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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국이 너무 따뜻해서 문제다 (135)화 (134/148)

뒤늦게 샤르망이 얼굴을 붉혔다.

자신의 행동이 웃음이 나올 만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 웃지 말지.”

샤르망이 소심하게 협박했다.

아힐은 가볍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놀리려고 웃은 건 아니야. 뭔가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까 내가 처음에 바랐던 모습인 것 같아서.”

“……그래?”

힘주어 주먹을 쥐던 샤르망이 멈칫했다.

“사실 더 좋은 모습이긴 하지만 말이야. 내가 바라던 방향보다 훨씬 더 좋은 쪽으로 이끌었어, 네가.”

“…….”

그렇게 말하면 주먹을 쥔 자신이 미안해지지 않는가.

샤르망은 스르륵 주먹을 풀었다.

“큭, 아이들을 어려워하는 샤르망이라니, 무엇보다 진귀한 모습이긴 해.”

샤르망이 다시 몰래 주먹을 쥐었다.

그사이 갑자기 펼쳐진 불꽃놀이에 빼앗겼던 학생들의 관심이 다시 이쪽으로 향했다.

“너희들 선생님께 미리 들었겠지만 오늘은 너희들이 마법사로서 자질이 있는지 확인하려고 해. 내키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 강제는 아니니 자신에게 마력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차례대로 줄 서도록.”

아힐이 나지막이 말했다.

그러나 마법을 써서 가장 뒤편에 선 학생들에게도 또렷하게 들렸다.

“마법에 친화력이 있거나 재능이 보이는 학생들은 따로 특별반을 만들어 운영할 예정이야. 관심이 있거나 궁금한 게 있으면 뭐든 물어봐도 되니까 그런 학생들은 검사가 끝나고 나서 기다려 주면 돼.”

샤르망의 말까지 끝나자 아이들이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네! 저는 확인해 보고 싶어요!”

“저도 할래요!”

“저도요!”

“제가 먼저 하면 안 되나요?!”

그러자 다들 앞 다투어 먼저 줄을 서겠다며 요란해졌다.

“싸우지 말고. 한 사람씩 차례대로 줄 서야지.”

샤르망이 덧붙이자 아이들은 새 모이를 기다리는 아기 새처럼 고개를 들고 대답했다.

“네!”

“네에!”

“죄송합니다!”

샤르망이 피식 웃으며 아이들이 줄을 설 수 있도록 감독했다.

모인 학생들이 꽤 많다고는 생각했는데, 거의 100명이 넘는 인원이 모여 있었다.

아직 저학년 일부이고 나중에 고학년의 아이들까지 하면 꽤 늦은 시간까지 이곳에서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

대강 학생들이 줄을 섰다고 생각했는데 한쪽에 주춤거리며 줄을 서지 못하고 계속 뒤로 밀려나는 학생이 있었다.

가장 어린 학생인지 몰라도 또래 중에서도 키가 무척 작아 계속 힘에 밀리는 듯했다.

“…….”

샤르망은 알아서 서겠거니 모른 척하려다 계속 다른 학생들에게 밀리자 샤르망이 그쪽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잠깐, 너 방금 새치기했지?”

툭 밀치며 앞서 줄을 서던 남학생한테 샤르망이 나지막이 말했다.

흠칫 놀란 남학생이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닌데요.”

“친구들끼리 서로 양보하고 그래야지. 빼앗으면 어떡해.”

그러자 눈치를 보던 남학생이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 다툼이 일어나지 않아 다행이었다.

“자, 네가 여기 서.”

아까부터 계속 밀려나던 학생이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고마워……. 고맙습니다.”

얼굴에 반만 한 안경을 쓴 여자애는 꾸벅 고개를 숙이고 얼른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마저도 벌써 샤르망이 본 것만 열 번도 넘게 밀린 자리긴 했지만 말이다.

그 뒤로는 다들 분위기를 읽었는지 알아서 서로 양보해 주며 모두 줄을 서는 데 성공했다.

마지막 학생까지 확인한 샤르망이 다시 몸을 틀어 아힐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아힐은 첫 번째 줄을 선 학생에게 방법을 알려주고 있었다.

사실 설명이라 하기도 우스웠다.

미리 사용하기 간편하게 조작을 해놓은 덕분에 마력 증폭기 위해 손만 올리면 되었다.

보통 마력 감정은 어느 정도 마력을 깨우쳐서 스스로 마력을 끌어올린 마법사가 아니라면 다른 마법사의 힘이 필요했다.

