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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세신사 영애님-111화 (111/150)

111화.

산수이가 발레아나를 향해 자신이 가져온 서류 봉투를 들어 보였다.

“이건, 건설 허가 신청서야.”

“건설?”

“응. 남작령에서 새로운 사업을 하나 해 보려고.”

그랬다.

이제 다시는 비덴비덴 남작령에 풍부한 온천수가 흐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다른 접근법이 필요했다.

그래서 산수이가 생각해 낸 것은 바로.

“비덴비덴 남작령의 전반적인 목욕탕 사업 재개를 위해, 새로운 상하수도 시설을 건설하겠다고……?”

“네, 그렇습니다, 황제 폐하.”

카데베르 제국 황제의 알현실.

산수이의 혁신적인 아이디어에, 황제가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더 자세히 설명해보라.”

“비덴비덴 남작령의 비덴산에 터널을 뚫어, 그 너머에 있는 수원지에서 물을 끌어올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황제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하지만 그 산과 남작령 사이에는 커다란 계곡이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산수이가 끄덕이며 답했다.

“맞습니다. 바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계곡 위에 ‘수도교’를 설치할 생각입니다.”

“수도교라……?”

수도교.

이는 로마 시대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교량 형태이다.

수원지와 마을 사이에 움푹 팬 지형이 존재할 시, 그 사이에 수도교를 놓았고.

그렇게 하면 수원지로부터 끌어온 맑은 물이 도시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이 혁신적인 수로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도 등록된,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이자.

고대 건축 공학의 정수.

‘……를, 제가 또 갖다 씁니다.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로마인들이여.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아자!’

산수이는 또다시 마음속으로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그녀가 황제를 향해 이어서 아뢰었다.

“그렇습니다. 수원지로부터 끌어온 물이 흐르는 수도를 받치기 위해, 그 아래 아치형의 다리를 건설할 것입니다.”

“호오, 계속해보라.”

“그렇게 끌어온 물은 마을 인근의 탱크에 저장된 후, 남작령의 각 가구에 수도관을 통해 공급됩니다. 그리하면 모든 가구들이 예전과 같이 목욕탕 사업을 재개할 수 있습니다.”

황제가 물었다.

“흐음. 확실히 기발한 생각이긴 하다만, 산 너머의 수원지에 대해선 충분히 조사해 보았는가?”

산수이가 끄덕였다.

“이미 수원지 인근에 대한 조사를 마쳤습니다, 폐하. 주변에 환자나 병든 초목이 없고, 수질 역시 매우 깨끗해 목욕물뿐 아니라 식수로 사용하는 데도 문제가 없습니다.”

그 말을 들은 황제가 속으로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과연, 내 아들이 연모할만한 여인이로다. 현명한 것은 물론이요, 사내의 배포까지 가졌구나! 한 나라의 황훗감이야.’

황제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건설을 허가하도록 하지. 단, 한 가지 조건이 있다.”

한 가지 조건?

제국의 황제가 자신에게 내걸 조건이라면…….

‘설마, 황태자비가 되라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산수이는 아까부터 시종일관 황제 옆에 서서, 저를 향해 시퍼런 눈을 빛내고 있는 프리트를 바라보았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프리트는 언제나와 같은 자신만만한 태도로 씩 웃어 보였다.

아직도 그놈의 황태자비 타령을 포기하지 않은 건 아니겠지.

‘그럼 뭐 하는 수 없이 그때부턴 공개 연애 해야지, 뭐.’

그렇게 다짐하며, 산수이가 황제를 향해 말했다.

“하명하십시오, 폐하.”

“남작령의 수도교 공사가 끝나고 나면, 그대가 제안한 그 상하수도 시설을 이 제국 전체에 적용해 보는 것이 어떠한가?”

“!”

실로 놀라운 제안이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 일의 총지휘관은 산수이 남작, 그대가 맡도록 하고. 그대의 수족으로 내 아들놈을 붙여주도록 하지.”

“수족…… 예에에?!”

그러자, 황제의 옆에 있던 프리트가 씩 웃으며 산수이에게로 다가왔다.

“잘 부탁해, 산수이 남작. 나를 마음껏 부려 먹으라고.”

***

그렇게.

산수이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비덴비덴 남작저에는 또다시 세 남자가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그녀는 응접실에 놓인 테이블 한가운데에서 자신의 양옆으로 앉은 사내들을 바라보았다.

