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안 해.”
샤르망이 망설임없이 답을 내놓았다.
“잘 생각했어, 스승님. 또 그러면 진짜 지옥까지 쫓아 갈 생각이었으니까.”
라디가 다시금 엄포를 놓았다.
샤르망은 지독한 라디의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늦은 저녁을 먹고 거의 자정이 되어서야 샤르망은 밖으로 나왔다.
제자들은 앞 다투어 제 방, 아니, 집 전체를 내줄 것처럼 굴었지만 샤르망은 어쩐지 새벽의 길을 걷고 싶어졌다.
어딜가도 자신이 위험할 일도 없고 아주 오랜만에 혼자 여유를 가지는 시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샤르망은 그렇게 한참을 걸어 익숙한 골목길까지 다다랐다.
이쯤이면 페페는 무조건 자고 있을 것 같고.
샤르망은 아예 걷는 김에 어둑어둑한 골목길 안까지 들어갔다.
길에 등불만 은은하게 켜진 채 꽃집도 페페의 비밀스러운 앤티크 샵도 불이 꺼져 있었다.
샤르망은 담에 걸터앉아 혼자서 그렇게 한참 시간을 보냈다.
이윽고 이제 정말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에 일어나는데 골목 안으로 누군가 들어오고 있었다.
어슴푸레하게 밝아오기 시작할 무렵이라 커다란 짐을 들고 있는 게 고스란히 보였다.
“미야.”
샤르망이 저도 모르게 이름을 불렀다.
뒤늦게 아차 싶었지만 상대방은 이미 듣고 걸음을 멈췄다.
이윽고 다시 걸음을 내디뎠고 등불 아래 미야의 얼굴이 드러났다.
“…….”
샤르망이 미야에게 한 걸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여행은 잘…… 다녀왔어?”
미야는 대답 대신 가만히 석상처럼 서서 샤르망 노엘 켄더스를 쳐다봤다.
샤르망은 그저 이대로 돌아가야 할까 아니면 더 기다려야 할까 고민을 하느라 바빴다.
괜히 알은체를 해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기분을 상하게 했나 걱정이 되기도 했다.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고 샤르망을 무심히 쳐다보기만 하던 미야가 팩 고개를 돌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 너도 참 끈질기다.”
“아, 미안. 마침 딱 오길래 나도 모르게. 기분을 상하게 하려던 건 아니었…….”
“따라 들어와. 마침 나도 할 말이 있어서 찾아갈 참이었으니까.”
“어?”
미야는 몸을 돌려 굳게 닫힌 꽃가게 문의 자물쇠를 풀었다.
이윽고 문을 열고 짐을 집어넣더니 이내 샤르망에게 고개를 까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