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프리트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산수이는 크게 당황했다.
‘휘, 휘온의 때를 공짜로 밀어줬냐고?!’
우려했던 상황이 닥친 것이다.
산수이는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절대 이 세 남자가 서로의 공짜 때밀이에 대해 알게 해선 안 된다고.
개싸움이 일어날 게 뻔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숨겨야 한다.
산수이가 아무것도 모르는 척 태연하게 말했다.
“저하, 말씀드렸다시피 이곳 비덴탕에서는 신분에 따른 차등 요금표를 엄격히 적용하고 있습니다.”
휘온의 경우엔 공작저로 직접 가서 때를 밀어준 거였으니까.
‘그러니까 난 거짓말은 한 마디도 안 했다……?’
산수이의 대답에 만족한 프리트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제 식솔들을 제외하면, 이 특혜를 받은 건 나 하나라는 소리군.’
프리트는 속으로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을 본 산수이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앞으로 누구든 절대 공짜 때밀이는 없어. 이걸 들키는 순간에는 아까와 같은 상황이 반복되게 될 테니까.’
세 남자가 눈앞에서 싸워대는 세기말 현장이라니.
그런 건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마음 굳게 다짐했다.
절대 다시는 공짜 때밀이는 없다고.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산수이에게 때를 밀리던 프리트의 머릿속에 문득 의문이 생겼다.
그가 산수이를 향해 물었다.
“그런데 말이야, 영애. 왜 사내놈들은 이곳에 때를 밀러 오지 않는 거지?”
“아무래도, 제국 남성들은 피부 관리를 받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니까요.”
“흠.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그러자 때밀이에 대한 철학을 얘기하는 산수이의 눈이 반짝 빛났다.
“좋은 피부를 가꾸는 데는 남녀노소 구분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용뿐 아니라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좀 더 많은 남성 고객님들이 편견을 깨고 때를 밀러 오셨으면 좋겠어요.”
프리트는 그녀의 모습이 퍽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그가 산수이에게 청혼을 했던 이유는 간단했다.
지긋지긋한 피 냄새에서 벗어나고 싶었으니까.
이 여자가 매일 제 곁에서 때를 밀어주며 속 얘기를 들어준다면 인생의 가장 큰 짐 하나를 덜어놓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 청혼한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다.
아마도 산수이가 황태자인 저에게 겁도 없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오목조목 따져대던 모습에서.
이미 그녀에게 연모의 감정을 가지게 된 것일지도 몰랐다.
지금껏 그를 바라보는 다른 영애들의 눈빛에는 오로지 공포, 두려움.
혹은 그런 괴소문들을 감수하고서라도 황태자비가 되고 싶다는 욕망 같은 것들밖엔 담겨있지 않았었으니까.
‘여자란 건 그저 귀찮은 존재일 뿐이었는데 말이지.’
산수이를 바라보며 프리트가 말했다.
“그대가 원한다면 내 친히 때밀이를 제국 남성들에게 추천해 줄 수도 있어.”
“저, 정말이십니까, 저하?!”
산수이가 세상 다 가진 듯한 표정으로 프리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모습을 본 프리트는 저도 모르게 허탈한 웃음이 났다.
지금까지 본 산수이의 모습 중 가장 밝아 보이는 표정이 아닌가.
‘내가 청혼했을 때랑은 비교도 안 되는군.’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황태자의 명예를 걸고 약속하지. 그대의 때밀이실에 남성 고객이 끊이지 않도록 만들어 주겠다.”
“감사합니다, 저하!”
그러자 이 사랑스러운 여인이 제 눈앞에서 처음으로 뛸 듯이 기뻐했다.
무슨 황금을 쥐여 준 것도 아닌데.
‘이건 뭐, 보통의 미끼로는 턱도 없겠는데.’
아주 천천히, 오랜 시간 동안 공을 들여야 할 것이다.
이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하지만 프리트는 자신 있었다.
어쨌든 제가 이제껏 살면서 목표로 했던 사냥감을 놓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
때밀이를 마친 산수이는 프리트의 등 위에 따뜻한 스팀 타월을 올려주며 말했다.
