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르망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건 곤란해. 당신에게 소중했던 물건이라면 그 예우를 해줘.”
샤르망의 말에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떨궜다.
“그렇습니까.”
“돈을 받고 판다고 해서 과거가 퇴색되진 않아. 여기까지 많이 생각하고 또 힘들게 왔을 거 아니야. 후련하게 보내준다고 생각해.”
샤르망은 그가 결정을 내릴 때까지 기다렸다.
그가 값을 치르지 않으면 반지와 함께 돌려보낼 것이다.
손님의 사정은 알지만 지금껏 이 가게가 해온 규칙을 무너뜨릴 순 없었다.
샤르망은 그간 이보다 더 힘든 결정을 많이 내려왔었다.
한참을 고민한 에빌이 입을 열었다.
“은화 한 닢이면 됩니다. 이 반지를 구할 때 들었던 값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줘.”
샤르망은 금고를 찾다가 포기하고 간밤에 아힐 더프에게 받았던 의뢰비가 담긴 주머니를 꺼냈다.
그 안에 다행히 금화 몇 개와 함께 은화 세 닢이 들어 있었다.
샤르망은 은화 한 닢을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은화에는 엘리움의 시계탑이 그려져 있었다.
“잘 생각했어. 그대 말대로 좋은 주인을 찾아주도록 할게. 당신의 출발을 응원하지.”
에빌이 은화를 건네받으며 시원섭섭한 미소를 지었다.
“고맙습니다.”
“조심히 가.”
남자는 미련 없이 뒤를 돌아 문을 나갔다. 그러나 몇 걸음 내딛지 못하고 휘청였다.
잠시 숨을 고르듯 멈춘 그가 다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샤르망은 문틀에 기댄 채 팔짱을 끼고 그런 손님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남자의 뒷모습이 사라지고 대신 미련을 떨치려는 것처럼 후련하게 한숨을 내뱉다가 이내 눈을 깜박이더니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지?”
어이없게도 방금까지 자신이 행동하고 말을 한 게 맞는지 의심이 들었다.
긴장해서 한 마디도 못 할 줄 알았는데 마치 이 몸의 특별한 능력 때문인지 방금까지 다른 사람이 자신을 조종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뭐지, 이 홀린 기분은.’
마치 몸이 스스로 기억해 내 움직인 느낌.
샤르망은 그 이상한 기분을 떨쳐내기 위해 머리를 털었다.
그러곤 돈주머니를 든 채 계산대를 포함해 집안 곳곳을 돌아다녔다.
“금고가…….”
그러고 보니 청소할 때도 그렇고 지금 찾아다니는 중에도 금고가 보이지 않았다.
계산대를 포함해 서랍을 열어보아도 돈을 보관할 마땅한 곳이 없었다.
그럼 지금껏 돈은 어디다 보관해 관리를 해두었단 말인가.
솔직하게 말하자면…….
여긴 정말 제대로 된 물건이 하나도 없었다.
어제는 너무 정신이 없어서 돈주머니를 그냥 두었지만 앞으로도 그럴 수는 없었다.
정리를 즐기진 않았지만 애초에 샤르망은 뭐든 제자리에 두는 습관이 있었다.
금고에 월급을 넣어두는 건 당연하고, 입었던 옷도 제자리에, 그릇도 쓰고 나면 원래 있던 곳에 다시 가져다 놓는 편이었는데, 여긴 원래 그 물건이 있던 곳이 어딘지도 알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수칙이 적힌 종이 아래 마석을 둔 곳에 돈주머니도 놓아두었다.
알론소의 말로는 페페는 돈이 많지만 없다고도 했으니, 금고에 넣을 필요도 없이 흥청망청 쓴 것일지도 모르겠다.
“정리도 마무리해야 하고, 금고도 만들어 두어야겠군.”
손재주가 비상하진 않으나 가구를 스스로 만들어 쓰기도 했으니 금고 정도는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지키는 것이야 자신이 파수꾼처럼 지키면 되는 것이니.
아예 이참에 중심이 맞지 않아 앉을 때마다 몸으로 중심을 잡아 지탱해야만 하는 의자도 고쳐야겠다.
“종이도 안 보이니 종이도 사야겠군.”
상황에 익숙해지니 부족한 것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다행히 연필과 펜은 있었다.
그마저도 펜은 잉크를 쓰고 닦아두지 않았는지 마른 잉크가 펜촉에 덕지덕지 붙어 있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