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르망은 환상 속에서도 답답함을 금치 못했다.
어쩐지 청소할 때마다 금화, 은화, 동화 할 것 없이 온갖 동전이 튀어나오더라니.
그렇게 청소를 했는데도 오늘 아침에 옷을 갈아입을 때 속옷에서 동화 한 닢이 툭 떨어져 한숨을 샀더랬다.
건망증이 심한가 보다 싶었는데, 원래 습관이었던 모양이다.
“1골드, 1골드, 이런 1골드가 모자라네에. 어허디 보자아—”
페페는 말끝을 길게 늘이며 곤란해하면서도 흥얼거리는 콧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페페가 레이스가 가득한 드레스를 입고서도 갑자기 바닥에 풀썩 엎드리더니 서랍 밑으로 손을 쑥 집어넣었다.
“여기! 다 모았다! 아유, 힘들어.”
바닥을 제대로 쓸지 않아 먼지가 잔뜩 뒤집어 쓴 페페는 이마를 훔치곤 드레스를 탈탈 털었다.
몸 주인이 장사하는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인데,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장사를 했는데 어떻게 유지가 된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아까 중년 여인이 치른 값이며 다른 손님이 치른 값도 적진 않기는 했지만 저렇게 50골드를 덥석 줘버리다니, 아무리 봐도 적자였다.
그녀의 걱정에도 환상 속 페페는 주머니에 짤랑짤랑 요란하게 50골드를 세어 집어넣었다.
“자, 50골드. 난 말했다? 이제 못 가져간다고.”
“그럴 일 없다니까. 팔아치우든 버리든 마음대로 해.”
주머니를 낚아챈 남자는 뒤도 안 돌아보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 말 잊으면 안 돼, 꼬마야!”
페페는 문틀을 잡고 골목으로 사라지는 남자의 뒤에 대고 외쳤다.
남자가 사라진 후, 한숨을 푹 쉬고 돌아온 페페가 팔짱을 끼고 한쪽 팔로 턱을 괴고선 검지로 자신의 볼을 툭툭 두드렸다.
“흐응, 곤란한 걸.”
그러다 일순간 고개를 팍 들었다.
샤르망이 깜짝 놀라 뒤로 팍 물러났다.
‘눈이 마주쳤어?’
분명 페페가 자신을 보고 있었다.
페페의 입꼬리가 싱긋 올라가는 듯하더니, 장난기가 자글자글 도는 눈이 반짝였다.
“그냥은 절대 안 된다?”
하마터면 중심을 놓치고 뒤로 발라당 넘어질 뻔했다.
샤르망은 자신도 모르게 말했다.
“아, 깜짝…….”
그러자 환상이 사라지고 겁먹은 아이의 모습만 눈에 들어왔다.
‘뭐지?’
나한테 대화를 시도했어?
환상 속 페페는 분명 자신을 보고 말했다.
미래를 알고 있기라도 했다는 소리인가, 아니면 진짜 어디선가 자신에게 환상을 보여준 것일까?
그 어떤 것으로도 설명이 힘들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그냥은 절대 안 된다?’
밝고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울리는 것 같았다.
‘뭐지, 이 사람?’
“왜 그래?”
아이의 물음이 들리고 나서야 샤르망이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아.”
“정말 내 거 맞아. 엄마가 준 거야.”
샤르망은 자신이 들고 있는 회중시계를 내려다봤다.
“그래, 네 말이 맞아. 그렇지만.”
‘그냥은 절대 안 된다?’
‘그래, 무조건 값을 치러야 한다고 했었지.’
“그냥은 돌려줄 수 없어. 네 형이 이미 돈을 받아갔거든.”
“……어, 어, 얼만데. 내가 낼 수 있어. 조금, 조금만 시간을 주면.”
샤르망은 작은 아이의 몸을 얼굴에서부터 발끝까지 천천히 살폈다.
아까 낯선 집안을 봐서일까 아니면 이제야 눈이 들어온 걸까.
끼니를 한참이나 챙겨 먹지 못한 것처럼 마른 몸에 땟국이 잔뜩 묻은 옷과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이 몸으로는 일을 구할 수 없을 테니 동냥이나 또 누군가의 것을 훔치게 되겠지.
만약 그날부로 형이 집까지 나간 것이라면 아이는 더더욱.
다 샤르망이 해본 일이다.
거기다 더 눈에 밟히는 건, 샤르망은 이 아이와 똑같은 아이를 이미 한번 겪어본 적이 있으니까.
‘짜증나네. 안 들킬 수 있었는데.’
‘좀도둑놈 주제에 입만 살았군.’
‘좀도둑한테 당한 건 당신들이잖아. 특히 그쪽 검은 되게 비싸 보이더라. 쳇, 아까워.’
‘가둬놔. 돌아가는 즉시 치안대에 넘긴다.’
‘자, 잠깐! 잘못했다!’
외부 훈련을 나갔을 때였다.
웬 꼬마가 샤르망의 부하들이 훈련하는 사이 군 막사에 몰래 들어와 물건을 훔쳤다가 붙잡혔다.
그것뿐이랴.
당돌한 도둑은 샤르망의 막사에 보란 듯이 들어와 그녀의 예비 단검을 훔치기까지 했다.
