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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국이 너무 따뜻해서 문제다 (41)화 (41/148)

샤르망이 의문을 갖고 그를 쳐다봤다.

“사절단 명단. 부탁했다면서.”

“벌써?”

“어제 왕궁에 볼일이 있어서 갔다가 미리 받아왔어. 왕이 도움을 청해와서 우리 쪽도 주시해야 하니까.”

“아.”

샤르망이 그가 내민 종이를 서둘러 펼쳐보았다.

편지 속에서 샤르망이 빠르게 주요 인물을 찾았다.

‘역시나 잉겔로야.’

샤르망의 예상과 맞아떨어졌다.

단순한 사절이라면 잠입과 탐지술에 최고인 잉겔로를 보낼 일이 없다.

그리고 의외도 있었다.

‘잉겔로, 테메릭, 레아, 제이드…… 그런데 테메릭은 왜 보내는 거지? 얘는 엔조의 수하인데. 게다가 인원이 생각보다 많은데.’

테메릭은 샤르망과 서로 악감정이 있는 인물이었다.

그녀와 나란히 훈련을 하기도 하고 초기에 작전 수행도 같이 했던 자.

서로를 싫어하지만 이유가 거창하진 않았다.

테메릭은 원체 사람을 찍어 누르기 좋아하고 질 안 좋은 취미가 있었다.

이따금 제 기분에 취해 명령을 어긴 적도 있었다.

그는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으며 비열하기까지 한 자였다.

태생부터 귀족 출신인 그는 평민 고아 출신의 샤르망이 자신보다 우위에 있는 걸 참지 못했다.

거기다 느닷없이 나타나 총애를 받기 시작했으니.

무엇보다 그가 샤르망을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단 한 번도 샤르망을 꺾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일거수일투족 그녀의 행동마다 방해하니 애초에 그에게 관심이 없던 샤르망도 악감정에 물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샤르망은 웬만하면 그와 마주치지 않는 선에서 일을 해결하곤 했다.

그 후에도 세 제자와도 끊임없이 부딪치긴 했지만.

사절단으로 그의 상사인 엔조가 오는 것도 아닌데 테메릭이 이 자리에 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자신들이 만들어낸 화합의 자리인데 명단에 적힌 이들 모두 유난히도 엘리움을 아니꼬워하던 자들인 것도 문제였다.

‘뭔가 찜찜해.’

이곳에 오는 이유가 한 가지가 아니라면?

엔조가 함께 오지 않으니 이때다 싶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굴 가능성이 높았다.

실제로 엘리움을 장악했을 때도 유난히 눈살 찌푸려지는 행동을 해서 꽤 골치를 앓았었다.

다행히 아직까진 제에 참석하겠다거나 하는 등의 망발은 하지 않은 듯했다.

샤르망은 고개를 내리다 희생양이 될 세 제자의 이름이 적힌 부분을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자신 몰래 반역이라도 저지른 게 아니라면 이들이 제물로 정해진 것은 온전히 자신 때문이라는 걸 알기에 또 속이 상했다.

빠르게 끝까지 읽어 내려가던 샤르망이 멈칫했다.

‘근데 이거 륀트벨어잖아.’

타국에 보내면서 공용어가 아닌 륀트벨어로 보란 듯이 보내다니 라칸다웠다.

“어…….”

“왜?”

“모르는 언어라서 읽, 읽을 수가 없네.”

샤르망은 두루마리를 다시 아힐에게 건넸다.

“아, 그렇군.”

아힐은 대수롭지 않게 굴더니 친절하게 인사부터 끝까지 읽어주었다.

그는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륀트벨어를 읽어 냈다.

아힐의 입에서 륀트벨의 인물들이 차례대로 나열됐다.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놓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잉겔로는 그의 주특기인 잠입과 탐지술이 아니더라도 위험한 자였다.

그는 라칸의 명령 없이 자율적으로 일부 군 통솔이 가능해서 까딱하면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도 있었다.

과거에 그런 전적은 없지만 그렇게 따지면 애초에 륀트벨이 사절단을 꾸려 엘리움에 온 적도 없었다.

성격이 급하고 뭐든 속전속결로 해치우려는 잉겔로라면 사건을 일으킬 가능성이 차고도 넘쳤다.

