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의 세신사 영애님-139화 (139/150)

외전 10화.

자신의 마차 안에서 예상치 못하게 이르히를 맞닥뜨린 휘온.

“?!”

그는 너무 놀라 마차 문을 도로 닫아버렸다.

아니, 쟤가 왜 여기에 있지?

아까 분명히 아이가 사라졌다는 소리를 듣지 않았던가.

이거 잘못하면 얀피르 놈한테 오해받는 거 아냐?

‘들키기 전에 데려다 놔야겠군.’

휘온이 마차 안으로 조용히 들어갔다.

“너희 부모님이 기다리신다. 얼른 가자.”

그때 갑자기 이르히가 손을 뻗어, 그의 입에 무언가를 물려주었다.

“?!”

검은색 쪽쪽이였다.

당황한 휘온이 제 입에서 쪽쪽이를 빼냈다.

‘아니, 내 입에 들어갔던 걸 아이에게 도로 물려줄 수도 없고.’

오래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그는 재빨리 이르히를 안아 들고, 아무도 모르게 남작저 안에 데려다 놓았다.

그리고 서둘러 마차를 타고 공작저로 돌아왔다.

정말로 너무나 피곤한 하루였다.

‘하아…… 지치는군. 빨리 씻어야겠어.’

그가 사용인들에게 물었다.

“목욕물은 미리 준비해 놨겠지?”

“물론입니다, 공작님.”

휘온은 개인 욕실로 향했다.

하루의 피로를 푸는 덴 역시 목욕만 한 게 없었다.

그렇게 휘온이 옷을 벗으려던 찰나.

갑자기 그의 주머니에서 무언가가 툭 하고 떨어졌다.

아까 이르히에게서 받았던 쪽쪽이였다.

‘맞아, 깜빡 잊고 있었군.’

그가 쪽쪽이를 집어 들었다.

‘귀찮게 됐군. 소독한 후에 돌려주러 가야…….’

그런데 휘온은 뒤늦게 알아차리고 말았다.

그 쪽쪽이가.

드래곤의 비늘로 만들어져 있었다는 것을.

“?!”

그는 너무 놀라 쪽쪽이를 떨어트렸다.

데구루루—

바닥을 구르는 쪽쪽이에선 여러 가지 빛이 났다.

드래곤의 비늘.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모르지 않았다.

드래곤이 자신의 반려로 삼고 싶은 이에게 주는 선물이 아니던가.

‘미치겠군, 얀피르 놈이 오해하기 딱 좋은 상황인데.’

아무리 아이가 실수로 건네준 것이라 해도, 위험했다.

그냥 쥐도 새도 모르게 버릴까 생각도 해 봤지만.

‘이런 중요한 물건을 잘못 처리했다간 더 큰일이 생길지도 모르니.’

그러니 돌려주는 게 맞았다. 아니, 정확히는 몰래 갖다 놓아야 한다.

얀피르, 그놈에게만큼은 걸리지 않도록.

그렇게 휘온은 다음날 또다시 비덴비덴 남작저로 향해야만 했다.

***

하루 만에 다시 찾아온 남작저는 어딘지 모르게 부산스러웠다.

휘온은 집사에게 잃어버린 물건이 있다는 핑계를 댔다.

이 쪽쪽이를 어디에 갖다 놓는 게 제일 자연스러울까.

그렇게 생각하며 정원을 걷던 찰나.

산수이가 그를 향해 다급히 달려왔다.

“헉, 헉. 휘온 공작님-!”

“산수이…… 남작님?”

“저, 실례지만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그는 쪽쪽이를 재빨리 주머니 안에 감췄다.

“말씀하십시오.”

“혹시 돌잔치에서 이르히가 누군가와 같이 있는 걸 보셨나요?”

“예, 예?”

휘온은 동요하는 표정을 감추려고 애썼다.

들킨 건가?

아냐, 산수이가 자신에게 물어보는 걸 보면 아직 모르는 것 같다.

어서 빨리 이 대화를 끝낸 후, 쪽쪽이를 두고 떠나야…….

“그게 사실, 이르히가 누군가에게 드래곤의 비늘을 줘 버린 것 같아요.”

“!”

휘온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게 뭘 의미하는진 공작님도 아실 거라 생각해요.”

그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아, 하하. 아직 어린아이인데. 놀다가 잃어버린 게 아닐까요?”

“실수로 잃어버린 것이었다면 다행이었겠지만…….”

산수이가 깊은 한숨을 내쉬곤 말을 이었다.

“사실, 이르히가 그날 이후 성체로 자라났거든요.”

“예? 예에에-?!”

휘온은 너무 놀라 제 표정을 숨기지도 못했다.

만일 아직도 손에 쪽쪽이를 쥐고 있었다면, 그대로 바닥에 떨어트렸을 것이다.

휘온이 물었다.

“하, 하지만! 그 아이는 아직 어리지 않습니까?”

“놀라시는 거 충분히 이해해요, 저도 아직 믿기지 않는걸요.”

