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보단 늦었지만 샤르망이 예상했던 것보다는 훨씬 빠른 등장이었다.
이윽고 아힐에게도 들릴만큼 높다란 소리를 낸 버키가 고속으로 하강하며 샤르망에게 향했다.
샤르망은 눈을 가늘게 뜨며 버키가 다가오는 모습을 살폈다.
“……빨간 공?”
그런데 버키가 입에 뭔가를 물고 있었다.
처음에는 너무 빨개서 피가 묻었나 했는데 그렇다기에는 지나치게 크고 색이 선명했다.
그리고 발에도 뭔가가 쥐여 있었다.
“……륵!”
입에 커다란 걸 물고 와 제대로 소리도 못 내는 버키가 발에 쥐고 있던 것을 샤르망에게 던졌다.
“사과?”
샤르망이 가까스로 잡아낸 것은 아주 먹음직스럽게 잘 익은 사과였다. 양 발에 하나씩 두 개.
창문에 안착한 버키는 부리에 물고 있던 것까지 샤르망에게 내던지듯 전달했다.
“대체 이렇게 크고 잘 익은 사과를 어디서 가져왔어? 소로 숲에서?”
“구륵!”
사과를 세 개나 들고 오느라 평소보다 힘들었던 모양인지 버키는 한참 숨을 골랐다.
창문에 앉아 있는 것조차 힘들었는지 아예 안으로 들어와 바닥에 내려앉았다.
“세이아크를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건 처음이네.”
“아, 그렇지. 얘가 버키야.”
소로 숲 세이아크인 버키가 지내고 있다는 말은 몇 번 했었지만 아힐에게 직접 소개한 적은 없었다.
아힐과 함께 있을 때 버키가 멀리서 날아다니는 건 보였었는데 이렇게 가까이 데려온 건 처음이었다.
“껙! 끼악!”
아힐이 가까이에 가자 버키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바짝 경계를 했다.
“내가 별로인가 봐.”
제스퍼한테는 전혀 이렇지 않았는데.
소로 숲 엘프들에게도 호의적이었는데 버키의 행동에 샤르망도 당황했다.
“힘들어서 그런가 봐. 원래 이렇게까지는 안 하는데. 그런데 사과는 왜 가져온 거지.”
심지어 직접 들고 온 것치고 상처도 하나 없었다.
따로 편지가 묶여 있지도 않은데 왜 이걸 가져왔지.
한참 휴식을 취한 버키가 샤르망에게 뒤뚱뒤뚱 걸어갔다.
“이제 좀 괜찮아?”
“구륵.”
“다행이다. 하라만이 화를 내진 않았어?”
“……구, 륵.”
버키의 고개가 좌우로 움직였다.
화를 낸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하다는 의미처럼 보였다.
불같이 화를 내거나 아예 버키를 받아주지 않았다는 건 아닌 것 같아 샤르망은 안심했다.
하긴 그들은 낯선 이를 지나치게 경계하긴 하지만 자신에게는 여태까지 신사적으로 대해줬었다.
버키가 다리에 힘을 주고 다시 일어섰다.
그러고는 샤르망에게 줬던 사과를 물더니 창문으로 향해 다시 뒤뚱뒤뚱 걸었다.
바닥에다 내려놓더니 다시 뒤뚱뒤뚱 걸어와 남은 두 개의 사과도 똑같이 창가로 가져가 내려놓았다.
“뭘 하는 거야?”
옆에서 보고 있던 아힐이 물었다.
“글쎄…… 뭔가 말하려는 것 같은데.”
평소라면 딱 알아들을 정도로 간단하게 가르쳐주는 버키인데 오늘따라 뭔가 설명이 장황하다.
샤르망도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몇 번이고 버키의 행동을 봐야 했다.
“사과를 옮겨놓으라고?”
“구, 륵.”
“사과를 받아주겠다고?”
“구, 륵!”
“그럼……?”
샤르망이 무릎까지 꿇은 채 집중해서 계속 물어봐도 버키는 계속 정답이 아니라는 제스처만 했다.
고개를 팩 팩 돌려가며 대답을 하던 버키가 날개까지 퍼덕이며 답답해했다.
