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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국이 너무 따뜻해서 문제다 (137)화 (136/148)

케니즈를 따라간 곳은 바로 그의 집무실이었다.

제복보다 갑옷을 입는 날이 많고 항상 검을 차고 있어서 정리가 안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집무실은 반듯하게 느껴질 정도로 정갈했다.

케니즈는 집무 책상에 수북하게 올라간 서류들을 대충 치우더니 두꺼운 서류철 하나를 꺼내놓았다.

“그간 몇 차례 수상한 보고가 들어오긴 했다.”

샤르망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케니즈가 꺼내놓은 서류철을 스스로 펼쳤다.

엘리움의 국경 수비에 대해 들어온 보고들이었다.

대게 일주일 간격으로 보고가 들어오는데 따로 체크된 부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부분이 케니즈가 말한 수상한 보고인 듯했다.

샤르망의 눈이 가늘어졌다.

체크된 지역은 두 곳으로 거의 이 두 곳에서만 이상 보고가 이어지고 있었다.

잦은 산적의 습격이라든가 늪지대에 남은 수상한 흔적들.

이상하게도 샤르망의 눈에 익은 지역과 경로. 두 곳 중 한 곳은 글루턴이었다.

샤르망이 씁쓸하게 말했다.

“그대가 예상하고 있는 게 맞을 듯한데.”

“역시 륀트벨발이라는 것인가?”

샤르망이 짧게 끄덕이고 손으로 한 줄 한 줄 짚어 살피며 정독했다.

이쪽은 아힐이 미리 방어 장치를 해두기도 했고 과거와 틀어져 이곳으로는 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심지어 그 지역은 과거 샤르망이 몇 번이나 라칸에게 조언했지만 모두 기각되어 공격하지 않았던 곳이라, 이번에도 이쪽으로는 공격하지 않을 거라 여기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샤르망보다 잉겔로가 훨씬 더 라칸의 믿음을 사고 있는 상태였고 샤르망이 말하는 족족 잉겔로가 반대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샤르망이 완전히 엘리움 통솔권을 가질 때까지 그런 일은 무수히 많았다.

그래서 사실 엘리움을 지키겠다고 마음먹자마자 아힐에게 글루턴을 주시해야 한다고는 했지만 그저 하나의 안전장치일 뿐이었다.

그런데 보고된 륀트벨측의 행보를 보니 샤르망이 올린 조언 족족 기각되었던 전략과 거의 일치했다.

카타드 때도 그랬지만…….

샤르망의 눈매가 한층 더 날카로워졌다.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이 메시지의 뜻을 모를 리 없다.

정말 지금 당장 엘리움 자체를 무너뜨리고 싶었다면, 적어도 샤르망 자신이 이곳에 있는 걸 확인했다면 샤르망이 전혀 모르는 방법으로 움직여야 옳았다.

그런데 이건 보란 듯이 샤르망이 알아채길 바라는 모양새였다.

“…….”

이건 라칸이 자신을 부르는 것이다.

그 말은 샤르망이 엘리움을 지키려고 한다는 것도 그가 인지하고 있다는 뜻과도 같았다.

그리고 여전히 집 나간 버릇없는 개 취급을 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보란 듯이 여유를 부리며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있다. 모든 게 제 손아귀에 있다는 그런 의도가 다분했다.

샤르망의 입에서 실소가 터졌다.

저주, 침략, 이 보고까지.

마치 샤르망이 자신에게 직접 올 거라고 확신하고 있는 모양새다.

‘그렇다면…….’

케니즈가 그런 샤르망을 유심히 주시했다.

샤르망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혹시 정기적으로 내게 이걸 보여줄 수 있어?”

케니즈가 짧게 끄덕였다.

“네가 보냈던 서류대로 침략을 대비하고 있는 건가?”

“……아니, 아직. 적어도 지금은 아니야.”

“무슨 이유에서지?”

“정리할 시간을 주면 직접 네게 보고를 하지.”

“뭐, 그러든지.”

“그리고 매일은 아니어도 나도 훈련에 참석해도 되나……?”

샤르망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슬슬 몸을 풀어놓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직접 자신이 그의 앞에 나타나든, 일을 벌이든 간에.

아무리 샤르망이라도 집 앞에서 몸을 푸는 것만으로 준비를 하기란 부족했다.

페페의 몸으로도 엔조를 뭉개긴 했지만 그건 소꿉장난이나 마찬가지였고.

“훈련에 참석하겠다고?”

“응, 어렵다면 밤이나 새벽에 훈련장이라도 빌려줄 수 있으면 괜찮을 것 같은데. 아니면 네가 대련이라도 좀…… 도와주면 더 좋고.”

대련 상태로는 이만한 상대가 없었다.

제자들이야 아무리 명령해도 목숨 걸고 싸우질 않으니.

그러자 케니즈의 얼굴이 조금 이상하게 일그러졌다.

“나와 대련을 하자는 건가?”

샤르망이 괜히 민망해져 목덜미를 주물렀다.

“싫으면 어쩔 수 없고. 언젠가 날 쓰러뜨리고 싶어 했잖아. 손해 보는 일은 아닐 것 같은데. 오히려 날 죽일 기세로 해주면 더 고마울 것 같거든.”

그러자 케니즈가 황당한 얼굴을 했다. 

“……맘대로.”

그래도 샤르망이 재차 부탁하자 싫어하는 기색을 하면서도 거절은 하지 않았다.

샤르망은 그에게 고맙다고 말하고는 그 길로 왕궁을 나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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