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적국이 너무 따뜻해서 문제다 (88)화 (87/148)

“인사는 지금 받으면 안 되는데.”

“……뭐라고?”

이것보다 더 고마운 일이 뭐가 있지?

“아직 네 몸은 돌아오지 못했는데 벌써 고맙다고 하면 내가 미안해지거든.”

대체 그게 무엇이 미안할 일이란 말인가.

샤르망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몸에 대한 궁금증은 페페가 풀어주었다.

페페는 샤르망의 원래 몸이 시간에 붙잡혀 있다고 하며 이렇게 말했다.

‘앗! 그건 걱정하지 마. 널 대신해 온 힘을 다해 찾고 있는 사람이 있으니까.’

‘시간 속을 찾아 헤맨다는 건 무척이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야. 매번 찾을 때마다 역행의 부작용을 고스란히 받아야 하니까.’

‘단서도 없이 찾고, 찾고 또 찾아야 해. 운이 좋지 않으면 같은 시간대에 또 갈 수도 있고. 마치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거나 마찬가지야. 수십 번이 될 수도, 수천 번, 수만 번이 될 수도 있어.’

수천, 수만 번…….

그 말은 아힐 더프가 시간을 되돌린 후 이미 수십 번, 수백 번, 수천 번, 어쩌면 수만 번 시간 속에 뛰어들었을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그것도 나를 위해? 대체 당신은 어떤 사람이야?’

“네가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건지 모르겠어, 나는. 내가 마음을 돌렸다고 해도 라칸을 막지 못하면…… 영생을 포기하면서까지 노력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잖아. 원래라면 나는 그쪽의 원수가 되어야 하는 거잖아? 하다못해 미워해야 마땅…….”

아힐이 샤르망의 어깨를 가볍게 잡았다.

“막지 않아도 돼.”

“뭐라고?”

“막지 않아도 돼. 이미 네가 마음을 돌렸잖아. 이미 그것만으로 내 결정은 충분히 가치가 있어. 후회 안 해.”

“후회 안 한다고?”

“……설령 네가 마음을 바꾸지 않았더라도 원망할 일은 없어. 미워한 적도 없어. 이건 나도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정말이야.”

“하지만.”

“시간을 돌렸어, 샤르망 노엘 켄더스.”

“…….”

“전쟁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어.”

샤르망은 계속 마른 입술을 달싹였다.

“그날 네가 나를 살려주지 않았다면 되돌릴 수도 없는 일이었어. 하다못해 네가 선봉에 서지 않았더라도 륀트벨 황제의 대륙 정복은 시작됐었을 거야. 그러니 네 탓이 아니라고 생각해 주면 안 될까?”

아힐이 부드럽게 다독이듯 말했다.

분명 샤르망을 살리기로 한 다른 계기가 더 있는 것 같은데.

아힐이 어느 지점에서 선에서 긋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샤르망은 홀린 것처럼 끄덕였다.

그러자 아힐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런데 하나만 묻고 싶은데.”

“응?”

“정말 날 구해준 일이 기억 안 나?”

아힐은 진심으로 궁금해하고 있었다.

샤르망이 살며시 시선을 피했다.

“기억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이게 확실하지 않아서.”

“사람을 구해준 일인데도?”

도리어 아힐이 샤르망을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당신 말고도 몇 번 그런 일을 겪은 적이 있어서. 임무가 아니면 굳이 사람을 해할 일이 없으니까.”

“허.”

아힐이 헛웃음을 뱉었다.

“그리고 그쪽은 그 기억보다 전장에서 훨씬 더 인상이 깊어서, 전장에서의 모습만 선명하게 남아 있거든.”

그리고 마지막 모습이 각인처럼 남았다고 하려고 했지만 뒷말은 그냥 속으로 꾹 삼켰다.

“그럼 아쉽지만 어쩔 수 없네. 그보다 이곳에 와달라고 부탁한 이유가 있어.”

샤르망이 고개를 들었다.

“뭔데?”

방금까지 여유롭던 아힐이 낯이 겸연쩍음으로 변했다.

“내 생각보다 훨씬…… 찾기가 힘들더군. 이왕이면 완벽히 하려고 했는데 말이야.”

“아.”

샤르망의 몸을 찾기 힘들다는 소리였다.

이 대단한 일을 해내놓고, 너무나 겸손한 말이었다.

“내가 뭘 하면 돼?”

이제 진실을 알았으니 할 수만 있다면 스스로 찾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시간을 되돌려 자신을 구해준 그에게 더 폐를 끼치고 싶진 않았다.

“내가 네 몸을 찾으러 갈 때, 네 기운이 필요해.”

이 빚을 갚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못할까.

샤르망이 의욕 있게 끄덕였다.

“뭐든, 할게.”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