한 번 더 버키가 사과를 옮기는 걸 보고 나서야 샤르망이 뭔가를 깨달았다.
“사과를 하라고? 가서?”
“구르르르륵!”
구슬이 굴러가는 것처럼 명쾌한 소리를 낸 버키가 환희의 날갯짓을 했다.
옆에서 보던 아힐이 웃음을 터트렸다.
“둘이 정말 친하네. 어떻게 그걸 알아들었지.”
“오래 함께해서 그래.”
뒤늦게 샤르망이 머쓱해하며 말했다.
이 말을 전달하려고 사과를 세 개나 물고 가져온 게 기특해서 샤르망은 팔을 벌겨 버키를 껴안았다.
버키는 아힐을 휙 쳐다보며 코웃음 치듯 콧김을 뿜더니 이내 샤르망에게 얌전히 안겼다.
“버키, 그런데 이거 왜 그래?”
버키를 꼭 껴안아 주던 샤르망이 이상함을 느끼고 버키를 떼어냈다.
오른쪽 날개 뒤쪽이 어딘가 휑했다.
마치 깃털을 마구잡이로 뽑은 것처럼.
버키가 피했지만 다리를 잡고 좀 더 자세히 살피니 진짜로 깃털이 뽑혀나간 흔적이 있었다.
“오다가 공격이라도 당했어?”
그럴 리가 없는데.
세이아크는 일반 새들이 나는 것처럼 나는 게 아니었다.
세이아크는 그들이 가진 힘을 이용해 마치 자유자재로 공간 이동을 하듯 날아다니는 영물이었다.
그래서 소로 숲에도 그렇게 빠른 속도로 다닐 수 있었던 건데.
이동 중에 또 다른 세이아크를 마주친 게 아닌 이상 버키가 공격을 당할 일은 없었다.
“구르륵.”
버키는 별일 아니라는 투로 날개를 툭툭 정리했다.
샤르망이 몇 번이나 물어봐도 모르쇠로 일관하기까지 했다.
대체 소로 숲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아무래도 조만간 소로 숲에 가야겠어. 사과도 사과인데, 버키 깃털을 죄 뜯어놨네.”
“딱 봐도 스스로 한 것 같은데.”
그런 둘을 지켜보던 아힐이 말했다.
버키가 팩 아힐을 째려봤다.
“들키기 싫었나 봐. 네가 세이아크의 말을 어떻게 알아듣나 했는데 사람처럼 표정을 지을 줄 아네.”
“구웨엑.”
“버키, 왜 자꾸 그런 소리를 내……?”
평소에 버키가 전혀 내지 않던 소리였다.
불쾌해도 날개를 퍼덕여 내쫓거나 세이아크 특유의 기세를 뿜어내 도망치게 하는 게 세이아크의 특성인데, 지금 버키가 하는 건 마치 행패를 부리는 것 같았다.
샤르망이 별 해괴한 소리를 듣는다는 얼굴로 버키를 달랬다.
버키는 그런 샤르망의 타박에도 팩 고개를 돌려 뻔뻔하게 부리를 치켜세울 뿐이었다.
이후로도 버키는 아힐이 자신에게 말을 걸거나 샤르망에게 친근하게 굴려고 할 때마다 자꾸만 토할 것처럼 ‘구웩, 꽥꽥. 궤에엑’ 하며 이상한 소리를 냈다.
누가 봐도 자신을 탐탁지 않아 하는 버키를 보며 아힐이 헛웃음을 흘렸다.
아힐도 세이아크를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저렇게 표정이 풍부하고 사람과 교감을 하는 세이아크는 아힐도 처음이었다.
샤르망에게 들었던 것보다 더 인간 같아서 놀라울 지경이었다.
자신을 경계하는 것이 더 웃기기도 하고.
샤르망과 버키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아힐이 슬쩍 시계를 봤다.
새벽에 샤르망을 보러 왔는데 벌써 가게에 갈 시간이 되었다.
“이제 슬슬 가야겠어, 샤르망.”
“벌써? 아, 시간이 이렇게 됐구나. 얼른 가자.”
샤르망이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버키가 방에서 편히 쉴 수 있도록 먹을 것과 쿠션을 정리해준 뒤 아힐과 함께 페페의 가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