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의 세신사 영애님-129화 (129/150)

외전 3화.

카데베르 황궁 회의실에 모인 다섯 명.

그들은 루헤가 마계로부터 가져온 괴물체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대체 이건……?!”

2차 마계 대전이 끝난 후, 프리트 황제로부터 페니아 왕국을 하사받은 대마왕 루헤.

매년 제국에 바나나를 바치는 것 말고도, 그가 가진 의무는 한 가지가 더 있었다.

수상한 것이 발견되면 지체 없이 제국에 알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페니아의 밀림에서 괴상한 물체가 발견되었다.

위로는 녹색의 가시가 뾰족하게 돋아나 있고, 아래로는 철갑을 두른 듯 단단한 껍질이 존재했다.

한눈에 봐도 딱 살상용 무기 같았다.

프리트가 그 물건을 집어 들고 말했다.

“이것은 신종 폭탄인가?”

휘온 역시 심각한 표정이었다.

“책에서도 본 적 없는 물건이군요. 치명상을 입히기엔 내구력이 약해 보이니, 폭탄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그러자 루헤가 나른하게 하품하며 대답했다.

“그래서 수이를 부른 거예요. 다른 세계에서 온 당신이라면, 이게 뭔지 알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그때 갑자기 얀피르가 코를 킁킁거렸다.

“그런데, 어디서 계속 단내나지 않아?”

산수이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일단 저에게 단도 한 자루만 빌려주시겠습니까, 폐하?”

“!”

그 말에 프리트가 놀라 벌떡 일어났다.

“역시 이건 전쟁용 무기로군!”

“아니, 그게 아니라요.”

하지만 프리트는 이미 제 허리춤에서 장검을 빼든 후였다.

“어떻게 하면 되지, 남작? 바로 썰어버리면 되나?”

“아, 썰어야 하는 건 맞지만. 잠시 제 말을 먼저 들어보시고……!”

하지만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프리트의 눈에서 푸른 섬광이 뿜어져 나왔다.

“흐아압-!”

그의 날카로운 칼끝이 괴물체를 갈랐다.

“!”

그러자 반으로 갈라진 괴물체 안에서는 향긋한 과일 내음이…….

산수이가 벌떡 일어섰다.

“이건 파인애플이라고요!”

“파인…… 뭐?”

그녀가 프리트의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손바닥을 내밀었다.

“일단 단도 한 자루만 줘 보시라니까요, 폐하?”

잠시 후.

먹기 좋게 썰린 파인애플이 모두의 그릇 앞에 놓였다.

처음 맛보는 달콤함과, 입안 가득 퍼지는 과일즙에 모두의 눈이 번쩍 뜨였다.

‘이, 이것은!’

‘바나나와는 또 다른 천상의 맛인데!’

특히나 산수이의 얼굴에는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감동이 번져나가고 있었다.

‘파인애플까지 찾았어……! 이것도 정말 얼마나 먹고 싶었는지!’

그녀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파인애플주스를 만들어 팔 생각으로.

‘페니아 왕국이 마계가 되어 버렸으니, 파인애플을 들여오려면 루헤와 협상을 해야 하는데.’

순간 산수이는 휘온과 눈이 마주쳤다.

둘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남몰래 사악한 눈빛을 교환했다.

그들은 여전히 서로에게 제국 최고의 브레인이었으니까.

‘우리 함께 대마왕을 등쳐먹어 보도록 할까요, 휘온 공작님?’

‘제가 하고 싶은 말입니다, 산수이 남작님.’

하지만 루헤는 이미 그들의 생각을 알아차린 후였다.

그가 나른하게 하품하며 말했다.

“하아암…… 파인애플을 가져다 장사를 할 생각이라면 그렇게 해요, 수이.”

“!”

단번에 속내를 들킨 산수이는 해명도 하지 못했다.

루헤가 그녀를 향해 배시시 웃었다.

“대신 수이한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요.”

“뭔데요, 루헤?”

“나와 함께 마계에 가 줘야겠어요.”

“네에?”