만약 문제가 틀어진다고 해도 라칸은 모른 체할 수 있었다.

잉겔로는 아주 충성스러운 자니까.

뼛속까지 륀트벨 사람이던 샤르망은 일이 잘못되면 잉겔로가 혼자 모든 것을 뒤집어쓸 것이라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알았다.

영 찜찜함을 놓지 못한 샤르망은 초대된 이들 외에 잠입하는 자들이 없는지 살펴보라고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힐.”

“응?”

“이번 행사에 탑에서는 어디까지 지원할 예정이야?”

아힐의 시선은 아직 종이에 있었다.

“나까지 셋 정도?”

“셋?”

“더 필요할 것 같아?”

샤르망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충분해.”

큰 축제는 아니라 아힐 더프 하나로도 안심이겠다 싶었는데 본인 포함 셋이라니 크게 안도했다.

한 나라의 행사에 마탑주가 움직이는 나라라니,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했다.

‘뭐, 누가 온다고 해도 라칸이 직접 오는 것보다야 낫지.’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뭔가를 없애는 게 아니라 지켜야 했다.

바보처럼 겁을 집어먹을 순 없었다.

그들이 몇 명이나 온들 그들의 전투 방식, 발 스텝까지 읽고 있는 저로서는 우스울 따름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불안감을 떨친 샤르망은 명단을 한 번 더 머릿속에 집어넣고 생각을 접었다.

“아, 이번에 소로 숲에 가는 거 말이야.”

“또 주말에 가려고?”

“이번에는 혼자 다녀올 수 있을까?”

아힐이 눈썹을 비뚜름히 올렸다.

“왜?”

“나는 일이 좀 있어서. 저번에 준 증표를 가지고 가면 별 무리 없이 들어갈 수 있을 거야. 이미 몇 번 얼굴도 봤으니까. 네게 호의적이기도 하고.”

“그들은 널 좋아하는 것 같던데.”

샤르망이 어깨를 으쓱하며 미소 지었다.

“그들은 한번 제대로 마음을 열면 온 마음을 내보이는 자들이기도 해. 이번 말고도 앞으로는 나 없이 네가 엘리움 사람과 함께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어차피 계속 엘리움과 함께 협력할 종족이니 다른 사람들하고도 친해져야 하지 않겠어? 무기가 오고가는 일이니 케니즈도 괜찮을 것 같고.”

그렇게 말하는데 아힐의 표정이 서서히 굳었다.

샤르망은 그걸 눈치채고 뭔가 말실수를 한 게 있나 되짚었다.

아, 엘리움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말걸.

“음, 그러니까 내 말은 우리 쪽 사람을 말하는 거였…….”

“왜?”

“응? 뭐가?”

“왜 너 없이지?”

그쪽이 문제였나.

아직 할스레이크에 닿지 방법을 찾지 못해서 그러나?

의뢰를 받고 손을 뗀다고 생각해서?

샤르망이 오해받지 않기 위해 정정했다.

“할스레이크 일과 별개로 말하는 거야. 그들이 혹할 만한 물건은 계속 찾아보도록 할게.”

“아니, 그 뜻이 아니야.”

“그럼?”

빤히 쳐다보며 뭔가 말하려던 아힐은 눈을 가리듯 이마를 짚더니 표정을 풀었다.

“아무것도 아냐. 혼자 가라니 섭섭해서 한 소리였어.”

그 말에 샤르망이 짧게 웃음을 터트렸다.

“뭐 그런 걸 가지고 섭섭해해.”

가끔 뭔가 말을 하려다 말고 빤히 쳐다보는 모습이 숨기는 게 있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저 그의 습관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생각해보니 그를 의심하는 게 더 이상했다.

뭔가 알고 있는 거라면 오히려 자신을 죽여야 마땅했다.

하지만 아힐 더프는 아직까지 그녀를 살려두고 이렇게 섭섭하다 이야기까지 하지 않는가.

샤르망이 엘리움과 그의 철천지원수라는 사실을 안다면 절대 그럴 수 없었다.

“아, 부탁할 게 있어.”

샤르망이 뭔가 생각난 듯 일어서서 종이를 꺼내왔다.

급하게 왕에게 전달할 메시지가 생각났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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