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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세신사 영애님-53화 (53/150)

53화.

산수이가 프리트 앞에 찜질방 건설 계획서를 펼쳐 보였다.

기존의 황궁 목욕탕과 연결될 찜질방의 구조도에는, 온갖 아이디어가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황태자, 네가 뭘 좋아할지 몰라 일단 다 준비했다.’

그녀가 여러 가지 자재들을 꺼내 보이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이건 황토를 바른 방입니다. 흙냄새가 싫으시면, 맥반석을 써도 되고요. 암염 원석을 사용한 소금방이나, 편백나무방도 추천드립니다. 아! 얼음방도 괜찮겠네요.”

“단순히 땀을 빼는 뜨거운 방 정도로 생각했는데, 정말 이게 모두 가능하단 말인가?”

프리트가 경탄 어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렇습니다, 저하. 게다가 각각의 방들은 저마다 다른 효능을 가지고 있지요.”

“숯으로 찜질방을 만들 수 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게르마늄 같은 원석까지 사용할 수 있다니.”

프리트가 혀를 내둘렀다.

“정말 대단해. 그대의 제안은 항상 놀라워.”

“과찬이십니다, 저하. 특별히 마음에 드는 방이 따로 있으신가요?”

“특별히 마음에 드는 게 있냐고?”

프리트가 책상을 탕 치며 외쳤다.

“더 볼 것도 없이, 영애가 제안한 모든 방을 다 짓겠다!”

“모조리…… 예?!”

당황한 산수이가 외쳤다.

“하, 하지만 제가 아직 미처 말하지 못한 것들이 아직 수두룩한데요.”

“됐어. 영애가 알아서 잘 정리해 왔겠지. 나는 그대를 전적으로 믿고 모조리 건설할 생각이고.”

“그러기엔 건설 비용이…….”

그 말을 들은 프리트가 탄식하며 내뱉었다.

“하, 영애. 지금 황태자 앞에서 돈 걱정을 하는 거야? 이 카데베르 제국도 아직 갈 길이 멀군.”

“그게 아니라, 혹여 국고를 낭비한다는 소문이 돌아 민심이 나빠질까 그렇습니다.”

그 말을 들은 프리트는 적잖이 놀랐다.

‘역시, 아무리 봐도 제국의 황후 감이다.’

프리트가 미소지으며 답했다.

“전혀 걱정할 거 없어. 이 찜질방은 전적으로 내 사비만을 충당해 지을 거니까.”

“예에? 저하의 사비요?”

아니, 그럼 대체 돈이 얼마나 많은 거야?

하지만 놀랄만한 일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공사가 완료되면, 황제 폐하의 탄신일에 이 찜질방을 선물로 드릴 예정이야.”

“화, 황제 폐하께요?”

“아, 물론 명목상 그렇다는 거야. 결국 이 찜질방을 제일 많이 사용하는 건, 이 몸일 테니까.”

그렇게 말하고는 호탕하게 웃는 프리트였다.

산수이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왜 황제 폐하께? 이 찜질방은 저하의 숙면을 위해 지으시는 게 아니었나요?”

프리트는 산수이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뭐, 그건 영애도 조만간 알게 될 거야.”

“……?”

“아무튼 그대의 창의력을 이 찜질방 안에 모조리 쏟아 넣어 봐.”

“정말이시죠, 저하? 모아두신 사비를 모두 날리실지도 모릅니다?”

그 말에 프리트가 또다시 웃었다.

“걱정 말고 마음껏 써, 영애.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또 황태자 지갑을 벗겨먹어 보겠어?”

역시 미친놈이다 뭐다 해도, 한 나라의 황태자는 달랐다.

산수이의 눈에 프리트가 오늘처럼 늠름해 보인 적이 없었다.

‘저 통 큰 배포! 이래놓고 나중에 후회하기 없기다?’

산수이는 제 모든 예술혼을 불태워서 최고의 걸작을 짓겠노라고 다짐했다.

그녀가 원래 세계에서 경험했던 모든 종류의 찜질방들을, 한 건물 안에 모조리 때려 넣어서.

***

그렇게 황궁 내의 찜질방 공사가 시작되었다.

산수이는 전반적인 모든 과정에 관여했다.

“이쪽 방은 내벽에 배관을 설치하도록 하죠.”

“이쪽 황토방은 온돌, 그러니까 바닥을 데워서 열을 내는 것으로 갈게요.”

원래 세계에 있을 때, 취미로 찜질방의 원리에 대해 따로 공부해두었던 것이 이렇게 도움이 될 줄 몰랐다.

‘행복해……! 완전히 덕업일체됐어. 난 성덕이다!’

그리고 지금, 어쩌면 찜질방보다도 더 중요할지 모르는 한 가지 일이 남아있었다.