“아니, 원래 드래곤 종족은 이렇게 빨리 성장하는 겁니까?”

산수이가 고개를 저었다.

“얀피르도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고 했어요. 아마도 우리 애들이 드래곤과 인간의 혼혈이라 그런가 봐요.”

돌겠네.

그럼 정말로, 어제 이르히가 제게 쪽쪽이를 준 건.

‘정말로 나를 반려로 삼겠다는 뜻이었나?!’

하지만 대체 왜?

그 아이는 이제 막 돌이 지난 데다가.

휘온과는 어제 처음 만난 사이가 아니었나.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산수이가 그에게 말했다.

“분실물 찾으러 오셨다는데 이런 얘기부터 꺼내서 죄송해요. 정말이지, 너무 답답하고 기가 막혀서 그만.”

그러고 보니 이상했다.

보통 이런 문제는 당사자한테 먼저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닌가?

이르히가 성체가 되었다면, 왜 그녀에게 먼저 물어보지 않은 거지?

일단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자세히 알아야 했다.

범인이 자신이라는 게 들통날지 아닐지, 가늠해봐야 했기 때문이다.

‘아니지, 내가 왜 범인이야? 난 죄를 지은 것도 없는데!’

억울한 마음을 꾹 내리누르며 휘온이 물었다.

“이르히 영애는 아무 말도 하지 않던가요?”

“네. 아마 절대로 입을 열지 않을 거예요.”

“어째서죠?”

“이르히의 비늘을 받은 사람을 얀피르가 잡아다 족쳐…… 아니, 죽여버리겠다고 했거든요.”

꿀꺽.

휘온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하지만 산수이는 이를 눈치채지 못한 채 계속 설명을 이어나갔다.

“감히 내 금쪽같은 딸의 유년 시절을 홀라당 뺏어간 그놈을 잡아다가 사지를 찢어 조각내겠다는 걸, 얼마나 말렸는지 몰라요.”

꿀꺽.

“잡아다 효시하는 것도 모자라, 환생조차 하지 못하게 영혼을 갈아버리겠다고도 했어요.”

꿀꺽.

“그래서 이르히가 절대 아빠한테는 제 반려가 누군지 말해주지 않겠다더군요.”

꿀꺽.

아니 내가 왜 반려야!

휘온은 울고 싶었다.

“그, 그럼 이제 어, 어쩌실 생각입니까?”

“하아, 저희도 모르겠어요. 일단 그 범인…… 아니, 이르히가 비늘을 줬다는 사람부터 찾아야 할 텐데.”

산수이의 얼굴엔 근심이 가득했다.

휘온의 얼굴에도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얀피르 놈한테 걸리면 절대 안 된다.’

그놈이 얼마나 딸바보인지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황궁에서 그와 함께 일을 할 때가 떠올랐다.

그놈은 일하면서도 계속 애들 얘기만 해댔다.

사랑하는 우리 애들이 언제 자신을 ‘아빠’라고 불러줄지 떨려서 잠도 못 자겠다거나.

입학식 날 애들 손을 잡고 함께 등교해야 하니, 7년 후의 휴가를 미리 내겠다는 둥.

그런 미친 짓거리들만 떠올려봐도 확실했다.

이건 여간 심각한 상황이 아니었다.

정말로 자신은 살해당한다.

산수이가 그에게 말했다.

“아무튼, 혹시라도 뭔가 알게 되시면 꼭 저에게 말씀해 주세요? 역시 이런 일을 믿고 부탁드릴 사람은 휘온 공작님밖에 없어요.”

“하하…… 하하하.”

그렇게 산수이가 떠났다.

휘온은 근처 분수대에 대충 걸터앉았다.

‘돌겠군.’

이 상황을 어쩌지?

그때, 멀리서 얀피르가 난동부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충 어떤 놈인지 몰라도 잡히면 껍질을 벗겨버리겠다는 내용이었다.

휘온은 십 년 정도 늙는 기분이었다.

그의 다리가 떨려왔다.

달달달달—

그가 이빨까지 딱딱 부딪혀가며 손톱을 물어뜯고 있던 찰나.

갑자기 그의 다리 위에 누군가의 흰 손이 올라왔다.

턱—

강한 악력이 그의 다리를 순식간에 제압했다.

“……다리 떨면 복 나간댔어요.”

휘온은 놀라 위를 올려다보았다.

자신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는 건 바로.

“안녕하세요, 휘온 공작님. 이르히예요.”

성인의 모습이 된, 얀피르의 딸.

이르히였다.

여전히 얀피르를 그대로 빼다 박은 모습이었다.

휘온은 너무 놀라 뒤로 자빠졌다.

하지만 분수대에 빠지기 전, 이르히가 그를 붙잡았다.

휘온은 졸지에 그녀에게 안겨있는 꼴이 되었다.

이르히가 말했다.

“조심하셔야죠.”

놀란 휘온이 서둘러 그녀에게서 떨어졌다.

“이, 이이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영애?”

그가 서둘러 주머니에서 쪽쪽이를 꺼냈다.

