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특별편 1화.
명작 극장 (1)
~때투성이 아가씨~
옛날 옛날, 한 옛날.
카데베르 제국에는 온천 관광지로 유명한 ‘비덴비덴’이라는 남작령이 있었어요.
그 남작가에는 아름다운 아가씨가 살고 있었답니다.
그녀의 이름은 산수이 신데렐라 비덴비덴.
미들 네임은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니 살짝 못 본 척 넘어가도록 해요.
산수이의 어머니는 그녀가 어렸을 때 병에 걸려 돌아가셨어요.
가족이라곤 아버지와 자신 둘뿐이었지만, 산수이는 항상 행복했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새어머니를 맞이하고 말았어요.
아버지가 산수이에게 새어머니를 소개했어요.
“산수이, 인사드려라. 이분이 너의 새어머니가 되실 분이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일찍 어머니를 여읜 산수이는 새로운 가족이 생긴다는 게 무척이나 기뻤어요.
그래서 새어머니를 진심으로 환영하였지요.
하지만 새어머니는 산수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답니다.
“……그래, 뭐.”
게다가 그게 끝이 아니었어요.
아버지가 산수이에게 누군가를 추가로 소개했어요.
“자, 그리고 이쪽은 오늘부터 너의 오라버니가 될, 휘온과 루헤란다.”
새어머니는 두 명의 아들을 데려오셨던 거예요.
휘온 비덴비덴.
찬란한 은발에 짙은 회색 눈동자를 가진 그는, 날렵한 턱선이 매력적인 이지적인 남자였어요.
루헤 비덴비덴.
군청색 장발을 휘날리며 웃는 그는 산수이보다도 더 아름다운 미모의 소유자였어요.
제 의붓오라버니들의 얼굴을 본 산수이는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답니다.
“너, 너무 잘생겼잖아……!”
아니 신이시여.
왜 저런 존잘남들을 제 의붓오라버니로 보내주시는 것입니까?
산수이는 신을 원망했어요.
그녀는 얼빠였기 때문이었지요.
하지만 이미 가족이 되어 만난 걸 어쩌겠어요.
팔자려니 생각하며, 산수이는 오라버니들에게 손을 내밀었어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오라버니들!”
하지만 그들은 싸늘한 눈빛으로 산수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답니다.
휘온이 생각했어요.
‘멍청한 가족은 딱 질색인데. 이 아이는 어떠려나.’
루헤는 하품했어요.
‘새로운 가족이라니, 귀찮아. 얼른 올라가서 자고 싶어요.’
산수이의 손은 허공에서 갈 길을 잃었어요.
그녀는 머쓱해져서 얼른 손을 내렸답니다.
그게 앞으로 산수이에게 닥칠 고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어요.
얼마 후, 비덴비덴 남작이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고 말았으니까요.
남작가의 모든 재산은 새어머니의 손에 넘어가고 말았어요.
그녀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산수이를 구박하기 시작했어요.
“산수이 너는 앞으로 비덴탕을 이용할 수 없다!”
“어, 어머니! 그것만은!”
“너는 하인들과 함께 아무 데서나 대충 씻도록 해라!”
차라리 밥을 굶기지, 목욕탕을 쓰지 말라니.
누구보다도 목욕을 사랑했던 산수이는 크게 절망했어요.
그녀는 매일 밤을 눈물로 지새워야 했답니다.
“으흐윽…… 목욕을 하고 싶어!”
게다가 그게 끝이 아니었어요.
새어머니는 산수이에게 이태리타월을 던져주며 말했어요.
“너는 앞으로 우리들의 목욕 시중을 들도록 해라!”
귀족 아가씨에게 목욕 시중을 들게 하다니.
그보다 더 굴욕적인 처사는 있을 수 없었어요.
남작저의 사용인들은 모두 산수이를 위해 눈물을 흘렸어요.
하지만 산수이의 표정은 전혀 어둡지 않았어요.
그녀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어요.
“저, 정말 그래도 되나요, 어머니?”
“으, 으응?”
사실 산수이에게는 은밀한 취향이 있었던 거예요.
바로 때밀이.
그녀는 때 미는 일을 정말로 좋아했어요.
하지만 아버지께 혼날까 봐 자신의 취향을 숨기며 살아야만 했죠.
그런 그녀에게 때수건을 쥐여주다니.
그건 벌이 아니라 상이었어요.
