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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세신사 영애님-101화 (101/150)

101화.

마력구의 행방을 찾아 숲속으로 떠난 얀피르가 돌아오지 않은 지도 벌써 하루가 지났다.

산수이는 그가 걱정되어 잠조차 제대로 잘 수 없었다.

그렇게 꼬박 날을 새웠지만 여전히 그에게서는 어떠한 소식도 들려오지 않았다.

‘얀피르한테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해.’

물론 드래곤의 비늘은 창칼도 뚫을 수 없는 데다가, 그에게는 마력이 있으니 웬만한 일엔 끄떡없을 터였다.

하지만.

그가 돌아오지 않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녀 자신도 놀랄 정도로 불안해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일전에도 얀피르가 사라졌던 적이 있었잖아. 그런데 이번엔 왜 이러지…….’

자꾸만, 이번엔 정말로 그가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자꾸만 떨려오는 손을, 불안감에 세차게 뛰어대는 심장을 부여잡고 이곳에 앉아있느니.

‘직접 가보는 게 낫겠어.’

결국, 산수이는 루헤가 남기고 간 검은 로브를 둘러 입고, 몇 가지 필요한 물건들을 챙겼다.

그러고는 루헤가 알려준 주문을…….

‘하아, 이걸 진짜 내 입으로 말해야 해?’

하지만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산수이는 두 눈을 질끈 감고 루헤가 떠나기 전 자신에게 알려준 주문을 큰 소리로 외쳤다.

순간 눈앞이 점멸하면서, 산수이는 일전의 땅굴 앞으로 텔레포트 했다.

***

하루 전.

작은 드래곤의 모습으로 되돌아간 얀피르는 비덴산의 숲속 한가운데를 향해 빠르게 날아가고 있었다.

루헤가 말한 곳까지 찾아가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 땅굴이란 게 어디에 위치해있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에.

다만 이상한 건.

‘그 땅굴…… 분명 사라졌었는데?’

사실 얀피르는 그동안 비덴산을 수없이 올라왔다.

그것은 비단 잃어버린 자신의 기억만을 되찾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혹시라도 자신 외에 생존해있을지 모를 다른 드래곤을 찾기 위함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다른 드래곤이 존재한다는 흔적은 없었고.

설상가상으로 그가 맨 처음 기어 나왔던 땅굴 입구는 그날 이후 흔적도 없이 사라졌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이윽고 얀피르는 자신이 맨 처음 깨어났던 곳에 도달했다.

그곳에는 루헤의 말대로 딱 자신이 들어갈 정도 크기의 땅굴이 깊게 파여있었다.

여태껏 찾아 헤매던 제 잃어버린 기억의 유일한 단서였다.

얀피르는 천천히 자신의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그의 몸이 점점 불어나며 온전한 성체 드래곤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크르르르-!”

마침내 그가 땅굴을 향해 커다란 목소리로 울어젖혔다.

그러자 갑자기 거대한 마법진 하나가 허공에 떠올라 붉게 타올랐다.

파앗—

루헤가 말한 드래곤의 마법진이 틀림없었다.

곧이어 마법진으로부터 굵은 음성이 들려왔다.

[기다리고 있었다, 얀피르.]

그 말에 얀피르의 눈빛이 흔들렸다.

어딘지 모르게 그리운 목소리였다.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마법진을 향해 물었다.

“나를…… 알아?”

[물론.]

얀피르는 침을 꿀꺽 삼켰다.

드디어 오랜 시간 찾아 헤매던 답을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는 먼저 산수이가 가장 기다리고 있을 대답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질문이 있다. 땅속에 있던 마력구는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지?”

하지만 마법진이 내어놓은 답은 얀피르가 기대한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잘못된 질문이다.]

“뭐? 마력구는 지금 어디 있냐니까? 온천수를 만들고 있었다던 그거 말이야!”

[잘못된 질문이다.]

몇 번을 물어봐도 결과는 똑같았다.

아마도 이 마법진에는 정해진 질문에 대한 대답만이 준비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얀피르가 소리높여 물었다.