마법사의 손을 잡거나 어떤 식으로 접촉을 해 상대 마법사가 가진 마력을 운용하여 온몸에 마력을 집어넣고 그에 대해 반응을 하는지 안 하는지에 따라 재능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1:1로 해야 하며, 검사를 하는 마법사가 집중하지 않으면 대상자의 마력을 찾아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몇 번이고 다시 확인을 해야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마력 증폭기는 그 미약한 마력을 증폭시켜주니 훨씬 시간도 단축되고, 다른 사람의 마력을 받을 때 발생하는 부작용도 줄일 수 있었다.

신의 힘이기에 그렇게 쉽게 이룰 수 있다는 점은 대단했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했다.

드디어 첫 번째 학생의 검사가 시작됐다.

검사를 받는 당사자보다 더욱 긴장한 샤르망은 두 손을 꼭 모은 채, 학생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자, 다음.”

한 시간쯤 지나자 검사를 끝낸 학생들의 수가 서른 명이 되었다.

샤르망은 계속 침착하려고 했지만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느라 연신 손으로 가슴을 누르고 있어야 했다.

엘리움에 마력 친화적인 존재가 많고 잠재적인 인재들이 많다고는 했는데, 벌써 마력증폭기에 반응을 보인 학생이 둘이나 있었다.

그런데 아직 뒤에 70명이 넘는 인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보통이라면 백 명 중에 딱 한 명 나와도 많은 숫자였다.

심지어 이 인원은 저학년의 일부.

나이가 많을수록, 성인에 가까울수록 마력이 있을 확률이 높았다.

샤르망은 이 아카데미에 있는 몇천 명의 학생 중 10명 정도만 나오더라도 엄청 많은 학생에게 재능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왔다.

그런데 벌써 둘이라니…….

거기다 그 둘 모두 특별반에 관심이 있고 들어가고 싶다며 한쪽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샤르망은 심장이 두근대다 못해 쿵쾅거리는 걸 느끼며 다른 학생들의 검사를 지켜보았다.

“여, 여기에 올리면 될까요……?”

자그마한 목소리에 남은 인원을 세던 샤르망이 고개를 돌렸다.

아까 새치기로 계속 줄이 밀리던 여학생이었다.

워낙 여리여리해 보이고 작아 나이가 가장 어릴 줄 알았는데 15살이 된 학생이었다.

샤르망은 물끄러미 그 여학생이 검사하는 모습을 쳐다봤다.

그때였다.

마력증폭기가 작동하자마자 푸른빛이 반짝해야 하는데 거의 백색의 빛이 눈이 부실 정도로 강렬하게 눈을 때렸다.

일순간 그 빛은 사그라들었으나 다들 그 빛에 정신을 못 차렸다.

아힐과 샤르망이 동시에 서로를 쳐다봤다.

“……이 애.”

“……마력의 양이……?”

그리고 둘의 시선이 다시 동시에 여학생에게 향했다.

샤르망이 저도 모르게 여학생의 손을 잡았다.

“잠깐만, 학생.”

“네, 네?”

“잠깐 확인 좀 할게.”

아까와 다르게 여학생의 몸에 마력이 도는 회로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마치 물꼬가 트인 것처럼 심장에서 겉으로 세차게 뻗어나가고 있었다.

샤르망이 눈을 깜박였다.

그리고 잠시 후, 샤르망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갔다.

샤르망은 놀란 여학생을 달래 친구들에게 보내준 뒤 아힐을 쳐다봤다.

“……마력량이 엄청 나. 마치 심장에서 폭포가 쏟아지는 느낌이었어.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좀 전까지는 아무것도 안 느껴졌어. 이제야 마력이 열린 거야.”

아힐의 말에 샤르망이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도 가능해? 개방되자마자 이렇게 힘이 강할 수도 있어?”

“불가능한 건 아니지. 희귀하긴 하지만. 저 정도라면 성장시키면 샤르망 네가 쓰는 힘 정도까지는 쉽게 끌어올릴 수 있을 거야.”

샤르망은 놀란 눈으로 다시 여학생을 찾았다.

아까 줄 설 때와 다르게 친구들 사이에 둘러싸여서 질문을 받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샤르망이 설핏 웃음을 지었다.

“아힐, 저 애는 꼭 특별반에 들어가면 좋겠다.”

“그러게. 겁이 좀 많이 보이긴 하는데.”

그 학생은 다른 두 아이와 다르게 특별반에 들어가겠다고 말도 하지 않고 물러난 상태였다.

스스로에게 놀라 정신이 없는 게 더 큰 탓이었지만.

이윽고 모인 아이들의 검사가 끝이 났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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