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놀라 안절부절못하는 엘프들 사이에서도 하라만은 여전히 고요했다. 편지도 여전히 들고 있는 상태였다.
버키가 다 합쳐 다섯 개의 깃털을 하라만 앞에 떨어뜨렸다. 깃털이 하도 커서 그것만으로도 수북하게 쌓였다.
이윽고 하라만이 반응했다.
“소중히 아끼는 거군요.”
“……구륵.”
“우리를 속였소, 그자는.”
그 말에 버키가 다시 깃털을 뽑을 준비를 했다.
하지만 하라만이 그러지 말라는 듯 다른 한 손으로 버키를 막았다.
하라만도 직접 해본 적은 없지만 세이아크가 듣고자 하면 말을 알아듣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들이 알아듣고 유추하는 건 언어가 아니라 사람의 감정과 생각이라 그 어떤 언어라도 상관이 없었다.
그건 알고 있었는데.
사람을 위해 자신의 몸의 일부를 내주는 세이아크는 처음 보았다.
샤르망 페페, 아니, 실은 샤르망 노엘 켄더스인 그자의 편지를 받은 하라만은 선택을 주저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이뤄온 일이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다시 전처럼 소로 숲을 닫을까 하는 생각.
아니면 속았다는 배신과 분노에 대한 보상까지 요구할까.
소로 숲을 다시 닫아 이곳을 지키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건 알고 있다.
그럼에도 주저하는 것은 그자에게 이미 마음을 열고 소로 숲 엘프들의 친구로 받아들였었다는 점.
그리고 그자가 누구였든 간에 자신의 존재를 숨긴 것 외에 거짓은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거기다 지금 이 세이아크가 하는 행동은 누군가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었다.
다른 새들과 다를 바 없는 존재였다면 훈련을 시켰다고 여겼을 수도 있지만, 글쎄.
세이아크의 마음을 활짝 연 것도 모자라 그자를 위해 이렇게 애쓰는 모습까지 만들어냈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걸리는 것은.
왜 하필 륀트벨인인가.
‘왜 하필…….’
거기다 편지에 적힌 대로 륀트벨의 황제가 대륙 제패를 꿈꾸고 있는 사실이라면 단순히 그자를 내치고 끝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었다.
지금이야 들쑤시지 않지만 언제고 륀트벨이 쳐들어와 자신들의 기술을 내놓으라 할지 모른다.
실제로도 륀트벨이 이곳을 주시하고 있다는 보고가 수시로 들어오고 있고.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면 피를 보지 않고서는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우연히 때가 맞은 것인지 아니면 일부러 때를 맞춘 것인지 예견을 한 것처럼 편지가 도착함과 동시에 룬힐에서도 연락을 보내왔다.
샤르망 노엘 켄더스가 보낸 편지가 사과와 호소에 가까웠다면 룬힐에서 보내온 연락은 약간의 압박으로도 느껴질 수 있는 거래 그 자체였다.
엘리움, 즉 샤르망과의 교류를 계속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었는데,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인다면 탑의 연구로 만들어낸 수많은 마도구과 마정석을 제공받을 수 있다는 어마어마한 이점이 함께였다.
다른 건 몰라도 소로 숲에 대해서만큼은 냉소적이고 이성적인 편이었던 하라만조차 쉽게 거절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혜택이었다.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또 다른 자, 룬힐의 주인이자 희대의 마법사 아힐 더프.
과연 그의 선택은 현명한 선택일까?
단순한 생각으로 내민 제안은 아니었을 것이다.
룬힐의 주인인 그는 자신들보다 더 아득한, 더 광활한 힘의 세계를 다루는 자니.
그 후로도 시간이 좀 더 흘렀다.
그 자리에 멈춰 있던 몇 시간의 고뇌 끝에 하라만이 버키의 깃털을 집어 들었다.
하라만이 다시 반응을 할 때까지 몇 번이고 더 깃털을 뽑을 생각으로 똑같이 몇 시간 동안 지키고 있던 버키가 기다렸다는 듯 하라만의 코앞까지 머리를 들이밀었다.
“샤르망 노엘 켄더스가 직접 이곳으로 와 사과를 하라고 전달해 주겠소?”
하라만이 편지를 적는 대신 버키에게 직접 말했다.
하라만의 입에서 ‘샤르망 노엘 켄더스’라는 이름이 나오자마자 장내가 술렁거렸지만 하라만은 동요하지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그게 앞으로 거래를 계속 할지 말지에 대한 조건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