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5화.
늦은 저녁의 비덴탕 안.
산수이와 얀피르는 오늘도 십 남매…… 아니, 집 나간 딸 하나를 제외한 아홉 남매의 때를 밀어주고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아이들 세신만큼은 남에게 맡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막 돌이 된 막내딸과 세 명의 아들은 얀피르를 따라 남탕으로 들어갔고.
나머지 다섯 명의 딸은 산수이를 따라 여탕으로 갔다.
얀피르가 산수이를 보며 말했다.
“그럼 애들 다 씻기고 만나, 주인.”
“응, 오늘도 파이팅이야.”
그렇게 부부는 비장한 각오와 함께 목욕탕 안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얀피르가 손에 이태리타월을 감은 채 때밀이실로 들어섰다.
잠든 막내를 등에 업은 채로.
얀피르는 우선 큰아들 얀의 때부터 밀어주기 시작했다.
얀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났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때를 밀어주는 시간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이윽고 때수건을 끼운 얀피르의 손이 아들의 등 위에서 박차를 가했다.
벅벅벅—
때밀이가 간지러웠는지, 아이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캬하하!”
“아들, 때 미는 거 좋아?”
“네!”
마침내 때밀이가 끝나자, 얀피르가 말했다.
“다 됐다. 가서 야니 불러줄래?”
“네, 아빠.”
이어서 다음 아이들이 차례대로 때를 밀러 왔다.
산수이 역시 여탕에서 딸들의 때를 밀어주고 있었다.
제 엄마에게 때를 밀리는 아이들은 어김없이 속내를 모두 털어놓고야 말았다.
수리얀이 말했다.
“엄마. 나, 반에 좋아하는 남자애가 생겼어요.”
산수이가 놀라 물었다.
“잘생겼어?”
“아니, 아빠보다 못해요.”
“저런.”
“애초에 우리 반에 아빠보다 잘생긴 애가 없어요, 엄마.”
산수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보다 잘생기기가 쉽지 않지.”
그러자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엄마는 아빠가 잘생겨서 결혼한 거예요?”
“아니. 정말 중요한 건 얼굴이 아니란다.”
“그럼요?”
“남자는 말이야…….”
산수이가 딸의 등을 벅벅 밀며 대답했다.
“일단 귀여워야 해.”
“네?!”
딸이 놀라 물었다.
“아빠가 귀엽다고요? 아빠는 엄청 크고, 힘도 세고, 이따만큼 멋있는데?”
그러자 산수이가 미소 지었다.
“그치만 엄마 눈에는,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걸?”
“??”
아이는 여전히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렇게 가족 때밀이는 한동안 계속됐다.
때밀이가 간지러운지 아이들은 계속해서 킥킥대고 웃었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산수이와 얀피르는 속으로 웃었다.
‘애들이 때밀이의 참맛을 알려면 좀 더 자라야겠지.’
언젠간 애들 입에서도 시원하다는 소리가 나오겠지.
한참이 지난 후 드디어 아홉 남매의 세신이 끝났다.
두 부부는 아이들을 저택 안으로 돌려보낸 후, 노천탕에서 만났다.
어느새 어두워진 그곳은 풀벌레 소리로 가득했다.
노천탕 옆에 밝혀둔 램프의 불빛이 로맨틱한 분위기를 더해주고 있었다.
산수이는 얀피르와 함께 탕 안으로 들어갔다.
아홉 명의 아이 중 유일하게 막내가 그들과 함께였다.
두 사람은 서로 머리를 맞대며 온수에 몸을 지졌다.
“좋다, 그치.”
“응.”
그때, 얀피르의 품에 안겨있던 막내가 몸을 움직였다.
산수이는 제 막내딸을 바라보았다.
막내 역시 조금 더 자라면 직접 때를 밀어줄 생각이었다.
산수이는 세신 일을 정말 좋아했다.
하지만 한 번에 천방지축 여섯 명의 때를 밀어주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녀가 저도 모르게 근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다 좋은데, 내 체력이 버텨주려나 모르겠네.’
