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만의 파격적인 제안에 샤르망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저었다.
[말씀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곳에 폐를 끼칠 수는 없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곳에 위험이 가해지는 일을 제 스스로 하진 않을 겁니다.]
샤르망이 단호하게 말했다.
소로 숲 엘프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있는 것도 모자라 이들을 위험에 빠뜨리기까지 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 지키고 있는데.
하라만이 빙그레 웃었다.
[그렇게 경직해서 경계할 필요는 없소. 그대가 우리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사실은 우리도 충분히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대는 그들이 얼마나 비열한 자들인지 알 필요가 있소.]
[…….]
[엘리움에서도 국민을 저버리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은 하고 있소. 그러나 그대가 불안하다면 우리가 지원을 해주겠소.]
하라만은 샤르망이 륀트벨의 제안을 받지 않을 거라고, 샤르망보다 더 확신을 하고 있었다.
마음이 든든해졌다.
‘그래, 전과 달라.’
[오늘 새벽의 일이고 아직 시간이 넉넉하게 남아 있습니다. 서로가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좀 더 고민해보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오. 내가 그대에게 한 말은 절대 빈말이 아니니 꼭 기억해두고.]
샤르망이 대답대신 빙긋 미소를 지었다.
하라만도 륀트벨을 입에 담는 것이 영 유쾌한 일은 아닌지 금방 화제를 바꾸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 모두 소로 숲의 자랑이었는데 그중에는 고구마 밭을 대폭 늘렸다는 소식도 있었다.
하라만은 진심이었던 건지 매번 보내주는 고구마의 품종을 얻을 수 있겠냐는 부탁까지 했다.
알렉산드로를 이곳에 초대할 수 없냐고도 물었다.
샤르망은 물어보겠다고 말은 했지만 속으로 웃음이 잔뜩 터져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아, 그러고 보니 룬힐의 주인은 잘 있소?]
[저도 보내주신 선물을 받은 이후로는 만남이 없었습니다.]
[그렇소. 그러고 보니 그날 신기한 걸 묻던데.]
[그가 무엇을 물었습니까?]
[그대도 알지 모르겠으나 과거 우리의 선조는 시간을 다루는 힘을 가지고 있었소.]
샤르망은 하라만의 말에 잊었던 사실을 떠올렸다.
[어디선가 어렴풋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군. 하지만 그건 신의 뜻을 거른다고 생각해 우리 스스로 힘을 봉인시켜버렸다오. 그래서 다시는 그 힘을 쓸 수 없지.]
[그렇군요. 거기까지는 몰랐습니다.]
[한데 룬힐의 주인은 그 힘에 대해 아주 자세히 알고 있었소. 시간 속을 효율적으로 탐색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는지 묻더이다.]
[……시간을 탐색할 수 있는 방법 말입니까?]
그런 걸 왜 물었을까.
페페가 했던 말이 또 스쳐 지나가는 느낌에 샤르망이 물었다.
하라만이 끄덕였다.
[엘리움에 무슨 일이 생겼나 싶었다오. 하지만 이미 힘을 봉인해 버린 터라 알려줄 수는 없었소. 그런데 이후 륀트벨의 일까지 겹쳐, 혹시 그대에게 일이 생긴 건 아닐까 하고 급하게 서신을 보낸 것이오.]
샤르망은 잠시 할 말을 찾았다.
[아, 그렇군요. 엘리움에 문제는 없는 것 같습니다. 아…… 아무래도 마탑에 일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흠, 그럴 수도 있겠군. 어쨌든 지혜를 나눠주지는 못했지만 오랜만에 그런 물음을 받으니 추억 속에 잠겼었다오.]
하라만은 꽤 즐거운 듯 말했다.
샤르망은 역시 돌아가자마자 아힐을 찾아 대화를 나누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페페가 알려준 이야기에 대한 의문은 역시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어제 엔조가 찾아온 일 때문에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했다.
샤르망은 반쯤 생각을 딴 곳에 둔 채 하라만과 대화를 계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