간밤에 횃불까지 모두 켜서 수색할 정도로 대단한 놈이었는데.
그게 세 제자 중 마지막 녀석인 라디 피제르타였다.
양털처럼 꼬불꼬불하고 덥수룩한 갈색 머리에 녹음 같은 눈동자를 빤하게 뜨고 있던 녀석.
잡혀놓고서도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덤비는 꼴이 너무 우스웠다.
원래라면 그 자리에서 죽이거나 치안대에 넘겼어야 했는데.
샤르망은 그대로 라디를 주워다가 훈련을 시키기 시작했다.
제대로만 키우면 정말 난 놈이 될 것 같아서. 단지 그 이유뿐이었다.
뼈밖에 남지 않아 어린아이일 거라고 생각했던 라디는 그때 당시 그녀보다 겨우 두 살밖에 어리지 않았다.
성인을 곧 앞둔 놈인 줄 진작 알았다면 데려오지 않았을 거다.
그러나 샤르망의 눈은 틀리지 않았다.
정확도와 민첩성이 얼마나 뛰어난지 가르친 지 1년도 되지 않아 검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마법을 전혀 쓰지 못하는데도 그에게는 그게 단점으로 작용하지 않았다.
라디는 몸이 가벼웠기 때문에, 대검이나 장검을 주로 쓰는 펠릭 크라손과 달리 가벼운 쌍검을 쥐게 했다.
그게 그에게 날개를 달아준 셈이었다.
샤르망의 뒤를 이어 또 하나의 괴물이 태어날지도 모르겠다는 칭찬까지 들었으니까.
그 뒤로는 다 큰 놈이 정말 훈련 잘 된 커다란 개처럼 샤르망을 쫓아다녀서 한참 애를 먹었다.
심지어 한 덩치 하는 펠릭과 둘이 같이 따라올 때면 모두의 시선을 받아야 했다.
이 아이를 보고 있자니 라디 피제르타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하필 눈동자 색도 같아서는.
‘잘 있으려나.’
셋 다 잘 있는지 모르겠다.
샤르망이 하루만 말없이 휴가를 보내도 다음 날 난리, 난리가 났는데.
다들 덩치는 산만 한 주제에 더 난리였다.
샤르망이 고개를 저었다.
“자그마치 50골드야.”
그러곤 아이에게 나지막이 목소리를 냈다.
아이는 ‘50골드……’ 하고 중얼거리더니 소스라치게 놀랐다.
“미쳤어? 거짓말 하지 마!”
“…….”
샤르망은 정정하는 대신 가만히 내려다볼 뿐이었다.
“형이 정말 50골드를 가져갔어?”
“그래.”
그러자 아이는 또 말을 잃는다.
눈을 도르륵 굴리며 계산을 하던 아이는 도저히 안 되겠는지 고개를 푹 숙였다.
“5, 50골드는 아무리 해도…….”
“그래, 못 갚지.”
차라리 스스로 포기해주길 바랐다.
“하, 하지만 꼭 갚을게. 몇 년, 아니, 5, 5년만 더 있으면 어른이 되니까.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려주면 다 갚을 수 있어.”
엘리움은 19살이면 성인이 되던가. 그럼 이 아이는 한 열넷쯤인가 보다.
샤르망의 예상보다 더 나이가 많았다.
그러나 아이는 오히려 눈을 반짝이며 샤르망의 눈을 마주했다.
작은 몸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지만 간절함을 다 바쳐 꼭 지키겠다는 다짐마저 고스란히 드러내면서.
어쩐다.
샤르망이 미간을 찌푸렸다.
‘꼭 저 수칙을 지켜야 할까?’
어차피 자신은 전쟁만 막으면 되는 일이다.
업보 청산만 끝나면, 실종됐다는 제 몸만 찾고 나면 이곳에 절대 해를 끼치지 않고 사라질 텐데.
왜 이렇게 골치 아픈 일만 생기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모른 척할 수도 없고.’
최대한 조용히 가게만 지키면 되는 줄 알았더니만.
원칙을 중요시하는 샤르망도 약자에게 약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샤르망이 저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아이가 또 한 번 움찔 놀랐다.
“저, 정말이야. 진짜로 갚을게. 그럼 다 갚을 때 찾으러 올 테니까 제발 팔지만 말아줘. 다른 물건 많잖아. 부탁할게. 무슨 일이든 할게.”
그게 없으면 엄마는 돌아오지 않는다고.
아이는 여전히 움직이지 못하는 발을 어쩌지 못하고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채 샤르망에게 빌었다.
가슴이 아파 외면하려던 찰나, 아이의 배에서 우렁찬 천둥이 울렸다.
아이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샤르망의 입에서 피식 웃음이 샜다.
아침에 알론소가 가져온 음식을 남겨두길 잘했다.
“아이야.”
“응?”
“먼저 밥이나 먹자.”
“밥……?”
“고구마 좋아해?”
“고…… 구마?”
“배부르게 먹는 모습을 보이면 네 말을 고려해보지.”
샤르망이 손가락을 튕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는 도대체 그게 무슨 뜻인지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으며 샤르망의 뒤에 바짝 따라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