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사한 자세도 안 나와. 설마 허공에 빵 던져서 휙휙 썰어보려는 대단히 무모한 짓을 하려는 건 아니겠지?”
단언하는 목소리에 샤르망이 당황했다.
“아니, 정말 검이 필요해서 온 거야.”
“빵을 자르려는 게 아니고? 그럼 대체 어디에다 쓰려고?”
“아…….”
샤르망이 데구루루 눈을 굴렸다.
한참 뒤에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누구 겁을 좀 주려고.”
“으잉? 누구를? 설마 귀잽이가 뭐라고 해? 그럴 리는 없을 테고. 마법사가 귀찮게 해? 하긴 요즘 뻔질나게 드나들더니만!”
바쿤이 팔을 걷어붙이며 당장이라도 대신 흠씬 혼내줄 것처럼 굴었다.
팔에 북슬북슬 난 털이 마치 화난 걸 대신 해주는 것 같았다.
샤르망이 작게 웃었다.
“전혀 아니야. 그냥…… 내 소중한 걸 망가뜨리려는 사람?”
“대체 그런 우라질 놈이 누구야?”
“농담이고 이왕이면 대련하기 좋은 검이 필요해. 사정은 나중에 말해줄게.”
그러자 바쿤이 흥분을 가라앉히며 떨떠름하게 입을 다셨다.
“흠, 그러면. 한번 보자, 보자.”
바쿤이 검이 있는 곳으로 반쯤 몸을 돌린 채 팔짱을 꼈다.
그러고는 검지와 엄지로 자신의 턱을 한참 쓸어보더니, 갑자기 검이 매달린 벽 쪽으로 향했다.
“아무리 너라도 목검하고 진검은 무게부터 다른 거 알지?”
“응.”
샤르망이 쪼르르 따라가며 대답했다.
“가장 좋은 검을 주고 싶은데 요령이 없으면 들지도 못하거든. 제법 가벼운 걸로 골라 줄 테니 한 번 들어봐.”
바쿤이 벽에 붙은 도르래 손잡이를 돌렸다.
그러자 검들이 차례대로 부딪힘 하나 없이 바쿤 앞에 꺼내졌다.
안쪽 창고까지 이어져 있던 건지, 코너 벽에 가려져 있던 공간에서 새로운 모양의 검이 나타났다.
바쿤은 신중하게 고민하며 도르래 손잡이를 세 번이나 돌린 끝에 두 개의 검을 골라 꺼냈다.
다시 도르래를 돌려놓기 위해 바쿤이 손잡이를 돌리는 순간 샤르망에 눈에, 벽 끝에 걸린 검이 눈에 들어왔다.
“저기.”
“응?”
“저기, 저 끝에 있는 검.”
“어떤 거?”
드르륵 하며 바쿤이 다시 반대로 손잡이를 돌렸다.
도르래 손잡이 속도에 맞추어 유난히 검날의 색이 어두운 바스타드 소드가 밝은 불빛 아래로 나왔다.
“저거.”
“저거? 저건 안 돼.”
바쿤이 바로 말도 안 된다는 말투로 말하며 혀를 찼다.
“아, 주인이 있는 건가?”
“주인이 생긴 검은 따로 두지. 말했잖아. 저런 건 네가 못 든다니까.”
“그래도 보고 싶은데.”
샤르망은 오기가 생겼다.
당장 그녀가 쓰던 검과 같은 걸 찾지는 못하겠지만 최대한 비슷한 걸 찾는 게 좋았다.
이왕이면 손에 익은 게 좋으니까.
바쿤은 어디 한 번 들어보라는 식으로 그 바스타드 소드를 꺼내 총 세 개의 검을 보여주었다.
“자, 해봐라 그럼. 하여튼 쇠고집이라니까. 이게 제일 가벼운 거, 그 다음 그리고 네가 고른 것.”
툴툴거리면서도 바쿤은 가장 가벼운 검을 손끝으로 툭 쳤다.
가장 가벼운 건 에스터크나 레이피어처럼 날의 폭이 좁은 검이었다.
샤르망은 한 손으로 검을 쥐고 빛에 날을 비췄다. 그리고 손끝으로 직접 검날을 만져보기도 했다.
한참을 보던 샤르망은 검을 내려놓고 두 번째 검을 들었다.
아까보다 밝은 은빛의 날을 가진 검으로 숏쇼드와 브로드 소드의 딱 중간 길이였다.
리치가 길지 않아 단독으로 쓰기보다는 쌍검으로 쓰기에 좋은 검이었다.
샤르망은 종종 쌍검술을 사용하기도 했기 때문에 그것을 고르려다 잠시 내려놓았다.
‘역시 다 좋은 검들이다.’
바쿤이 코웃음을 치긴 했지만, 가볍게 내놓은 것 같지 않았다.
하나같이 마감이 잘 된, 허투루 만들지 않은 검들이었다.
애초에 다른 곳은 가볼 생각도 없었던 샤르망은 곧바로 여기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으로 바쿤이 염려하던 검을 잡았다.
‘역시.’
손바닥에 손잡이가 감기는 느낌이 남달랐다.
사용자에게 맞춰 특별히 주문을 하는 검과 비교할 바는 안 되지만, 어지간한 상급자가 써도 괜찮을 정도로 질이 좋았다.
샤르망은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은 채 이걸 고르려다가 다시 첫 번째 검을 잡았다.
‘너무 좋은 검을 쓰기엔 아깝지.’
바쿤이 놀랄 것 같기도 하고.
샤르망은 확실히 좋은 검이라는 것은 알지만 손잡이만 다시 잡아본 뒤 손을 뗐다.
그리고 첫 번째 검을 골랐다.
“이게 좋겠어.”
“거봐, 못 든다니까. 무게부터가 다르다고. 드는 것과 휘두르는 것은 천지차이라 이거지.”
샤르망은 바쿤이 다시 그 바스타드 소드를 줄에 걸어놓는 모습을 퍽 아쉬운 눈으로 쳐다봤다.
“장식이라도 하게 줘?”
그 눈빛을 들켰는지 바쿤이 다시 검을 꺼내려고 했다.
“아냐, 괜찮아! 다음에. 이건 얼마를 치르면 돼?”
“가져가.”
“응?”
“가져가서 사고나 치지 말아.”
그러고 보니 금고를 부탁했을 때도 제대로 값을 치르지 않았었다.
그때는 너무나 정신이 없어서 그랬다지만 이래도 이렇게 좋은 검을 값을 치르지 않고 가기에는 너무나 미안했다.
“그래도 내야 하는데.”
“거참!”
바쿤의 호통에 샤르망이 또 쭈그러졌다.
“고마워.”
그제야 바쿤이 푸근한 표정을 지으며 검집을 내주었다.
“뭘 지키려고 검이 필요한 건지 모르지만 집에선 휘두르지 마.”
완전히 사고뭉치 취급을 하는 바쿤의 말에 샤르망은 그저 웃어 보였다.
“고마워, 정말 잘 쓸게!”
“그래, 조심히 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