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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세신사 영애님-64화 (64/150)

64화.

산수이는 제 손에 들린 서신을 두 번이나 읽고도 믿을 수 없었다.

제국 황제의 인장이 찍힌 그 편지에는, 페니아 왕국 사절단에 그녀가 마지막 파견자로 선정되었다는 것뿐 아니라, 페니아에서 산수이와 직접 이태리타월을 교역하길 희망한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이태리타월의 첫 수출이다!’

안 그래도 페니아와 교역을 하고 싶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편지를 들고 있는 산수이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것은 정말이지 엄청난 기회였다. 심지어 이 강대한 제국의 황제가 직접 지시한.

수출을 통해 벌어들일 수익도 무시하지 못하겠지만, 중요한 건 이제 이태리타월이 제국을 넘어 이웃 나라에서도 판매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제 목표에 플러스가 될 게 분명했다.

‘이 기회를 통해 이태리타월이 페니아에 소개된다면, 분명 이곳으로 여행 오는 손님들도 늘어나겠지!’

산수이의 마음이 벅차올랐다. 이것은 분명 목욕의 신이 강림하는 시기를 앞당겨 줄 것이 분명했다.

말하자면 외국인 손님을 유치하는 것이 아닌가!

비덴비덴 남작령이 제국 내에서만 유명한 관광 명소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해외 여행지가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실, 산수이가 이토록 사절단 파견에 적극적인 데는 남들에겐 차마 말할 수 없는 또 한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이번 사절단 파견 기간 동안 문제의 세 남자, 얀피르, 휘온, 그리고 프리트와 한동안은 떨어져 지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들을 피하고 싶은 것은 절대 아니었다. 아무렴 산수이도 사람인데 그들의 얼굴을 보고 호감이 생기면 생겼지, 절대 싫어할 수는 없었으니까.

‘마음 같아선 매일매일 봐도 질리지 않…… 아, 아냐. 정신 차리자.’

하지만 그녀는 제가 계속해서 그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것이 죄스러웠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 아니겠는가.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옛 성현들의 말을 믿어보는 수밖에.

‘사절단 파견 기간이 꽤 길던데. 그동안 만나지 않으면 다들 마음이 좀 가라앉게 될 거야.’

프리트가 사절단 명단에 제 이름을 올렸다고는 하지만.

‘아마도 프리트는 못 가게 될 확률이…… 크겠지?’

물론 긴 여행길, 가뜩이나 제국에 연줄도 없고 친구도 없는데 아는 사람이 동행하면 좋을 터였다. 게다가 그게 제국의 황태자라면 더할 나위 없이 든든할 터.

하지만 프리트의 마음을 아는 산수이로서는 차라리 혼자 가는 것이 마음 편했다.

한편 옆에서 산수이의 표정이 변해가는 걸 지켜보던 얀피르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일단 서신의 발신처가 황궁이라는 것부터 불만스러웠다.

‘주인이 또 한동안 남작저를 비우고 어디론가 떠나 있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드는데……?’

역시 짐승의 촉은 무시할 것이 못 되었다.

산수이는 황제가 보낸 서신에 수필로 한 자 한 자 정성스럽게 회신했다. 최고의 노력을 다해 때수건 수출을 준비하겠노라고.

그렇게 찜질방 오픈과 이태리타월 추가 생산을 준비하며 산수이는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차라리 그게 나았다. 몸이 바쁘고 시간이 없을수록 세 남자를 만날 시간 역시 줄어들었으니까.

그렇게 시간이 흘러 드디어 비덴탕의 찜질방이 처음으로 문을 여는 날이 다가왔다.

***

손님들을 맞이하기 전.

산수이는 제 머리에 양머리 수건을 뒤집어쓴 채, 또 다른 수건으로 두 번째 양머리를 만들고 있었다.

그녀의 앞에 선 얀피르는 산수이가 쓰고 있는 그 기묘한 모자를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주인, 이게 뭐야?”

그녀가 신난 듯 제 머리를 양옆으로 흔들어 보였다.

“찜질방에서 쓰는 양머리 모자야. 엄청 귀엽지 않아?”

“양……?”

하얀색 양머리 수건을 뒤집어쓰고 자신을 향해 해사하게 웃는 산수이를 보자 얀피르는 심장이 아팠다.

‘윽…… 주인 너, 오늘따라 어쩌려고 이렇게 귀엽냐.’

