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끝나는 즉시 그녀의 심장은 할스레이크에 인도되기로 했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어떻게 됐는지 알 수 없었다.
심장 자체에 계약을 걸었지만 7년 전으로 돌아온 데다 지금의 자신은 본래의 몸이 아니니까 말이다.
샤르망은 궁금했었다.
엘리움은 전쟁을 원하지도 않았으면서 왜 마력 증폭기를 필요로 했을까?
사실은 이들도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힐 더프.”
샤르망이 처음으로 그와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아힐 더프가 눈을 크게 뜨며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빠르게 갈무리하긴 했지만.
“……의뢰를 받을 마음이 생겼나?”
“그대는 왜 그게 필요하지?”
“흠.”
아힐 더프가 눈길을 돌리며 주먹을 말아 쥐고 헛기침했다.
놀랍게도 그는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그래서 샤르망은 그의 생각이 더욱 궁금해졌다.
“네가 이상하게 구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지만 뭐, 물어본다면야. 너도 알다시피 마탑의 마법사들을 제외하고는 엘리움에 마법에 대한 지원이 없잖아.”
사실 샤르망은 알지 못했으나 그저 끄덕이기만 했다.
“마탑에 들어가는 건 아주 극소수니까. 그런데 아카데미에 갔을 때 보니 마법을 쓸 수 있는 애들이 꽤 되더라고.”
“아.”
마력은 타고나는 것이었다.
자연에 마력이 풍부한 지역이라면 보통 열 명에 한 명꼴로 마력을 가지고 태어난다.
하지만 그렇게 모은 마력을 가진 자들의 수가 아무리 많아도 마법사가 되는 것은 극소수였다.
마력을 가진 한 명 한 명을 끝까지 제대로 키워내 제대로 된 마법을 쓸 수 있게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었다.
그래서 마법사들은 어디서나 항상 소수일 수밖에 없었다.
강대한 제국인 륀트벨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오러의 힘을 담은 검술과 마법을 동시에 구사할 수 있는 샤르망이 유독 추앙을 받았던 것도 그 영향이 있었다.
“엘리움을 제대로 된 마법 강국으로 키워내 보고 싶어졌거든. 왕은 좀 볼품없지만 왕자는 제법 쓸 만해서 후세가 기대되기도 하고.”
아, 엘리움의 마탑주와 엘리움의 왕자가 둘도 없는 친구라고 했던가.
엘리움을 조사할 때 그렇게 들었던 것도 같았다.
그리고 얼마 후 왕이 물러나며 왕자가 왕좌를 차지했지. 채 몇 년도 가지 못했지만 말이다.
“내가 할 줄 아는 건 마법뿐이니 이걸 성공하면 적어도 사람들이 제 나라 하나는 지킬 수 있지 않겠나 뭐 그런 거지.”
아힐 더프가 괜히 헛기침하며 목덜미를 긁적였다.
‘전쟁 준비가 아니었군.’
샤르망에게 그의 말은 참 순수하게 들렸다.
아힐 더프처럼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보통 더 큰 야망을 품을 것 같았는데, 의외였다.
륀트벨의 개였던 그녀가 할 말은 아니었으나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좀 부끄러워졌다.
하긴, 그는 서로 무기를 맞대고서도 절대 비열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목표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자신에 비하면 그는 올곧은 선을 가진 사람인 것이다.
잠시 생각에 젖어 있는데 손에 갑자기 묵직한 게 느껴졌다.
정신을 차리자 어느새 손에 돈주머니가 들려있었다.
“……?”
“빠르면 빠를수록 좋을 것 같군. 모자라면 마탑에 청구해. 금방 처리해 줄 테니까. 그리고 적응…… 아니, 뭐, 큼, 필요한 거 있으면 날 찾아도 되고.”
“아니, 그래도 의뢰는 내일…… 아.”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아힐 더프가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마법진이 보이지도 않았는데 정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의뢰를 냅다 떠넘기듯 말하고 가버리면서 필요하면 찾으라니. 뭘 어떻게?
샤르망은 돈주머니를 든 채 멍하니 사라진 바닥만 내려다봤다. 황당함을 감출 길이 없었다.
돈주머니 안에는 금화가 스무 닢이 넘게 들어 있었다.
아까 시장을 돌아볼 때 메뉴판이나 가게에 적인 물건들의 시세를 보니 금화는 적혀 있지도 않던데.
물건을 구매할 때 어지간해서는 모두 동화 몇 닢 정도로 해결할 수 있었다.
“오늘도 수칙 실패다…….”
샤르망의 어깨가 실망으로 축 처졌다.
자괴감에 부림치고 싶어졌다.
‘고작 열 개 남짓한 수칙이 왜 이렇게 지키기 힘든 거지?’
하지만 할스레이크의 마력 증폭기를 륀트벨에 넘겨주지 않는다면, 륀트벨의 전쟁 준비에 제동을 걸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그때처럼 제 심장을 내준다고 할 수는 없으니 굳이 다른 방법을 찾자면…….
‘소로 숲의 엘프를 거치는 방법밖에는 없겠지.’
그나마 다행인 건 그녀가 할스레이크에 닿기 위해 다방면으로 고민했던 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과 유일하게 소통한다고 했던 소로 숲의 엘프를 통해 도움을 청해본 적도 있으니까.
다만 이곳에서 소로 숲의 엘프들과 닿을 방법을 찾아야 했다. 지금 당장 가게를 비우고 소로 숲에 갈 수는 없으니.
샤르망은 집안에서 지도라도 찾자는 생각으로 서둘러 문고리를 잡았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에 고개를 반짝 들었다.
“아.”
그 방법이면 되지 않을까?
비록 곧 어두운 밤이 다가오는 시간이긴 하지만. 이 방법을 쓰면 소로 숲 엘프에게 연락하는 일이 곧바로 가능할 것 같았다.
