퍽! 퍽! 퍼억!
연달아 과일이 터지는 것 같은 또는 달걀이 깨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샤르망은 깜짝 놀라 고구마를 내려놓고 발 빠르게 나갔다.
퍽!
다시 한번 문가에서 소리가 났다.
“이게 무슨 소리야.”
소리의 근원지를 찾으려고 고개를 돌리는데 퍽! 하고 팔에 달걀을 맞았다.
아프다기보다 충격이었다.
왜 갑자기 달걀이 날아와 가게와 자신을 공격하는지 모르겠다.
근원지는 금방 찾을 수 있었다.
가게 정문에서 티니만 한 남자애가 달걀 바구니를 들고 가게와 샤르망을 노려보고 있었다.
무슨 짓이냐고 화를 내려던 샤르망은 아이인 걸 깨닫고 심호흡하고 아이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니?”
“샤르망 페페, 배신자!”
아이가 야멸차게 소리쳤다.
어느 정도냐면 옆 가게 미야가 놀란 얼굴로 나와 볼 정도였다.
다시 달걀이 날아왔다.
“페페, 무슨 일이야?”
샤르망은 달걀을 가볍게 피했지만 놀란 미야가 앞치마를 입고 원예 가위를 든 채 뛰어왔다.
“어머, 얘! 너 이게 무슨 짓이야? 그거 나쁜 짓인 거 모르니?”
“샤르망이 나쁘고 위험한 녀석들을 데리고 있어! 샤르망이 더 나빠!”
다시 달걀이 샤르망에게 날아왔다.
이번에도 가뿐히 피하자 남자아이가 씩씩댔다.
“…….”
아이가 말한 분노의 이유가 안에 있는 세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샤르망이 아이에게 다가가려는데 미야가 조금 더 빨랐다.
샤르망에게 원예 가위를 맡긴 미야가 샤르망 앞을 막듯 아이 앞에 섰다.
“너 아무리 그래도 달걀을 이렇게 위험하게 사람한테 던지면 돼? 안 돼? 샤르망이 다쳤으면 좋겠어? 달걀이 얼마나 위험하고 치우기가 힘들데!”
“몰라! 륀트벨 사람들은 다 나쁜 사람들이랬어! 저 사람들! 우리 엘리움을 삼켜 버리려고 온 거래! 그런데 샤르망은 왜 그 사람들한테 잘해줘? 샤르망도 한편이 되어버린 거지?”
“대체 어디서 그런 소리를 들은 거야? 샤르망은 지금 관리자 자격으로 그들을 데리고 있는 거야. 그리고 저 사람들은 아직 아무 죄도 짓지 않았어. 무턱대고 나쁘다, 위험하다 하는 건 잘못된 행동이야.”
미야가 아이에게 차근차근 설명했다.
아이는 미야도 한편이 되어버린 거냐며 막무가내로 화를 냈다.
아이가 먼저 소식을 듣고 륀트벨에 대해 알아내진 않았을 것이다.
어른들 사이에 대화를 들으면서 엘리움이 위험했을 거라고 생각했겠지.
우습게도 라칸을 막지 못하면 아이의 말대로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 아이처럼 적대적이어야 맞는 거다.
오히려 그들을 쉽게 받아들여 주고 믿어준 게 꿈 같은 일이었다.
샤르망 페페가 아니었다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샤르망은 현실을 자각하자마자 조금 더 조심하고 신경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페페는 아이를 무척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더욱 상처를 줄 순 없었다.
샤르망이 가위를 내려두고 미야를 지나쳐 아이에게 갔다.
아이가 뒤로 주춤 물러나며 다시 달걀을 던질 준비를 했다.
샤르망은 기꺼이 맞아주겠다는 생각으로 아이 앞에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네 말이 맞아.”
“뭐? 그것 봐! 나쁜 사람들이라잖아!”
