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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세신사 영애님-141화 (141/150)

외전 12화.

남의 연애사에 한창 신나있던 제국의 황제, 프리트 폰 카데베르.

하지만 그도 피해갈 수 없던 것이 있었으니.

관료들의 잔소리였다.

“폐하, 제국을 위해 부디 황후를 맞이하십시오!”

“하루빨리 후사를 보셔야 이 나라가 굳건해지지 않겠습니까!”

“제기랄.”

프리트가 휘온의 연애사에 관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결혼 잔소리도 심해져 갔다.

그러다 결국,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오고야 말았다.

바로, 마계와의 국혼이었다.

신하들이 부르짖었다.

“폐하, 언제까지 마계를 저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습니다. 국혼을 통해 동맹을 굳건히 하셔야 합니다!”

“맞습니다! 저들이 또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일이 아닙니까!”

프리트의 머리가 지끈거려왔다.

그는 당분간 결혼할 생각이 전혀 없었으니까.

그런데 마계와의 국혼이라니.

심지어 상대는 더 끔찍했다.

“그러니까 지금…… 이 초상화가 모두 마왕 놈의 누이들이란 거지?”

루헤를 쏙 빼닮은 마족 여인들의 초상화를 보며, 프리트는 인상을 썼다.

루헤의 아버지는 유명한 인큐버스였다.

그는 루헤를 낳은 후, 방방곡곡을 떠돌며 수많은 자손을 퍼뜨렸다.

물론 루헤는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형제자매가 있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했다.

“하암. 관심 없어요, 그딴 거.”

가족 얘기만 나오면 하품을 하는 그였다.

“마족은 당신네 인간들과는 달리 핏줄에 그리 연연하지 않으니까요.”

그러니, 지금 관료들은 헛짓거리하는 것이었다.

프리트가 그의 여동생과 결혼한들, 그것은 두 나라 사이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루헤는 마음만 먹으면 제 혈육도 베어버릴 수 있는 놈이니까.

귀찮아서 안 할 뿐이지.

프리트가 속으로 혀를 찼다.

‘쯧. 앞으로도 계속 날 귀찮게 하겠지. 그러니 한 번은 제대로 짚고 넘어가야겠는데.’

그렇게 프리트가 마족들의 습성에 관해 설명하려던 찰나.

쾅-!

갑자기 대전의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 국혼, 제가 대신하겠습니다!”

모두가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발레아나 공주였다.

볼이 발갛게 상기된 그녀가 모두를 향해 미소 짓고 있었다.

프리트는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바, 발레아나!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

발레아나가 말했다.

“루헤 님…… 아니, 대마왕은 자신의 형제자매들과 전혀 교류하지 않는다 들었습니다.”

그녀가 프리트와 관료들에게 다가갔다.

“황제 폐하께서 마계와 국혼을 올리셔도, 그 동맹은 무용지물이 되기에 십상일 터. 그러니 황녀인 제가…….”

그녀의 눈빛이 결연하게 빛났다.

“제국을 위해 대마왕과 국혼을 올리겠습니다!”

“!!”

대전에 있던 모든 관료는 그녀의 혜안에 놀랐다.

확실히 좋은 방법이었다.

그 강하다고 소문난 대마왕과 직접 혼례를 올린다니.

이보다 더 굳건한 동맹 관계는 없을 터였다.

하지만 관료들의 바람과는 달리, 프리트의 표정은 잔뜩 구겨졌다.

그가 큰 소리로 호통쳤다.

“그게 무슨 소리냐! 발레아나, 내가 널 그 사지로 보낼 것 같아-!!”

아니, 사지 아닌데요!

“존경하는 황제 폐하, 저는 정말로 괜찮습니다. 이 제국을 위해서 기꺼이……!”

하지만 프리트가 발레아나의 진심을 알 리 없었다.

그가 제 동생을 애틋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설령 제국이 위험에 처하더라도, 내가 널 그놈에게 보낼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발레아나. 그러니 안심하거라. 내 너에겐 곧 최고의 신랑감을 찾아줄 테니.”

아니? 그거 아니에요, 오라버니!

제발 그놈에게 보내줘요!

***

몇 번을 시도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프리트는 발레아나를 루헤에게 시집보내느니, 차라리 전쟁을 일으키겠다는 입장이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그날 이후, 프리트가 이웃 왕국에서 그녀의 신랑감을 물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아, 어쩌지.”

발레아나는 절망했다.

