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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국이 너무 따뜻해서 문제다 (32)화 (32/148)

“응! 서른 개나 옮기라고 하잖아. 다 옮기지 않으면 집에 보내주지 않겠다고 했어.”

제스퍼는 억울한 듯 씩씩거렸다.

샤르망은 그 모습이 귀엽기만 했다.

화분 서른 개.

제일 어렸던 라디에게도 벽돌 천 개를 오리걸음으로 나르는 걸 훈련으로 시켰던 그녀에게는 너무나 앙증맞은 일이었다.

그러나 제스퍼에게는 그마저도 아주 대견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서른 개나?”

“그래! 작은 화분이긴 했지만.”

제스퍼가 머쓱한 듯 다시 콧등을 문질렀다.

“대단하네. 오늘 미야의 일이 많이 줄었겠는걸.”

“마녀는 손 하나 까딱 안 했어!”

제스퍼가 어리광을 부리듯 낮에 있었던 일을 쏟아냈다.

샤르망이 듣기엔 온통 귀여운 이야기들투성이였지만 샤르망은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안 되지. 너무 힘들 걸 시키거든 못하겠다고 단호하게 말해. 내가 대신 말해줄까?”

그러자 제스퍼가 짐짓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시, 실은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어. 나는 사내잖아.”

제스퍼의 표정은 부끄러우면서도 어딘가 의기양양해 보였다.

그래서 샤르망은 싱긋 웃으며 다시 대꾸했다.

“그래, 멋있다. 목욕물 준비해 줄 테니까 어서 들어가서 씻어.”

제스퍼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러더니 우당탕 소리가 날 만큼 요란하게 제 방으로 들어가 옷을 꺼내 나왔다.

“밥은?”

“먹고 왔어!”

제스퍼가 욕실로 뛰어 들어가며 외쳤다.

씩씩하기는.

샤르망은 문이 닫히는 타이밍에 맞추어 따뜻한 물이 욕조에 가득 차도록 마법을 부리고 흐뭇하게 웃었다.

처음에 봤던 제스퍼의 모습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었다. 훨씬 밝아졌다.

말은 저렇게 해도 미야랑 제법 많이 친해진 모양인지 욕실에서 콧노래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한편으로는 시간이 지날수록 걱정도 늘었다.

저렇게 밝아 보여도 늘 가족 생각을 달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매일 아침 제 어머니의 물건에 대고 기도를 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마음에 새겨지는 상처가 깊어질 것 같아 걱정이었다.

하루빨리 제스퍼의 어머니나 형이 아이를 찾으러 왔으면 좋을 텐데.

적어도 자신이 전쟁을 막고 이곳을 떠나기 전까지는 왔으면 했다.

“제스퍼의 집에 한 번 더 다녀와야겠네.”

일전에 두고 왔던 쪽지가 아직 잘 있는지도 확인할 겸 짬을 내야겠다.

우선 내일 아침에는 제스퍼의 검술을 조금 봐주고.

아, 먼저 아힐 더프와 왕성에 다녀온 뒤에.

할 일이 태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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