진즉부터 산수이의 수도교 건설 계획을 듣고 투자 및 자문가로 참여하기로 한 휘온과.

“산수이, 이런 혁신적인 생각을 해내다니. 그대는 정녕 제국 역사에 다시없을 천재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황제의 어명…… 이라기보단 사실 제가 몰래 부탁해서 이 자리에 참여한.

조력자 역할의 프리트.

“나를 통한다면 제국의 지지부진한 행정 절차 따윈 가볍게 뛰어넘을 수 있을 거야, 산수이 남작.”

그리고 수도교의 건설 기간을 최단으로 단축해 줄, 얀피르까지.

“제거 마법으로 산 가운데를 뚫어서 물이 흐르게 만들면 된다는 거지?”

“네, 맞습니다. 세 분 모두, 잘 부탁드릴게요.”

하지만 이들이 누구인가.

본격적인 회의가 시작되기도 전에, 그들은 또다시 사이좋은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얀피르가 먼저 산수이를 향해 입을 열었다.

“주인, 너 이제 돈 많잖아? 휘온 놈 투자금 따윈 필요 없지 않아?”

그 말에 휘온이 발끈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고작 산수이의 사업에 돈 몇 푼이나 투자하는, 그런 흔해 빠진 투자자로 보이는 거냐?”

“응.”

“난 힘만 무식하게 센 너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럼 휘온 네놈이 돈으로 처바르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는데?”

“그야-!”

하지만 휘온이 뭐라 답하기도 전, 산수이가 먼저 나서서 두 남자 사이를 중재했다.

“휘온은 공학부터 설계까지, 이번 건설의 전반을 기획하셨으니. 없어서는 안 될 주요 수뇌부 중 하나시고요.”

휘온의 어깨가 으쓱해졌다.

“얀피르가 없었다면 인부들이 직접 산 가운데 터널을 뚫어야 했을 테니, 예상 공사 기간이 몇 년으로 늘어났겠죠.”

얀피르의 콧대가 하늘로 치솟았다.

그런 두 남자를 향해 산수이가 일침을 놨다.

“그러니까, 둘이 이제 그만 좀 싸워요!”

옆에서 지켜보던 프리트 역시 한심하다는 듯 혀를 끌끌 찼다.

“내 말이 그 말이야. 그깟 합 좀 맞추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서로 입까지 맞춘 사이에.”

그러자 휘온과 얀피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프리트를 향해 동시에 소리 질렀다.

“저하,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황태자 너 진짜 죽고 싶냐?!”

“크흡……!”

프리트는 스스로 내뱉고도 웃겨서 참을 수 없다는 듯, 제 배를 부여잡고 끅끅거리기 시작했다.

그때, 구석에서 또 다른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우흡…….”

얀피르와 휘온이 소리가 나는 곳을 돌아봤다.

산수이가 한쪽 구석에 틀어박혀서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고 있었다.

얼마나 참기 힘들었는지, 눈가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산수이 그대마저…….”

“……너무해, 주인.”

“어흑. 아 죄송해요.”

산수이가 힘겹게 숨을 가다듬고 자리에 앉았다.

그때였다.

두 남자가 안 보는 틈을 타서, 갑자기 얀피르가 테이블 밑으로 몰래 손을 뻗어 산수이의 손을 꽉 잡았다.

“!”

씨익—

그렇게 산수이를 보며 씩 웃던 얀피르는, 두 남자가 보기 전 재빨리 손을 놓고 딴청을 했다.

‘얘가 진짜!’

하지만 저를 향해 실실 웃어대는 얀피르를 보며, 산수이는 화를 낼 수 없었다.

‘크, 크흠! 손은 왜 또 저렇게 크고 난리야…….’

이대로 비밀 연애를 계속했다간 제명에 죽지 못할 것 같았다.

‘빨리 끝내자, 빨리……. 이번 일만 끝내고 나면 다 해결될 거야. 이곳 영지민들도 본업을 되찾을 수 있을 거고. 나 역시도.’

사우나스를 만날 수 있을 거야.

그럼 꼭 그 소원을 빌어야지.

“자, 그럼 이제 진짜 회의를 시작할게요.”

탁—

산수이는 테이블 위에 건설 계획서를 펼쳐 놓고 회의를 시작했다.

그녀의 뒤로 작고 검은 그림자 두 개가 창밖에 드리워졌다.

파닥파닥—

꼬마 박쥐 마족 휴와 듀였다.