얀피르는 제 반려의 속내를 단번에 눈치챘다.
그가 산수이의 뺨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주인, 걱정하지 마. 당분간 막내 때밀이는 내가 맡을 테니까. 다른 애들도 학교 들어가기 전까진 다 나한테 보내라니까?”
“하지만 애들이 자라면 결국 내가 밀어줘야 하는걸. 미리 연습해놓고 좋지 뭐.”
“너 그러다 병나.”
“하루에 손님 몇십 명씩 밀어드린 적도 있는데, 뭐?”
“우리 애들이 좀 드세야 말이지.”
“하아, 그건 그래.”
얀피르의 체력을 그대로 물려받은 아홉 남매가 아닌가.
그들은 정말이지 지칠 줄 모르는 경주마처럼 뛰어놀았으니.
그때, 잠이 깬 막내가 뒤척이기 시작했다.
얀피르가 아이의 등을 토닥였다.
“어이구, 우리 예쁜이 깼어요.”
그 모습을 보고 산수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역시 열한 번째 아이는 안 돼.’
여기서 한 명이 더 늘어난다면, 그땐 정말 제 체력으론 역부족이었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얀피르, 나 뭘 좀 만들어 볼까 봐.”
“어떤 거?”
“너랑 내가 안전하지 않은 날에도 사랑할 수 있는 거.”
“……?!”
얀피르의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그가 침을 꿀꺽 삼켰다.
“혹시 네 원래 세상 물건이야?”
“응.”
“거긴 정말 없는 게 없구나……?”
산수이가 웃었다.
“근데, 그렇게 쉽게 만들 수 있는 건 아니야.”
“주인……!”
얀피르가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가 애원하듯 말했다.
“오늘부터 내가 애들 세신 모조리 맡을 테니까, 넌 연구 개발에만 집중해.”
“도, 독박 육아를 하겠다고?”
“응.”
얀피르가 세차게 끄덕였다.
“일 년, 아니 그 이상이 걸려도 좋으니까. 제발 그거 만들어 줘, 응?”
그렇게 산수이의 콘돔 개발이 시작되었다.
그날부터 산수이는 집무실에 틀어박혀 연구를 시작했다.
다행히 마계의 밀림에는 고무나무와 비슷한 품종이 자라고 있었다.
게다가, 이젠 무엇을 하든 산수이 혼자가 아니었다.
제국에서 내로라하는 학자들이 그녀와 공동 연구를 진행하길 자처한 것이다.
“또 다른 혁신적 발명을 준비하고 계시다 들었습니다.”
“부디 저희와 함께해 주십시오, 비덴비덴 남작님.”
제국 최고의 발명가인 그녀와 함께 일한다는 건, 큰 영광이었으니까.
연구 개발은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산수이가 핵심 제조 기술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마침내 제국 최초의 피임 도구가 탄생했다.
‘드디어…… 드디어!’
이제 남은 건 임상 시험뿐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산수이를 제외한 동료 학자들이 모두 솔로였다는 점이었다.
그러니 결국, 이걸 직접 써봐야 하는 사람은……!
***
“그 새로운 발명품이라는 게 바로 이거군요.”
이르히가 샘플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말했다.
산수이의 연락을 받고 오랜만에 남작저를 방문한 그녀였다.
산수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단다.”
한참을 관찰하던 이르히가 말했다.
“엄마, 이거 저도 가져가서 테스트해봐도 될까요?”
“뭐? 설마…….”
“네, 맞아요.”
이르히가 씩 웃으며 덧붙였다.
“이걸 처음 보여드렸을 때의 공작님 표정이, 정말이지 너무 귀엽거든요.”
산수이가 놀라 물었다.
“그것도 벌써 미래에서 봤니?”
“그럼요. 몇 번이나 돌려 봤는데도 질리지가 않아요.”
얼굴이 새빨개진 채 어버버하는 휘온의 표정을, 그녀는 이미 수십 번은 더 돌려본 뒤였다.
산수이가 물었다.
