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샤르망이 도리어 더 놀라 물었다.
“방금 욕했잖아. 아주 찰지게. 기억 돌아온 거 아니야?”
“예전 샤르망이랑 완전 똑같았는데.”
옆에서 바쿤이 거들었다.
“아니, 그게.”
미야가 짝! 하고 손뼉을 쳤다.
“이제 기억이 슬슬 돌아오나 보다. 와, 방금 나 소름 돋았어! 샤르망이 완전히 돌아온 줄 알고!”
옆에서 미야가 제 팔을 문지르며 말했다.
샤르망은 아니라고 말했지만 아무도 들어주는 모양새가 아니었다.
“샤르망, 감자만 잘 자르는 거 아니고 욕 되게 잘한다.”
제스퍼까지 거들었다.
샤르망의 얼굴이 발갛게 물들었다.
“오해야. ……욕 아니고 발음이 샌 거야.”
“으응, 네가 발음이 샌 거라면 샌 거지 뭐. 오랜만에 찰진 욕 들으니까 새롭다, 그치?”
미야는 듣는 둥 마는 둥 대답했다.
바쿤도 고개를 끄덕이며 미야와 비슷한 소리를 했다.
샤르망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하게 자리에 앉았다.
언제 그랬냐는 듯 입을 꾹 다문 채로.
다시 다음 대결이 시작됐다.
마음 같아서는 직접 참가해 그를 꺾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의심을 받게 될 것이다.
‘그건 안 되는데.’
차라리 사람이 없는 곳에서 하면 나을 텐데.
“아.”
저도 모르게 입을 연 샤르망이 다시 자리에 일어섰다.
“왜, 샤르망?”
제스퍼의 고개가 샤르망을 따라 올라갔다.
“잠깐. 잠시 다녀올 곳이 있어.”
그리고 빠르게 관람석 뒤편 계단으로 내려가 참가자 대기열 근처로 향했다.
샤르망은 자신을 향해 인사하는 사람들을 지나쳐 테메릭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떨거지도 같이 내려온 줄 알았더니 홀로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테메릭의 모습이 보였다.
샤르망은 걸음 속도를 늦추며 천천히 테메릭에게 향했다.
싱글싱글 웃으며 의자에 앉아서 대련을 보고 있던 테메릭이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샤르망은 그의 옆으로 가 앉았다.
테메릭의 눈썹을 휙 올리더니 이내 흥미로운 눈빛을 했다.
“나처럼 대회에 참가하려고 왔습니까?”
역시 그러려고 했던 거였군.
샤르망이 싱긋 웃었다.
“생각 중이긴 한데.”
“검을 다룰 줄은 압니까?”
마치 귀엽다는 듯, 가소롭다는 듯한 말투다.
“글쎄. 적어도 한 합은 버틸 수 있지 않을까?”
“그러지 말고 제사장님은 응원이나 하는 게 어떻습니까?”
“내가 이길까 봐?”
그러자 테메릭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 웃음소리에 샤르망과 테메릭과 대화하는 걸 알게 된 주위 사람들이 잠깐 놀란 눈을 했지만, 이내 다시 대회장을 향해 시선을 거뒀다.
테미릭의 시선이 샤르망의 머리에서 발끝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위로 올라온 뒤 떨어졌다.
“그 드레스로는 어림도 없겠습니다.”
“그럼 이렇게 할까?”
“뭘 말이죠?”
샤르망에게 흥미가 떨어진 듯 테메릭의 시선이 대회장 중앙으로 향해 있었다.
샤르망이 그를 보며 말했다.
“륀트벨의 공작께선 제에 지대한 관심이 있는 것 같던데.”
샤르망은 그 말 한마디로 테메릭의 시선을 다시 가져왔다.
“그러니 참석하게 해주시겠습니까?”
테메릭이 능글거리며 말했다.
“그렇게는 안 되지.”
“제물이 잘 쓰이는지 저희도 확인을 해야 해서 말입니다. 안 그래도 륀트벨에 연락을 취해 정식으로 요청을 드릴까 하는데.”
강제로 참석을 하겠다는 뜻이었다.
그럼 그렇지. 단번에 물러날 놈들이 아니었다.
“흠, 그럼 어쩐다.”
샤르망이 곤란한 낯빛을 했다.
테메릭은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싱글벙글이었다.
“그럼 이렇게 해.”
“무엇을 말입니까?”
“나와 내기를 하는 건 어때?”
“내기?”
“대회 말고 나와 따로 대련을 하는 거야. 어때?”
“대련을요?”
테메릭이 말도 안 된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내가 이기면 너희는 제를 볼 수 없고 일정이 끝나는 대로 돌아가는 거지, 너희가 이기면 원하는 대로 하게 해주겠어.”
“말이 안 되는데.”
테미릭이 손깍지를 낀 채 꼬아 놓은 다리 위에 올렸다.
그러더니 샤르망에게 손을 내밀었다.
“실례지만 손을 줘보시겠습니까?”