아이가 샤르망의 말에 미야를 보고 바락 화를 냈다.
“페페, 너는 왜 애를 부추겨!”
“하지만 다 나쁜 사람들은 아니야. 저 사람들은 착해지려고 온 거야.”
“착해지려고 왔다고?”
“응. 그리고 나는 미야 말대로 절대 나쁜 짓을 못 하게 하려고 지키는 중이야. 네 말대로 절대 나쁜 일 일어날 일 없어. 약속할게.”
“어, 어떻게 믿는데? 륀트벨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나쁜 사람들이랬어!”
아이의 말은 엘리움의 사람들이 륀트벨 사람들을 보통 어떻게 생각하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마음은 아프지만 반박할 수도 없었다.
“음, 그럼 네가 나랑 같이 저들을 지켜보면 어떨까?”
“같이 지켜보라고?”
샤르망이 끄덕였다.
“응. 어때? 이렇게 할까? 네 이름이 뭐야?”
“……론.”
아이가 마지못해 답했다.
“그래, 론. 내가 나쁜 짓을 하지 못하게 열심히 지켜보고 막을게. 그럼 그걸 론이 가끔 와서 확인하는 거야. 그리고 저들이 나쁜 짓을 하면 같이 혼내주는 거지. 아주 따끔하게.”
론은 샤르망의 말에 미간을 찌푸리고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가 혼내준다고?”
“응. 론도 관리자가 되는 거야. 엘리움을 지키는 지킴이가 되는 거지.”
“……엘리움 지킴이가 된다고?”
“론은 이다음에 커서 멋진 사람이 될 거잖아? 지금부터 엘리움 지킴이를 하면 더더욱 멋진 사람이 될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약속할게. 정말이야.”
새끼손가락까지 내밀어가며 말하자 론은 달걀 바구니를 꽉 쥐고 한참이나 고민했다.
샤르망은 아이에게 절대 엘리움을 위험하지 않겠다고 말하며 한참이나 설득했다.
불신의 눈으로 이야기를 듣던 론이 입을 열었다.
“……정말 저 사람들이랑 한편 아니야?”
“페페는 감시자라니까.”
미야가 옆에서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조금 분노가 수그러든 론은 더 이상 달걀을 던지려고 하지 않았다.
“조, 좋아.”
“믿어주는 거야?”
“만약 저들하고 한편이 되면 정말 용서하지 않을 거야.”
“엘리움에 해가 되는 짓은 안 해.”
“……저, 정말 지켜본다?”
샤르망은 그 후로도 론을 조금 더 설득했다.
그러고 나서야 론은 꼭 지켜볼 거라며 바구니를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무례하게 구는 아이들은 가끔 혼내기도 해야 한다니까? 버릇만 없어진다고.”
“다음에 또 그러면. 론이 한 말이 틀린 말도 아니었잖아.”
“저들은 륀트벨에서도 배신당한 거나 마찬가지라며. 아무리 너라도 왕께서 가볍게 허락하진 않았을 거 아니야. 어휴, 그나저나 옷 다 버렸다, 얘.”
“괜찮아. 마법으로 씻어내면 되지. 도와줘서 고마워.”
미야가 그런 샤르망을 보더니 우쭈쭈 입을 쭉 내밀며 샤르망의 엉덩이를 손으로 툭툭 쳤다.
“다 컸네, 우리 페페. 의젓해지기도 하고!”
“뭐, 뭐해!”
샤르망은 깜짝 놀라서 기겁하며 뒤로 물러섰다.
미야와 많이 친해지기는 했으나 이건 전생에서도 현재에도 당해본 적 없는 행동이었다.
……엉덩이를 때리다니.
미야는 그런 샤르망을 보면서 깔깔 배를 잡고 웃었다.
“하여튼 또 누가 와서 해코지하려거든 바로 불러. 뭐, 이번엔 나도 처음 보는 일이라 너무 놀랐지만 앞으로 이런 일이 없으리란 보장은 못 하겠네.”
