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얼굴을 이런 식으로 보게 될 줄은 몰랐소.]
“…….”
생각보다 말투는 온화했지만 샤르망의 입꼬리가 빳빳하게 굳었다.
하라만이 방문을 허락하긴 했지만 주변의 살기가 가득했다.
아까 엘프가 자신을 향해 활을 팽팽하게 당겼을 때처럼.
륀트벨이 꽤 최근까지 소로 숲을 들쑤셔댔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들이 샤르망을 죽이지 않는 것은 오로지 하라만이 막고 있기 때문이었다.
과거에는 이런 시선이 겁에 질려 자신을 견제하느라 나온다고 생각해 오히려 기분 좋게 받아들였었다.
자신에게 함부로 다가오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설령 그게 자신을 골치 아픈 존재로 치부해서이기 때문이어도 말이다.
하라만이 손을 올리자 순식간에 살기가 사라졌다.
[아무래도 들어가서 대화를 나누는 게 좋겠군. 따라오시오.]
샤르망은 뒤 돈 하라만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몇 번이고 걸었던 대회의장으로 가는 복도가 멀게만 느껴졌다.
구둣발 소리를 의지 삼아 따르는데 하라만의 목소리가 들렸다.
[세이아크는 영물 중 영물인 것 같소. 그렇지 않소?]
[예,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들에겐 진실을 보는 눈이 있다고 들었소.]
[맞습니다.]
[세이아크와 그대의 유대감이 거짓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소.]
[…….]
어느새 회의장에 다다랐다.
하라만이 회의장의 문고리를 잡아 열었다.
[나 또한 그대의 껍데기가 아닌 내가 보아 온 진심을 한번 믿어보고자 하오.]
하라만은 여전히 회의장에 들어가지 않은 상태였다.
샤르망은 고개를 들어 하라만과 시선을 마주했다.
어쩐지 좀 전의 냉랭한 눈빛이 아닌 페페의 몸으로 왔을 때의 눈빛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라만 님.]
[그대가 조금이라도 이번 일에 관해 만회할 생각이 있다면 나를 따라 들어오시오. 하지만 각오는 해야 할 것이오. 또 한 번 배신을 한다면 우리는 가차 없이 그대의 목숨을 취할 것이니.]
하라만은 문을 열어 샤르망에게 기회를 주었다.
들어가느냐 마느냐는 오로지 샤르망에게 달려있었다.
그러나 생각할 것도 없었다.
샤르망의 몸은 이미 하라만의 말이 끝나자마자 회의장 안으로 몸을 구겨 넣고 있었으니까.
하라만을 지나쳐 서둘러 들어갈 때, 어쩐지 하라만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간 것을 본 듯했다.
그 후.
하라만과의 대화는 아주 오래 이어졌다.
어쩌다 보니 과거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할스레이크에서의 일까지 고해성사처럼 다 꺼내놓게 되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샤르망과 세이아크와 관계에 대한 하라만의 궁금증까지 풀어주느라 조금 더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조금도 힘들지 않았다.
앞으로의 유대를 위해서라도 오늘은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
[이게 세이아크가 내게 두고 간 깃털들이오.]
하라만이 버키의 이야기를 들으며 수북하게 쌓인 버키의 깃털을 내밀었을 땐 샤르망은 기절하는 줄 알았다.
어딘가 깃털의 숱이 비어 보였던 게 여기서 몽땅 뽑아놓아서 그런 거였다니.
아마 직접 본 하라만과 소로 숲 엘프들 그리고 샤르망 외에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였다.
그 자초지종을 듣고 나자 버키가 너무 안쓰러웠다.
하라만과의 이야기를 끝낸 후 소로 숲을 나가기 전, 버키를 얼마나 쓰다듬었는지 모른다.
하라만은 소로 숲 엘프를 대표해 만에 하나 일어날지 모르는 전쟁에 대해 엘리움과의 연합을 확실하게 못 박았다.
이건 엘리움의 왕도 간절히 바라고 있는 부분이기에 샤르망은 곧장 돌아가자마자 왕께 전달해 서신을 보내겠다고 했다.
하라만과 소로 숲 엘프들에게 감사함을 전한 샤르망은 아주 늦은 밤이 되어서야 소로 숲을 나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