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키, 무슨 일이야? 하라만이 무슨 소식이라도 전했어?”
샤르망은 버키가 안착할 수 있게 팔을 내어 주며 버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매번 휘청이며 버키를 받아내지만 하라만에게 버키와의 일을 들어서 그런지 전보다 훨씬 애틋한 손길이었다.
“구륵.”
“응?”
버키가 자신의 다리 하나를 쭉 내밀었다.
다리 중간에 소식을 전달할 때 묶어주던 쪽지가 보였다.
역시나 소로 숲에서 보낸 것이 분명했다.
“다녀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설마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구륵?”
“응? 아니, 조금 걱정이 되어서 그래. 잠깐만.”
샤르망은 서둘러 버키의 발에 묶인 쪽지를 풀어 살폈다.
내용을 확인한 순간 바짝 긴장했던 마음이 녹아내렸다.
“아…… 다행이다.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구나.”
쪽지에는 오히려 달가운 소식이 담겨 있었다.
연구하던 재료들을 새롭게 융합하는 데 성공했으니 실험을 위해 바쿤과 함께 조만간 다시 들러서 확인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샤르망은 눈에 띄도록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소로 숲에서 그들에게 용서를 받고 돌아오고 나서도 내심 예전 같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모두 샤르망의 착각이고 기우였던 모양이다.
샤르망은 받은 쪽지를 접어 안주머니에 넣으며 다짐했다.
이곳에서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듯 소로 숲도 꼭 지키고 말거라고.
“전해줘서 고마워. 바로 돌아갈래?”
버키가 몸을 푸르르 떨며 고개를 저었다.
하긴 이제 정말 더워져서 바로 가기엔 버키도 힘들 것 같았다.
샤르망은 웃음을 터트리며 근처 숲에서 버키와 꽤 한참 시간을 보냈다.
제자들에게 가야 한다는 것도 새카맣게 잊은 채.
결국 늦은 밤이 되어서야 제자들을 찾아간 샤르망은 제자들에게 온갖 구박을 다 받아야 했다.
“굶어 죽는 줄 알았네.”
“느닷없이 실종이라도 되신 줄 알았습니다.”
“왜, 내일 오지.”
세 명의 말투에는 서운함, 빈정거림, 약간의 화, 걱정 그리고 장난이 뒤섞여 있었다.
“아니, 정말 이쪽으로 오는 길이었다니까? 그런데 소로 숲에서 소식을 보냈더라고. 오늘 유난히 덥기도 하고……오랜만에 버키와 놀아주느라 깜박했어. 먼저 먹지 그랬어.”
샤르망이 미안해하며 말하자 셋이 동시에 눈을 흘겼다.
요즘은 급한 일들을 처리하느라 어째 제자들 눈치가 더욱 보이는 듯했다.
“미안.”
게다가 이번엔 정말 할 말이 없었다.
“어서 포크나 들어. 차라리 밥이나 먹고 오든가 하지. 늦은 시간까지 굶으면서 새랑 놀 일이야?”
라디가 타박해도 샤르망은 얌전히 포크를 들고 기다렸다.
불행 중 다행인 건 기껏 준비한 음식이 식지 않도록 엘타인이 보존 마법을 걸어두어 금세 시원한 술과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잘 차려진 음식들을 집어먹으며 배를 채우는데 술잔을 따르던 엘타인이 물어왔다.
“그런데 언제까지 마탑에서 지낼 참이야?”
샤르망은 페페의 가게에서 나온 뒤 줄곧 마탑에서 지내고 있었다.
아힐이 마련해 준 방도 점차 익숙해지고 있었고 편안했다.
거기다 요즘은 하루에 한두 시간 정도만 깊이 자고 움직이다시피 해서 지낸다고 하기도 뭐했다.
더구나 왕도 이제 본격적으로 이곳에서 지내기로 했으니 지낼 곳을 내어 주겠다고 했지만 샤르망이 한사코 거절했다.
제자들이 지내는 이곳에서 지낼 수도 있었다. 작은 방 하나 만드는 것이야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이렇게 일이 풀리기 전까지는 안전 궤도에 올려놓고 떠날 생각만 했던지라 사실 거처를 깊게 생각해보지 않은 탓도 있었다.
애초에 륀트벨에서도 샤르망에게 집은 그저 잠깐 몸을 누일 곳이었지 그 어디서도 편했던 적은 없었다.
이제는 이곳에 정착하기로 하고 지켜내기로 단단히 마음먹었으니 제대로 된 거처를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글쎄……. 지금 불편한 게 없어서. 안 그래도 지금 고민 중이야.”
“그럼 스승님 여기서 지내자. 아무리 편해도 우리만큼 편하겠어? 이제 걸릴 것도 없잖아. 오히려 여기 이제는 우리 도움이 필요한 거 아니야? 숨을 이유도 없어졌는데 왜 계속 거기에 있어.”
“방금 말했잖아. 고민 중이라니까.”
