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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세신사 영애님-71화 (71/150)

71화.

몇 시간 전.

프리트는 얀피르의 등에 올라탄 채 창공을 날아 페니아 왕국으로 향하고 있었다. 산수이의 안위를 걱정하는 그들의 얼굴에 짙은 그늘이 드리워졌다.

하지만 두 남자는 그새를 못 참고 그녀를 구하러 가는 와중에도 서로를 향해 으르렁대기 시작했다.

특히나 프리트는 얀피르를 향해 시퍼런 눈을 부라리며 주먹을 꽉 쥐어 보였다.

“그러니까 지금, 드래곤 네놈이 산수이 영애의 몸에 위치추적기를 달았다…… 이 말이냐?!”

“위치추적기라니, 호신용 목걸이라니까!”

“영애가 어디에 있는지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며, 그게 위치추적기가 아니라 뭔데!”

“그야 내 몸의 일부를 떼서 만든 물건인 걸 어떡해? 딱히 알려고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신호가 오는걸.”

“아니 근데 이 자식이 진짜?”

분노한 프리트가 얀피르에게 헤드락을 걸어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순간 날고 있던 얀피르의 몸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켁……!”

가까스로 다시 중심을 잡은 얀피르가 프리트를 향해 정색했다.

“야, 너 돌았어? 주인 구하기도 전에 같이 추락사하고 싶냐고! 그 목걸이 없었으면, 주인을 찾기는커녕 그 전에 무슨 일이 생긴 건지도 모를 뻔했잖아!”

그건 그랬다.

얀피르의 목덜미를 스르륵 놓아버리며, 프리트가 생각에 잠겼다.

“흐음…….”

그를 흘끗 뒤돌아보던 얀피르가 불안한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번엔 또 뭔데? 난 이제 네놈이 조용해지면 더 불안해.”

“네놈의 비늘로 만들었다는 그 목걸이 말이다.”

“또 뭐! 너 이따 주인 만나서 위치추적기니 뭐니 그딴 쓸데없는 소리 하기만 해…….”

“그 물건, 나에게도 하나 만들어줬으면 좋겠군.”

“뭐어?!”

기함하는 얀피르를 향해 프리트가 눈 하나 깜짝 않고 뻔뻔하게 말을 이었다.

“수호의 증거로 삼기에 딱 좋겠어.”

그 말을 들은 얀피르가 끔찍스럽다는 표정으로 진저리쳤지만, 그 목걸이에 담긴 의미를 알 리가 없는 프리트는 그저 얀피르를 향해 씩 미소 지으며 이렇게 덧붙일 뿐이었다.

“목걸이는 칼을 휘두를 때마다 덜렁거릴 테니 좀 그렇고.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닐 수 있는 것……. 그래, 반지! 반지가 좋겠어!”

“바, 반…… 뭐?!”

“난 목걸이 대신 반지로 부탁한다, 얀피르.”

그렇게 말하며 프리트는 얀피르를 향해 자신의 손가락을 쭉 펴서 내밀었다.

제 비늘 반지를 낀 프리트의 모습을 상상해 버린 얀피르는 그만 참지 못하고 허공을 향해 불꽃을 내뱉어버렸다.

화르르륵-!

깜짝 놀란 프리트가 정색했다.

“으헉! 아니 왜 불을 뿜고 그래! 누가 지금 당장 만들어 달래? 영애를 구출하고 나서 제국에 돌아가면 말이야! 내가 그 정도 생각도 없는 줄 알아?”

그렇게 말하고는 또다시 자신을 향해 손가락을 내미는 프리트를 향해, 얀피르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그르렁거렸다.

“너 이 새끼 그 손가락 당장 못 치워? 확 불 질러 버린다?”

“아니 그깟 반지 하나 만들어 주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이렇게 비싸게 구는데?”

“크아아악!”

그렇게 한동안 하늘 위에서 요란한 불꽃놀이가 이어졌다.

결국 얀피르의 비늘 반지를 포기한 프리트가 불만스러운 듯 중얼거렸다.

“아, 됐어. 이젠 준다 해도 안 받아.”

“누가 네놈한테 만들어 준대?”

“됐으니까 좀 더 빨리 날 수는 없나? 이러다 늦겠어!”

그 말에 얀피르가 프리트를 돌아보았다.

“……이미 최고 속도로 날고 있었어. 안 그래도 네놈이 이 압력을 견디고 있는 게 신기하던 참이었지. 황태자 너, 인간이 맞긴 하냐?”

“그거, 칭찬이지?”

“혹시 살면서 칭찬 들어본 적 없어? 됐고, 꽉 잡기나 해. 조금 더 무리해서라도 속력을 내 볼 테니까.”

얀피르는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며 좀 더 빠르게 구름 사이로 미끄러져 나갔다.

“크으읏……!”

이미 인간이 견딜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프리트는,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괴로운 내색을 하지 않으려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윽고 저 멀리 페니아의 수도가 보이기 시작했다.

