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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국이 너무 따뜻해서 문제다 (99)화 (98/148)

[그대가 일전에 할스레이크에 보냈던 물건에 대해 말하려고 하오.]

[혹시 또 다른 소식이 있었습니까? 편히 말씀하셔도 됩니다.]

태연한 척 대답했지만 하라만의 심각한 얼굴에 샤르망도 덩달아 진지해졌다.

[어제 늦은 시각. 할스레이크에서 또 연락이 오긴 왔는데…….]

[네.]

샤르망이 자세를 바로 잡으며 대답했다.

[수장 아르디나 할스레이크가 화가 대단히 많이 났다고 하더군.]

샤르망이 그대로 굳어 눈을 깜박였다.

[대단히요?]

[아무래도 그대가 아르디나 할스레이크에게 따로 전달하라고 한 물건 때문이 맞는 것 같소.]

[그렇군요.]

[자신들과 계속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면 다시는 그대에 관해 말을 꺼내지 말라고까지 하였소. 그들과 알고 지내면서 그렇게 분노하는 모습은 처음 보았소.]

[음…….]

샤르망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샤르망의 표정을 심각하게 받아들인 하라만이 다소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나로서도 유감이오. 그대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들과의 관계도 우리에게는 큰 이익이 되기에 대신 화를 내줄 수는 없었소. ……대신 속으로 그들에게 화를 많이 냈소.]

다소 변명하는 듯한 하라만의 말에 샤르망이 웃으며 빨리 손을 저었다.

[아닙니다. 혹시 화를 낸 것 말고 다른 말은 없었…… 을까요?]

당황해서 우스운 말투가 나왔다. 마음이 급해 어정쩡하게 몸을 일으킨 상태였다.

[없었소.]

하라만의 말은 간결하고 확실했다.

그랬단 말이지.

하라만의 걱정과 다르게 아르디나의 행동은 샤르망의 예상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대체 그 물건이 무엇이었길래 그러는 것인지 짐작하겠소? 우리에게도 말해준다면 그들과의 관계 개선에 내 최대한 힘써보리다.]

하라만은 쉽게 걱정을 내려놓지 못하고 안절부절했다.

샤르망이 손을 저었다.

[아닙니다. 실은 그게 무엇이었냐면…….]

샤르망은 간략하게 그에게 설명했다.

샤르망이 하라만을 통해 보낸 물건들에는 하나하나 손수 적어놓은 설명서들이 딸려 갔다.

그 중 아르디나 할스레이크에게 전달을 부탁했던 물건에는 각별히 더 신경을 썼다.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세상의 모든 언어를 사용할 수 있기에 엘리움의 언어로 정성을 들여 쓰기까지 했다.

샤르망이 아르디나에게 준 것은 마물 중 환상수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흑마법형 마물의 전리품으로 떨어져 나온 마물의 심장이었다.

새파란 사파이어처럼 딱딱하고 투명해 보석같은 모양새를 가지고 있기에 어느 수집가들의 수집품으로도 유명했다.

구할 수만 있으면 얼마든 줄 테니 구해달라는 용병 의뢰까지 들어오지만 그걸 해내는 자들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그 마물의 특성을 그대로 갖고 있는 파란 심장은 사람의 감정에 동요하고 관여하며 환상을 보여주는 힘을 갖고 있었다.

샤르망도 마물을 잡아 쓰러뜨렸을 때 심장을 꺼내며 그 환상에 갇힌 적이 있었다.

물론 5분도 지나지 않아 스스로 빠져나왔지만 말이다.

샤먼이나 점술사들이 애용하는 자수정과 마력을 함께 섞어 가공을 마치면 더욱 그 힘이 증폭된다.

그러나 반신의 몸을 가진 자들에게는 통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래서 특정한 방법과 함께 물과 닿으면 그 효과가 더욱 증가하는 방법을 택했다.

사람이라면 아예 그 물건에 의식이 잠식당할 정도의 강한 힘이 뿜어져 나오니.

아마 아힐마저도 그 힘에 넘어갈 가능성이 컸다.

그걸 무기를 만들 때 이용한다면 그 위력이 어느 정도일지 가늠할 수도 없었다.

제자들을 위해 빼둔 것도 모두 이와 같은 물건들이었다.

뭐,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아깝긴 하지만.

그 정도로 아름답고도 위험한 물건이긴 하지만 할스레이크의 수장인 아르디나이기에 준 것이다.

그래서 샤르망이 적어준 방법대로 아르디나가 그대로 따라했다면 자신을 괴롭히는 그 무언가와 정면으로 마주했을 것이다.

‘그랬으니 화가 났겠지.’

필요 없다고 하더니 설명대로 시행했을 그녀를 생각하니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신의 시련이라며 더욱더 끙끙 앓고 있을 모습이 훤히 보였다.

단순히 그녀를 골려주려고 이 방법을 택한 건 아니었다.

그들은 항상 신과 인간 사이에 선을 그으며 스스로를 추앙하고 올려치는 것을 그만두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들도 우리와 같다는 걸 알아야 그들과 계속 부딪히고 그들의 힘을 빌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항상 가시 돋친 말로 자신들을 똘똘 감싸놓아도 그 안에서만 지내고 있기에 제법 순수한 부분도 있고.

아예 그들의 벽을 허물기로 한 것이다, 샤르망은.

[아마 그쪽에서 다시 연락을 줄 겁니다. 필시요.]

[그렇게 확신하오? 도리어 화를 입진 않을지 걱정인데.]

하라만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처음에 만났을 때만 해도 표정 변화를 거의 감췄는데 지금은 시시각각 표정이 변하는 게 눈에 확연히 보였다.

[예. 분명히 올 거예요. 제게 도움을 청할 것입니다.]

[도통 모르겠군.]

하라만이 자신 있어 하는 샤르망을 보고 의심을 내려놓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샤르망은 좀 더 기다리기로 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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