“손?”
“제사장님이 엘리움에 숨겨둔 재야의 고수면 어떡합니까?”
샤르망은 선뜻 손을 내밀었다.
테메릭은 샤르망의 손을 잡더니 관심을 보이며 손바닥을 만지작거렸다.
아무리 봐도 말랑말랑하고 굳은살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러운 새하얀 손만 있을 뿐이었다.
“반대쪽도 줄까?”
여유롭게 샤르망이 반대쪽 손을 내밀었다.
두 손 다 확인을 마친 테메릭이 눈썹을 치켜떴다.
“마법이라도 쓰려고?”
“검술 대련에 마법을 쓰지 않는다는 건 바보가 아닌 이상 다 알고 있지.”
“흐음.”
말도 안 되는 내기 조건에 테메릭이 쉽게 의심을 풀지 못했다.
“제는 엘리움 사람만 볼 수 있어. 그게 규율이고 규칙이야. 우리도 멋대로 그 규율을 어길 순 없지. 그러면 어쩔까? 탈이 나지 않으려면 이유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샤르망은 최대한 순진무구한 모습을 유지하며 말했다.
“뭐 우리야 거절할 이유가 없죠?”
“그럼 하는 거다?”
“당신이 지면 확실하게 제에 참석할 겁니다.”
“너희가 지면 바로 돌아가는 거야. 제물을 두고.”
“뭐 그러죠.”
“륀트벨 황제의 명예와 네 심장을 걸고 약속할 수 있나?”
그러자 테메릭의 눈빛이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농담이 지나치군요.”
“흠, 그런가. 그럼 나도 곤란한데. 설마 승패가 확실하지 않아선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어차피 여기서 무슨 말을 하든 황제는 모를 거 아니야. 나도 걸게! 왕의 명예와 내 심장.”
“참나. 특이한 구석이 있다더니.”
테메릭이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그러다 승패의 결과가 빤히 보이는지 헛웃음을 짓더니 이내 알았다는 대답을 내놓았다.
“정말 할 거지?”
“나중에 제사장님이 울면서 없던 일로 해달라고 해도 소용없습니다.”
“그럴게.”
그리고 샤르망은 테메릭의 검술 대회 출전도 취소시켰다.
대신 테메릭이 이기면 그가 원하는 것을 하나 더 들어주기로 약속해야 했지만.
샤르망이 악수하자며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테메릭과 손을 마주 잡은 동시에 언약 마법을 걸었다.
“서로 약속을 안 지키면 안 되니까.”
“음?”
언약 마법은 샤르망이 소싯적 자주 쓰던 마법이었다.
상대와 구두로 계약을 할 경우, 말뿐인 계약이라며 도망쳐선 곤란하니 그 약속을 지키게끔 만드는 일종의 안전장치였다.
서로 약속을 지킴과 동시에 소멸하는 작은 마법이긴 하지만 효과를 꽤 좋아서, 평소 사기를 잘 당하는 마법사들이 종종 쓰는 방법이었다.
샤르망은 용병 일을 하면서 돈을 뜯길까 봐 거래 시에 꼭 언약 마법을 걸곤 했었다.
이번에는 서로 심장을 걸었으니 만약 테메릭이 대련에서 진 후 약속을 지키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린다면 그를 치우는 것도 가능해졌다.
그건 샤르망의 희망사항이긴 하지만.
테메릭이 그것까진 생각 못했는지 손을 빠르게 빼려고 했지만 이미 찌릿하고 마법이 서로 걸린 뒤였다.
“그럼 검술 대회가 끝나는 날 대련을 하는 것으로. 어때?”
테메릭이 자신의 손을 찝찝하게 내려다보더니 이내 흔쾌히 말했다.
“뭐, 그럽시다.”
샤르망이 다시 싱긋 웃었다.
샤르망이 알고 있는 테메릭의 특징은 한 가지가 더 있었다.
그건 바로 보기보다 머리가 많이 나쁘다는 것이었다.
몇 시간 후.
1일 차 대회는 아주 안전하게, 큰 사고 없이, 재미와 감동을 모두 쟁취하고 끝이 났다.
2일 차인 내일은 오늘 대결로 승리한 자들의 대결이 있을 예정이었다.
샤르망은 돌아와 제스퍼와 저녁을 먹은 뒤 지하 감옥에 갈까 했지만 제자 놈들이 여전히 괘씸해서 그만두었다.
새벽녘 꾸었던 이상한 꿈이 머릿속에 찌꺼기처럼 남아 신경이 쓰여서, 하루 정도는 그냥 건너뛰고 싶기도 했다.
“제스퍼, 잠시 공방에 다녀올게.”
대신 미리 약속했던 바쿤의 공방에 다녀올 예정이었다.
검이라곤 무딘 부엌칼과 훈련용 목검뿐이니 테메릭과 대련을 위해서는 모양새라도 대충 챙겨야 했다.
“수염 아저씨한테?”
“응,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알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