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의 세신사 영애님-148화 (148/150)

외전 특별편 4화.

그날도 네 남자는 우테 벌레를 치러 떠났어요.

“그럼 집 좀 잘 부탁해, 공주!”

“다녀오겠습니다, 공주마마.”

“돌아오면 또 때 밀어줘.”

“흐아아암.”

일하기 싫어하는 루헤를 끌고 나가느라 조금 시간이 오래 걸리긴 했지만.

뭐 그런대로 큰 문제는 없었어요.

얀피르가 산수이 공주에게 마지막 당부를 했어요.

“낯선 사람을 조심해, 공주님.”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세요!”

네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산수이 공주는 다시 한 번 소매를 걷어붙였어요.

“아무리 그래도 공짜로 얹혀사는 건 좀 눈치 보여. 얼른 청소를 시작하자!”

산수이는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란 걸 모르고 있었어요.

어째서인지 집은 점점 더 더러워져만 갔어요.

그래서 요리를 해보았지만.

“으, 으악!”

웬 괴이한 음식이 만들어졌어요.

결국 산수이는 의기소침한 채 이태리타월만 만지작거렸어요.

궁에서 들고나온 이태리타월은 어느새 너덜너덜해져 가고 있었어요.

하지만 다른 여분은 없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는데.

이러다가 때수건에 빵꾸라도 난다면 정말 큰일이었어요.

‘조만간 새로 하나 사야겠는데?’

하지만 때수건을 어디 가서 사야 한단 말인가요.

‘제국 수도 상점에 나갔다간, 황후 마마에게 들키고 말 텐데.’

그때였어요.

똑똑-

갑자기 누군가 오두막집의 문을 두드렸어요.

뭔가 이상했어요.

네 남자가 벌써 돌아왔을 리가 없으니까요.

‘얀피르가 낯선 사람을 조심하라고 했지.’

산수이는 찍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있었어요.

하지만 또다시 노크 소리가 들렸어요.

“계시우? 춥고 배고픈 이 할미를 좀 도와다우.”

나이 지긋한 할머니의 목소리였어요.

웃어른을 공경하는 산수이 공주에겐 참기 힘든 유혹이었어요.

산수이 공주님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보았어요.

그곳에는 웬 노파가 바구니를 든 채 서 있었어요.

노파가 힘겹게 말했어요.

“예쁜 아가씨, 때수건 하나 사시겠소?”

이 깊은 숲속에 때수건을 팔러 오다니.

몹시 수상했어요.

하지만 때수건을 본 산수이 공주는 그만 마음이 흔들리고 말았어요.

‘때수건 사러 수도로 나가는 것 보다, 이게 더 안전하지 않을까?’

결국 산수이 공주는 노파에게서 때수건을 사들이고 말았답니다.

“할머니, 때수건 한 장만 주세요!”

그리고 새로운 때수건으로 자신의 몸을 밀어보았어요.

“아얏!”

순간 온몸에 독이 퍼지며, 산수이 공주는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답니다.

***

랄랄랄랄랄라~ 랄라 랄랄라~

네 남자는 콧노래와 함께 퇴근했어요.

어서 집에 돌아가서 산수이 공주님께 때밀이를 부탁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건, 공주의 싸늘한 주검이었어요.

“공주님!”

“안 돼요!”

그들은 공주를 끌어안고 목놓아 울었지만, 그녀는 깨어나지 않았어요.

그녀의 옆에는 웬 때수건이 떨어져 있었어요.

무언가 잘못되었다 느낀 그들은 때수건을 들고 마법사 사우나스를 찾아갔답니다.

때수건을 본 사우나스의 눈이 커졌어요.

“이, 이건……!”

휘온이 소리쳤어요.

“역시 아시는 물건입니까!”

“정말 고급스럽게 잘 만든 이태리타월이네요? 호호호.”

사우나스도 모르는 눈치였어요.

역시나 시간 낭비였던 거예요.

‘그럼 그렇지…….’

네 남자는 짜증 내며 돌아섰어요.

그때, 뒤에서 사우나스가 조용히 말했어요.

“마법이 걸린 때수건이네요.”

“……!”

네 남자가 사우나스를 돌아봤어요.

얀피르가 물어봤어요.

“그럼 공주님을 살릴 방법이 있다는 건가?”

“응? 공주님은 돌아가신 게 아닐 텐데요? 마법에 걸려 잠이 드신 것뿐.”

프리트가 버럭 소리쳤어요.

“그럼 진작 그렇게 말했어야지, 이 마법사 자식아-!”

