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르망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또 필요한 것이 있나? 그럼 빨리 말하고 가는 편이…….”
“오늘 정말 이상하네. 의뢰비 받아야지.”
그가 제법 묵직해 보이는 갈색 천 주머니를 내밀었다.
샤르망은 고개를 저었다.
“그, 그냥 가져가. 제, 아니, 내 선에서 처리하겠다.”
그녀의 입에서 군을 통솔할 때보다 더 딱딱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잘 인지하지 못했지만 매우 당황했었는지, 목소리가 샤르망 자신의 귀에도 비장하게 들렸다.
아힐 더프의 표정이 미묘하게 의문을 띄웠다.
“돈이라면 지옥 끝까지 따라오는 게 너 아니었냐? 진짜 이상하네. 농담이지?”
“농담 아니야. 그러니 오늘은 이만 돌아가 줘.”
“뭐…… 나야 상관없는데. 이상하긴 하네. 어쨌든 값은 받아. 고맙다.”
다행히 아힐 더프가 천 주머니를 휙 던지더니 더 지체하지 않고 몸을 돌렸다.
얼떨결에 돈주머니를 받은 샤르망이 문을 닫으려는 찰나 그가 다시 몸을 돌렸다.
“샤르망 페페.”
아니, 제발 좀.
샤르망이 침음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또 왜?”
“너 근데 뭔 짓 했냐?”
“……무슨?”
샤르망의 몸이 긴장으로 굳었다.
“아니야. 왜 이상하게 마력이 거대하게 느껴…… 아니네. 일주일 동안 밤을 새워서 정신이 이상한가.”
아힐 더프는 머리를 긁적이더니 연기처럼 휙 하고 사라졌다.
드디어 갔다.
뒤늦게 긴장이 풀린 샤르망은 그대로 문을 닫고 벽에 기댔다.
빠르게 마력을 숨겼던 탓에 숨이 조금 가빠졌다.
그와 대화를 나누고 나자 정말 적국 한가운데 있는 게 뒤늦게 느껴졌다.
시간이 역행하지 않았다면, 자신이 륀트벨의 사령관 샤르망이라는 걸 들켰다면, 이 자리에서 갈가리 찢겨 죽었을 것이다. 이때도 나라간 사이가 좋지 않았으니.
들켜서 검이 겨눠진다면 받아쳐야겠지만 아무리 샤르망이라도 적국 한가운데서 살아남을 자신은 없었다. 적어도 지금 이 상태로는.
삶에 진득한 미련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과오를 만회할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을 뿐.
이제 확실히 밖에서 느껴지는 기척이 없었다.
“아.”
뒤늦게 샤르망은 아차 싶었다.
마감 시간에서 여섯 시간이나 지났는데 얼떨결에 손님을 받아버린 것이다.
샤르망은 큰 죄를 지은 것처럼 주변을 둘러봤다.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없는데도 마음이 불편했다.
“어쩌지.”
그나마 돈은 받았으니 다행이었다. 그마저도 아힐 더프가 던지지 않았으면 샤르망은 그대로 돌려보냈을 테니까.
과거 몸이 정말 좋지 않아 훈련을 하루 빼먹었을 때보다 훨씬 더 불편한 기분이었다.
이 일을 어찌해야 하나.
샤르망은 세상 모든 근심을 다 떠안은 얼굴로 고민했다.
“……후. 어쩔 수 없지.”
하는 수 없이 샤르망은 작은 마석을 하나 더 만들어 아까 마석을 올려둔 트레이 위에 하나를 더 두었다.
가게 운영이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륀트벨에서 시내를 걸어 다닐 때 다들 웃으며 반기기에 상인들이 행복하기만 한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내일은 기필코 수칙을 지켜야지.
얼렁뚱땅 일을 마무리하긴 했지만 그래도 아까보단 마음이 편했다.
“우선 늦었으니 내일 다시.”
샤르망은 다시 침대로 돌아가는 대신 저도 모르게 습관처럼 문 근처 바닥에 앉아 벽에 기댄 채 슬며시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