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역시 그가 맞았다.
“저기, 혹시.”
샤르망이 운을 띄웠지만 말을 잇지 못하고 심호흡을 했다.
“말해.”
아힐의 말에 용기 내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지금 겪는 게 뭔지 알고 있는 거지?”
“……응.”
그가 알고 있다. 알고 있다고 한다.
샤르망이 잠시 혼란스러워하는 사이 아힐이 그녀를 불렀다.
“샤르망.”
샤르망 페페를 부르는 건지 아니면 자기 원수의 이름을 부르는지 헷갈렸다.
“응.”
“조금만 더 기다려 줄 수 있을까?”
“뭐라고?”
“네가 원하는 대답. 지금은 아무것도 못 해줘. 대신.”
“시간을 주면 말해주겠다고?”
그러자 아힐이 고개를 끄덕였다.
샤르망은 그조차 의문스러웠지만 그래도 완전한 거절이 아니라 언젠가는 답을 해주겠다는 말에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알았어. 네가 준비되면 말해줘.”
“그래, 약속 지킬게.”
아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돌아가려는 모양새에 샤르망이 그의 소맷자락을 잡았다.
“아, 저기.”
“응?”
아힐이 왜 그러냐는 듯 턱짓했다.
“그럼 기다릴 테니까 이것만 물어볼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답이면.”
“혹시 나로 인해 누군가가 다친다거나 잘못되거나 하지는 않는 거지?”
“…….”
“그럼 더 오래도 기다릴 수 있어.”
샤르망이 절박하게 말했다.
시간을 되돌아와 다짐한 건 그것이었다.
더는 무고한 희생을 절대 만들지 않겠다고.
내 과오를 모두 되돌리겠다고.
후회할 짓은 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자신이 살아 있어서 샤르망 페페가 잘못된다면 애초에 샤르망 자신이 문제인 것이었다.
그게 아니기를.
내심 긴장한 채로 아힐을 쳐다봤다.
“그래.”
그 말이 뭐라고 숨이 트였다.
“정말이지?”
샤르망이 다시 물었다. 여전히 그의 소매를 잡은 채였다.
어찌나 꽉 쥐고 있는지 손끝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것을 본 아힐이 작게 웃었다.
“정말이야. 그러기 위해 내가 있는 거야.”
“……아, 다행이다.”
샤르망이 풀썩 주저앉았다.
다시 고개를 들어 아힐을 쳐다봤다.
“기다릴게. 약속대로.”
아힐이 돌아갔다.
샤르망은 원하는 답을 아직 얻지 못했지만 대답을 들을 때까지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알렉산드로 님.”
아힐이 돌아가자마자 아침 배달이 왔다.
오늘은 알론소 대신 알렉산드로가 직접 바구니를 가지고 나타났다.
바구니에 온갖 먹을 것을 가득 담아 샤르망에게 내밀었다.
평소 알론소가 배달하는 양의 다섯 배는 되는 것 같았다.
“더 필요한 건 없고?”
“없어요. 이걸로 며칠은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근처에 일이 있으세요?”
“아니, 일꾼 좀 쓰려고.”
“일꾼이요?”
“허우대 멀쩡한 세 녀석 있잖여. 어차피 집 안에서 논다며.”
제자들을 말하는 거였다.
샤르망이 알아채고 끄덕였다.
“지금 불러올까요?”
“아니. 그거 같이 노나먹고 꼬맹이 보낼 테니께 그때 같이 와. 단단히 준비하고 오라 그려. 너도 올 테면 오고.”
알렉산드로는 그렇게 할 말을 전하고 먼저 가 있겠다며 뒤뚱뒤뚱 사라졌다.
샤르망은 묵직한 바구니를 봤다.
“가게 문 열기 전에 빨리 다녀와야겠다.”
샤르망은 간단히 문을 걸어 잠근 뒤 곧장 제자들에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