산수이가 기쁜 표정으로 외쳤어요.
“열심히 밀어드리겠습니다, 어머니!”
그날부터 산수이의 삶은 다시 행복으로 가득 차게 되었답니다.
특히나 두 오라버니의 때를 밀어드린 후, 산수이의 일상이 바뀌기 시작했어요.
그들은 산수이의 때밀이를 통해 신세계를 경험하게 되었던 거예요.
맨 먼저 휘온의 눈이 번쩍 뜨였어요.
‘이, 이게 뭐지……! 나의 기대에 완벽히 부합하는, 이 환상의 기술은?!’
마사지 베드 위에서 자고 있던 루헤 역시 때를 밀리자 움찔했어요.
‘잠을 자는 것보다 더 짜릿한 게 있을 줄은 몰랐네요!’
그렇게 두 남자는 자신들도 모르는 새 산수이에게 스며들기 시작했어요.
그녀를 향한 괴롭힘도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어요.
비덴탕 물걸레 청소를 하고 있던 산수이에게, 휘온이 무언가를 휙 던져줬어요.
“크, 흠흠! 오다 주웠다. 너 해라.”
그건 금사가 수놓아진 최고급 이태리타월이었어요.
산수이가 함박웃음을 지었어요.
“감사합니다, 오라버니……!”
한편 루헤는 산수이의 업무 스케줄을 몰래 바꿔주곤 했어요.
“오늘은 마구간 청소 말고, 내 때밀이를 해 주세요, 동생.”
“그럴게요, 오라버니!”
그렇게, 두 오라버니는 새어머니 모르게 산수이를 도와주며 하루하루를 보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제국 전역에 칙령이 내려졌어요.
***
[모든 제국민에게 고한다. 황태자의 불면증을 치료해주는 자에게 큰 상을 내리겠노라.]
제국의 황태자 프리트는 오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어요.
그래서 황제는 프리트의 병을 치료하기 위한 무도회를 열었어요.
누구든 무도회에서 프리트를 잠들게 하면 막대한 포상금을 받을 수 있다고 선포했답니다.
칙령을 읽는 산수이의 눈이 빛났어요.
‘이 돈이면, 목욕탕 딸린 집을 살 수 있어!’
휘온과 루헤가 자신을 도와주고는 있지만, 그녀는 여전히 비덴탕에서 씻을 수 없었어요.
새어머니의 방해 때문이었죠.
산수이는 자신의 때밀이 능력으로 프리트를 재워보겠다 다짐했어요.
하지만 산수이만 이런 생각을 한 게 아니었어요.
칙령을 읽은 휘온과 루헤의 얼굴에 불안감이 번져갔어요.
그들은 서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산수이가 저 무도회에 가게 되면 반드시 우승할 텐데.’
‘그럼 더 이상 우리의 때를 밀어주지 않겠죠……?’
그래서 두 남자는 합심했어요.
산수이가 무도회에 가지 못하도록 말이에요.
쫘악- 쫙-
휘온과 루헤는 집에 있는 모든 이태리타월을 다 찢어버렸어요.
새어머니는 그 모습을 보고 크게 만족했어요.
그녀는 산수이를 꾸짖었어요.
“어디 천한 것이 무도회에 가려고 해? 우리가 다녀올 동안, 넌 집이나 보고 있어라!”
그렇게 새어머니는 휘온과 루헤만을 데리고 무도회로 향했어요.
“흐윽…… 으흐윽……!”
처참하게 찢긴 이태리타월 조각을 보고, 산수이는 눈물을 흘렸어요.
그때였어요.
딴따라란~ 따라라란~
갑자기 경쾌한 음악 소리와 함께, 하늘로부터 새하얀 빛줄기가 내려왔어요.
놀란 산수이가 고개를 들자, 그 앞에는 면사포로 얼굴을 가린 한 여인이 서 있었어요.
“슬퍼하지 말아요, 때투성이 아가씨.”
“다, 당신은 누구세요?”
“나는 목욕의 요정, 사우나스.”
사우나스가 요술봉을 치켜들며 말했어요.
“목욕을 사랑하는 당신의 마음씨에 감동해, 그대를 도와드리러 왔답니다.”
“그, 그럼 저도 무도회에 갈 수 있는 건가요?”