밖에서 남몰래 안쪽의 상황을 지켜보던 그들이 당황한 듯 중얼거렸다.

“하나, 둘, 셋……. 세 명! 라이벌 세 명이 다 있어!”

“마왕님 빼고 다 모였다!”

“어서 가서 알려야 해, 큰일!”

두 마족은 허둥지둥하며 쏜살같이 하늘 위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

마계의 마왕성.

루헤는 자신의 침실에서 행복한 낮잠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창문 너머로 휴와 듀가 툭 하고 부딪혀왔다.

“으음……?”

두 꼬마는 필사적으로 날개를 부딪치며 안으로 들여보내 달라 아우성쳤다.

루헤가 느릿느릿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어주었다.

파닥파닥-

“마왕님!”

하지만 저를 부르는 다급한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루헤는 창문을 열던 그 모습 그대로 다시 졸기 시작했다.

쿠울—

두 꼬마 박쥐가 잠든 그의 주변을 어지럽게 날아다니며 머리를 잡아당겼다.

“마, 마왕님. 큰일!”

쿨—

하지만 루헤는 미동조차 없었다.

결국 꼬마 박쥐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단어를 외치자.

하나, 둘, 셋!

“인간 남자 둘하고 드래곤 한 마리!”

“……!”

그 말에 루헤가 눈을 번쩍 떴다.

“한자리에!”

그러자 루헤가 박쥐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것도 인간 여자랑, 다 같이 대화 중!”

결국 몸을 완전히 일으킨 루헤가 꼬마 박쥐들을 향해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장소는?”

“인간 여자네 집!”

“하아……”

루헤가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말이지, 수이는 한시도 혼자 놔둘 수가 없다니까요?”

곧이어 루헤가 제 침대를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새까만 연기 속에서 그와 똑같이 생긴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루헤가 마왕성을 비우고 비덴비덴 남작저로 향할 때면 항상 자신의 대용품으로 세워두곤 하던 마리오네트였다.

초점 없는 눈빛의 마리오네트가 루헤의 앞에 엎드려 그의 발에 입을 맞추었다.

루헤가 그를 내려다보며 짧은 명령을 내렸다.

“자 그럼, 지금부터 연극을 시작하세요.”

그 마리오네트는 고개를 한번 끄덕이더니 이내 마왕의 침대로 기어들어가.

쿠울-쿨-.

그대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루헤는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윽고 검은 연기와 함께 허공 속으로 사라졌다.

옆에서 그 가짜 마왕을 바라보는 휴와 듀의 표정은, 이제 적응되다 못해 감흥도 없다는 듯 보였다.

그들은 작은 손으로 낑낑대며 이불을 끌어 올려 마리오네트의 목 위까지 덮어주었다.

“가짜 마왕님도, 마왕님.”

“응응, 잘 챙겨야 해.”

그때였다.

똑똑—

누군가 밖에서 방문을 두드렸다.

“!”

놀라서 허둥대는 두 꼬마 박쥐 너머로, 문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왕님, 슐레히트입니다.”

서로를 바라보는 꼬마 박쥐들의 낯빛이 굳어갔다.

그들은 서로를 향해 작게 속삭였다.

“들키면 안 돼!”

“숨자!”

두 꼬마 박쥐는 서둘러 침대 아래로 몸을 숨겼다.

곧이어, 침대 위에 누워있던 가짜 마왕이 신음과 함께 깨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흐암……!”

그렇게 방문이 열리고, 슐레히트가 들어왔다.

그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졸고 있는 마왕을 깨우는 일이 반복되었다.

여느 때와 똑같은 일상처럼.

아니, 평소와 다름이 없다고 보인 것뿐이리라.

슐레히트는 이미 마왕의 방 안에서 위화감을 발견한 후였으니까.

바깥을 향해 활짝 열려있는 창문.

시끄러운 걸 질색하면서, 여태 아무렇지 않게 잠이 들어있던 마왕.

그리고.

창문틀에서부터 침대 근처까지 이어져있는, 박쥐 마족의 털 몇 가닥.

슐레히트는 태연한 척 루헤에게 서류를 건네주고는 방을 나섰다.

그러고는 자신의 집무실로 제 작은 수족을 불러, 박쥐 마족의 털 가닥을 건네주며 은밀한 명을 내렸다.

“이것의 주인을 찾아 조용히 미행하도록. 단, 절대 마왕님께 들켜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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