그러자 얀피르가 테이블을 쾅 치며 일어났다.

“웃기지 마! 누구 맘대로 남의 반려를 마계로 데려가?”

루헤가 귀찮다는 듯 한숨 쉬었다.

“누가 영원히 데려간대요? 수이가 확인해 줘야 할 게 있어서 그래요.”

“제가 확인해야 하는 거요?”

루헤가 고개를 끄덕였다.

산수이가 물었다.

“제 원래 세상에서의 지식이 필요한 일인가 보군요?”

“네, 맞아요.”

루헤가 배시시 웃으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상황은 복잡한 듯 간단했다.

얼마 전, 마계의 밀림에서 새하얀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갑자기 정체 모를 것들이 자라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루헤가 말을 이었다.

“원인은 제가 파악 중이니, 수이는 가서 그것들이 뭔지 분석해 주면 돼요.”

그러자 프리트가 말했다.

“말하자면 뭐 독이 든 풀인지 봐 달라는 거야?”

루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면 남작이 왔다 갔다 할 필요 없이, 마왕 네놈 수하들한테 하나씩 먹여보면 되잖아. 네놈 마법으로 독도 치료할 수 있다며.”

프리트의 끔찍한 제안에 휘온이 대신 한숨을 쉬었다.

루헤가 나른하게 하품하며 답했다.

“귀찮게 그들을 일일이 다 치료하란 말인가요? 수이가 한번 봐주면 끝날 일을.”

그러자 얀피르가 그르렁댔다.

“마왕 네놈 편해지자고 내 여자를 괴롭히겠다고?”

“괴롭히다뇨, 거래죠.”

그렇게 네 남자는 또다시 끊임없는 만담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그사이, 산수이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떠올랐다.

그녀가 루헤에게 다급히 물었다.

“저기요, 루헤? 혹시 그 새로 생겨난 것 중에 이렇게 생긴 식물도 있었나요?”

그녀가 종이 위에 그린 것은.

다름 아닌 배추였다.

그 그림을 본 루헤가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맞아요. 땅에서 이렇게 생긴 것도 솟아났던 것 같네요. 아래는 희고 윗부분은 초록빛인 식물이죠?”

“!”

그 말을 들은 산수이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옆에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던 얀피르의 눈이 커졌다.

‘뭐야. 지금 저 표정? 꼭 때수건 원료를 발견했을 때랑 똑같잖아?’

나한텐 필요한 게 없다더니?!

그는 서운함을 느꼈지만, 산수이는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가 루헤를 향해 말했다.

“지금 당장 마계로 갈게요, 루헤!”

“역시, 수이가 아는 식물이군요?”

“네, 맞아요. 대신 저도 조건이 있어요.”

“저 식물에 대한 권리도 넘겨달란 것이겠군요.”

“역시 척 하면 척이네요.”

루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수이가 저걸로 또 신기한 음식을 만들 것 같으니, 대신 그걸 마계에 보내주세요.”

그러자 갑자기 휘온이 벌떡 일어났다.

“고작 괴식물 두 가지라니. 그걸로는 부족합니다, 루헤 님.”

“흐응?”

휘온이 산수이를 향해 말했다.

“그곳에 새로 자란 식물을 모두 파악한 후에 계약서를 씁시다, 산수이 남작님.”

“일리 있는 말씀이네요, 공작님!”

루헤는 아무래도 좋다는 반응이었다.

“하아암…… 뭐, 좋을 대로 하세요.”

그렇게, 잠시 동안 논의가 계속되었다.

그때 갑자기 휘온이 프리트에게 말했다.

“폐하, 저도 마계에 파견을 갔다 오고 싶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프리트가 버럭 소리쳤다.

“휘온 네놈이 왜!”

“그 새로운 생태계를 제 눈으로 직접 보고 싶습니다. 서적에도 나와 있지 않은 식물이라니, 궁금해 참을 수가 없단 말입니다.”

루헤는 관심 없다는 반응이었다.

“뭐, 그러세요.”

하지만 프리트는 달랐다.

