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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국이 너무 따뜻해서 문제다 (71)화 (70/148)

샤르망이 번개처럼 뛰어가 문을 닫았다.

창문도 꽁꽁 닫았다.

커튼까지 모조리 치고 나자 가게 전체가 한층 어두워지며 잠잠해졌다.

부르지도 않았는데 버키가 먼저 찾아오다니.

‘소로 숲에 무슨 일이 생겼나?’

샤르망은 지난 소로 숲 방문에서 돌아오기 전에 버키를 소로 숲에 두고 왔었다.

뺵빽할 정도로 울창한 숲은 버키에게 아주 좋은 쉼터이기 때문이다.

근래 계속 엘리움 국경을 돌게 하며 고생시킨 것 때문에 쉬게 해준 것이었는데, 샤르망이 부르기 전에 돌아온 게 의아했다.

급하게 움직이는 와중에도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이 됐다.

그렇다고 지금 버키를 반길 수는 없었다.

라디면 몰라도 하필이면 가장 오래 함께 해서 버키를 잘 알고 있는 펠릭과 함께 있을 때라니.

“…….”

부르고 부르다 안 나가면 돌아가겠지?

나중에 토라진 버키를 달래주는 일이 조금 힘들긴 하겠지만 지금 존재를 들키는 것보다 나았다.

휘익—!

휘파람 소리가 더욱 강해졌다.

곧 하강하겠다는 뜻이었다.

‘얌전히 돌아가, 버키. 제발.’

샤르망은 소리가 잦아들 때까지 바깥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계속해서 일정하게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샤르망을 부르고 있는데 퍼덕이는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을 보니 허공에서 빙빙 돌기만 하는 모양이었다.

샤르망이 모습을 보이지 않은 탓이다.

휘리리릭!

갈수록 샤르망을 부르는 소리가 신경질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샤르망은 속으로 버키에게 수십 번이나 사죄 아닌 사죄를 했다.

이윽고 버키의 소리가 나지 않자 샤르망이 숨을 돌리며 고개를 돌렸다.

펠릭이 이상한 눈길로 샤르망을 보고 있었다.

갑자기 창문과 문을 닫고 대(大)자로 서서 문을 딱 막고 서 있으니 당연했다.

‘아, 설명부터 할걸.’

샤르망이 아차 싶은 얼굴로 설명했다.

“내가 가게 운영하느라 빚이 좀, 있거든. 때마침 빚쟁이가 찾아올 때라서. 어제 봤듯이 손님이 별로 없어서 말이야. 괜찮다면 그쪽도 협조 좀 해줘.”

“아무것도 안 물어봤습니다.”

펠릭은 어둑해진 시야 속에도 그저 차분하게 남은 차를 마실 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 그래.”

버키의 소리가 완전히 사라진 후에도 조금 지나서야 샤르망은 문과 창문을 다시 열었다.

샤르망은 노파심에 허공을 다시 살폈다.

‘갔군. 사흘은 토라질 텐데 어쩔 수 없지.’

버키는 샤르망이 부르면 언제, 어디서든 이유를 불문하고 찾아왔다.

샤르망은 그러지 못하는 대신 버키가 자신을 찾아오면 반드시 반겨주어야 했다.

딱 한 번, 그러지 못한 사정이 있었는데 일주일은 토라져 얼마나 틱틱거렸는지 모른다.

샤르망의 부름에는 꼬박꼬박 응답했지만, 와서 괜히 바닥을 찬다거나 주변 나무의 가지를 몽땅 부러뜨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게다가 부름에만 올 뿐, 부탁은 듣지도 않고 고래고래 소리만 지르기도 했었다.

샤르망이 버키의 화를 풀어주려고 최고급 과일들을 사다가 며칠을 바친 끝에야 만족한다는 듯 ‘구륵’ 하고 만족의 울음소리를 냈었다.

‘과일 좀 사놔야겠다.’

샤르망은 힐끔 펠릭을 쳐다봤다.

“가게 운영이 이렇게 어렵다니까.”

샤르망은 일부러 들리게 중얼거리며 다시 자리로 가서 앉았다.

근데 펠릭이 차를 이렇게 차분하게 마셨던가.