그리고 사실 아힐에 대해 조금 의심 가는 점이 있어서 확인하려는 것도 있었다.
샤르망에게 저주를 들킨 이후에 아힐은 걱정할 것이 없다고 했지만 샤르망은 못내 그 사실이 찝찝했다.
대마법사이자 마탑의 주인인 그가 못 풀 저주는 없을 거라고, 뭘 해도 자신보다 나을 거라는 생각은 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나중을 위해서 풀지 않고 있다는 건 이상했다.
그리고 사실 그 저주는 샤르망 때문에 일어난 일이니, 자신이 해결해야 옳았다.
하지만 기분 탓인지 샤르망이 중요한 일이 있다고 부를 때가 아니면 돌연 자취를 감추고 사라져 마탑 안에서도 보기가 힘들었다.
오히려 바깥에서 만날 때가 많았다.
그러니 마탑에서 지낸다고 해도 아힐하고 같이 지낸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뭘 확인하고 싶어도 옆에 붙어 있어야 알아보든 말든 하지.
심장을 한 번 더 확인하게 해주면 알 수도 있을 텐데. 언제 기회를 잡지?
“무슨 고민이 필요해? 당장 나와, 거기서. 어? 스승님. 내 방이라도 줄게!”
“아니면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라디에 이어 펠릭까지 물어왔다.
샤르망은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고 술잔을 기울였다.
“조금 확인할 게 있어서 그래. 이건 내가 알아서 할게.”
“스승님 혹시…… 그 녀석한테 마음 있어? 줄곧 같이 다니잖아. 설마…….”
그 말에 샤르망이 미간을 찌푸리며 쳐다봤다. 그러자 라디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그건 너무 가긴 했네. 그럴 리가 없지. 스승님이 그런 쓸데없는 감정에 휘말릴 리가 없지. 그치? 스승님?”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샤르망에게 확답을 받으려는 듯 빤히 쳐다봤다.
샤르망이 대답을 하지 않으면 절대 고개를 돌리지 않을 태세였다.
왜 저런 데에 쓸데없이 집착을 하는 건지.
“그래.”
꿋꿋하게 쳐다보던 라디가 그제야 마음을 놓고 히죽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늦은 저녁을 먹고 난 후에는 바로 가지 않고 넷이 거실에서 한참 앞으로 일의 대해 의논을 했다.
“너흰 당분간 아무런 생각하지 말고 훈련이나 하면서 마음 편히 먹어. 본래도 카타드는 륀트벨과 사이가 안 좋았잖아. 어차피 일어날 일이 조금 일찍 일어난 것뿐이야.”
“그래도 우리가 가서 탐색이라도 하고 오는 게 어떻습니까? 엘타인과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아냐. 라칸은 한 번 움직이면 단발성으로 끝내지 않는다. 또 근처를 헤집으려 하고 있을 거야. 내가 괜찮다고 하면 그때 움직여줘.”
펠릭이 끄덕였다.
“예, 그리 하겠습니다. 노파심에 하는 말이지만 스승님께서도 저희에게 말없이 움직이진 말아주십시오.”
“그렇게 할게.”
그렇게 말하고서 샤르망은 다시 고민에 빠졌다.
앞으로의 일들에 대한 고민이었다.
마법사들을 양성하는 것이야 워낙 오래 걸리는 일이니 이건 전쟁과 별개로 꾸준하게 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당장 전쟁이 일어나도 막아낼 힘이 있다.
지금은 륀트벨을 주시하며 페페의 부탁을 들어주는 일에 집중해야 할 때였다.
하지만 선뜻 속도를 내기가 쉽지 않았다.
페페의 부탁을 들어준다는 것은 페페가 소멸된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정말 괜찮을까.
알렉산드로와 미야, 바쿤 그리고 다른 이들이 모두 슬퍼할 텐데.
샤르망 역시 이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울적해졌다.
페페가 진정 원하는 것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방법을 찾아주는 게 맞지만 마음과 머리가 따로 움직이고 있었다.
꼭 이러는 수밖에 없는 걸까.
이래서 정이라는 게 무서운 것이다.
당장 샤르망도 세 제자 중 한 사람이 갑자기 사라진다고 하면, 영영 못 본다고 하면 마음이 무너질 것이 분명했다.
그나마 단련이 된 자신도 이러한데 다른 이들은 오죽할까.
“무슨 생각해?”
“아.”
엘타인의 목소리에 한참 골똘히 생각하고 있던 샤르망이 고개를 들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표정이 심각한데.”
제자들의 재촉에 샤르망은 이렇게 말했다.
“너네는 절대 사라지지 마.”
그러자 세 사람은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을 내뱉었다.
“우리 버리고 도망갔던 스승님이 대체 뭐라는 거야. 우리가 왜 사라져. 꼭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먼저 사라지던데, 스승님 딴 생각하면 가만 안 둬.”
라디가 팔짱을 끼며 신랄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