사랑하는 임을 두고 다른 사내와 결혼하라니.

산수이를 찾아가 봤지만, 그녀의 입장 역시 똑같았다.

“언니, 나와 루헤 님의 국혼이 성사될 수 있도록 도와주면 안 돼?”

그 말에 산수이와 얀피르 모두가 경악했다.

산수이가 말했다.

“발레아나? 내가 루헤는 포기하라고 했잖아.”

“왜애-! 언니, 난 종족 같은 거 정말 상관없다니까?”

“하아. 루헤가 마족이라서, 대마왕이라서 그러는 게 아니야.”

“그러면?”

산수이가 발레아나의 어깨에 손을 턱 올렸다.

“발레아나, 배우자가 될 사람은 말이야. 음…… 적어도…… 성실해야 해.”

산수이는 속으로 루헤에게 사죄했다.

‘미안해요, 루헤! 뒷담화 하려던 건 아니었어요.’

하지만 발레아나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모습이었다.

“루헤 님은 이미 충분히 성실하신데? 한 나라를 이끌어가고 계셔! 전쟁도 막아내셨어!”

그러자 옆에서 얀피르가 거들었다.

“아니 최소한 잠이라도 좀 적당히 자야지. 그놈은 정도가 없어, 정도가.”

“아앗.”

발레아나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그그 그러시군요. 루헤 님은 저, 정도를 넘어서시는가 보군요!”

그 모습을 본 산수이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아니, 그 잠 아니야!

하지만 이미 발레아나는 착각의 늪에 빠져있었다.

그녀가 수줍게 얼굴을 붉혔다.

“저, 저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어요. 아, 물론 몸도…….”

마음의 준비 하지 마!

아니, 몸의 준비는 더 하지 마!!

산수이와 얀피르가 아무리 말려도 소용없었다.

그녀는 이미 눈에 콩깍지가 열 겹은 씌어있었으니까.

하지만 발레아나의 마음이 어떠한들 소용없었다.

얼마 후부터 그녀에게 수많은 구혼장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발레아나는 매일 눈물로 지새웠지만, 그녀의 사랑을 응원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 사랑의 조력자는 의외의 곳에서 등장했다.

***

전쟁이 끝난 후, 마왕성에서 일하게 된 휴와 듀.

일개 하급 마족에서 특급 승진을 한 것이다.

게다가, 드디어 인간 세계의 과일을 마음껏 먹으며 살 수 있다니.

처음엔 하루하루가 신나고 즐거웠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것도 매일 먹으니 질렸다.

뭔가 더 자극적인 게 필요했다.

휴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그거 먹고 싶다.”

듀가 물었다.

“케이크?”

“응응!”

두 꼬마 박쥐 마족은 꿈꾸듯 그날을 떠올렸다.

웬 인간 여자가 루헤 님께 선물했던, 그 달콤했던 빵 조각.

모양도 굉장히 예뻤었지.

이젠 꿈에서도 보일 지경이었다.

마왕성 부엌도 몇 번 털어먹어 봤지만, 그때 그 맛이랑 전혀 달랐다.

그러다 우연히 알게 되었다.

그 정도의 고급스러운 맛을 낼 수 있는 건, 제국 황실의 파티시에뿐이라는 걸.

휴와 듀는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파티시에가 뭐지?”

“인간 이름인가?”

그 인간의 이름이 무엇인지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일단 만나러 가자.

그렇게 휴와 듀는 새벽 밤을 날아 제국의 황궁으로 향했다.

작은 박쥐 모습으로 황궁을 침투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문제는 그 넓은 황궁 안에서, 어떻게 파티시에란 놈을 찾느냐는 것이었다.

“파티시에라는 인간은 부엌에 있을 텐데!”

“건물 너무 커! 부엌 안 보여!”

그렇게 환풍구를 통해 황궁 내 이곳저곳을 떠돌던 휴와 듀.

“맛있는 냄새를 추적해보자!”

“응응”

하지만 꼭두새벽에 음식 냄새가 날 리 없었다.

그때, 갑자기 무언가 고소하면서도 짭조름한 냄새가 났다.

킁킁.

옥수수 향 같기도 하고, 마늘 향 같기도 한 이건 뭐지?

“단내도 나!”

“따라가 보자!”

그렇게 냄새의 근원을 따라간 휴와 듀.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군침 도는 냄새는 계속해서 장소를 이동했다.

“뭐지 뭐지?”