자신의 방으로 프리트와 발레아나를 초대한 산수이가 그들의 앞에 미리 준비해 둔 바구니를 내려놓았다.

탁-

“영애, 이건 대체……?”

바구니에서 풍겨 나오는 비릿한 냄새에 프리트가 코를 찡그리며 물었다.

산수이는 바구니에서 잘 구워진 맥반석 계란을 하나 꺼내들었다.

“이건, 맥반석에서 구운 계란이에요.”

“뭐? 대체 계란을 가지고 무슨 짓을 한 거야.”

하여간 저놈의 조동아리.

‘무슨 짓이라니. 그래놓고 맛있다고 하지나 마라.’

산수이가 계란 껍데기를 까며 프리트에게 말했다.

“막상 드시면 좋아하실 거라고요.”

그런 산수이를 바라보는 프리트는 혼란스러웠다.

얼마 전엔 분명 제 잘난 얼굴을 보고 동요하지 않았나.

‘그런데 지금은 또 천연덕스럽게 내 앞에 앉아 계란 껍데기나 까고 있다니. 그것도 귀족 영애가.’

정말 자신에게 잘 보일 생각은 추호도 없는 것인가.

게다가 산수이는 계란 껍데기를 까며 혼잣말까지 중얼거렸다.

“역시, 계란은 손으로 까야 맛이라니까.”

반면 발레아나는 별 의심도 없이 자신도 계란 한 알을 집어 들곤 열심히 까기 시작했다.

‘언니가 어련히 알아서 맛있는 걸 만들어 왔을까.’

곧이어 산수이는 능숙한 손길로 껍데기를 모두 벗겨낸 후, 갈색 속살이 드러난 계란 끄트머리에 소금을 살짝 찍어 프리트에게 불쑥 내밀어줬다.

“자, 저하. 아-하세요!”

그 격의 없는 모습을 본 시녀들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커, 커틀러리도 없이 황태자 저하께 맨손으로 음식을 권하시다니?’

시녀들은 이러다 궁 안에서 송장을 치우게 되는 건 아닌지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하지만 산수이는 주위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계속해서 프리트를 향해 계란을 흔들어 보였다.

“안 드세요?”

‘으윽…….’

프리트는 그 구릿한 냄새에 불편함을 느껴 차마 선뜻 손을 내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껍데기 까기에 성공한 발레아나가 제 손에 들린 계란을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와앙—

순간 그녀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발레아나는 제 입에 계란이 한가득 들어있다는 것도 자각하지 못하곤 프리트를 향해 웅얼거렸다.

“오, 오아어이! 이어, 마이어여! 마이어!”

이 모든 상황 속에서 프리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상한 구린내가 나는 계란부터, 시녀들을 내버려 두고 제 손으로 계란을 까주는 산수이 영애 하며.

식사 예절이라곤 저 멀리 날려버린 제 동생까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지적을 하자면 끝도 없었지만.

일단은 하는 수 없이 산수이가 건네준 맥반석 계란인지 뭐시긴지를 받아들려던 찰나였다.

똑똑—

갑자기 밖에서 노크 소리가 나자,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산수이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환하게 웃었다.

“아! 휘온 공작이 왔나 봅니다!”

“휘, 휘온?!”

제 친우의 이름을 들은 프리트의 얼굴이 굳어졌다.

하지만 그가 뭐라 반응할 새도 없이, 산수이는 쪼르르 달려 나가 휘온을 맞이했다.

“휘온, 어서 와요!”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산수이.”

“천만에요. 어서 와서 앉으세요.”

방 안으로 들어서던 휘온이 프리트를 향해 깍듯이 예를 올렸다.

“제국의 황태자님을 뵈옵니다.”

프리트가 불만스러운 듯 내뱉었다.

“네놈이 여긴 웬일이지.”

“영애께서 새로운 사업 아이템에 대해 논의하고 싶다 하시어. 아, 혹시 제가 오는 걸 모르고 계셨습니까?”

그 말을 들은 프리트의 속이 알 수 없이 뒤틀렸다.

‘나와 발레아나만 초대하여 다과를 즐기는 것인 줄 알았는데, 사업 아이템 논의였다고?’

심지어 휘온은 사전에 저와 발레아나가 여기 있을 거란 얘기를 듣고 온 모양이었다.

하지만 저는 산수이에게서 들은 게 전혀 없었다.

휘온은 심기 불편해 보이는 프리트를 뒤로한 채, 산수이의 옆자리에 앉았다.

“오, 그대가 찜질방에서 판매해보고 싶다는 음식이 바로 이것이군요?”

휘온의 시선이 닿은 바구니의 맨 위에는, 아까 산수이가 프리트에게 건네려다 만 달걀이 놓여있었다.

“확실히 놀랍군요. 조리된 달걀이 이렇게 갈색빛을 띨 수 있다니.”

