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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국이 너무 따뜻해서 문제다 (24)화 (24/148)

다른 아는 사람이라면 그대로 몸에 힘을 풀었을 텐데, 아힐 더프의 목소리였다.

“아? 아직, 일요……. 너무, 일찍 온…….”

“뭐?”

목소리가 딱딱하게 굳어 심각했다.

안 그래도 신세를 졌는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에게 더 손을 빌릴 순 없지.

“잠깐.”

샤르망이 정신력을 바닥까지 끌어모아 끙끙거리며 억지로 몸을 떨어뜨렸다.

“아니, 잠시, 후……. 잠깐 갑자기 현기증이.”

눈앞에 핑핑 돌기 시작해 눈을 감은 채로 그에게 말했다.

최대한 멀쩡한 척 대답했는데 목소리가 끙끙 않는 것처럼 튀어나왔다.

마치 바닥에서 손이 튀어 올라와 온몸을 끌어내리는 착각이 들었다.

그 정도로 힘이 들었다.

고개는 자꾸만 바닥으로 처박히고 속은 금방이라도 모든 걸 게워낼 듯 울렁였다.

또 한 번 휘청이는데 발이 허공에 들린다 싶더니 몸이 붕 떴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을 땐 놀랍게도 아힐 더프의 품 안에 안착해 있었다.

샤르망이 또 힘겹게 입을 열었다.

“괜찮으니까 내려줘도…….”

“보호막을 겹겹이도 해놨네.”

샤르망의 말이 들리지도 않는지, 아힐은 샤르망을 품에 안은 채로 한 손으로 이중, 삼중 겹겹이 씌워진 보호막을 단숨에 풀고 문을 열었다.

‘제법 어렵게 꼬아놨는데.’

그 와중에도 어떻게 그렇게 쉽게 푸느냐고 묻고 싶었으나 이제 정말 한계였다.

샤르망은 결국 아힐 더프의 목덜미에 이마를 처박다시피 하고 몸에 힘을 뺐다.

뚜벅뚜벅 걷는 구둣발 소리가 적적한 가게 안을 가득 메웠다.

깨어 있었다면 낯선 사람이 갑자기 들어와서 놀랐을 텐데, 제스퍼가 아직 샤르망의 마법에 잠들어 있어서 다행이었다.

이윽고 푹신한 침대에 몸이 눕혀졌다.

다시 심장이 뻐근해져 샤르망이 몸을 둥글게 말고 숨을 헐떡였다.

후드가 벗겨져서 땀이 맺힌 이마가 조금 시원해졌다.

“잠깐만 정신 차려 봐.”

“흐…….”

“마나를 아주 쥐어짰잖아.”

쯧 하고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아힐이 샤르망에게 심호흡을 해보라며 자꾸만 재촉했다.

하지만 샤르망은 긴장을 풀어서인지 거의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침대에 누웠는데도 괜찮아지긴커녕 바닥나버린 마나 때문에 갈수록 갈증이 느껴지며 버거워졌다.

심장이 갈기갈기 열 갈래로 갈라지는 느낌이었다.

뺨과 턱에 손길이 느껴졌으나 샤르망은 눈도 뜨지 못하고 힘겹게 숨을 쥐어짰다.

“내쉬어, 그래. 다시 마시고.”

마치 달래는 것처럼 부드러운 저음이 샤르망을 부추겼다.

실낱같은 시원한 호흡이 느껴진다 싶더니 아주 천천히, 아주 미세하게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더. 의식 잃지 마. 그래, 그렇게.”

턱과 뺨을 쓸어내리는 손길이 더 선명해졌다.

샤르망은 그의 옷깃을 생명줄처럼 쥐어 잡고서 그 숨을 찾으려고 저도 모르게 허공에 입을 열고 고개가 따라갔다.

이윽고 그녀가 원하는 게 닿았다. 샤르망은 잃어가는 의식 속에서도 마치 본능처럼 그것을 따라붙었다.

샤르망의 손에서 아힐의 셔츠가 속절없이 구겨졌다.

생명줄과도 같은 기운이 마른 땅에 비처럼 깊숙이 스며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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