샤르망은 알았다며 미야를 안심시키고 원예 가위와 함께 돌려보냈다.
뒤늦게 달걀로 엉망이 된 옷과 가게 벽을 쳐다봤다.
나중에 피하기야 했지만 느닷없이 날아온 달걀이 충격적이었다.
‘그래도 이걸로 끝난 게 다행이지.’
샤르망은 벽에 묻은 달걀을 말끔히 처리하고 옷도 깨끗하게 만든 뒤 안으로 들어왔다.
들어오자 멈칫, 문이 열려 있어서 제자들이 밖에서 벌어진 일을 다 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해가 있었던 것 같아.”
샤르망은 변명 아닌 변명을 하며 의자에 앉았다.
“왜 그렇게까지 우릴 변호하는 겁니까?”
펠릭이 물었다.
밖에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지 꽤 불쾌해 보였다.
샤르망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며 말했다.
“응? 계속 말했잖아. 설명이 부족했나?”
“그 말로는 이해가 안 되니까 묻는 겁니다.”
“이해가 안 되면 통째로 외워. 어려운 거 아니잖아. 앞으로 몇 번이고 이런 일이 반복될 텐데 계속 물어볼 거야? 이 정도면 호사지.”
빙긋 미소를 지은 상태였지만 사실 샤르망은 다소 지친 상태였다.
어제 쓰러진 여파가 남아 있는 데다 페페의 말을 속으로 계속 곱씹고 있었다.
된 몸살에 걸린 것처럼 몸이 무거운데 계속 지켜보고 있는 탓에 골동품은 만지지도 못했다.
행여 추억을 보는 동안 실수라도 할까 봐서였다.
거기다 조금 전 일까지.
샤르망은 평소 말투와 자주 쓰는 말까지 나온 것도 모른 채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약속은 약속이니 이곳에 머무는 동안은 착실히 네 말을 따르도록 하지. 저들이 불안해할 일은 없을 거라고 맹세하겠다.”
그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엘타인이 그 말을 남기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려고?”
샤르망이 고개를 들며 물었다.
“보니 시선이 너무 모이면 안 될 것 같군. 라디, 네가 남아라.”
“내가 봐도 그게 좋겠군.”
펠릭도 같은 생각으로 의자에서 일어났다.
라디는 ‘왜 또 나 먼저야’라고 중얼거렸지만 자리에서 일어나진 않았다.
그래도 셋 중 두 명이 사라지니 가게가 한결 넓어졌다.
“여긴 왜 이렇게 손님이 안 와? 가게 연 거 맞아?”
라디가 의자에 앉아 팔걸이를 잡은 채 가게를 휙 둘러보며 말했다.
아침 일 때문인가.
근래 손님이 자주 와 심심함이 없었는데 하필 오늘 손님이 뚝 끊겼다.
“당연하지.”
“여태 한 명도 안 왔잖아. 언제 문을 닫는데?”
“6시.”
“아직도 많이 남았네.”
라디가 다시 주변을 둘러봤다.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있긴 하지만 주변은 온통 낡은 물건들뿐이다.
‘딱 봐도 손님 하나 안 올 것 같이 생겼네.’
라디의 시선에 열린 문을 향해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앉아 있는 샤르망이 닿았다.
샤르망과 이름이 똑같은 여자.
하지만 그뿐, 생김새도 하는 짓도 생판 다른 남이다.
도통 접점이 없는데…… 묘하게 신경 쓰인단 말이지.
게다가 이자는 샤르망의 기운을 읽었다고도 했었다.
“그쪽 말이야.”
“응.”
“혹시 샤르망 노엘 켄더스를 만난 적이 있어?”
침묵 후에 샤르망의 입이 열었다.
“아니.”
“그럼 어떻게 알고 샤르망 노엘 켄더스의 기운을 읽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