“꼭 원석 같고 예쁘지 않나요? 보기에만 좋은 게 아니라 맛도 좋답니다.”

산수이는 프리트에게 주려다 만 계란을 휙 집어 들어, 대신 휘온에게 건네주었다.

“자, 휘온. 얼른 먹어봐요!”

그 모습을 본 프리트는 눈이 뒤집혔다.

저 계란은 아까 산수이가 나에게 먼저 주려던 건데!

“여, 영애?”

하지만 프리트가 말을 다 잇기도 전에, 휘온은 망설임 없이 계란을 받아들어 한입 베어 물었다.

그의 얼굴에 놀라움의 빛이 번져나갔다.

“이 맛은……! 확실히 기존의 삶은 계란과는 다른 맛이군요! 이 적당한 짭조름함 하며.”

그는 계속해서 시식을 이어갔다.

“그대의 말대로 찜질방에서 땀을 흘리고 난 뒤 먹으면 아주 그만이겠는데요.”

산수이는 이심전심이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 말이 그 말이에요. 역시 휘온, 당신이랑은 잘 통한다니까요?”

“흠. 그런데 이렇게 계란만 먹다 보니 목이 좀 막히는군요. 여기에다 음료를 함께 묶어서 팔면 더 어울릴 것 같기도 한데.”

“어머, 휘온! 안 그래도 생각하고 있는 음료가 있었어요!”

“역시!”

산수이와 휘온은 짝짜꿍해가며 찜질방 먹을거리에 대한 논의를 이어나갔다.

어찌나 둘이 죽이 잘 맞는지 도저히 둘의 대화에 끼어들 틈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 두 사람을 보며 발레아나는 제 오라버니를 곁눈질했다.

하지만 프리트는 그저 휘온에게 제 계란을 빼앗긴 것에 대해서만 분개하고 있는 듯 보였다.

발레아나는 한숨이 나왔다.

‘이러다가 저 여우 같은 휘온 오빠에게 산수이 언니를 빼앗긴다고요, 오라버니!’

그러는 사이에도 산수이와 휘온의 대화는 점점 더 무르익고 있었다.

“이 고소하고 짭짤한 계란에다 달콤새콤한 매실주스를 곁들인다니. 후우, 산수이 그대는 목욕뿐 아니라 미식에도 일가견이 있었군요.”

“사실 생각해둔 게 한 가지 더 있어요, 휘온. 식혜라는 음료인데. 일단 쌀로 밥을 지은 후, 엿기름물에 섞어서…….”

사실 휘온은 여기 오기 전, 황실 도서관에 처박혀 각종 요리 서적을 독파하고 온 상태였다.

‘일전에 산수이가 요리 잘하는 남자를 좋아한다고 했었지.’

찜질방 먹거리에 대해 논의하자는 걸로 보아, 분명 또 산수이만의 독창적인 레시피를 쏟아낼 것이 분명했다.

그걸 다 알아듣기 위해선 철저한 사전 준비가 필요했다.

그 결과, 지금 휘온은 산수이의 설명만을 듣고도 대충 식혜가 어떻게 만들어지는 음료인지 간파했다.

‘음음. 역시 미리 공부해 오길 잘했군. 한 마디도 못 알아들을 뻔했어.’

하지만 바로 건너편에 앉은 프리트는 한 마디도 못 알아듣고 있었다.

‘대체 저게 다 무슨 소리야? 뭘 삭혀? 음료에 밥알을 왜 넣느냐고!’

산수이가 하는 말들은 프리트에게 있어선 너무나 어려웠다.

제가 맨날 전장에서 세우는 전술보다도 더 복잡하고 어려운 게 저 식혜라는 음료를 만드는 일 같았다.

‘제기랄, 돌겠군.’

혼몽해지고 있는 자신과는 반대로, 휘온 녀석은 그녀의 말을 모두 다 알아듣고 있는 눈치였다.

제 오라버니의 눈이 점점 초점을 잃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발레아나는 속으로 발을 동동 굴렀다.

‘아, 이러다 휘온 오빠가 또 점수를 따겠는데!’

참다못한 발레아나가 제 오빠를 팔꿈치로 툭 치며 조용히 소곤거렸다.

“오라버니! 저 두 사람, 저렇게 내버려 두실 거예요? 오라버니도 아이디어를 좀 내보세요!”

아이디어……?

식혜 레시피도 제대로 못 알아듣고 있는데 대체 무슨 아이디어를 내라는 말인가.

프리트 역시 저 대화에 끼고 싶지만 여태 할 말이 없어서 참고 있던 것이었다.

그때, 프리트의 머리에 무언가 번뜩 떠올랐다.

새로운 것, 그래서 산수이의 관심을 끌 만한 것……!

그것은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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