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적국이 너무 따뜻해서 문제다 (103)화 (102/148)

7장. 엇나감.

미야는 그저 샤르망을 쳐다보고 있을 뿐인데, 샤르망은 마치 목에 칼끝이 겨눠진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그런데 어떻게?

근처에 왔으면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을 거다.

마법으로 완벽하게 소음을 빠져나가지 않게 해주는 방법을 써서 더 철저하게 할 수는 있었었다.

하지만 너무 조용하면 그것도 샤르망 페페가 아니었다.

불쑥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의심을 사지 않으려고 일부러 그러지 않았다.

오늘 같은 날이 아니면 늘 문을 열어놓기 때문에 소리가 안 들리면 더욱 수상하니까.

일부러 그릇이나 물건 소리는 크게 내고 목소리는 작게 했던 이유가 있었다.

그게 완벽하지 않다는 건 샤르망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미야의 기척을 들을 수 없지는 않았는데.

세 명이나 있었는데 모를 리가 없었다.

“기억이 없다 없다 해도 이상하긴 했어.”

“…….”

샤르망이 침을 삼켰다.

“알렉산드로 님 말대로 다 뜻이 있으니 이해하려고 했지. 영 수상하더라고.”

“……내가 다.”

“누구냐니까? 누군데 기억을 잃었다고 거짓말을 해?”

그녀가 하는 말은 이번 한 번에 알게 된 게 아닌 것 같았다.

상처 하나 낼 수는 없지만 날카로운 미야의 칼끝 같은 눈빛은 여전히 샤르망을 향하고 있었다.

“미야, 그게 그러니까.”

“내 이름 부르지 마. 네 입으로 직접 말해. 너 누구니?”

바보처럼 말문이 막혔다.

사실대로 말해야 한다는 걸 아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간 이곳 사람들과 살갑게 지내던 순간이 모두 거짓이 된 셈이니 말이다.

“나는.”

또 한 번 말문이 턱 막혔지만 쥐어짜내듯 말했다.

“……샤르망 노엘 켄더스야. 미안해. 내가 다 설명할게.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

“지금껏 우릴 기만했구나.”

미야 벨킨슨의 말에 샤르망이 또 한 번 할 말을 잃었다.

샤르망을 쳐다보는 미야의 눈에는 걱정과 친밀감이라곤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완벽한 타인, 적을 보는 느낌.

때가 곧 올 거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알리고 싶진 않았다.

이들도 케니즈만큼이나 샤르망 노엘 켄더스를 증오하고 있으니.

‘샤르망 노엘 켄더스, 그 악마 말이야. 그자가 실종된 이후 륀트벨 주변 국가들이 아주 축제를 벌이고 있다더군. 카이도르국도 륀트벨로 흡수 된다 아니다 말이 많더니 조용해졌어.’

‘그걸 말이라고 해? 륀트벨은 무법자들의 소굴이나 마찬가지라고. 이 세상에 존재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기도 하지. 자네도 그 괴물 때문에 꽤 골치를 앓았잖아?’

‘역시 정복 전쟁이니 뭐니 하는 소문은 다 헛소문이었나 봐. 마음 같아서는 평생 요즘 같았으면 좋겠군. 신도 무심하셨지, 그런 걸 만들어 세상에 내놓으시다니.’

‘그래도 편히 죽진 말아야 할 텐데 말이야. 그렇지?’

케니즈의 신랄한 평가가 다시 귓가에 울리는 것 같았다.

이들과 계속 잘 지낼 수 있을 줄 알았던, 자신도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사람들과 어울려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여겼던 착각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렇지, 자신은 샤르망 노엘 켄더스지 샤르망 페페가 아니었다.

“…….”

“우린 너를 진심으로 걱정했는데. 딴 사람도 아니고 하필이면.”

그 누구보다 샤르망을 걱정하고 수시로 챙겼던 그녀라는 걸 샤르망이 더 잘 알고 있었다.

매일 아침 알론소가 식사를 챙기고 가는데도 먹었는지 꼭 확인을 하고, 조금만 멍하니 있어도 아픈 건 아닌지 살뜰히 살피곤 했었다.

항상 가장 예쁘고 싱싱한 꽃을 테이블 가운데 화병에 꽂아주는 것도 미야 벨킨슨이었다.

그녀가 느낄 배신감이 말도 못 하리라는 걸 샤르망도 알기에 어떻게 말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자신이 라칸에게 느꼈던 배신감보다 이들이 자신에게 느끼는 배신감이 더 클 것 같아서 할 말이 떠오르질 않았다.