“넌 대체 정체가 뭐야? 내가 그렇게 찾아 헤맬 땐 코빼기도 안 보이다가, 대체 왜 이제야 나타난 건데?”

그러자 마법진이 이제까지와는 다른 대답을 내어놓았다.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뭐?”

역시나 여전히 도통 의미를 알 수 없는 소리였다.

당황해하는 얀피르를 향해, 마법진에서 또다시 굵고 낮은 음성이 들려왔다.

[너의 맡은 바 책임을 다하라.]

맡은 바 책임?

아니 대체 저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얀피르가 마법진을 향해 외쳤다.

“맡은 바 책임은 또 뭔데? 책임은 둘째 치고, 난 내가 누구인지도 모른다고!”

그 말과 동시에 마법진 한가운데서 커다란 불꽃이 화르륵 타올랐다.

마법진이 형형한 빛을 내며 말했다.

[정말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것인가.]

얀피르가 마법진을 향해 끄덕였다.

“그래. 아무것도 기억 안 나. 그러니 미안하지만 네가 좀 알려줬으면 하는데.”

그러자 순간 커다란 굉음과 함께 대지가 흔들리더니 땅굴 깊은 곳으로 계단이 이어졌다.

이어서 마법진이 붉은 아지랑이처럼 울렁였다.

[이 안에 네가 찾는 모든 것이 있다. 얀피르…… 드래곤의…….]

그 마지막 말을 들은 얀피르의 눈에 놀라움의 빛이 번져나갔다.

그가 마법진을 향해 무어라 말하려던 찰나.

드래곤의 마법진은 짙붉은 연기가 되어 허공 속으로 사라졌다.

얀피르는 서둘러 다시 작은 드래곤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땅굴 속으로 날아들었다.

굴 안은 마치 기다란 동굴과도 같았다.

하지만 위화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가 이곳을 기어 나왔던 날의 기억들이 점차 머릿속에 되살아나기 시작했으니까.

얀피르는 마법진이 자신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을 되뇌고, 또 되뇌었다.

‘만일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이 길 끝에 있는 것은……!’

그의 얼굴에 희망과 설렘의 빛이 동시에 번져나갔다.

이윽고 또 다른 장면들이 기억나기 시작했다.

그가 이곳에서 깨어났을 때, 그의 눈에 맨 처음 보였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그리고 마침내 목적지에 다다른 그가 손을 뻗은 순간.

“!”

견딜 수 없이 수많은 기억의 파도가 그의 머리를 덮치며, 얀피르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

산수이가 비덴산의 땅굴 앞에 도달했을 땐 이미 해가 져서 산 너머로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서둘러야 해!’

어찌저찌 이곳까진 올 수 있었지만, 가장 어려운 문제가 하나 남아있었다.

드래곤의 마법진이 가로막고 있다는 땅굴 속으로, 대체 인간인 자신이 어떻게 들어가냐는 것이다.

그래서 산수이가 생각한 해결책은 바로.

‘얀피르의 드래곤 비늘을 온 몸에 칭칭 둘러 감고 온 거나 마찬가지니까, 어떻게 좀…… 안 되려나?’

그가 선물해 준 드래곤의 비늘 드레스와 목걸이를 착용하고, 드래곤인 척 마법진 안으로 뚫고 들어가 보려는 것이었다.

‘제발 날 드래곤이라고 인식해 줘, 마법진아!’

그렇게 산수이는 초조한 심경으로 땅굴 가까이 다가갔다.

파아아—

곧이어 그 안에서 붉은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이내 산수이의 눈앞에 거대한 마법진이 나타났다.

알 수 없는 용언으로 가득 적힌 마법진은 형형한 붉은 빛을 자아내며 불꽃처럼 타올랐다.

‘이게 드래곤의 마법진……!’

산수이는 침을 꿀꺽 삼키고 마법진 가까이로 서서히 다가갔다.

그때였다.

[드래곤의 비늘을 가진 자여.]

“……!”

갑자기 마법진에서 굵고 신비한 음성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너는 드래곤의 반려인가?]

“예?”

망한 것이다.

역시나 이런 눈속임으로 고대 마법진을 속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반려라니.