“그럼 이 제품의 성공 여부도 알고 있겠구나?”
“물론이죠.”
이르히가 끄덕이며 말했다.
“엄마는 곧 제국 여성들이 세상에서 가장 감사해하는 사람이 될 거예요.”
이르히는 샘플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연락드릴게요, 엄마.”
“그래, 비행 조심하고.”
이르히는 드래곤 성체로 변해 하늘 위로 날아갔다.
딸을 배웅한 뒤, 산수이는 집무실로 돌아왔다.
어느새 저녁이었다.
마침내 그 순간이 다가왔다.
샘플을 테스트해 볼 순간이.
산수이는 집무실에 놓여있던 커다란 상자를 열었다.
달칵—
그 안에는 각종 샘플이 준비되어있었다.
산수이는 그중 하나를 집어 들고 자신의 침실로 향했다.
얀피르가 먼저 도착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인!”
그가 단숨에 달려와 산수이를 번쩍 안아 들었다.
“네 자리 따뜻하게 데워놨어.”
그가 산수이를 침대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놨다.
이부자리에는 그의 따뜻한 체온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결혼한 지 벌써 십여 년이 지났지만, 얀피르는 처음 그대로였다.
산수이는 저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정말이지, 자상하다니까.’
얀피르가 말했다.
“누워있어. 내가 불 끄고 올게.”
“아니. 불 끄지 마, 얀피르.”
그렇게 말하며, 산수이가 얀피르를 뜨거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어, 어?”
그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오, 오늘 안 되는 날 아니었어?”
“이제 그럴 필요 없어.”
산수이가 샘플을 꺼내 들어 보였다.
“이게 있으니까.”
그 물건을 본 얀피르의 눈이 커졌다.
“주인, 이거…… 설마?”
“물론 테스트를 해 봐야 알겠지만…….”
산수이가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르히가 그러는데, 열한 번째 아이가 태어날 일은 없을 거래.”
얀피르가 기쁨의 탄성을 내질렀다.
“드디어, 드디어 개발에 성공했구나!!”
산수이 역시 기쁜 표정으로 끄덕였다.
불을 끄려던 얀피르가 그대로 돌아서 산수이에게 달려들었다.
긴 밤이었다.
그날 이후, 산수이와 얀피르는 이전처럼 마음껏 사랑할 수 있었다.
카데베르 제국 여성들의 삶이 달라졌음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임신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되면서, 더 많은 여성이 사회로 진출했다.
그녀가 또 한 번 세상을 바꿔놓았다.
***
이세계 역사상 가장 강대한 카데베르 제국.
성군인 프리트 덕에 제국은 언제나 평화로웠다.
이웃 나라의 대마왕 루헤 역시 조금 게으르기는 하지만, 한 번의 전쟁 없이 마계를 잘 이끌어나가고 있었다.
수많은 여성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제국 유일의 공작 휘온은 임자를 제대로 만났다.
그리고 이곳, 비덴비덴 남작가에서는 연일 행복한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아빠! 때 밀어주세요!”
“엄마, 아빠랑 연애하던 얘기 또 해 주세요!”
산수이와 얀피르는 오늘도 아홉 명의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가족이라곤 서로밖에 없었던 그들에게, 수많은 가족이 생긴 것이다.
포대기에 막내를 업은 얀피르가 산수이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녀에게 입을 맞추었다.
“사랑해, 수희야.”
그러자 산수이가 그의 목을 끌어안고 다시 한 번 입 맞췄다.
“나도 사랑해, 얀피르.”
이를 지켜보고 있던 아이들이 재빨리 손으로 눈을 가렸다.
“꺄!”
“엄마랑 아빠, 또 뽀뽀해!”
“맨날 뽀뽀해!”
산수이와 얀피르는 서로를 마주 보며 웃었다.
정말이지,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까.
<제국의 세신사 영애님> 외전 본편 끝.
외전 특별편인 명작 극장으로 이어집니다.
(* 외전 특별편은 패러디물로 본편과 큰 연관이 없으니 감상에 참고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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