“휘온 네놈까지 가버리면 어쩌자는 거야! 남작이 마계에 간다면, 분명 얀피르 저놈도 따라갈 게 분명한데!”

얀피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당연하지. 혹시라도 안 보내주기만 해 봐. 이번엔 휴가가 아니라 사표를 내 버릴 거야.”

“이것 보라니까?”

하지만 휘온 역시 질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폐하, 제가 그곳에 다녀온다면 이는 분명 제국의 농업에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흐음.”

프리트는 잠시간 생각에 잠겼다.

맞는 말이었다.

저 똑똑한 놈이 한 번 가서 슥 보고 오기만 해도, 제국에 큰 도움이 될 터.

게다가 자발적으로 일하러 가겠다는데 말릴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는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그래 좋아, 휘온 너도 함께 다녀오도록 해.”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

“대신 나도 간다.”

프리트의 충격 발언에 모두가 놀라 소리쳤다.

“예?!”

“폐하 너도 간다고?!”

“아니 폐하, 그러면 정무는 누가 돌본단 말입니까!”

하지만 그는 단호했다.

“그야 오늘부터 미리 다 해치워놓고 가면 되잖아. 아, 물론 네 두 놈하고 같이 말이야.”

휘온이 하소연했다.

“아니 가만히 있던 저희는 왜 끌어들이시는 겁니까!”

“휘온 네놈이 거길 따라가겠다고 해서 일이 이렇게 된 거 아냐!”

“이게 왜 제 탓입니까?”

얀피르 역시 발끈했다.

“그래! 휘온 놈 때문에 난 무슨 날벼락인데?”

“친구를 잘못 둔 죄지.”

“저놈 내 친구 아니라니까?”

그러자 산수이가 소리쳤다.

“아 그만 좀 싸워요!”

혼돈의 아수라장 속에서 루헤만이 평온하게 명상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

결국 모두는 다 함께 마계로 향했다.

페니아의 밀림으로 가는 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루헤가 모두를 데리고 마법으로 이동했으니까.

그렇게 순식간에 목적지 앞에 도착한 다섯 명.

공중에 흩어지는 검은 연기를 보며 프리트가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

“하, 내가 흑마법에 연루될 줄이야.”

휘온이 그를 안심시켰다.

“마계와의 조약 후 제국법이 바뀌었는데 무엇이 걱정이십니까, 폐하.”

“하지만 찝찝한 건 찝찝한 거다!”

루헤가 불쾌한 듯 찡그렸다.

“동맹을 맺은 제 앞에서 하실 말씀은 아니라고 보는데요, 인간의 황제.”

“그런데 대체 어디에 괴식물이 있다는 거야, 마왕?”

프리트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루헤가 말한 것과는 다르게, 그들이 도착한 곳은 그저 평범해 보였다.

루헤가 말했다.

“……여기서부터는 직접 걸어가야 하거든요.”

프리트가 놀라 소리쳤다.

“뭐! 네놈 흑마법으론 어디든 이동할 수 있는 거 아니었어?”

산수이가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아니, 폐하. 아깐 흑마법에 연루되어 찝찝하시다면서요?”

하지만 프리트는 여전히 불만 가득해 보였다.

“대체 왜 나머지 구역은 마법으로 이동할 수 없는 건데?”

“…….”

사실 그 이유는 루헤도 알 수 없었다.

그 정체불명의 새하얀 빛이 밀림을 감싼 이후.

어째서인지 밀림 안으로는 텔레포트를 할 수가 없었다.

모든 설명을 들은 일행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휘온이 말했다.

“마차도, 말도 없으니 길을 잃지 않도록 주의해야겠군요.”

루헤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이미 마족들을 풀어 이정표를 심어 뒀거든요.”

얀피르 역시 문제없다는 표정이었다.

“뭐, 여차하면 다들 내 등에 타고 날아오르면 되잖아?”

아 맞다, 우리에겐 소중한 탈것…… 아니, 동료가 있었지!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안심했다.

그렇게 다섯 명은 밀림 안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사아아—

갑자기 불어온 바람과 함께,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이 바뀌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