“그런데요, 저하. 일전에 제게 말씀하셨던 것 말입니다. 때를 밀지 않으면 다시 불면증이 올 것 같으시다는…….”
프리트가 씩 웃으며 물었다.
“왜, 이제라도 내 전속 세신사가 될 마음이 드나?”
“아, 그건 절대 아닙니다.”
산수이는 손으로 커다란 엑스 자를 만들어 보였다.
프리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가끔 보면 영애는 내가 황태자라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것 같아.”
“노여워 마시고요. 제게 때밀이만큼이나 좋은 생각이 있으니 한번 들어보세요, 저하.”
“때밀이만큼이나 좋은 것이라고?”
프리트는 산수이의 말에 호기심이 생겼다.
안 그래도 때를 미는 경험이 저에게는 마치 기적과도 같았는데, 그런 게 또 있었을 줄이야.
산수이가 프리트를 향해 자신 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찜질방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요?”
“찜질…… 방? 그게 무엇이지?”
“높은 온도의 공간 안에서, 열기로 땀을 뺄 수 있도록 특수 설계된 방입니다. 저하께서 때를 미실 수 없는 날엔 대신 황궁 찜질방에서 온몸의 땀을 쭉 빼시는 것이지요.”
프리트가 자신의 몸에서 아우의 피 냄새를 느낀다는 것은 아마도 정신적인 질환의 일종일 것이었다.
존재하지 않는 감각을 실재한다고 느끼는 것.
‘그럼 굳이 때밀이가 아니더라도, 찜질을 통해 온몸에서 땀을 뺄 수 있다면? 그럼 증세가 완화되지 않을까?’
물론 황궁에만 찜질방을 설치할 생각은 절대 아니었다.
겸사겸사 황궁에 하나, 비덴탕에 하나씩 짓는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레 로열 마케팅도 되겠지.
황족만 사용할 수 있다는 그 소문의 찜질방을 맨 처음 개발한 곳이 바로 비덴탕이라고 홍보하면 될 거고.
‘그럼 나는 돈도 벌고, 원래 세계에서처럼 찜질도 하고! 기왕 찜질방 만드는 김에 매점도 열어야겠다!’
그렇게 비덴탕의 명성이 더욱더 자자해지면, 제 최종적인 목표에도 빨리 도달할 수 있을 터였다.
바로 사우나스가 강림하는 것.
한편 산수이에게서 찜질방이란 것에 대해 들은 프리트는 귀가 솔깃했다.
고온의 방에서 땀을 뺄 수 있다니.
‘듣기만 해도 온몸의 피로가 땀과 함께 녹아내릴 것 같군.’
하지만 그 계획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었다.
찜질방이라는 것이 황궁 내에 생기게 되면, 지금처럼 산수이에게 때밀이를 받으러 남작령으로 내려올 핑계가 더더욱 없어져 버리지 않는가.
‘흠, 뭔가 방법이 없나.’
저 찜질방이란 걸 황궁에 설치하면서, 산수이도 계속 볼 수 있는 방법이.
고민 끝에 프리트가 산수이에게 말했다.
“황궁 내에 그런 시설이 들어선다면 좋을 것 같긴 하군. 단, 조건이 하나 있다.”
“무엇입니까, 저하?”
“황궁 내 찜질방이 완공될 때까지 산수이 영애, 그대가 수도로 올라와 직접 모든 것을 총괄하도록.”
“예?!”
총괄이라니.
그렇게 되면 비덴비덴 남작령을 비우고 수도로 올라가 있어야 하는 시간이 길어지게 될 터였다.
하지만.
‘아니지, 사람은 길게 볼 줄 알아야 해.’
장기적으로 봤을 땐 그게 훨씬 이득일 것이었다.
찜질방이 가져다줄 파급 효과가 더 클 것이고, 수도로 올라간 김에 추가 고객 유치를 하면 되고.
‘마침 얀피르가 때밀이 기술을 배워두기도 했으니, 안심이야.’