프리트가 얀피르를 향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신호가 오는 곳이 정확히 어디지?”

“왕궁 아주 깊숙한 곳인 것 같다.”

“깊숙한 곳이라……. 그럼 이렇게 하자.”

“말해 봐.”

“성 안쪽으로는 내가 뚫고 들어갈 테니, 너는 바깥에서 근위대들을 유인하다 영애의 위치가 파악되면 나에게 알려 줘.”

그 말을 들은 얀피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놈에게 주인을 맡기는 건 죽기보다 싫지만…… 나쁘지 않은 생각이야. 알겠다, 맡겨둬.”

곧이어 페니아의 왕궁이 모습을 드러냈다. 성벽 위에는 보초 몇 명이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프리트가 아래로 뛰어내릴 준비를 마친 후 고개를 끄덕이자, 얀피르가 빠르게 성벽을 향해 하강했다.

“주인을 꼭 구해내라, 황태자. 그리고 절대…… 죽지 마라.”

“날 대체 뭐로 보는 거야, 드래곤.”

프리트는 그를 향해 미소를 씩 지어 보이더니, 곧장 성벽 위를 향해 뛰어내렸다.

찬란한 유성처럼 날아내리는 그를 향해 얀피르가 마지막 인사를 외쳤다.

“혹시라도 주인 구한답시고 껄떡거릴 거면 그냥 죽어도 상관없고!”

“하나만 해, 이 드래곤 놈아!”

***

방금 전.

감옥을 떠나는 헤슬리히의 뒷모습을 보며 산수이는 생각했다.

‘도망치려면 기회는 지금뿐이다!’

산수이는 간수의 허리춤에 달려있는 열쇠를 바라보며, 결연한 표정으로 그를 불렀다.

“저기요, 간수님?”

하지만 간수는 그녀에게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허튼수작 부리지 말고, 가만히 있어!”

“에이, 아저씨. 그러지 마시고요.”

“뭐, 뭣 아저씨?”

그 말에 움찔한 간수가 표정을 잔뜩 찌푸리며 산수이에게로 다가왔다.

“내가 어딜 봐서 아저씨라는 거야!”

발끈한 그가 철창을 쥐곤 위협적으로 흔들어댔다.

그때 산수이가 작은 이태리타월 조각으로 간수의 손등을 쓱 밀었다.

“흐읏……?”

거칠고 따가운 감각이 그의 몸을 관통했다.

‘이태리타월 조각이 그것밖에 없었을 줄 알고? 하나 더 숨겨두고 있었지롱.’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간수가 산수이를 향해 훌쩍이며 말했다.

“흐윽, 아저씨라니. 나 정말 그렇게 늙어 보여?”

“그건 내가 미안하다니까? 어두워서 잘 안 보였어.”

아니 저 얼굴이 자신과 동갑일 줄 누가 알았겠냐고.

그가 계속해서 울먹였다.

“이게 다 햇빛도 보지 못하고 지하 감옥에서만 일해서 그런 거야. 사실 내 꿈은 간수가 아니었다구!”

“잘됐네. 그럼 오늘 당장 때려치우고 나랑 밖으로 나가자.”

“그럴까? 그럼 나도 피부 나이를 되돌릴 수 있을까?”

“당연하지. 이런 건 목욕하면서 때 몇 번 밀어주면 금방이야.”

“정말?”

“그럼 정말이지. 그러니까 일단 내 탈출에 좀 협조해 줘. 나중에 우리 목욕탕 놀러 오면 내가 아주 서비스 팍팍 넣어서 잘 밀어 줄…….”

그때였다.

“이, 이게 대체 무슨……?”

갑자기 들려온 귀에 익은 목소리에 놀란 산수이가 고개를 돌아보았다.

곧이어 어둠 속에서 프리트 황태자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제 눈앞에 벌어진 상황을 보고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철창 앞에 쪼그리고 앉아 고개를 파묻은 채 울고 있는 간수와, 그 옆에 팔짱을 낀 채 서서 그를 조련 중인 산수이라니.

산수이 역시 제 눈앞에 선 프리트를 보고 깜짝 놀랐다.

“화…… 황태자 저하?!”

와락!

프리트는 빠르게 달려가 제 앞에서 걸리적거리는 간수를 발로 걷어차 기절시켜버리고는, 산수이를 제 품에 안았다.

산수이는 자신을 끌어안고 있는 프리트의 손이 떨리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저하, 대체 어떻게 여기 계신 거예요?”

그때 프리트의 눈에 시퍼렇게 멍든 산수이의 목덜미가 들어왔다. 그녀의 손목 역시 군데군데 새빨간 자국이 남아있었다.

“……!”

프리트가 무너질듯한 표정으로 산수이를 향해 중얼거렸다.

“늦어서…… 내가 너무 늦어서 미안해, 영애.”

그가 손바닥으로 산수이의 얼굴을 소중히 감싸 안았다. 그녀를 바라보는 프리트의 눈시울이 점점 붉어졌다.