하긴, 애초에 이렇게 서로 마주본 채 차를 마셔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차를 마실 시간도 없어서 물이나 벌컥 마시고 나가야 했고.

“줄곧 엘리움에만 있었습니까?”

펠릭의 시선은 찻물을 향해 있었다.

“어? 어. 줄곧.”

“외부로 나간 적도 단 한 번도 없습니까?”

“응, 그렇다니까.”

“우릴 구할 때 무슨 생각을 하셨습니까?”

“응?”

팔짱을 낀 채 손가락으로 팔을 두드리며 열심히 대답하던 샤르망이 눈을 치켜떴다.

“저희를 봤을 때 무슨 생각이 드셨습니까?”

질문에 한참 눈을 깜박이던 샤르망이 손을 들어 머리를 짧게 긁적였다.

“음…….”

생각을 하느라 펠릭이 어제까지와는 다르게 샤르망의 앞에서 자신들을 한껏 낮추어 가리켰다는 사실도 몰랐다.

‘내가 알게 되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지.’

샤르망은 혼자 작게 미소 지었다.

“글쎄. 처음 봤을 때 뭐 저런 몰골이 다 있나 했는데.”

“단지 그뿐?”

“아무리 제물이라지만 취급이 너무하다고 생각하긴 했었던 것 같아. 그리고 절대 륀트벨에서는 태어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지.”

너무나도 진심이어서 웃음이 나올 뻔했다.

고향을 이렇게 진심으로 미워하게 될 줄은 샤르망 자신도 몰랐다.

돌이켜보면 딱히 돈을 쓰지도, 권력을 휘두르지도 않았는데 대체 왜 그렇게 열심이었던 건지 모르겠다.

‘분명히 나는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는데.’

그저 다시는 밟히지 않으려고, 최고를 꿈꿔왔었나 보다.

“그렇군요.”

“그럼 너는 아직도 륀트벨에 충성심이 남아 있어?”

“아뇨. 애초에 제 충성심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딴 말이지만 자기 자신에게 충성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

“당신의 생각을 물어도 됩니까?”

“또 어떤 걸?”

샤르망은 조금 놀랐다.

재회를 하고 이렇게 많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던가?

심지어 어제 그렇게 열심히 떠들어도 대꾸 한 번 안 해주더니.

밤사이 마음이라도 달리 먹은 모양인지 펠릭의 질문은 끝이 없었다.

“샤르망 노엘 켄더스가 사라진 이유가 우리를 버리기 위한 거라고 생각합니까?”

버리기 위한 거라.

샤르망은 단 한순간도 그들을 버린 적이 없었다.

실은 샤르망도 그들에게 묻고 싶었다.

라칸의 명을 따라 자신에게 봉인술을 걸고 마법진을 펼쳐질 때 직접 봉인 사슬을 잡고 있던 너희들은 나를 죽이며 무슨 생각을 했었느냐고.

이제 와 유치하게도 묻고 싶어졌다.

봉인 사슬을 직접 걸었으면서도 왜 자신이 의식을 잃어갈 때 울부짖었던 건지.

대체 그 행동들 중 가장 진심은 무엇이었는지.

‘나를 조금쯤은 원망했던 건가? 밉지는 않지만 원망을 할 수는 있겠지.’

그런 생각이 들자 조금 혼란스러워졌다.

어쨌든 그들도 자신처럼 똑같은 오해를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조금 불편해졌다.

“아니, 그렇진 않을 것 같아.”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어봐도 됩니까?”

“어린 애도 아니고, 버릴 거라면 아무래도 애매하게 말없이 떠나는 것보다는 확실히 하지 않았겠어?”

“……그렇습니까.”

“그런데.”

펠릭이 샤르망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서로의 고요한 눈동자가 마주쳤다.

“만약 너희들 마음속이 불구덩이 지옥이라면 차라리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아. 어차피 벌어진 일이라면 마음을 다잡기 편한 쪽으로 생각을 하는 건 어때?”

“아뇨. 버려진 게 아니라면 그러기는 싫습니다.”

샤르망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 뭐…….”

“저기. 여기가 골동품점 맞나요?”

손님이 와 이야기가 끊겼다.

“아, 잠시만. 맞아. 어서 들어와.”

샤르망은 펠릭에게 잠시 고갯짓을 한 뒤 일어나 손님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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