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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국이 너무 따뜻해서 문제다 (119)화 (118/148)

순간 아힐이 크게 당황하며 뒤로 물러섰다.

늘 온화한 얼굴에 이따금 나른하고 또 이따금 짓궂은 미소를 짓던 아힐이 아니라 그야말로 너무 놀라 당황한 모습이었다.

“왜?”

“잠깐.”

샤르망이 다리를 내려 일어서며 아힐에게 그만큼 다시 다가갔다.

아힐은 샤르망의 팔을 막듯 잡으며 샤르망을 저지했다.

“갑자기 왜 그래?”

“이 기운.”

결국 서로 손을 막고 치우고를 반복하다 창문의 반대편 문까지 다다랐다.

“무슨 기운?”

그 말과 동시에 샤르망이 아주 미세하게 느꼈던 기운이 싹 사라졌다.

페페의 몸으로 있을 땐 전혀 느끼지 못했을 만큼이나 티끌 같은 기운이었다.

“잠깐만 있어 봐.”

“샤르망, 잠깐만 말부터……!”

당황한 아힐의 등이 벽에 닿고 샤르망이 고집스럽게 아힐의 왼쪽 가슴께에 손을 다시 얹었다.

샤르망이 고개를 들어 아힐을 쳐다봤다.

“기운을 지웠어?”

“음?”

“방금.”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는데. 갑자기 이러는 이유를 말해주면 안 될까? 당황스러운데.”

아힐이 부드럽게 웃으며 샤르망을 회유하듯 말했다.

샤르망의 표정이 아까와는 전혀 다르게 굳었다.

“이 느낌 아는데.”

“샤르망?”

“왜 아힐 너한테서 주술의 기운이 느껴지지?”

그 말에 아힐이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 이내 다시 그가 웃었다.

“그야 마법사니까 그런 거지.”

“나는 당신의 마력이 어떤 느낌인지 알아. 이건 주술이야. 언제부터였어?”

샤르망이 날카롭게 물었다.

“…….”

이건 누가 봐도 좋지 않은 주술이다.

숨을 쉬는 것처럼 자유자재로 마법을 다루는 그가 이런 기운을 몸에 주렁주렁 달고 다닐 리가 없었다.

그런데 그가 어지간해서는 못 풀 마법도, 주술도 거의 없을 텐데.

그런 그가 왜 이런 기운을 없애지 않고 달고 다니는 건지 궁금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그가 재빠르게 없애 제대로 확인은 못 했지만 그 잠깐에도 마치 거미줄이 지저분하게 들러붙는 불쾌한 기운을 느꼈다.

아힐이 대답을 하지 않자 샤르망이 좀 더 다급한 어투로 물었다.

“주술은 있다 치고. 그런데 왜 주술을 계속 달고 있어? 당신이라면 웬만한 건 풀 수 있을 거잖아.”

그가 다른 곳에서 원한을 사지 않은 한 주술의 근원지는 륀트벨일 가능성이 컸다.

그는 예전부터 라칸에게 눈엣가시였으니까.

더군다나 심장에서 느껴지는 거라면…….

마법과 달리 주술은 매개체가 어떤 것이냐에 따라 그 위력이 정해진다.

그걸 더 단단히, 까다롭게 만드는 것이 시전자의 능력이긴 하지만.

그가 일부러 주술을 해제할 생각이 없는 게 아니라면 꽤 까다로운 거라는 뜻이었다.

사람의 목숨을 바쳐 펼친 주술이거나, 아니면 아힐 말고도 한 명 이상의 다른 사람이 연결되어 있어 함께 충격을 받을 수 있는 지저분한 주술이거나.

전자는 몹시 질이 안 좋은 저주고 후자는 방법에 따라서 다르지만 이마저도 유쾌한 부분은 아니었다.