“우선 이건 돌려드리겠습니다.”

이르히가 손바닥을 들어 올렸다.

“싫은데요.”

그녀가 무표정하게 말했다.

“그거 무슨 의미인지 이미 아시잖아요, 공작님.”

“그러니 더더욱 받을 수 없습니다.”

“늦었어요.”

“아니, 이렇게 멋대로 결정하시는 게 어디 있습니까?!”

“멋대로 아닌데.”

이르히는 어느새 그의 옆에 걸터앉아 있었다.

“공작님도 허락하셨잖아요.”

“제, 제가 언제 말입니까?”

“미래에서요.”

“예?”

이건 또 무슨 소리야?

하지만 이르히의 표정은 진지했다.

“공작님, 드래곤은 마력을 가지고 있다는 거 아시죠?”

“네, 그렇습니다만.”

“저는 아빠처럼 마법을 쓸 수는 없지만, 미래를 보는 능력을 갖고 태어났어요.”

“예에에?!”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공작님을 보는 순간 바로 알 수 있었어요. 제 반려가 될 사람이라는 걸.”

하지만 휘온 역시 단호했다.

“미래라는 건, 선택에 따라 언제든 다르게 바뀔 수 있는 겁니다. 영애.”

그녀가 쿡 웃었다.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그리고 이어진 설명은 더 가관이었다.

이르히가 프러포즈한 100번 동안의 미래에서, 휘온은 무려 97번이나 그녀와 결혼했다는 것이다.

‘97번이나?!’

휘온이 정색하며 말했다.

“크, 크흠! 그렇다면 아마도 나머지 3번 중의 하나가 바로 지금이 아닐까요?”

“틀리셨어요.”

이르히가 고개를 저었다.

“그 3번 동안은 공작님께서 사망하셨거든요.”

“아니 대체 어째서 말입니까?”

“한 번은 제가 부모님 앞에서 공작님께 바로 비늘을 드렸는데, 광분하신 아빠가 의식을 잃고 드래곤으로 변하시는 바람에 밟혀 죽으셨고요.”

“…….”

“또 한 번은 모두의 앞에서 제 프러포즈를 매몰차게 거절하시는 바람에, 광분하신 아빠가…….”

그다음 말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한 번은.”

그녀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공작님께서 생이 다 하시기 직전에야 저를 받아주시고 눈을 감으셨어요.”

“……!”

이르히는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제가 바로 성체가 된 거예요. 드래곤의 피를 이어받은 전 오래 살겠지만, 인간인 당신에겐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걸 아니까.”

아니 잠깐.

그러니까 이 말은.

‘죽거나, 그녀와 결혼하거나 둘 중 하나라는 소리 아냐!’

휘온이 제 머리를 쥐어뜯었다.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어!

하지만 저 이르히라는 영애는 너무나도 태연해 보였다.

그녀가 휘온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혼란스러우신 거 알아요. 저를 왜 거부하시는지도 알고요.”

“그걸 아시면서도 제게…….”

“공작님의 첫사랑은 저희 엄마고, 첫 키스는 저희 아빠라서 그러시는 거잖아요?”

“으, 으아악!”

휘온이 질겁했다.

하지만 이르히는 휘온의 그런 모습까지도 귀여웠다.

“전 남자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아요, 공작님.”

“제, 제가 신경 씁니다! 아니, 애초에 이건 말이 안 됩니다! 당신은 어제까지만 해도 어린아이였다고요!”

“하지만 저는 날 때부터 이미 미래를 다 알고 있었는걸요? 그걸 어린애라고 볼 수 있는지 모르겠네요.”

이르히가 그에게 가까이 붙어 앉았다.

“게다가 저랑 결혼하시면 공작님한테는 엄청 이득이에요.”

“어째서죠.”

“제 미래 예지로, 공작님은 지금보다 더 부자가 될 수 있어요.”

“고작 그런 이유로 결혼을 할 순 없습니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닌데. 전 똑똑한 남자가 취향이거든요.”

이르히가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미래를 전부 뒤져봤는데, 향후 100년간 공작님보다 똑똑한 사람은 딱 한 명밖에 없더라고요.”

“그럼 좀 더 기다렸다가 그 사람과 결혼하면 되겠군요.”

“우리 아들인데?”

“커헉!”

휘온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떠, 떨어져 앉으십시오. 영애.”

“걱정하지 마세요. 아빠에게선 제가 지켜드릴게요.”

무슨 말을 해도 이 영애에겐 통하지 않았다.

휘온은 눈을 질끈 감고 그 말을 내뱉어버렸다.

“하지만, 저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걸요-!”

말해버렸다.

이젠 그녀도 포기하겠지.

그가 마지막 쐐기를 박았다.

“저는 사랑 없는 결혼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르히는 상처받긴커녕, 눈을 반짝 빛내고 있었다.

“알아요.”

그녀가 싱긋 웃으며 덧붙였다.

“저는 미래를 본다니까요? 공작님.”

휘온은 제게 향해 있는 황금빛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어쩐지 영영 도망칠 수 없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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