“물론이죠~! 자, 그럼 황궁에 갈 준비를 해 볼까요? 때 빼고 광내고~ 번쩍번쩍하게~ 이얍~☆”
요정님이 주문을 외우자, 산수이의 누더기 옷이 순식간에 아름다운 드레스로 변했어요.
게다가 그녀의 손에는 금사로 만든 때수건 장갑이 끼워져 있었답니다.
“이, 이것은……!”
그 찬란한 광채에 산수이는 눈이 멀 지경이었어요.
사우나스가 말했어요.
“자아, 그럼 이번에는 탈것을 마련해 줄게요. 이랴이랴~ 오빠 달려~☆”
“?!”
뭔가 들어서는 안 될 말이 얼핏 들린 것 같았어요.
하지만 곧 그녀의 앞에 고고한 자태의 검은 드래곤이 나타났답니다.
사우나스 요정님이 말했어요.
“자아~ 인사하세요! 오늘 당신을 황궁으로 데려다줄 드래곤이랍니다?”
그 드래곤은 황금색 눈을 번뜩이며 산수이를 바라보았어요.
“크르르…….”
산수이 역시 제 눈앞의 드래곤을 경이롭게 바라보았어요.
“아, 안녕하세요, 드래곤 님.”
“얀피르.”
“네?”
“얀피르라고, 내 이름.”
얀피르라는 이름의 드래곤은 산수이에게 다가와 그녀를 핥기 시작했어요.
너무도 간지러워 산수이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어요.
“아하하……! 간지러워요, 드래곤 님.”
“주인이라고 부를게. 잘 부탁해.”
“저도 잘 부탁드려요.”
그러자 드래곤이 산수이를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어요.
‘왜 저렇게 날 뚫어져라 쳐다보실까?’
하지만 그 이유를 알 길이 없었어요.
그때, 사우나스가 말했어요.
“제 마법은 열두 시가 되면 풀린답니다? 반드시 그 전에 집으로 돌아와야 해요. 아셨죠?”
“네, 요정님.”
그렇게 산수이는 얀피르를 타고 황궁으로 날아갔어요.
얀피르가 산수이에게 말했어요.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12시가 되기 전에 서둘러 나와야 해, 주인?”
“네, 드래곤 님.”
그렇게 산수이는 무도회장 안으로 들어갔어요.
하지만 너무도 달라진 모습에, 새어머니와 오라버니들은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답니다.
황궁 안에는 벌써 수많은 사람이 모여있었어요.
프리트는 황제의 옆에 늠름한 모습으로 앉아있었죠.
산수이는 프리트의 모습을 보곤 입을 쩍 벌렸답니다.
‘잘생겼다……!’
한 마리 사자 같은 남성미를 뿜어내는 프리트를 보며, 산수이는 저도 모르게 침을 슥 닦아냈어요.
한편, 무도회 참석자들은 한 줄로 서서 저마다의 방법으로 프리트를 잠들게 하려 노력했어요.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어요.
한참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산수이의 차례가 왔어요.
“제국의 황태자 저하를 뵙습니다.”
그녀는 프리트에게 인사를 올린 뒤, 곧바로 때를 밀려고 했어요.
별다른 이태리타월이 없어도, 이미 그녀의 장갑 자체가 때수건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갑자기 황태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어요.
그가 말했어요.
“그 전에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
“예?”
프리트가 허리를 굽혀 인사했어요.
“그대와 춤을 출 수 있는 영광을 누리고 싶은데.”
“!”
때투성이 아가씨는 졸지에 제국의 황태자와 춤을 추게 되었어요.
그렇게 두 사람은 손을 잡고 홀 한가운데로 향했어요.
곧이어 아름다운 선율이 흐르며, 프리트가 그녀를 리드하기 시작했어요.
얼마간의 꿈같은 시간이 흘렀어요.
프리트가 산수이를 바라보며 말했어요.
“영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잠시 시간을 내줄 수 있겠나?”
산수이는 고민에 빠졌어요.
‘아, 어쩌지? 열두 시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하지만 어쩌겠어요.
계급 사회에서 황태자가 까라면 까야 하는 것을요.
“예, 저하.”
그렇게 두 사람은 테라스로 향했답니다.
별이 빛나는 밤하늘 아래에서, 프리트는 다짜고짜 산수이에게 고백했어요.
“첫눈에 반했다. 나와 결혼해서 황태자비가 되어 줘, 영애.”
“예?!”
갑작스러운 5G 전개에 산수이는 깜짝 놀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