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적국이 너무 따뜻해서 문제다 (101)화 (100/148)

“너도 가겠다고?”

“응.”

단호한 대답을 하면서도 시선은 왜 아힐을 향해 있는지.

샤르망이 눈치를 보듯 아힐과 라디를 번갈아 쳐다봤다.

라디는 꼭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을 땐 저렇게 쓸데없이 고집을 부리곤 했다.

눈에 날이 선 것을 보면 뭔가 오해를 한 것 같은데.

“다른 뜻은 아니고, 우릴 감시하는 게 스승…… 네 일이잖아. 그러니까 직접 따라다니겠다고.”

라디는 자신이 말해놓고 너무 친근하게 대했다 싶었는지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뭔가를 더 말하고 싶은지 답답해하는 모습이 보였다.

아힐이야 자신들의 관계를 속속들이 다 알고 있다고 해도 라디는 아니었다.

제자들에게 다른 사람들을 소개할 때, 아힐에 대해서는 따로 도움을 준 고마운 사람이라고 넌지시 이야기를 한 적은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했다.

자세히 설명하려면 과거 이야기까지 모조리 꺼내야 해서, 조만간 자리를 마련해야겠다고만 생각하고 미루고 있었던 것이다.

다는 말해주지 못해도 그가 완전히 우리 편이라는 걸 말해줄 수는 있었는데.

샤르망의 실수였다.

그렇다고 짧게 할 수도 없는 이야기인데.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아힐이 먼저 선수를 쳤다.

“말 편히 해. 샤르망이 네 스승이라는 거 알고 있거든.”

아힐의 말에 라디의 눈이 튀어나오려고 했다.

“그걸 어떻게 아는데?”

라디는 오히려 더욱 적대감에 차 금방이라도 샤르망을 보호하기 위해 나설 것처럼 굴었다.

아힐이 가볍게 웃었다.

“탑의 주인이 그거 하나 모를까 봐. 적이 아니니 그렇게 날이 설 것 없어. 서로 뜻이 같아서 협조하는 중이니까. 하지만 남들이 있을 땐 좀 더 조심하는 게 좋겠어.”

아힐은 마치 샤르망의 생각을 읽은 듯이 착실하게 샤르망을 도왔다.

“맞아. 아힐은 다 알고 있으니까 편하게 말해도 돼.”

샤르망마저 그렇게 말하자 주춤한 라디가 둘을 번갈아 쳐다봤다.

자신의 실수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듯했다.

머리를 긁적인 라디가 중얼거렸다.

“뭐야, 마법사들은 그것도 다 알 수 있어? 그런데 왜 엘타인은.”

그게 안 되지.

그러면서 털썩 다시 의자에 앉았다.

샤르망의 고민이 마탑주라는 단어 하나로 모조리 정리가 됐다.

조금 황당하기도 했으나 아직은 때가 아니므로 차라리 이게 낫다는 생각을 했다.

“미리 제대로 말해주지 못해서 미안. 아힐은 우리 일을 다 알고 있어. 너희를 데려오는 것도 다 아힐이 도와준 거거든. 나중에 다시 한 번 자세히 말해줄게. 그리고 굳이 고생할 필요 없어. 기사들 가르치는 것만으로도 꽤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잖아.”

라디가 가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가뜩이나 외부인을 거부하는 그들인데 매번 낯선 사람을 우르르 데려갈 수는 없었다.

거기다 라디는 펠릭, 엘타인과 마찬가지로 이곳에 적응해 정착하는 일이 우선이었다.

“시간이 뭐 얼마나 걸린다고. 전엔 넷이 항상 함께 다녔잖아.”

“뭐?”

샤르망이 황당해서 헛웃음을 지었다.

어린애도 아니고.

“그리고 스승님 옆에 수상한 놈들이 붙을지 어떻게 알아.”

그러면서 또 왜 아힐을 쳐다보는데.

방금 아힐이 우리 편이라고 말해줬는데, 편하게 하라는 말만 기억하고 고마운 사람이라는 건 또 잊어버린 모양이다.

아힐에게 미안해 어색하게 쳐다보는데 아힐은 이 상황이 재밌는지 웃기만 하고 있었다.

“그래, 네 말대로라면 펠릭하고 엘타인은 대체 어딜 그렇게 바쁘게 다니길래 너만 두고 다녀?”

샤르망은 뜨거운 물을 조르륵 따른 찻잔을 아힐과 라디에게 돌리며 물었다.

“어?”

라디가 도리어 당황하는 얼굴을 했다.

“저번에도 혼자 오더니 요즘 계속 그러고 있잖아.”

“그야 스승님 귀찮을까 봐 돌아가면서 오기로 했다니까.”

“말이 앞뒤가 안 맞잖아. 그리고 너만 왔지.”

데구루루, 라디의 시선이 샤르망을 살짝 피해갔다.

“내가 맨날 내기에서 이기는 중이거든.”

“그래?”

“그…… 렇다니까?”

샤르망이 일순간 얼굴을 굳혔다.

안 그래도 요즘 이상하긴 했는데.

‘지금은 아힐이 있으니까.’

샤르망은 작게 한숨을 쉬며 자리에 앉았다.

“아힐, 아까 하라만하고 따로 이야기를 했거든.”

시종일관 재밌다는 듯 흥미롭게 라디를 보고 있던 아힐이 고개를 돌렸다.

“아, 응. 말해.”

“당분간은 할스레이크에서 연락이 오지 않을 것 같아.”