‘설마, 드래곤의 반려 자격으로는 저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건가?’

그렇다면 간단하게 ‘네!’라고 대답한 뒤 들어가면 그만이라 생각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건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아무리 말뿐인 대답이라지만, 자신이 얀피르의 반려라고 선언해 버린다면 그 뒷일은 어찌하려고.

자신은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가야 하고, 얀피르는 혼자 남겨지게 될 텐데.

‘애초에 얀피르가 지금 저 땅굴 속에 있는 건지, 아닌지도 모르잖아.’

그렇게 망설이던 찰나, 갑자기 마법진이 일렁이며 흔들렸다.

곧이어 그 안에서 누군가의 모습이 나타났다.

“얀피…… 르?”

그것은 어두컴컴한 동굴 바닥에서 의식을 잃은 채 쓰러져 있는 얀피르의 모습이었다.

그걸 본 산수이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불과 하루 사이에 그의 낯빛은 시체처럼 창백해져있었다.

그의 몸에서는 작은 떨림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꼭 숨이라도 멎은 것처럼.

놀란 산수이가 마법진을 향해 달려가 손을 뻗었다.

“얀피……!”

하지만 알 수 없는 강력한 힘이 그녀를 튕겨냈다.

“아아악-!”

그렇게 산수이는 뒤로 밀려나 바닥에 처박혔다.

마법진이 또다시 그녀에게 질문했다.

[너는 그의 반려인가?]

그 물음에 대답할 여유조차 없었다.

정신줄을 놓고 몇 번이나 마법진 쪽으로 달려가봤지만 소용없었다.

그녀는 번번이 강한 충격을 받으며 뒤로 나자빠졌다.

“얀피르-!”

하지만 마법진 안에 보이는 얀피르에게선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항상 자신을 향해있던 그의 금빛 눈동자는 굳게 닫혀 떠질 줄을 몰랐다.

자신에게 사랑을 고백하던 그 입술엔 핏기가 전혀 없었다.

자신을 쓰다듬던 그 손도, 꽉 끌어안아 주던 그 넓은 가슴도.

그 모든 것이 차갑게 굳어져가고 있다는 게 생생하게 느껴졌다.

어느새 그녀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대로 얀피르가 죽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산수이의 머리에 핏기가 사악 가셨다.

더 이상 아무것도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았다.

‘안 돼.’

그제야 산수이는 깨달았다.

돌아오지 않는 그를 기다리며 느꼈던 그 불안함의 정체를.

얀피르를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될까 봐 두려웠던 것이었다.

이런 마음이면서 어떻게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려 했지?

‘원래 세계로 되돌아간다면, 그땐 정말 얀피르를 다시는…… 볼 수 없어.’

나는 그 없이 살아갈 수 있나?

하루만 떨어져 있었는데도 이렇게 힘든데?

그를 영영 잃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심장이 쥐어 뜯겨나가는 것처럼 아픈데?

아니.

설령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더라도.

그래서 원래의 자신인 ‘안수희’로서의 삶을 포기해야 하더라도.

그렇다 해도 얀피르를 잃는 것보다는 나았다.

‘네가…… 얀피르 네가 없으면 안 되겠어.’

산수이는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그녀가 결연한 표정으로 일어나 마법진을 향해 다가갔다.

신비로운 음성이 또다시 그녀에게 물었다.

[너는 그의 반려인가?]

이제 더 이상 두려울 것도, 망설일 것도 없었다.

산수이는 마법진 앞에 당당하게 서서 큰 소리로 외쳤다.

“그렇다, 나는 얀피르의 반려다!”

순간 겹겹이 쌓여있던 모든 마법진들이 진홍빛 연기가 되어 허공에 흩어졌다.

쿠구구구—

곧이어 대지가 크게 진동하며 땅굴 깊은 곳까지 연결된 거대한 계단이 솟아올랐다.

이윽고 분홍빛 연기 속에서 산수이를 향한 마지막 음성이 울려 퍼졌다.

[들어가도 좋다. 드래곤 제국의 마지막 황태자, 얀피르 드 라첸의 반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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