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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국이 너무 따뜻해서 문제다 (4)화 (4/148)

한껏 예민해진 정신에 샤르망이 소리 없이 움직였다.

수많은 전쟁을 치른 이는 그만큼 많은 피를 묻히기에 광기에 가까운 감정에 물들기 마련이다.

샤르망은 광기에 물들 정도로 정신이 나약하진 않지만 오랜 전투로 아직까지 온통 신경이 곤두선 상태였다.

그래서 이 가게 입구 주변에 누군가 서성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도둑인가? 습격인가.’

근처를 서성이는 기척은 평범하지 않았다. 온몸을 찌를 정도로 강한 마력이 느껴졌다.

이런 마력을 가진 이가 흔치 않은데…….

‘검이 없군.’

있는 거라곤 주방에 있는 날이 무딘 부엌칼뿐이었다. 

하다못해 토마토도 제대로 자르지 못할 만큼 날이 무딘 과도 크기의 칼.

샤르망은 하는 수 없이 그걸 가지고 문 쪽으로 다가갔다.

“샤르망 페페. 문 좀 열어봐. 의뢰했던 물건 받으러 왔어.”

기척을 죽였는데도 상대방은 샤르망의 기척을 느낀 것처럼 거리낌 없이 불렀다.

‘의뢰자?’

샤르망이 살기를 죽였다. 그러곤 칼을 품속에 숨긴 뒤 걸쇠를 풀어 문을 열었다.

“역시 아직 안 잤군. 오늘 아침에 가지러 왔어야 했는데 연구하느라 정신이 팔려 늦었어. 대신 사례는 충분히 하지.”

동시에 남자의 목소리가 더욱 또렷해졌다.

이상하게도 목소리가 귀에 익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친 순간, 샤르망은 다리 힘이 풀려 몸을 휘청일 뻔 했다.

눈앞에는 전쟁터에서 자신이 직접 목숨을 거뒀던 엘리움의 마탑주 아힐 더프가 서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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