“계속 따라가!”

아니, 음식에 발이 달린 것도 아니고?

어쨌든 휴와 듀는 계속해서 냄새를 따라갔다.

그렇게 두 꼬마 박쥐가 도착한 곳은.

웬 핑크빛이 가득한 방 안이었다.

“여기 부엌 아닌데?”

“번쩍번쩍한데?”

그때, 휴와 듀는 실수로 발이 미끄러져 방 안으로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툭-

“켁!”

“끅!”

이상한 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본 건.

발레아나 공주였다.

“으응?”

사실 그녀는 시녀들 몰래 팝콘 야식을 먹고 있었다.

발레아나는 소리가 난 쪽으로 다가가 보았다.

그곳엔 웬 새끼 박쥐 두 마리가 비단 카펫 위에 떨어져 있었다.

“바, 박쥐?!”

하지만 그냥 평범한 박쥐 같지가 않았다.

털 색깔이 붉고 푸른 것이, 꼭…….

그때, 발레아나를 본 휴와 듀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그때 그 인간…… 읍!”

“맛있는 빵! 으읍!”

발레아나 역시 눈이 휘둥그레졌다.

“마, 말을 할 줄 아네?!”

휴와 듀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슬쩍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발레아나가 이미 그들을 움켜쥔 후였다.

“놔, 놔라 인…… 읍!”

“너희들 역시 마족이구나?”

“아닌데!”

“맞네.”

발레아나의 눈빛이 불안으로 물들었다.

황궁에 몰래 침입한 마족이라.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마왕이…… 루헤가 인간계를 배신했나.

만일 정말 그런 거라면 어떡하지?

그때 발레아나의 머릿속에 방금 전 박쥐들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저 박쥐들, 아까 맛있는 빵이라고 말하지 않았나?’

게다가 분명 자신을 이미 아는 눈치였다.

제 인생에 마족을 직접 마주했던 건 단 한 번밖에 없었는데.

‘황실 수제 케이크를 들고, 산수이 언니를 찾아갔던 날!’

그날 루헤와 셋이 함께 마주 앉아 다과를 즐겼지.

그렇다면 이 마족들은 혹시?

발레아나가 물었다.

“너희들, 혹시 루헤 님의 수하들이니?”

그러자 꼬마 마족들이 움찔했다.

하지만 그들은 대답 대신 찍찍 소리를 냈다.

발레아나가 되물었다.

“루헤 님이 너희를 보내신 거야?”

그러나 휴와 듀는 여전히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발레아나가 중얼거렸다.

“큰일이네, 이게 알려진다면 전쟁이 다시 일어날 텐데. 황궁에 몰래 잠입한 마족 첩자라니…….”

결국 꼬마 박쥐들은 입을 열고 말았다.

“처, 첩자 아니다!”

“달콤한 빵 먹으러 왔다!”

“파티시에 찾아서!”

“파티시에?!”

잠시간 꼬마 박쥐들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 말을 듣는 발레아나의 눈이 점점 빛나기 시작했다.

마침내 찾아낸 것이다.

마왕성에 갈 방법을.

그녀가 꼬마 박쥐들을 향해 말했다.

“그 맛있는 빵, 또 먹을 수 있게 해 줄 수도 있는데.”

“정말?”

“정말 정말?”

“대신 한 가지 부탁이 있어.”

발레아나가 그들을 붙잡고 있던 손을 놓아주자, 휴와 듀는 신나서 날아올랐다.

“뭔데 뭔데!”

“부탁 뭔데!”

“날 마왕성으로 데려가 줘.”

“!!”

꼬마 박쥐들은 날갯짓을 멈췄다.

그들이 조용히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휴가 말했다.

“그건 어렵다.”

발레아나는 절망했다.

역시 안 되려나.

그때, 듀가 말했다.

“우리가 너무 작아서, 인간 너를 들어 올릴 수 없다.”

그쪽이었냐!

시무룩해진 휴와 듀를 보며, 발레아나가 말했다.

“걱정 마, 나에게 좋은 방법이 있으니까.”

“좋은 방법?”

“응.”

발레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가 마법 스크롤에 좌표만 찍어주면 돼.”

텔레포트가 가능한 마법 스크롤.

휘온의 마도구 사업 덕에, 이제는 제국에서 흔해진 물건이었다.

만일을 대비해서 한 장 구매해둔 게 이렇게 도움이 될 줄 몰랐다.

발레아나가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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