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 온 건가?”
샤르망이 혼잣말처럼 물었다.
“으음? 그건 아쉽게도 아니야. 이제야 막 내 부름이 네게 닿았거든.”
“아…… 그렇군요.”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샤르망은 끄덕이며 그녀가 더 이해되는 말을 해주길 기다렸다.
“휴—!”
페페가 이마를 닦는 시늉을 하며 과장된 한숨을 쉬었다.
“사실 아무리 외쳐도 목소리가 네게 닿지 않아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 가게 보는 일보다 힘들었다니까?”
샤르망은 자신과 전혀 다른 색을 가진 페페를 한참이나 바라봤다.
“…….”
“알아, 궁금한 게 많지? 뭐부터 물어봐야 할지 잘 모르겠지?”
결국 의문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제가 왜 당신의 몸에 들어왔는지 알고 싶습니다. 아, 당신이 요정족이라는 걸 알고 있어요.”
“응, 너 제법 눈치가 빠르더라. 덕분에 살리드 님께 제를 드릴 수 있게 되었어. 정말 고마워. 내 친구들과도 잘 어울려 준 것도 고마워.”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도움을 많이 받고 있어요.”
샤르망은 제를 이용해 사욕을 채우기도 했었다.
“그래. 네가 언제 깰지 몰라서 어디까지 이야기해 줄 수 있는지 모르겠네. 음, 중요한 걸 먼저 이야기하자면 널 살리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어. 네가 죽기 전에 널 잡아둘 몸이 필요했거든.”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다시 들으니 다소 충격이 들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어도 줄곧 들었던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하지만 저는 당신과 전혀 관계가…….”
“응, 네 말이 맞아. 다만 널 살려준 사람과는 관계가 있지.”
“저를 살려준 사람이요? 그게 누구…….”
“어머, 아직 말 안 했구나?”
페페가 깜짝 놀라며 입에 손을 올렸다.
페페는 ‘왜 아직 말 안 했지? 그건 비밀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데? 쑥스러웠나? 왜일까?’라며 수다스럽게 중얼거렸다.
“누군지 말해주십시오.”
샤르망은 중얼거리는 페페를 붙잡고 재촉했다.
그러자 페페가 곤란해하며 말했다.
“오, 그럼 안 돼.”
“왜 안 됩니까?”
“그야 감동이 없거든! 그래서 그건 말해줄 수 없어. 대신 다른 걸 말해줄게. 다른 걸 물어 봐 줄래?”
그 부분이 가장 알고 싶은 부분이었는데.
샤르망이 한 번 더 부탁했으나 페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샤르망은 하는 수 없이 그녀가 지금 겪는 현상에 관해 물었다.
이대로 죽는 것인지 아니면 몸을 되찾을 수 있는 건지.
애초에 시간이 되돌려지며 샤르망 노엘 켄더스라는 존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이라면 포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제자들도 그렇고 라칸의 행동도 봤을 때 샤르망 노엘 켄더스는 분명 존재하고 있었고 어딘가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네가 자꾸 쓰러지는 이유는 너와 내가 상성이 잘 맞지 않기 때문이야. 네 영혼과 내 몸이 잘 맞지 않는 거지. 이건 어쩔 수 없어. 나는 요정족이고 너는 인간이니까.”
“그럼 해결 방법이 없습니까?”
“네 몸을 찾으면 해결할 수 있지.”
샤르망이 반색하자 페페가 샤르망의 어깨를 잡았다.
“안타깝지만 네 몸은 아직 시간에 묶여 있어. 시간을 돌릴 때 간신히 네 영혼만 붙들어 온 참이었거든. 네 육체는 이미 죽었었으니까.”
“영혼만……?”
“응. 대신 내 영혼 반쪽이 네 육신과 함께 시간에 매여 있어. 물론 나는 내가 선택한 일이니까 상관없지만 말이야.”
“저를 어떻게 찾아야 합니까?”
“네가 직접 찾을 수는 없어.”
“네?”
샤르망이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페페의 앞에서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해 금방 감정을 갈무리했다.
눈앞에 있는 페페는 자신의 은인임이 틀림없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샤르망은 현재 샤르망 페페 몸에 구속되어 있는 상태고, 샤르망 페페는 엘리움을 절대 떠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엘리움에서 절대 떠나지 못해. 죽지도 그렇다고 편히 살지도 못하는 몸이거든. 알다시피 나는 이 땅에 남은 단 하나의 요정족이고…… 저주를 받았지. 추억이 아니면 나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해.”
샤르망이 번쩍 고개를 들었다.
“저는 외부로 나간 적이 있는데.”
소로 숲에 다녀온 적이 두 번이나 있었다.
“그야 속은 내가 아니니까. 우린 지금 불안정한 상태잖니.”
“……그렇군요. 저주라.”
“응. 저주가 풀려야만 나는 자유로워질 수 있어. 지금은 이 거래 덕분에 자유롭게 시간 속을 여행하고 있지만 네 몸을 찾으면 나도 다시 돌아와야 해.”
페페의 목소리가 조금 울적해졌다.
“제가 직접 찾지 못하면 어떻게 찾습니까?”
“앗! 그건 걱정하지 마. 널 대신해 온 힘을 다해 찾고 있는 사람이 있으니까.”
“아…….”
그 사람이 누군지 말해주지는 않았지만 빙긋 웃는 페페의 얼굴을 보고 샤르망은 그 사람이 자신을 살린 사람과 동일인이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시간 속을 찾아 헤맨다는 건 무척이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야. 매번 찾을 때마다 역행의 부작용을 고스란히 받아야 하니까.”