샤르망은 서둘러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말고 다시 몸을 돌렸다.
그리고 잠시 허공을 바라보다가 엄지와 검지로 동그랗게 원을 만들었다.
휘익—
휘파람을 불고 나서도 샤르망은 고개를 떨어뜨리지 않은 채 기다렸다.
조금은 초조했다.
몸이 바뀌었으니 이 몸으로 부른다고 한들 소용이 있을까? 바보 같은 행동은 아닐까.
어둑해지다 못해 완전히 밤에 잠기기 시작할 때까지 한참이 지나도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자 샤르망은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떨궜다.
“역시 말도 안 되는 기대였…….”
그때였다.
꾸르르르르르—
호루라기와도 같은 높은 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샤르망의 눈이 커졌다.
샤르망이 다시 고개를 쳐들었다.
이내 새카만 물체가 하늘 높이 휭 날아와 샤르망에게로 빠르게 하강했다.
샤르망은 놀란 얼굴을 하면서도 익숙하게 팔을 들어 올려 어둑어둑한 시야에서도 제게 빠르게 날아오는 거대한 새를 맞이했다.
그녀의 몸이 휘청일 정도로 무거운 검은 새가 샤르망의 팔에 잠시 앉았다가 아는 얼굴이 아닌지 의아하다는 듯 날기를 퍼덕이며 다시 날아오르려는 자세를 취했다.
샤르망의 얼굴이 반가움에 물들며 급격히 환해졌다.
“버키.”
구르륵!
거대한 새가 알아듣는 것처럼 울었다.
“나야. 혹시 알아보겠어?”
샤르망이 웃으며 말하자 새가 속을 뚫어보듯 쳐다봤다.
새카만 깃털, 새카만 눈, 새카만 부리, 새카만 발.
영혼을 보는 새니 부디 자신을 알아봐 주길 바라며 샤르망은 새의 새카만 눈과 마주했다.
고요한 어둠처럼 가만히 눈을 마주치던 새가 꾸륵꾸륵 소리를 내며 샤르망의 얼굴에 제 머리를 거칠게 부딪쳐왔다.
“그래. 넌 역시 알아봐 주는구나, 버키.”
평생 단 한 번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전설의 영물 세이아크.
이들은 사람 말을 알아들으며 새끼 들소를 가뿐히 잡아채 날아오를 정도로 힘이 세고 가끔은 사람보다 더 뛰어난 통찰력을 보이기도 했다.
더구나 영혼을 꿰뚫어 보는 검은 눈은 그 어떤 영물보다 귀한 능력이었다.
까마귀와 독수리를 섞어 놓은 것 같은 생김새와 엄청난 크기, 어느 곳 하나 색채 한 점 보이지 않는 새카만 검은색.
어미의 배를 스스로 가르고 나온다는 흉흉한 소문도 있지만, 그건 본디 알을 낳지 않는 세이아크가 새끼를 낳는 동시에 수명을 다하는 특성을 가진 것뿐이다.
이들은 몹시 침착하고 조심성이 많으며 이유 없이 생물을 해치지도 않는다.
버키는 아주 오래전 샤르망이 직접 찾아낸 영물이었다.
샤르망이 버키를 처음 만난 건 그녀가 열셋 나이에 처음으로 용병 일을 나갔을 때였다.
샤르망의 친모는 샤르망을 낳다 죽었고, 친부는 그런 어머니를 따라 갔다.
그래서 태어나자마자 이 집, 저 집 신세를 지며 눈칫밥을 먹다가 열두 살에 탈출하듯 도망.
그 후로 일 년간 용병 사무실에서 허드렛일을 하고 얻은 첫 임무였다.
위험도에 비해 의뢰비가 낮아 아무도 지원하지 않던 임무를 자처해 산행을 떠났던 날.
임무는 성공했지만 절뚝거릴 정도로 다친 몸을 이끌고 산을 내려오다 버키가 태어나는 장면을 목격한 것이다.
샤르망은 숨을 멈추고 그 장면을 쳐다봤다.
새끼 세이아크가 태어남과 동시에 새카맣던 어미 세이아크가 새하얀 재로 변해 날아가는 그 장면이 눈에 각인되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태어나자마자 스스로 날갯짓을 해야 할 세이아크가 그대로 바닥에 추락하고 말았다.
샤르망이 다급하게 달려가 떨어지는 세이아크를 받아낸 덕분에 날개가 다치진 않았지만 새끼 세이아크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샤르망은 작은 새끼 세이아크를 품에 안고 내려가 극진하게 돌보기 시작했다.
어쩌면 샤르망은 죽어가는 버키에게서 자신의 어린 날을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비록 버키를 치료하기 위해 첫 임무에서 받은 의뢰비를 탈탈 털어야 했지만, 샤르망은 평생 자신을 배신하지 않을 친구를 얻게 되었다.
언제나 그림자처럼 나타나 샤르망을 숱한 임무에서 지켜주는 친구.
그게 버키였다.
시간이 역행한 탓에 샤르망이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버키보다 조금 더 어려 보이긴 하지만.
몸이 바뀌어서 못 알아볼 줄 알았는데, 버키는 어렵지 않게 자신을 알아봐 주었다.
그게 이렇게도 큰 위안이 될 줄이야.
버키가 샤르망의 마음을 읽듯 다시 한번 머리에 자신의 머리를 부딪치며 온몸이 울릴 정도로 구륵구륵 기분 좋은 울음소리를 냈다.
샤르망도 기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혼잡한 혼란 속에서 겨우 자신을 알아봐 줄 누군가를 찾아냈으니까.
샤르망은 머리에 로브 후드가 벗겨지는 줄도 모르고 새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잘 지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