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적국이 너무 따뜻해서 문제다 (62)화 (61/148)

잠시 후.

“……야악! 쓰애키들이.”

어딘가 심하게 망가진 샤르망의 목소리가 들렸다.

“취했다.”

엘타인이 턱을 괴고 중얼거렸다.

“결국 가셨군.”

펠릭은 팔짱을 낀 채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 스승님은 게임을 한 판도 못 이기냐. 마법도 잘 쓰고 검술은 일인자면서. 대단하다 대단해.”

라디는 감탄하며 허공에 대고 손뼉을 쳤다.

너희들 다 죽었다며 샤르망은 게임을 휘몰아쳤다.

하지만 샤르망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게임을 더럽게 못 한다는 것이다.

운이 없는 건지.

실력으로 싸우는 일에는 대적할 사람이 없는데 꼭 이렇게 게임을 하면 하는 족족 진다.

심지어 뽑기 게임을 해도 그랬다.

비장하게 시작한 게임이었지만 패배의 화살은 모두 샤르망을 가리켰다.

한 잔, 두 잔, 세 잔…….

나중에는 제자들이 대신 먹어준다고 해도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아 몽땅 마신 게 화근이었다.

“하여어트은. 제자라는 녀석들이 구찮게 해.”

혀가 배배 꼬인 샤르망이 억울한 듯 포크를 테이블에 내려쳤다.

뺨이 발그레해진 샤르망이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며 손가락을 거꾸로 세워 펠릭에게 까딱거렸다.

“예, 스승님!”

펠릭이 벌떡 일어나 샤르망 옆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네가 말려야지. 어? 말이야.”

웅얼웅얼.

알아들을 수 없는 잔소리가 시작됐다.

라디는 건어물을 질겅질겅 씹으며 그 장면을 신기한 얼굴로 구경했다.

“예,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예, 그럼요. 예…….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스승님.”

펠릭은 한쪽 무릎을 굽히고 무릎 위에 팔을 둔 비장한 자세로 고개를 끄덕이며 샤르망의 말에 하나하나 대답을 다 해줬다.

“형은 저거 알아듣냐?”

라디가 엘타인에게 물었다.

남은 폭탄주를 조용히 처리하던 엘타인이 고개를 저었다.

도리어 술잔에 물을 따라 샤르망 앞에 조용히 가져다 놓을 뿐이었다.

“그치? 나만 못 알아듣는 거 아니지? 우리 스승님은 3개 국어를 하시네. 륀트벨어, 대륙 공용어, 옹알이.”

“너 이리 와봐.”

한창 펠릭에게 잔소리하던 샤르망이 홱 고개를 돌리더니 이번에는 라디에게 손가락을 까딱였다.

“예, 스승님!”

놀릴 때는 언제고 라디가 벌떡 일어났다.

오히려 자신을 부르길 기다린 얼굴이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잔소리에도 라디는 생글생글 웃기만 했다.

엘타인은 열심히 설교를 하는 샤르망을 보며 피식 웃었다.

빈틈을 보이지 않는 그녀가 유일하게 틈을 보이는 때였다.

결국 엘타인까지 불러 장황한 설교회를 마친 샤르망이 테이블 위로 엎어졌다.

가지런한 자세는 어디 가지 않는지 포크와 나이프를 옆에 나란히 두고 손을 아래로 곱게 모은 채 얌전하게 엎어졌다.

숨소리마저 조용했다.

떠들썩하게 놀던 세 제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졌다.

말간 얼굴로 고요히 잠든 샤르망의 얼굴을 그렇게 그림처럼 한참이나 쳐다봤다.

“치워야겠다.”

먼저 입을 연 건 펠릭이었다.

“우선 샤르망부터 침대로.”

엘타인이 말하자 펠릭이 고개를 끄덕이고 샤르망이 깨지 않게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침대로 옮기는 동안 엘타인과 라디가 조용히 빈 술병들을 치웠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술을 마신 티도 나지 않을 정도로 깨끗하게 주변을 정리한 세 제자가 잠든 샤르망을 한 번 더 확인한 뒤 문단속하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아침.

샤르망은 멀쩡한 얼굴로 나타났다.

“자, 몸풀기. 연병장 오리걸음으로 100바퀴 실시. 가장 먼저 들어오는 녀석에게 나와 대련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얼굴의 샤르망이 뒷짐을 지고 기사들에게 명했다.

도리어 약간의 숙취가 남은 라디와 펠릭, 엘타인은 죽을 맛이었다.

남은 술을 마시면 안 됐었는데.

하지만 샤르망과의 대련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기사들이 일제히 오리걸음으로 연병장을 힘차게 돌기 시작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