그 모습을 본 산수이는 크게 당황했다.

“저하? 지금 우시는 거예요?!”

“약속하지. 내가 그대를 대신해서 피의 복수를 하겠노라고.”

“복수? 아! 헤슬리히 그 자식 말씀이시구나.”

“감히 그대에게 손을 댄 그 파렴치한 놈의 모가지를 따서 제국 앞에다 걸어놓겠어. 그러니 그대는 아무 걱정 말고 나한테 와. 제국으로 돌아가는 즉시 결혼…….”

“아, 아니 잠깐! 손을 댔다뇨? 그리고 여기서 왜 또 결혼 얘기가 나오는데!”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산수이가 프리트를 진정시켰다.

“왜 그런 오해를 하신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고요!”

“그게 정말이야? 그럼 이 상처들은 대체 뭔데!”

하지만 산수이는 고개를 저으며 프리트의 팔을 끌어당겼다.

“아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요. 일단 저랑 좀 들를 데가 있어요, 저하.”

“뭐? 감옥에서 탈출하는 마당에 대체 어딜 들르자는 거야? 제정신이야, 영애?”

“자세한 건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일단은 국왕의 집무실로 가요! 증거를 찾아야 한단 말이에요!”

프리트가 놀란 눈으로 물었다.

“지금 이 나라 국왕의 집무실을 뒤지겠다는 거야? 그건 불법이라고!”

‘불법……?’

산수이는 계단 곳곳에 피를 흘린 채 쓰러져있는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그럼 이건 합법입니까……?’

산수이가 프리트를 향해 자신의 목덜미를 가리켰다.

“저하, 아까 이 상처 뭐냐고 물어보셨죠? 페니아의 국왕이 제 목을 졸랐어요. 절 죽이려고.”

순간 프리트의 눈깔이 뒤집혔다.

“헤슬리히 이 개자식이!”

광분한 프리트가 칼을 다잡으며 산수이를 재촉했다.

“서둘러! 증거를 다 찾고 나면 그 자식 집무실에 불이라도 질러야겠으니.”

“지금 방화를 하자고요?”

“아니야, 역시 그걸로는 성에 안 차. 그놈 목부터 먼저 딴 다음에 방을 뒤지자고.”

“대체 저하한테 불법의 의미가 뭐예요?”

그렇게 두 사람은 헤슬리히의 집무실을 향해 서둘러 달리기 시작했다.

***

대전 한가운데 덩그러니 서 있던 헤슬리히는 당장이라도 지리기 직전이었다.

이 넓은 대전에 자신과 드래곤 단둘만 남아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헤슬리히는 사시나무 떨듯 요동치는 제 몸을 겨우 추스르며 얀피르를 향해 입을 열었다.

“드, 드래곤이시여! 제가 아까 한 말은 다 거짓입니다! 전 비덴비덴 영애의 손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정말입니다!”

“주인이 무사하다는 건 나도 알고 있어. 하지만.”

얀피르가 그를 향해 살기를 드러냈다.

“죗값은 치러야지?”

“죄, 죗값이요……?”

“내 주인을 위험에 빠트리려 한 죄. 게다가 그 더러운 입으로 그녀를 욕되게 한 죄.”

“자, 잘못했습니다, 드래곤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도록 만들어주지.”

얀피르의 서슬 퍼런 눈빛을 본 헤슬리히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으아아악! 게 아무도 없느냐!”

얀피르는 제거 마법을 시전하기 위해 헤슬리히를 향해 발톱 하나를 세웠다.

하지만.

순간 그는 일전에 산수이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려버렸다.

[절대 그 능력은 사람한테 쓰면 안 돼, 알겠어?]

‘크윽…….’

그가 멈칫하던 찰나, 어느새 몰려든 근위대들이 얀피르를 둘러쌌다.

“공격! 저 거대 괴물을 공격하라!”

물론 그들이 드래곤의 피부에 상처 하나라도 입힐 수 있을 리 만무했다. 하지만 여러 명이 떼로 달려드는 통에, 얀피르는 헤슬리히를 놓치고 말았다.

‘이런, 방심했다!’

얀피르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병사들을 가볍게 쓸어버리고는, 헤슬리히를 찾아 다시 성 밖으로 날아올랐다.

***

한편 산수이는 프리트의 도움으로 무사히 헤슬리히의 집무실에 도착해 그의 서랍을 뒤지고 있었다.

프리트가 산수이를 향해 물었다.

“그래서, 대체 여기서 뭘 찾아야 하는 건데?”

“그게 사실, 저도 잘…….”

“뭐? 지금 장난해, 영애?”

“아무튼 황후마마와 관련된 건 모두 다요!”

“황…… 후? 제국의 황후 말이야?”

황후란 말은 들은 프리트가 의아한 표정으로 헤슬리히의 책상 위 서류들을 뒤적거렸다.

순간 그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어, 이건……?’

그가 서류뭉치를 집어 들어 빠르게 읽어내려가던 찰나.

갑자기 집무실 문이 벌컥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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