“왜? 뭐가 잘못됐나?”

“음, 화가 좀 많이 난 것 같거든.”

샤르망은 아힐이 사라진 사이 하라만과의 있었던 일을 그에게도 모두 말해줬다.

빠짐없이 듣던 아힐의 표정이 점점 편안해졌다.

“그래서 당분간은 화가 가라앉길 기다려야겠다?”

“응. 하지만 반드시 연락이 올 거야. 다만…… 늦으면 몇 달 이후가 될 수도 있어. 알다시피 .”

“어차피 쉽게 풀릴 거라고 생각 안 했으니까 괜찮아. 네가 아니었으면 여전히 방법을 찾지 못하고 오리무중이었겠지. 기다리지 뭐.”

아힐이 그렇게 말해주니 훨씬 마음이 편해졌다.

사실 할스레이크의 마력증폭기를 얻는 데 도움을 주겠다고 큰소리쳤는데 기다리자고 말하기가 미안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분간은 바쿤만 소로 숲에 가도 될 것 같긴 해. 아, 그리고…….”

“음?”

“내가 페페와 몸을 바꿔서라도 당분간 륀트벨 상황을 직접 알아보고 와야겠어. 아무래도 그쪽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고, 지금밖에 시간이 없을 것 같…….”

“그건 안 돼.”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아힐과 라디가 동시에 소리치듯 샤르망의 말을 막았다.

찻잔을 양손으로 쥔 채 제법 심각하게 말하던 샤르망이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대략적인 상황만 파악하겠다는 소리였어. 당장 그들에게 뭔가를 하겠다는 게 아니라.”

“그게 위험한 일이야.”

“절대 안 돼. 지금도 가뜩이나 스승님 찾는 데 미친X들처럼 눈에 불을 켜고 있는데 가면…….”

라디가 말을 하다 아차 싶었는지 입을 꾹 닫았다.

샤르망의 눈썹이 꿈틀했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어?”

“그걸 어떻게 알아. 너희한테 이후 이야기를 해준 적이 없는데. 그전에도 바로 잡혀 와서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지 않았어?”

“아니, 그러니까.”

“라디 피제르타.”

샤르망의 목소리가 바닥으로 깔렸다.

라디는 얼음장처럼 굳었고 샤르망은 심각한 얼굴로 라디를 쳐다봤다.

느긋하게 관전하고 있던 아힐이 남은 차를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내가 자리를 비켜줘야겠는데.”

“아힐.”

샤르망이 미안함에 고개를 들어 쳐다보자 아힐이 싱긋 웃었다.

“괜찮아. 방금 한 이야기는 실행하기 전에 좀 더 생각하는 걸로 하자. 네가 위험한 일을 자처할 필요는 없어. 해도 내가 할 테니까. 그럼 얘기 나눠. 우리 얘기는 나중에 해도 되니까.”

아힐이 부드럽게 말하며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아힐이 가려는데 라디가 어정쩡하게 일어났다.

“스승님, 그럼 나도 가는 게 낫겠…….”

“넌 앉아.”

샤르망이 명령하듯 말하자 라디의 얼굴에 낭패감이 서렸다.

아힐이 돌아가고 샤르망은 팔짱을 낀 채 라디가 말을 꺼내길 기다렸다.

“…….”

“…….”

라디는 입에 꿀이라도 먹은 것처럼 쉽사리 입을 열지 않고 대답을 피했다.

“요즘 뭐 하길래 바빠 보여?”

“응?”

라디가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펠릭하고 엘타인. 뭘 하는데 요즘 얼굴을 잘 안 보이냐고. 훈련은 매일 하는 것도 아니고 오전이면 끝나지 않아?”

“그야 스승님, 아니, 샤르망이 귀찮을까 봐 그러지. 돌아가면서 오기로 했다니까.”

“똑바로 말하는 게 좋을 거야. 지금 엘타인하고 펠릭 어디 있어.”

“어디 있긴 어디 있어.”

“오늘은 훈련 날이 아니니까 집에 있겠지?”

“어, 그렇지.”

샤르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가자.”

라디가 기겁을 했다.

“가긴 어디를 간다고 그래?”

“집에 있다며. 어떻게 알았는지 대화나 해보자고.”

그러자 라디가 거칠게 머리를 긁었다.

안 그래도 구불거리는 양털 같은 머리가 보기 좋게 헝클어졌다.

“아…… 지금 없어. 잠깐 외출했다고.”

“너 그동안 날 붙잡고 있으려고 줄기차게 왔던 거지?”

정곡을 찔렸는지 라디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확실히 자신 몰래 뭔가를 꾸미고 있는 게 분명했다.

위험한 일은 절대 하지 말라고 그렇게 일렀건만.

샤르망이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마지막으로 물을게. 지금 펠릭하고 엘타인 어디 있어.”

한참을 얼버무리던 라디가 에라 모르겠다며 털어놨다.

“륀트벨에.”

“뭐?”

“잠깐 정찰 좀 하려고 한 거야.”

“정찰을 갔다고?”

샤르망이 날카롭게 묻자 라디가 하는 수 없이 끄덕였다.

“응.”

“내가 너희에게 그런 위험한 일을 하라고 했었나? 그런 명령 내린 기억이 없는데.”

“…….”

“혹시 돌아가고 싶은 거라면.”

“미쳤어? 그런 거 아니라니까.”

“그런데 왜 그런 미친 짓을 하는 건데. 너희가 지금 그곳에서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잊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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