“호호호.”

아무튼 사우나스의 설명은 간단했어요.

바로, 세상에서 때를 가장 잘 미는 사람이 공주님한테 사랑의 키스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죠.

공주님이 쓰러진 지금, 세계 최고의 세신사는 바로 황후였어요.

물론 황후가 공주님에게 키스할 리 없었죠.

그러니 이대로라면 공주님은 영영 눈을 뜨지 못할 것이었어요.

‘그렇게 둘 것 같냐!’

그날부터 네 남자는 세신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후욱 훅.

레프트 라이트!

고된 훈련이 이어졌어요.

그렇게 다들 정신없이 세신 연습을 하고 있을 때였어요.

쪼오오옥-!

갑작스러운 입맞춤 소리에, 모두는 고개를 돌아봤어요.

얀피르 놈이 산수이 공주님께 먼저 입맞춤을 하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게다가.

“흐아암- 잘 잤다!”

공주님이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어요.

어느새 얀피르는 대륙 최고의 세신사가 되어있던 것이었어요.

하지만 본인은 그 사실을 모른 채, 일단 그냥 입술부터 들이밀고 본 것이었죠.

얀피르 놈이 신나서 공주님을 끌어안았어요.

“공주님!”

“당신이 저를 깨워주셨나요?”

“네!”

둘은 어느새 멜로드라마를 찍고 있었어요.

세 남자는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알 수 없었어요.

어쨌든 산수이 공주님이 깨어나셨으니까요.

그럼 된 거 아니겠어요?

~세신 공주와 네 남자들~ 끝

***

명작 극장 (4)

~미녀와 드래곤~

롱롱타임어고.

숲속의 성안에는 멋진 왕자님이 살고 있었어요.

하지만 왕자님은 대마왕의 심기를 건드려 저주에 걸리고 말았답니다.

루헤 대마왕이 소리쳤어요.

“감히 내 수면을 방해하다니……! 당신에게 드래곤이 되는 저주를 내리겠어요!”

그렇게 얀피르 왕자님은 사나운 드래곤의 모습으로 변했어요.

“크르르르…….”

마왕이 그에게 장미꽃 한 송이를 건네며 말했어요.

“저주를 풀고 싶다면, 이 장미가 시들기 전까지 진실로 깨끗해져야 해요.”

진실로 깨끗해져야 한다고?

루헤가 마지막 경고를 하고 사라졌어요.

“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말해선 안 돼요. 만일 이를 어기면, 당신은 죽게 될 거예요.”

그날 이후로 얀피르는 매일같이 씻고, 또 씻었어요.

하지만 마왕의 저주는 풀리지 않았어요.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어요.

***

카데베르 마을에는 아름다운 아가씨가 살고 있었어요.

산수이 벨 비덴비덴.

역시나 미들 네임은 그러려니 넘어가기로 해요.

아무튼 그녀는 마을에서 괴짜라 불리고 있었어요.

때밀이를 너무나 좋아했기 때문이죠.

“벨…… 아니, 산수이는 정말 너무 이상해!”

“무슨 아가씨가 때밀이를 저리 좋아한담?”

하지만 마을 청년들은 아름다운 산수이를 사랑했어요.

특히나 프리트 개스톤 드 카데베르는 그녀의 열렬한 추종자였지요.

그는 마을에서 제일가는 근육남이었어요.

‘언젠가 산수이를 내 아내로 맞이하고 말겠어!’

한편, 산수이에게는 발명광 오라버니가 있었어요.

휘온 모리스 비덴비덴.

그는 제국 최고의 과학자가 되고 싶어 했어요.

“나는 발명왕이 될 거야!”

그렇게 휘온은 자신의 발명품을 싣고 제국 발명대회장으로 향했어요.

산수이가 그를 배웅했어요.

“조심하세요, 오라버니!”

“꼭 우승해서 호강시켜 줄 테니 기다려라!”

하지만 알다시피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어요.

휘온은 숲속에서 늑대들의 습격을 받고 말았어요.

“사, 사람 살려!”

그때, 갑자기 휘온의 머리 위로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워졌어요.

그리고 늑대들이 한 마리씩 허공으로 날아갔어요.

웬 거대한 드래곤이 그를 구해준 것이었어요.

휘온이 드래곤을 향해 말했어요.

“가, 감사합니다. 드래곤님!”

“크르르르…….”

하지만 그 드래곤은 휘온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왠지 나중에 내 딸내미를 꾀어낼 거 같이 생긴, 기분 나쁜 놈이야.’