속내가 시커메진 이 짐승은 지금 제 앞에 있는 작고 순한 양 한 마리가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당장에라도 입을 맞추고 싶다 생각하던 찰나.

푹—

산수이의 손에 들려있던 그 두 번째 양머리 모자가 얀피르의 머리 위에도 쓰였다.

“엥……!?”

당황한 표정으로 굳어버린 얀피르를 보며, 산수이는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으하학! 얀피르 너 진짜.”

산수이가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내며 외쳤다.

“진짜 안 어울린다!”

덩치도 큰 데다가 순한 양과는 거리가 영 멀게 생긴 얀피르가 흰색 양모자를 쓰고 있으니, 그렇게 부조화할 수가 없었다.

이건 뭐, 늑대가 양의 탈을 쓰고 있는 격이었다.

웃느라 거의 숨이 넘어가고 있는 산수이를 향해 얀피르가 입을 열었다.

“아 뭐야, 주인. 그런 거였어?”

얀피르가 그녀를 향해 배시시 웃어 보이며 또다시 제 얼굴을 가까이 들이댔다.

“뭐, 뭐가?”

“나랑 이렇게 똑같은 모자 쓰고 싶었던 거였냐고, 연인처럼.”

“뭐?!”

왜 얘기가 그렇게 돼?

“기왕 이러는 거, 반지도 같은 걸로 하나 맞출까, 우리?”

산수이는 그를 흘겨보았다. 저놈의 치근거림은 어째 지치지도 않고 날이 갈수록 더 심해지는 것 같았다.

산수이가 그의 머리 위에 놓인 양머리를 낚아채려고 손을 뻗었다.

“됐어. 이리 내놔.”

“어어어? 줬다 뺏는 게 어딨어?”

얀피르는 양머리 모자를 끝까지 사수하기 위해서 제 머리 위에 손을 얹은 채 남작저 밖으로 빠르게 도망 나갔다.

그러다 남작저로 들어오고 있던 휘온 및 프리트와 마주쳤다.

“…….”

얀피르의 모습을 본 프리트가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물었다.

“뭐야, 왜 수건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있어?”

휘온 역시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드디어 미친 거냐, 얀피르?”

“미쳤다니, 이건 주인이 직접 만든 모자라고.”

그 말을 들은 휘온이 반색했다.

“어쩐지. 아방가르드한 것이 매우 훌륭한 디자인이라고 생각했다.”

금세 태도를 바꾼 휘온을 얄미운 듯 노려보며 프리트가 무어라 욕지거리를 하려던 찰나.

얀피르를 따라 저택 밖으로 나온 산수이 역시 그들과 마주쳤다.

“얀피르 너 거기 서…… 어? 저하? 휘온? 찜질방 완공식 보러 오신 거예요?”

산수이는 그들을 보고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본 두 남자는 정신이 아찔해졌다.

‘설마, 아닐 거야.’

하지만 불안한 예감은 언제나 틀리질 않는 법이었다.

***

결국 세 남자는 다 함께 귀여운 양머리 수건을 뒤집어쓴 채 찜질방 완공식에서 리본 커팅을 함께했다.

산수이는 방문객들을 향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고.

얀피르는 제 머리 위에 얹어진 것에 대해 별로 개의치 않아 하는 듯 보였으나.

휘온과 프리트는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찜질방 오픈 첫날이라고 몰려든 수많은 인파 사이에서 낮은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저거, 수건 아냐? 대체 왜 수건을 머리에 쓰고 계신 거래?”

“게다가 저기 저분, 황태자 저하 아니셔? 피 맛에 미치셨다는 소문이 돌던데, 오늘 보니 별로 그런 것 같지 않은데?”

“내 말이. 그런 흉악한 소문의 주인공이 저런 귀여운 모자를 쓰고 계실 리가 없잖아.”

쪽팔림은 순간이었지만 이 양머리 모자로 인해 최대 혜택을 받은 것은 다름 아닌 프리트 황태자였다. 그의 이미지가 제국민들 사이에서 새롭게 탈바꿈된 것이다.

이제 찜질방 안에서 양머리 수건 모자는 제국의 황태자가 애용한다는 최첨단 유행 아이템이 되어 모든 아이의 머리 위에 얹어져 있었다.

“엄마, 나도 황태자 저하처럼 양머리 왕관 쓸래!”

프리트는 이런 제 자신의 이미지 변신에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하아 제길. 차라리 사람을 썰고 다닌다는 소문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어…….’