그렇게 생각하며 산수이는 프리트를 향해 상큼하게 웃어 보였다.
“명 받들겠습니다, 저하.”
이렇게 프리트와 산수이는 각자 속으로 딴마음을 품고서, 찜질방이라는 한배를 타게 되었다.
***
황궁으로 돌아간 프리트는 산수이와의 약속대로 제국의 남성들에게 때밀이를 전파했다.
얼마 후, 집사에게서 때밀이 예약 명단을 받아 든 산수이는 깜짝 놀랐다.
끝이 안 보일 정도로 수많은 남성들의 이름이 빽빽하게 적혀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산수이가 기대한 방식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래. 황태자 놈이 발레아나처럼 티 파티를 열 거라곤 기대도 안 했어. 적어도 살롱이라든가, 귀족 회의에서 슬쩍 언급하는 정도를 생각했었지. 근데 대체 이건 뭔데!’
프리트에 의해서 반강제로 이곳까지 끌려온 자들.
그들의 정체는 바로.
‘이거 완전 공권력 남용이잖아!’
황실 소속의 남성 근위병들.
프리트가 그들을 모조리 때밀이 예약 명단에 올려버린 것이다.
그저, 명령 불복종 시 죽음뿐이라는 짧은 덧붙임과 함께.
그래서인지, 예약 날짜가 되어 도착한 그들의 얼굴은 대부분 죽상, 오만상, 울상 셋 중 하나였다.
그들이 원해서 이곳에 온 게 아니었으니까.
제국의 남성 근위병들은 아직도 때밀이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하루 종일 훈련만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그들은, 보통 몸에 굳은살이 배기고, 상처가 나고, 땀에 절어 사는 것을 자랑이요, 명예로 여겼다.
그런 자들에게 여자들이나 관심을 가지는 피부 관리를 받고 오라니.
그들은 황태자가 미쳐도 정말 단단히 미쳤다고 생각했다.
“친구들에게 부끄러워서 얘기도 못 꺼낼 것 같네. 때밀이를 받고 왔다는 소릴 어떻게 하는가. 황태자님께서 드디어 실성하신 것이 분명해.”
“드디어라니……? 저하께선 예전부터 미쳐 계셨네.”
“그래도 사람을 썰고 다니시던 때보단 낫지 않은가? 난 그때만 떠올리면 아직도 다리가 떨린다고.”
“이젠 피 맛을 보는 것보다 목욕에 재미를 들리신 건가? 요샌 황궁 목욕탕 아니면 비덴탕에만 죽치고 앉아 계신다더군.”
어쨌든 결과적으로 병사들 사이에서 황태자의 이미지는 이제 미친놈에서 살짝 맛이 간 놈 정도로 급부상했다.
아무튼 황태자가 휘두른 칼에 맞아 죽지 않으려면 그 때밀이라는 것을 받고 돌아가긴 해야 했다.
그렇게 수치심을 느끼며 비덴탕에 방문해 얀피르에게 때를 밀린 그들은.
“흐, 흐아앗……!”
예상과는 다르게, 완전히 새 사람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때밀이가 이런 것이었다니! 이걸 몰랐던 나의 지난 삶은 다 헛된 것이었다!’
게다가 때밀이라는 것은 전혀 여성적인 문화가 아니었다.
근위병들의 시선에서 보기에 이 때밀이는 마치 고행과 같은 것이었으니까.
‘온몸이 아프면서도, 다 끝나고 나면 시원한 것이 꼭 훈련을 할 때와 비슷하지 않은가……?’
제국에서 가장 남자다운 이 근위병들은, 이제 예전과는 전혀 다른 태도로 때밀이에 대해 극찬을 하고 다녔다.
마치 검술 훈련을 할 때와 같이 고통 속에서 오는 쾌락이 존재할 뿐 아니라.
피로도 풀고 매끄러운 피부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그 이후엔 일사천리였다.
이제 비덴탕에는 때를 밀려는 남성 고객들의 예약이 폭주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때밀이 인기의 재발견은 비단 남성들 사이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