그래서 자신의 성으로 데려가 옥에 가둬버렸답니다.

한편, 시간이 지나도 오라버니가 돌아오지 않자 산수이는 불안해졌어요.

“아무래도 내가 직접 가 봐야겠어!”

그렇게 드래곤의 성까지 도달하게 된 산수이.

“계세요?”

하지만 성안에선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어요.

성안을 배회하던 산수이는 감옥 안에 갇혀있던 자신의 오라버니를 발견했어요.

“오라버니!”

“동생아!”

하지만 감옥 문은 굳게 잠겨있어 열 수 없었어요.

산수이는 탄식했어요.

그때, 뒤에서 웬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크르르.”

드래곤이 나타난 거예요.

산수이는 뒷걸음질 쳤지만, 곧 얀피르에게 붙잡히고 말았어요.

“사, 살려주세요!”

그런데, 얀피르는 산수이에게 첫눈에 반하고 말았어요.

그는 산수이를 제 곁에 두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산수이와 거래를 했어요.

“네 오라버니를 돌려보내 주지. 대신 네가 이곳에 남아야 해.”

산수이는 길게 고민하지 않았어요.

오라버니는 어서 대회에 참가해 발명왕이 되어야 했으니까요.

“……그렇게 할게요.”

휘온은 절규했어요.

“안 된다, 산수이!”

하지만 그는 순식간에 마차에 태워져 집으로 돌려보내 졌어요.

얀피르가 만족스러운 듯 씩 웃었어요.

“자, 그럼 이제 나랑 둘이 재미나게 살자.”

하지만 산수이의 표정은 잔뜩 굳어있었어요.

“재미나게 살자고요? 나와 오라버니를 협박해놓고?”

오랜 시간 짐승으로 살아온 얀피르는, 사랑이란 걸 처음 해 봐서 미숙했던 거예요.

산수이가 소리쳤어요.

“당신은 짐승이야!”

얀피르는 멀어지는 그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어요.

‘연애는 어떻게 하는 거지?’

그날부터 얀피르는 산수이의 마음을 얻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어요.

보석도 주고, 예쁜 옷도 사다 줘 봤지만, 소용없었어요.

“난 이런 거 필요 없어요!”

산수이의 마음은 도통 움직일 줄 몰랐어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그날도 역시 얀피르는 저주를 풀기 위해 목욕을 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여전히 아무런 변화가 없었어요.

‘목욕하는 방법을 바꿔봐야 하나?’

그렇게 밖으로 나오던 찰나.

그는 산수이와 딱 마주쳤어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목욕탕 입구를 바라보며, 산수이가 놀라 물었어요.

“여, 여기 목욕탕이 있었어요?”

그렇게 말하는 산수이의 눈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어요.

얀피르는 직감했어요.

‘설마, 그녀가 좋아하는 게 보석도 꽃도 아닌 목욕탕이었나?’

그가 말했어요.

“궁금해?”

산수이가 고개를 끄덕였어요.

“네.”

그래서 얀피르는 앞발로 그녀의 눈을 가린 채, 목욕탕 안으로 들어섰어요.

“하나 둘 셋 하면 손을 뗄게. 하나, 둘……!”

얀피르가 손을 떼자, 산수이의 눈에 거대한 목욕탕이 들어왔어요.

그 장관에 산수이는 입을 쩍 벌렸어요.

“우와아……!”

그녀가 황홀한 듯 목욕탕을 바라보았어요.

얀피르가 말했어요.

“이제부터 이 목욕탕은 네 거야. 사용하고 싶을 때 언제든 와도 돼.”

산수이는 뛸 듯이 기뻤어요.

그래서 얀피르의 목덜미를 끌어안고, 그의 뺨에 입을 맞췄어요.

“고마워요!”

“크, 크헉!”

얀피르의 가슴이 세차게 뛰었어요.

그날부터 산수이의 마음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어요.

늦은 저녁.

산수이는 자신의 방에서 이태리타월을 만지작거리며 생각했어요.

‘때를 밀어드린다고 하면, 드래곤님께서 싫어하실까?’

당장이라도 드래곤님의 때를 밀어드리고 싶었어요.

목욕탕 선물에 보답하고 싶었으니까요.

하지만 산수이는 망설여졌어요.

마을 사람들처럼, 드래곤님 역시 자신을 때밀이 괴짜로 볼까 봐요.

한참의 고민 끝에 산수이는 때수건을 서랍 안에 도로 넣었어요.

‘조금 더 친해지면, 그때 밀어드리자.’

그러는 사이, 마법의 장미는 점점 더 시들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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