샤르망이 할 말을 찾지 못하고 허공에 손을 둔 채 가만히 있자 미야 벨킨슨이 ‘하’ 하고 헛웃음을 내뱉었다.

“샤르망 노엘 켄더스.”

미야의 입에서 샤르망이 뱉어낸 이름이 흘러나왔다.

샤르망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게 너라고.”

“…….”

‘그렇단 말이지’라고 미야가 중얼거렸다.

샤르망이 입을 달싹이다 말을 하려는데 미야가 좀 더 빨랐다.

“어떻게, 무슨 짓을 벌인 건지 모르겠지만 당장 페페 몸에서 나가. 그리고 여길 떠나.”

“…….”

“너 같은 괴물이 머물 자리는 이곳에 단 하나도 없으니까.”

그러곤 망설임 없이 뒤를 돌아 자신의 꽃가게로 가버렸다.

‘여길 떠나.’

예상했던 말이 돌아왔는데 정말 당장 내쫓겨진 기분이었다.

멍하니 서 있던 샤르망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미야 벨킨슨의 가게로 향했다.

해봤자 변명이겠지만 사과라도 하고 싶었다.

소로 숲에서 돌아와 이야기를 하느라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는데 이미 거의 밤이 되어 있었다.

여길 오늘 당장 떠나더라도 솔직하게 말하자.

그렇게 마음먹고 미야의 꽃가게 정문에 섰다.

먼저 자리를 떠나 돌아갔던 미야가 들어가면서 문을 잠갔는지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샤르망은 반이 유리로 된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저기, 내가 다 말할 테니까 문 좀 열어줘.”

유리와 안에 빛 덕분에 미야의 인영이 약하게 보였지만 미야는 요지부동이었다.

샤르망은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연신 그녀에게 문을 열어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안에서는 반응이 없었다.

투둑, 투두둑. 툭, 툭.

설상가상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소나기인지 고작 한두 방을 내리더니 갑자기 물을 쏟아버리는 것처럼 굵은 빗줄기가 사납게 내리기 시작했다.

페페의 은하늘색 머리카락이 순식간에 미역처럼 축축 가라앉았다.

“아…….”

급작스럽게 내린 비에 더 문을 열어달라고 하지도 못하고 뒤로 물러났다.

비가 그친 뒤에 다시 와 미야 벨킨슨에게 제대로 사과하고 사실대로 말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몸을 돌리는데 안에서 달칵하고 문고리를 돌리는 소리가 났다.

“해봐, 어디. 그 변명.”

미야가 팔짱을 낀 채 샤르망을 보고 있었다.

샤르망이 어색하게 끄덕였다.

샤르망은 쭈뼛쭈뼛 미야 벨킨슨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어디선가 수건을 꺼내 거칠게 테이블에 탁 내려놓더니 그대로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샤르망은 조심스럽게 수건을 들어 그새 푹 젖은 머리카락을 꾹꾹 눌렀다.

머리가 어찌나 길고 숱도 많은지 수건이 축축하게 젖을 때까지 짜내고 나서야 머리카락에서 물이 떨어지지 않았다.

샤르망은 미야 앞에서 심호흡을 하고 입을 열었다.

다 말하자, 다 말해야 한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미야에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숨을 쉬고, 멈추고.

말을 했다가 멈추고.

그렇게 서너 시간이 넘게 훌쩍 지나고 나서야 겨우 미야 벨킨슨에게 모든 말을 꺼낼 수 있었다.

이미 시계 침은 자정을 지나 있었다.

그동안 미야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샤르망의 말만 들었다.

놀란 기색도 화를 내는 기색도 없이 무표정 그대로.

“그래, 잘 들었어.”

한참 후에야 미야가 대답했다.

“그래서 페페는 마탑에 있다는 거지?”

샤르망이 미야를 쳐다봤다.

“맞아.”

“그럼 바로 몸을 돌려받을 수 있겠네.”

샤르망이 젖은 수건을 만지작거리며 끄덕였다.

미야 벨킨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대답은 변하지 않았어. 페페의 몸을 돌려주고 여길 떠나. 조용히 떠나면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을 테니까.”

“…….”

“너희들 모두 못 믿을 족속들이지만 지금까지 해온 걸 생각해서 며칠 시간을 줄게. 그게 내 대답이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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