“…….”
“단서도 없이 그저 찾고, 찾고 또 찾아야 해. 운이 좋지 않으면 같은 시간대에 또 갈 수도 있고. 마치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거나 마찬가지야. 수십 번이 될 수도, 수천 번, 수만 번이 될 수도 있어.”
“왜…….”
누군지 알 것만 같을까.
하지만 그 생각이 들자마자 바로 고쳐먹었다.
세상천지에 아무리 너그러워도 적군이자 원수를 살리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응?”
아니겠지.
샤르망이 재빨리 고개를 털었다.
“왜, 그런 수고를 하는 겁니까? 그 사람은. 왜 저를 위해서.”
“글쎄, 그 누군가가 네게 그럴 만한 가치를 느낀 것이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해.”
샤르망은 살짝 고개를 떨구며 자조적으로 웃었다.
“저는 그런 가치가 없는 사람인데.”
“으응?”
“페페 당신이 제 과거를 알고 계신다면 그런 위로는 못 하실 겁니다.”
“과거라.”
페페가 고개를 갸웃갸웃 기울였다.
“지금은 어떤데?”
“네?”
“과거와 지금의 너. 같니? 돌아가고 싶을 만큼 과거를 그리워하고 있니?”
“…….”
“아니면 후회하며 네 작은 온몸을 다 바쳐 막고 있지는 않아?”
샤르망이 대답하지 못하고 얼빠진 얼굴로 페페를 쳐다봤다.
페페가 눈을 휘며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넌 막을 수 있어. 기회를 얻었잖아. 그렇지? 그러니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아도 돼. 지키고 싶잖아.”
페페는 다 알고 있었다.
한참 머뭇거리던 샤르망은 목에 걸리는 어떤 감정을 힘겹게 삼켰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습니다.”
샤르망은 페페의 미소를 보며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지만 죄를 조금은 씻을 수 있는 것 같았다.
“아, 저기.”
샤르망이 미처 묻지 못했던 질문을 꺼냈다.
“응?”
“저기 가게의 수칙이요.”
“아? 응, 그거 왜?”
“혹시 그걸 지키지 않으면 당신의 생명력이 더 줄거나 다른 좋지 않은 일이 생깁니까?”
샤르망은 부작용이 일어나거나 큰일이 날까 봐 되도록 수칙을 꼭 지키며 움직였다.
가게 문을 여닫을 때마다 1분도 놓치지 않고 맞추는 이유가 그것이었다.
가끔 늦을 때가 있어서 그럴 때는 꼭 제를 지내듯 마정석을 응축해 값을 치르긴 했지만.
“아, 그거— 말이지.”
“네.”
샤르망은 일급비밀을 들을 것처럼 귀를 기울였다.
“뭐, 안 지켜도 크게 문제가 되진 않아.”
샤르망은 뒤통수를 꽝! 맞은 느낌으로 페페를 쳐다봤다.
“……네?”
“그런 걸 적어놓으면 있어 보이길래 해놨지.”
“……있어 보여서…… 말입니까?”
“응. 아! 하지만 아예 소용이 없는 건 아니야. 구매와 판매가 따로 이루어져야 하는 건 되도록 맞춰 주어야 한다고?”
페페가 검지로 턱을 괴며 덧붙였다.
“음, 말하자면 일종의 계약인 거지. 손님이 물건을 판매할 때는 그 물건에 대해 포기를 하겠다는 의미야. 주인이 있는 물건은 추억을 온전히 흡수할 수 없거든.”
“아…….”
“반대로 물건을 손님이 물건을 구매할 때도 그 물건의 주인이 되겠다는 의미가 되는 거지. 나는 돈을 대가로 받고 그 물건에게 주인을 만들어준 거야. 대가를 받아야 탈이 안 나거든.”
“저기…….”
샤르망은 그 말을 듣고 제스퍼의 일을 페페에게 자백했다.
한참 듣던 페페가 배를 잡고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하! 내가 그럴까 봐 미리 경고도 담아두었었는데 결국 해버렸구나. 그게 걱정이 됐겠네. 음, 하지만 너는 값을 받았잖아? 그러니까 괜찮아.”
“미안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그럼 제가 한 일 중에 선대 왕후의 물건을 받은 일도 있는데…….”
샤르망은 이때다 싶어 고해성사하듯 쏟아냈다.
“아, 그거. 결국 노스가 끝까지 부탁했다 이거지?”
페페는 왕의 이름을 서슴없이 불렀다.
“혹시 받으면 절대 안 되는 일입니까? 하지만 저는 꼭 들어주고 싶습니다. 제자들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그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페페가 팔짱을 끼더니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딱히…… 그런 건 아니야. 하지만 노스는 아직 그 추억을 볼 준비가 안 되어 있어. 난 노스를 꽤 아끼거든. 그는 엘리움을 정말 아끼는 사람이니까.”
“……그럼 위험하다거나 그렇진 않습니까?”
“음, 노스에겐 어쩌면 위험할지 모르겠어. 저기 그러니까 조금 느긋하게 그의 부탁을 들어줄래? 최대한 늦춰줬으면 해.”
샤르망은 조금 생각하고 끄덕였다.
어차피 왕도 시일이 정해진 일은 아니라고 했었다.
실제로 그가 샤르망에게 물건을 건넬 때도 꽤 머뭇거렸었다.
“실은.”
페페가 운을 띄우며 두 손을 뻗어 샤르망의 손을 잡았다.
“내가 이렇게 널 부른 이유는 네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