전자를 질이 안 좋은 저주라고 말한 이유는 시전 방법도 문제가 있지만, 걸린 주술을 해제할 때 시전할 때와 똑같은 방법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즉 사람의 목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마치 제물을 바치듯이.

그래도 후자는 연결된 상대방을 찾으면 해결할 수 있는데…….

아힐이 대답을 해주지 않으니 샤르망은 스스로 결론을 내리는 수밖에 없었다.

“안 푸는 거야, 못 푸는 거야? 말 안 해주면 내가 찾을게.”

샤르망이 재촉하자 아힐이 여전히 제 가슴께에 올리고 있는 샤르망의 손을 거의 덮듯이 잡았다.

샤르망은 잠시 움찔했으나 다시 고집스럽게 그를 쳐다봤다.

만약 그가 곤란한 일을 겪고 있는 거라면 자신이 나서야 마땅했다.

그를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고 약속까지 했는데 왜 아힐 더프는 자신을 이토록 도와주면서도 막상 반대로 그가 곤란하면 말해주지 않는 걸까?

생각을 하는 건지 아힐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럴수록 샤르망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륀트벨이라 가정하면…….

주술, 주술…….

샤먼이겠구나.

그들의 주술은 샤르망도 좀 안다.

과거 직접 명령을 내린 적도 있고 주술을 푸는 방법을 배우려고 찾아다닌 적도 있었다.

그러니까 그가 말을 해주면 샤르망이 좀 더 쉽게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다.

한참만에야 아힐의 입이 열렸다.

“안 푸는 거야.”

짧은 말 한 마디인데도 샤르망의 긴장이 느슨해졌다.

“정말로?”

아힐이 끄덕였다.

샤르망은 그 말의 진의를 확인하기 위해 아힐의 눈 속을 들여다보듯 봤다.

아힐이 짧게 웃음을 흘렸다.

“정말이야.”

“샤먼의 주술이 맞지?”

“……그래.”

그래도 미심쩍은 샤르망은 더 많은 진실을 요구했다.

기운을 싹 지웠으니 그의 말이 얼마나 진실인지 확인이 불가능했다.

본래 몸으로 돌아왔다고 한들 샤르망이 가진 힘으로는 그가 작정하고 막아놓은 걸 풀 수도 없었다.

“그럼 보여줘.”

그러니 그가 완전히 기운을 열어주어야 샤르망이 확인할 수 있다.

할 수 있다면 제가 해결해 주고 싶었다.

아힐은 곤란하다는 듯 눈썹을 찌푸리다 하는 수 없이 감춰두었던 저주의 기운을 풀었다.

동시에 다소 안심하는 것 같던 샤르망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샤르망의 손이 아래로 힘없이 떨어졌다.

“이거…… 일부러 안 푼 거 맞아?”

샤르망은 그의 말을 다시 의심하며 아힐의 심장에 걸린 주술을 천천히 살폈다.

‘완벽한 저주야.’

그리고 속으로 침음했다.

대체 자신이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 있던 사이 무슨 일을 겪은 걸까.

이건 샤르망이 아는 주술이었다.

분명히 라칸이 시킨 게 맞았다.

이런 질 나쁘고 불쾌한 일을 저지를 사람은 그밖에 없다.

더군다나 한 사람의 목숨이 걸려 있는 저주가 아니었다.

다만 의문이 있었다.

“뭔가 다른데…….”

샤르망이 아주 잘 아는 저주인데, 묘하게 틀어져 있었다.

마치 저주의 방향을 바꾼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도 느껴져?”

샤르망의 생각을 알아챈 것처럼 아힐이 물었다.

“무슨 뜻이야? 아무렇지 않아? 왜 그렇게 태평하게 있던 거야? 이거 심각한 거잖아.”

그런데 위기감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그때 아힐이 그렇게 피하던 샤르망의 손을 잡아 제 가슴께에 올렸다.

“다시 확인해 봐.”

이윽고 샤르망은 놀란 눈으로 아힐을 쳐다봤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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