해가 클 거야.”
“……그렇군.”
“차라리 내가 잠입해 라칸의 목을 베는 것이 위험 부담은 훨씬 줄어들 것 같은데. 아니면 적어도 수뇌부의 몇은 칠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은 있으니 그쪽도 괜찮…… 고.”
샤르망은 말을 하면서도 약간 머뭇거렸다.
물론 지금 한 말이 거짓은 아니었다.
지금이야 그만둬서 그렇지.
잠입, 암살은 제 특기가 아니었던가.
전쟁을 일으키기 전에 샤르망이 늘 하던 것이었다.
문제는 그런 일이 생기면 절대 살아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이겠지.
머뭇거린 것은 목숨이 아깝다기보다는 아직 정리하지 못한 일이 많아서였다.
케니즈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꽤 변한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니었나 보군.”
“……음?”
고개를 드는 게 케니즈의 눈에 불쾌감이 서렸다. 금세 미간이 푹 패었다.
“샤르망 아무리 자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해도 그런 잔악무도한 짓은 시키지 않을 걸세. 여긴 륀트벨이 아니야. 전과 똑같은 짓을 하려거든 차라리 엘리움 밖에서 아무도 모르게 해.”
다소 화가 난 음성으로 케니즈가 단호하게 말했다.
샤르망은 실수를 인정하고 꾸벅였다.
“그런…… 뜻은 아니었어. 그만큼 위험하다는 뜻이었고 엘리움을 위한다는 뜻이었네. 말이 다소 과했다면 사과하지.”
그러자 케니즈가 짧게 혀를 찼다.
“어쨌든 자네 말로는 여전히 가능성이 없다는 뜻이군.”
“피해가 무척 클 거야. 물론 이전과는 확연히 다르게 륀트벨에도 큰 피해를 줄 거라는 장담은 해. 소로 숲 엘프들도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을 테니. 하지만 엘리움이 가까스로 살아남는다고 해도 약해진 엘리움을 노리는 자들이 생길 테지. 륀트벨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만약 타국에서 연합 제의가 온다면 어떻게 생각하나?”
“연합?”
샤르망이 고개를 퍼뜩 들었다.
“그런 제의가 들어온다면 어떻겠냐는 말일세. 엘리움과 소로 숲 그리고 할스레이크의 물건들. 타국과의 연합이면 승산이 있을 것으로 보나?”
그건 생각해 보지 못한 문제다.
지금껏 그렇기도 했고 과거에도 엘리움의 주변국은 늘 몸을 사리느라 전전긍긍했으니까.
연합이 이루어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게 가능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