그는 스스로도 왜 이렇게까지 산수이한테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게 싫지 않았다.

한편, 찜질방 매출의 최고 공신은 역시나 산수이의 예상대로, 매점과 레스토랑이었다.

특히나 맥반석 계란은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가 많아, 1인당 구매할 수 있는 개수에 제한을 둬야 할 정도였고.

미역국과 다른 한식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아예 찜질방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죽치고 앉아 삼시 세끼를 해결하는 고객까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제야 건축가와 실내 디자이너는 산수이의 고견을 이해할 수 있었다.

‘과연. 그래서 찜질복이란 것을 따로 준비해 두셨던 것이구나……! 의, 식, 주 이 모든 것이 제공되어야 비로소 찜질방에 하루 종일 머물며 매상을 올려주는 고객이 존재할 수 있는 법!’

실제로 고객들은 찜질복을 입는 것에 대단히 만족했다. 그 덕분에 가족들이 다 함께,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 찜질을 편안하게 즐길 수 있었으니까.

게다가 흐르는 땀이 자연스럽게 옷에 흡수되기도 하고.

고객들의 웃는 모습을 바라보던 산수이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음 좋아. 잘되고 있어! 그래, 이게 바로 찜질방이지!’

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계란 껍데기를 까기 시작했다.

세 남자는 나란히 양머리 모자를 쓴 채 산수이의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그녀가 맥반석 달걀을 까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마다 음료 통에 매실, 식혜, 그리고 냉커피를 담아서 빨대로 쪽쪽 빨아 마시며.

휘온은 제가 마시고 있는 냉커피를 행복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하아아, 차가운 커피가 이렇게 맛있을 줄은. 역시 산수이는 천재야.’

계속해서 껍데기를 까던 산수이가 그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저를 위해 다들 양 모자까지 써주셨으니까, 오늘만은 제가 특별히 직접 계란을 까 드릴게요.”

물론 그것은 다음부터는 너희가 알아서 까 먹으란 소리였다.

산수이는 곧 능숙하게 첫 번째 계란 껍데기를 벗겨냈다.

세 남자의 시선이 그 계란에 가서 꽂혔다.

과연 저 첫 번째 계란을 셋 중 누구에게 먼저 줄 것인가?

세 남자의 가슴이 요동쳤다. 동시에 각자의 입 안에 빨려 들어가는 음료수의 속도도 더욱더 빨라졌다.

산수이가 그 첫 번째 계란을 세 남자 쪽으로 뻗는 순간…….

휙—

얀피르가 그 계란을 누구보다 빠르게 낚아채 제 입 속으로 쏙 넣어버렸다.

격분한 프리트가 그의 멱살을 잡았다.

“야 이 자식아! 당장 뱉지 못해?!”

얀피르는 멱살을 잡혀 흔들리는 와중에도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꿋꿋이 계란을 씹어먹었다.

휘온은 허망한 듯 얀피르의 입 안으로 들어간 계란을 바라보다, 재빨리 시선을 산수이의 두 번째 달걀에 두었다. 다음 것은 제가 낚아채리라 다짐하며.

산수이는 이제 세 남자를 무시한 채 묵묵히 다음 계란을 까기 시작했다.

‘뭐, 다 까두면 알아서들 먹겠지.’

그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산수이가 접시 위에 그다음 계란을 내려놓는 순간마다 온갖 유치하고 치사한 술수가 난무했고.

세 남자는 계속해서 계란을 차지하기 위한 혈투를 벌였다.

“이거 안 놔?”

“당장 손 떼!”

“내려놓으십시오!”

그렇게, 자신의 입에 들어가는 것이 대체 계란인지, 상대의 주먹인지 분간할 수 없는 시간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

찜질방 오픈일이 지나고, 산수이가 페니아 왕국의 사절단으로 출발할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는 미리 준비해 둔 이태리타월들을 마지막으로 점검하였다. 교역을 위해 특별히 더 신경 써서 만든 우수한 품질의 제품들이었다.

산수이는 이태리타월을 손으로 쓸어 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이거 수출하면서 바나나를 꼭 좀 들여와 보고 싶은데. 잘되려나?’

페니아 왕국에서 절대로 타국에 내어준 적이 없다는, 오직 페니아의 왕족만이 먹을 수 있는 귀한 과일, 바나나.

그것이 이번 사절단에서 산수이가 목표하고 있는 타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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